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꼭필독] 성령을 모독/경멸(contempt)하는 죄들 여섯 가지 1140_ [성령모독죄] [무례] [자의적 추정] [망망] [번역오류] [질투] 1035_시기vs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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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232.2.*]

2012-10-23 ㅣ No.1276

 
+ 찬미 예수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14"에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가 나열하였던 "성령을 거스르는/맞서는 죄(성령모독죄)들" 여섯 가지를 또한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i) 절망/자포자기/단념(despair)
(ii) 주제넘음/무례(無禮, 신분/분수를 벗어남)/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
(iii) 뉘우치지 않음(impenitence)
(iv) 완고함(obstinacy)
(v) 알려진 진리에 대한 저항(resisting the known truth)
(vi) 다른 이의 영적 선에 대한 질투(envy of another's spritual good)

     이글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악으로 기울어져 그리하여 신성적 빛(Divine light)을 경멸하는(turning away), 성령을 거스르는, 이들 여섯 가지의 죄들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이들 죄들에 대한 정의(definitions)들 및 설명들을 함께 학습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d/d131.htm 

1.
DESPAIR

The sin by which a person gives up all hope of salvation or of the means necessary to reach heaven. It is therefore not mere anxiety about the future or fear that one may be lost. It is rather a deliberate yielding to the idea that human nature cannot co-operate with God's grace, or that the despairing person is too wicked to be saved, or that God has cast one away. It is a grave crime against God's goodness. Experience also shows that a tendency to despair can seriously injure one's physical and mental health, and ironically can lead to all kinds of sinful indulgence. (Etym. Latin de, the opposite of + sperare, to hope: desperatio, hopelessness, despair.)

자포자기/절망/단념(despair)

바로 그것에 의하여 한 인격이 구원에 대한 혹은 하늘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대한 희망(hope, 망덕) 모두를 포기하는 죄(sin)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죄는 어떤 자가 잃을 수도 있는 미래 혹은 두려움에 관한 단순한 걱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죄는 그보다는 인간의 본성이 하느님의 은총과 협조할 수 없다는, 혹은 자포자기하는 자는 너무도 사악하여 구함을 받을 수 없다는, 혹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이미 버리셨다는, 생각(idea)으로의 어떤 고의적인(delierate) 기울어짐을 말합니다. 이 죄는 하느님의 선함(goodness)에 반하는 한 개의 중대한 범죄(a grave crime)입니다. 자포자기/절망/단념(despair)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어떤 경항(a tendency to)이 그러한 자의 육체적 및 정신적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역설적으로(ironically) 죄 있는 탐닉(sinful indulgence)의 모든 종류들로 이르게 할 수 있음을 경험(experience)은 또한 보여줍니다. [어원. Latin de, the opposite of + sperare, to hope: desperatio, hopelessness, despair.]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0월 25일]

게시자 주 1: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90-2092항들의 가르침입니다. 망덕(hope, 희망)에 반하는 죄들이, 십계명들 중의 제1계명이 관련된, 바로, 위에 있는, 자포자기(절망, 단념, despair)와, 아래에 있는, 주제넘음/무례(無禮, 신분/분수를 벗어남)/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 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아래의 번역문들에서 우리말 번역은 필자가 한 것이며, 일부 글자들에 대하여 굵게 표시하고 그리고 색깔들을 입힌 것은 필자가 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7C.HTM

(발췌 시작)

Hope

희망(hope,망덕)

 

2090 When God reveals Himself and calls him, man cannot fully respond to the divine love by his own powers. He must hope that God will give him the capacity to love Him in return and to act in conformity with the commandments of charity. Hope is the confident expectation of divine blessing and the beatific vision of God; it is also the fear of offending God's love and of incurring punishment.

2090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어 그리하여 그를 부를 때에, 사람은 자신 고유한 힘들에 의거하여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에 충분하게 응답할 수 없습니다. 교환으로(in return) 당신을 사랑할(love) 수 있는 그리고 애덕(charity, 사랑)의 계명들과 일치하여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실 것임을 그는 희망하여야 합니다. 망덕(hope, 희망)은 하느님의 축복과 하느님의 지복직관에 대하여 확신하는 예상이며, 그리고 이것은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침범함(offending)과 그리하여 벌을 초래함(incurring)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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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6년 4월 30일]

(***) 번역자 주: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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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1 The first commandment is also concerned with sins against hope, namely, despair and presumption: 

     By despair, man ceases to hope for his personal salvation from God, for help in attaining it or for the forgiveness of his sins. Despair is contrary to God's goodness, to his justice - for the Lord is faithful to his promises - and to his mercy.

