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자료실

가톨릭교회교리서65: 주님의 기도 (6) - 일곱 가지 청원 (4)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12 ㅣ No.338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65) 주님의 기도 (6) 일곱 가지 청원 ④

원수조차 사랑할 때 그리스도의 모습 본받고 하느님의 자비 얻을 수 있어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다섯째 청원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입니다. 이 청원에 대해 살펴봅니다(2838~2845항).

이 대목은 두 구절로 이뤄져 있습니다. 핵심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입니다. 그런데 전제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먼저 용서하겠으니 하느님 아버지께서 저희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십사 하고 청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먼저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는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다섯째 청원의 ‘놀라움'이 있습니다. 이를 좀 더 풀어봅시다.


용서는 사랑의 전제 조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는 청원에는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이 깔려 있습니다. 죄를 지은 죄인이기에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지요. 죄인임을 인정하면서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는 것은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자비로우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할 까닭이 없지요. 그래서 죄를 용서해 달라는 이 청원에는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시리라는 굳은 희망도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 한, 하느님의 넘치는 자비가 우리 마음속으로 스며들 수 없다”(2840항)는 데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1요한 4,20)는 성경 말씀을 상기해 봅시다. 우리의 형제·자매를 용서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 마음은 닫히고 굳어져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스며들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는 부드러운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죄를 고백함으로써 우리 마음은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리게 됩니다.


기도로 인간적 어려움 극복해야

물론 인간적으로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너그러이 용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을 믿고 마음을 열어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태 18,23-35) 끝 부분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모욕을 당하고도 그것을 잊는다는 것은 우리 능력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께 자기 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모욕을 동정으로 바꾸며, 상심(傷心)을 전구(轉求)로 변화시켜 기억을 정화”합니다(2843항).

이렇게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게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원수까지 용서하게 해줍니다. 기도하면서 우리는 변화되어 우리의 주님이자 스승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그래서 용서는 “그리스도인이 바치는 기도의 정점”(2844항)입니다.

용서는 또한 이 세상에서 사랑이 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그 모범을 보이셨고, 우리의 순교 성인들, 순교 복자들은 예수님의 증언을 재현하신 분들입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자녀들과 그 아버지이신 하느님 사이의 화해를,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화해를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용서는 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께 빚을 진 자들입니다.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용서하시는 하느님께 진 빚을 갚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무리 해도 다 할 수 없는 의무가 바로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로마 13,8 참조).

[평화신문, 2014년 10월 12일,
정리=이창훈 기자]



6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