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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 [bosco99] 쪽지 캡슐

2000-05-28 ㅣ No.773

불신받는 수습대책위원회(24일)

 

 

 

23일 오후 2시부터 남동 성당에서 민주인사가 모여서 협의한 결과 학생 시민이 신뢰할 수 있는 관민각계의 인사에 의한 강력한 수습 대책위를 구성하고 광주사태는 공수특전대와 계엄군의 살상만행에 대한 광주 전 시민의 정당방위이며, 책임자를 처단하고 여하한 보복도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8개 항목을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의견서를 작성하여 전 경찰간부를 통하여 계엄사령부에 통화하게 하고 회답을 기다리기로 했다.

 

 

 

한편 무기 회수에 노력하고 있는 수습대책위를 돕기 위하여 오전 중 도청에 들렸다. 그러나 장 모 목사와 사업가 장 모씨가 계속 전화통을 잡고 당국의 지시를 받아 어용 노릇을 하고 있는 인상을 받았다. 학생 대표와 시민 대표가 연달아 들어와서 무기만 회수하면 무엇하느냐 어르신들이 빨리 수습해 달라고 호소했다.

 

 

 

22일에 계엄사령부 당국과 구두로 약속한 7개 항목의 내용은 무기를 회수하는 대신 군은 진주하지 않고 연행자들을 당국의 주장대로 선별 석방하고 사북사태와 같은 사후 보복은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내용이었다 한다.

 

 

 

24일 오전 10시 경 도청 청사 2층에 있는 수습대책위(부지사실)에 들어가자 이미 각종 총기 3,500정, 수류탄 1,000개 정도 회수되어 있었다. 그리고 22일의 8개 항목 합의 사항도 문답식으로 인쇄한 전단을 준비하여 일부 시민에 배부하는 중이었다. 얼마 있다 30명 정도의 각계 수습위원이 모여 임시 위원장에 이종기(변호사)가 시민에게 알리기로 하고 전원 도청 앞 광장에 나갔다.

 

 

 

광장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분수대를 중심으로 집합했으며 시민궐기대회를 기다리면서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 있다 임시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으며, 나는 수습대책위 사람들과 같이 분수대 아래 맨 앞줄에 앉아서 듣고 있었다. 한두번 박수가 있었을 뿐 불신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실패한 것이다. 그는 시민에 의하여 신뢰를 받지 못한 것이다. "집어 치워라" "간단히 말하라" "끌어 내려라" "죽여 버려라" 시민의 불신의 외침은 무서웠다. 나의 기억에는 조 신부가 "총이 있으면 살상만행을 마음대로 한 공수부대를 한 사람 남기지 않고 사살하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말했을 때 큰 박수가 일어난 것 뿐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저렇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수습대책위는 이제 끝이다. 이렇게 판단한 나는 도청 내에 들어갔다. 그리고 의인의 피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수습하는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기자들과 민주인사 그리고 학생대표와 시민 대표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회의의 진전은 없었다.

 

 

 

12시가 지나서 일단 집에 돌아왔다. 장지권 신부와 같이 간단히 식사를 하고 시내 신부들과 2시에 도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피의 대가를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실망했다. 계엄사령부에 수시 연락하며 지시를 받아 총기회수에만 촛점을 맞추려는 어용인사들과는 이 이상 같이 일할 수가 없었다. 민주인사들이 퇴장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뢰받지 못한 것은 수습대책위 뿐이었을까. 선량한 민중은 수십년간 독재자들의 기만과 억압을 감수해 왔으며, 우롱당해오지 않았는가. 학생은 교수를 신임하지 않았으며, 민중은 관료를 한 사람도 신뢰하지 않았다. 아니 전 국민이 정권을 신뢰하지 않고 정부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하여도 신용하지 않는 무서운 불신 시대가 아닌가. 누가 이런 상태를 만들었는가. 회한과 슬픔이 가슴을 찌른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다. 정부는 허위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진실을 고백하라.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공수특전대의 만행을 인정하고 정부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라. 서푼의 가치도 없는 체면이 의인이 흘린 피보다도 중요하단 말인가. 사실은 사실이라고 말하라.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인정하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라. 그리고 어떠한 보복도 있을 수 없다고 천명하라.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살상, 만행을 다하고도 최대한의 관용을 베푼다는 말은 어떻게 할 수 있으며, 최소한 만행의 목격자이고 피해자인 80만 광주 시민이 그 관용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불신, 불신, 이 나라 이 민족을 파멸로 이끌고야 말 불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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