2091 [십계명들 중의] 첫 번째 계명은 또한 망덕(hope, 희망)에 반하는 죄들인 자포자기(절망, despair)주제넘음/무례(無禮, 신분/분수를 벗어남)/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과 다음과 같이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자포자기(despair, 절망)에 의하여,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의 개별 구원에 대하여, 그것을 얻음에 있어 도움에 대하여 혹은 자신의 죄들의 용서에 대하여, 희망하는 것을 그만 둡니다. 자포자기(despair, 절망)는 하느님의 선함에, 당신의 의로움에, 상반되는데, 이는 주님께서는 당신의 약속들과 당신의 자비에 충실하시기 때문이며, 그리고 당신의 자비에 상반됩니다.

 

2092 There are two kinds of presumption. Either man presumes upon his own capacities, (hoping to be able to save himself without help from on high), or he presumes upon God's almighty power or his mercy (hoping to obtain his forgiveness without conversion and glory without merit).

2092 주제넘음/무례(無禮, 신분/분수를 벗어남)/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에 있어 두 가지 종류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높은 곳으로부터의 도움 없이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하면서), 자신 고유의 능력들에 대하여 자의적(恣意的)으로 추정/망망(妄望)하거나, 혹은 [회심(conversion) 없이 당신의 용서와 그리고 마땅히 받을만함(공로, merit) 없이 영광을 획득할 것이라 희망하면서] 그가 하느님의 전능의 힘 혹은 당신의 자비를 자의적(恣意的)으로 추정/망망(妄望)하는 것 둘 중의 하나입니다.   

 

게시자 주 2:
(1)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에 의하면, 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92항의 가르침에서, 첫 번째 주제넘음/무례(無禮, 신분/분수를 벗어남)/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은 사추덕(four cardin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굳셈(fortitude, 용덕)에 속하는 덕인 도량(magnanimity)에 반하는 이고[신학 대전, IIa IIae q130(클릭하십시오)], 두 번째 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주제넘음/무례(無禮)망덕(hope, 희망)에 반하는 입니다[신학 대전, IIa IIae q21(클릭하십시오)]. 지금 말씀드리는 바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92항의 주석에도 주어져 있지 않으나,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92항 전문입니다. 영어로 "presumption"으로 번역되는 신학적 용어를, "자의적(恣意的) 추정" 혹은 "망망(妄望)" 등이 아니고"자만"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번역 미숙/오류라는 생각입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희 망

2090 하느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시고 인간을 부르실 때,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사랑에 온전히 응답할 수 없다. 인간은 그 사랑에 응답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의 계명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께서 주시기를 바라야 한다. 희망은 하느님의 복과 지복 직관을 확신에 넘쳐
기다리는 것이다. 희망은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고 벌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2091 첫째 계명은 희망을 거스르는 죄, 곧 절망이나 자만과도 관련된다.

     절망으로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시거나 죄를 용서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버린다. 절망은 하느님의 선함과 의로움과(하느님은 당신 약속에 성실하시다.) 그리고 그분의 자비로움을 거스르는 것이다.

2092 자만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늘의 도움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자만하는 형태도 있고, (회개하지 않고도 하느님의 용서를 얻고 공로 없이도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느님의 전능과 자비를 과신하는 형태도 있다.

(이상, 발췌 끝).

여기서, 영어로 "presumption"으로 번역되는 신학적 용어를 "자만"으로 번역한 것이 왜 번역 미숙/오류인가에 대한 근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자만" 이라는 단어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만(自慢) :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냄.
[네이버 영어사전 : self-conceit;self-admiration;self-praise;self-applause;vanity;pride;boast]

 

자만(自滿) : 스스로 흡족하게 여김.
[네이버 영어 사전 : self-satisfaction;self-complacence]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과신" 이라는 단어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신 (過信) : 지나치게 믿음.
[네이버 영어 사전 : overconfidence;excessive confidence]

그리고,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교만" 이라는 단어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만(驕慢) :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
[네이버 영어 사전 : pride;haughtiness;arrogance;conceit]

문제는, 이들 둘 중의 어느 설명을 바로 위의 우리말 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92항의 문장 중에 대입하더라도, 전후 문맥 안에서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설명들에서 보다시피, 이들 둘 중의 어느 "자만""과신"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2) 더 당혹스러운 것은, 영어로 "presumption"으로 번역되는 단어가 또한 사용되고 있는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733항에서, 이 영어 단어가 사용되는 바로 그 문장의 그 자리에,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733항에서, "자만" 이라는 단어 대신에, "자만"과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 "교만(驕慢)" 이라는 단어를 또한 사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9Q.HTM

(발췌 시작)

Facing temptations in prayer

 

2732 The most common yet most hidden temptation is our lack of faith. It expresses itself less by declared incredulity than by our actual preferences. When we begin to pray, a thousand labors or cares thought to be urgent vie for priority; once again, it is the moment of truth for the heart: what is its real love? Sometimes we turn to the Lord as a last resort, but do we really believe he is? Sometimes we enlist the Lord as an ally, but our heart remains presumptuous. In each case, our lack of faith reveals that we do not yet share in the disposition of a humble heart: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2733 Another temptation, to which presumption opens the gate, is acedia. the spiritual writers understand by this a form of depression due to lax ascetical practice, decreasing vigilance, carelessness of heart. "The spirit indeed is willing, but the flesh is weak." The greater the height, the harder the fall. Painful as discouragement is, it is the reverse of presumption. the humble are not surprised by their distress; it leads them to trust more, to hold fast in constancy.
(이상, 발췌 끝)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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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기도 중 유혹에 직면하여

2732
가장 흔하면서도 매우 은밀한 유혹은 우리 신앙의 부족이다. 이 유혹은 공공연한 불신보다는 오히려 구체적인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급한 일이라고 여겨지는 갖가지 일이나 근심이 더중요한 것처럼 나타나는데,  이는 또다시 무엇엔가 집착하고 있는 마음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주님을 우리 최후의 피난처로 여겨 그분께 갈 때에도,  우리는 참으로 그분을 믿는가?  또 주님을 우리의 친지로 여길 때에도, 우리 마음은 여전히 자만으로 차 있는 경우가 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우리 신앙의 부족,  곧 우리가 아직 겸손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2733 자만
때문에 빠지게 되는 또 다른 유혹은 게으름이다. 영성적인 교부들은 이를 금욕 정신이 해이하고 경계심이 감퇴하여 마음이 태만해짐으로써 나타나는 일종의 의기소침으로 이해해 왔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마태 26,41)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더 많이 다치게 된다. 고통스러운 좌절감은 교만의 이면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지 않는다. 자신의 비참함을 느끼는 겸손한 사람은 더 깊은 신뢰심을 갖게 되고, 더욱 끈기있게 참아 견딘다.

(3)
(3-1)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본문 중에서 영어로 "pride" 로 번역되는 단어는 다음에, 제시하였듯이, 총 11개의 항들에서뿐 입니다:

   11 pride

[영어본 CCC 57; 132(hold pride of), 1784; 1866; 1931; 2094; 2317; 2514; 2540; 2559; 2728]

(3-2) 그러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본문 중에서 "교만" 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다음에, 제시하였듯이, 총 9개의 항들에서 입니다:

[우리말본 CCC 30(발췌문에서: 교만한); 57(교만하게도); 771(발췌문에서: 교만한); 1584(발췌문에서: 교만한); 1784; 1825(발췌문에서: 교만하지(arrogant)); 1850(교만스럽게도, proud); 1866; 1931; 2094; 2317; 2514(살림살이에 대한 자만, pride of life) 2540; 2547(교만한, proud); 2559; 2733(교만, presumption); 2836(교만한 <- 추가됨)]

(3-3) 위의 (3-1)(3-2)에서 살펴본 바로 부터, 영어본 가톨릭 교리서 본문 중에서 "pride"로 번역되는 표현이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제132항의 숙어 제외, 그리고 번역 오류들인 제2514항과 제2733항을 제외하고는, "교만"으로 번역된 것을 파악하였습니다. 

(3-4) 다른 한편으로, 신학 대전 IIa IIae, q162, pride(교만) 이 또한 별도의 항목으로 다루어지고 있기에,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733항에서 영어로 "presumption" 번역되는 용어를 또한 "교만"으로 번역한 것은 분명한 번역 오류입니다. 

(4) 그러나, 아래의 제2항에 주어진, Modern Catholic Dictionary"presumption" 이라는 신학적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위의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92항에 주어진 정의(definition)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 두 문헌들에서의 "presumption"이라는 신학적 용어의 정의(definition)은, 사실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주어진 정의(definition)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presumption"에 대하여서는, "신학 대전"의 본문에서, 위의 게시자 주 2 (1)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단 두 곳에서만 "presumption" 라는 제목(표제)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4-1)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고

"신학대전여행""신학 대전"의, IIa IIae, q21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 < 희망(hope, 망덕) 을 읽을 수 있습니다.

(4-2) 여기를 클릭하면<----- 필독 권고

"신학대전여행""신학 대전"의, IIa IIae, q130 주제넘음/무례(無禮)/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 < 굳셈(fortitude, 용덕) 을 읽을 수 있습니다.

(4-3) 그리고, 다음의 파란색 글자들을 클릭하면, "신학 대전"의 본문 중에서 "presumption"과 그 파생어들이 등장하는 부분들 모두를 손쉽게 찾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149 presumption
     1 presumptions
    35 presumptuous
     5 presumptuously

(4-4) 다른 한편으로, 아래의 제2항에 주어진 "presumption" 단어의 신학적 의미와 위의 (1)에 주어진 "자만"의 의미는 대단히 다르므로,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서 "presumption" 으로 번역되는 단어를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서 "자만"으로 번역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는 생각입니다.

(5) 그리고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92항에서 "presumption"으로 번역되는 단어를 "과신"으로 번역한 것은, 잘해야, 의역일 것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2.
PRESUMPTION

The desire to undertake, or the actual undertaking of, what is above one's capacity. It is a result of pride, which makes a person overestimate his abilities and blinds him to his deficiencies. It also leads one to expect graces from God without doing anything to obtain them, and even when acting the opposite, as when sinning, the person presumes that forgiveness is assured. (Etym. Latin praesumere, to suppose, take for granted.)

주제넘음/무례(無禮, 신분/분수를 벗어남)/자의적(恣意的) 추정/망망(妄望)(presumption)

자신의 능력 이상인 바를 맡으려고(undertake) 하는 욕망(desire), 혹은 실제로 맡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한 인격으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들을 과대평가하게(overestimate) 하고 그리하여 그를 자신의 결함들에 대하여 눈이 멀게(blind to) 하는, 교만(驕慢, pride)의 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으로부터 은총들을, 이들을 얻기 위하여 아무 것도 행함 없이, 기대하도록(expect) 이끌며, 그리고 심지어, 죄를 지을 때처럼, 그 반대를 행할 때에도, 그러한 자(the person)는 용서가 보장된다고 자의적(恣意的)으로 추정/망망(妄望)합니다(presumes). [어원. Latin praesumere, to suppose, take for gra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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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무례(無禮)" 란, "예(禮)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예(禮)를 벗어남/지키지 않음", 즉 "자신의 신분/분수를 벗어남/지키지 않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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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mpenitence

뉘우치지 않음

3-1. 다음은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 주어진 설명입니다:

impenitence [뉘우치지 않음] : the quality or state of being impenitent [회개를 거부하는 특성 혹은 상태] : failure or refusal to repent 

(발췌 시작)  

 

3-2.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설명입니다:

IMPENITENCE, FINAL

Dying unreconciled with God, whether through loss of faith, or through despair, or through a blasphemous rejection of God's love.

최후의 뉘우치지 않음(final impenitence)

믿음(faith, 신덕)의 상실을 통하여, 혹은 자포자기(despair, 절망)를 통하여, 혹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어떤 모독적 거절(a blasphemous rejection)를 통하여서이건, 하느님과 화해함 없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4.

OBSTINACY

Unreasonable stubbornness in persisting in one's own opinion and mode of action, tenaciously insistent upon doing one's own way. It often shuts the mind to known truth and creates contempt by militating against divine authority. By closing the heart to promptings of grace and possible repentance, it may lead to grievous malice and flagrant error. (Etym. Latin obstinatus, from ob-, against + stare, to stand: obstinare, to set one's mind firmly on.)

완고함(obstinacy)

자신 고유의 견해 안에서 주장함 및 행동의 양식에 있어, 자신 고유의 방식을 행함을 집요하게 주장하는, 납득할 수 없는 고집(unreasonable stubbornness)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알려진 진리에 대하여 마음을 자주 닫으며(shuts) 그리고 신성적 권위(divine authority)에 반하여 작용함으로써, 경멸(contempt, 모욕)을 증가시킵니다. 은총의, 그리하여 가능한 회개(repentance)의, 재촉 행위(promptings)들 쪽으로 심장(heart)을 닫음(closing)으로써완고함은 중대한 악의(grievous malice)와 명백한 오류(flagrant error)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원. Latin obstinatus, from ob-, against + stare, to stand: obstinare, to set one's mind firmly on.]
 

 

5.
알려진 진리에 대한 저항(resisting the known truth)

게시자 주: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다는 생각입니다.

6.
다른 이의 영적 선에 대한 질투(envy of another's spritual good)

6-1.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용어집에 주어진 질투(envy)에 대한 설명입니다. 괄호 안의 번호는 CCC 관련 항의 번호입니다. 이하,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ENVY: Resentment or sadness at another's good fortune, and the desire to have it for oneself. One of the seven capital sins, envy is contrary to the tenth commandment (2539).

 

질투(ENVY): 다른 이의 행운에 대한 분노 혹은 슬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다른 이의 행운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the desire)을 말한다. 일곱 개의 죄종(seven capital sins, 七罪宗)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는 십계명의 제10계명에 반한다(CCC 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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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설명 또한, 너무 간략하게 용어 설명을 하고 있어,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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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설명입니다:  

ENVY
질투

다른 이의 우수함, 행운, 혹은 성공에 대하여 슬프함 혹은 불만을 말한다. 이것은 어떤 이가, 다른 이에 대하여 자신이 질투하는(envies) 바에 의하여, 자기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박탈당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심지어 불의가 이미 행하여졌다고 생각함을 뜻한다. 질투(envy)에 있어 본질적인 것은 박탈당함(deprivation)에 대한 바로 이러한 의미(sense)이다. 그 결과 그것은 단순히 다른 어떤 자가 어떤 바람직한 재능 혹은 소유물을 가지고 있음을 슬퍼함이 아니며, 또한 다른 이의 수준에 이르고자 하거나 혹은 능가하고자 하는, 칭찬할 만한 경쟁일 수 있는, 포부(ambition)가 전혀 아니다. 이것은, 자신 고유의 소유물들을 함께 나누기를 꺼리는 것을 뜻하는, 시기(jealousy)와 동일하지 않다.(*)

 

Sadness or discontent at the excellence, good fortune, or success of another person. It implies that one considers oneself somehow deprived by what one envies in another or even that an injustice has been done. Essential to envy is this sense of deprivation. consequently it is not merely sadness that someone else has some desirable talent or possession, nor certainly the ambition to equal or surpass another person, which can be laudable emulation. It is not the same as jealousy, which implies an unwillingness to share one's own possessions.

 

질투(envy)는 애덕(charity, 사랑)에 반하는 죄이며 그리고, 비록 본질적으로 심각하기는 하나, 전적으로 의도적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는가 그리고 질투(envy)를 당하는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달려있는, 중대함에 있어서의 정도들을 허용한다(allows of). 질투(envy)에 기인하는 가장 심각한 죄(the most serious sin of envy)는 다른 이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받은 초자연적 선물들 혹은 은총들(the supernatural gifts or graces)에 접하였을 때의 슬퍼함(sadness), 즉 [다른 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성덕(聖德, sanctity, 거룩함)에 접하였을 때의 슬퍼함(sadness)이다. (Etym. Latin invidia; from invidere, to look askance.)

 

Envy is a sin against charity and, though serious in itself, allows of degrees of gravity depending on whether fully consented to and how important is the object envied. The most serious sin of envy is sadness at the supernatural gifts or graces that another has received from God, i.e., to envy sanctity. (Etym. Latin invidia; from invidere, to look ask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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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52항을 살펴보더라도 신약 성경에서 질투(envy)시기(jealousy)는 구분되고 있다. 그리고, 위의 설명에 의하면, 시기(jealousy)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심각한 죄가 질투(envy)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1852.htm

CCC 1852  죄는 매우 다양하다. 성서는 여러 번 죄를 열거하고 있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육정의 행동을 성령의 열매와 대조한다.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바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5,19`-21)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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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로마 1,28-32; 1고린 6,9-10; 에페 5,3-5; 골로 3,5-9; 1디모 1,9`-10;
2디모 3,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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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 1852 There are a great many kinds of sins. Scripture provides several lists of them. The Letter to the Galatians contrasts the works of the flesh with the fruit of the Spirit: "Now the works of the flesh are plain: fornication, impurity, licentiousness, idolatry, sorcery, enmity, strife, jealousy, anger, selfishness, dissension, factions, envy, drunkenness, carousing, and the like. I warn you, as I warned you before, that those who do such things sha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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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7 Gal 5:19-21; cf. Rom 1:28-32; 1 Cor 6,9-10; Eph 5:3-5; Col 3:5-8; 1 Tim 1,9-10; 2 Tim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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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우리말을 사용하는 분들이 제대로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시기(jealousy)"원죄의 결과인 "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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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20시간 (자료 조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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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모독죄,절망,자포자기,단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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