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RE:459]교회를 공격하는 페미니즘. 두번째

인쇄

승근배 [worker] 쪽지 캡슐

2000-01-24 ㅣ No.465

교회를 공격하는 페미니즘 (두번째)

 

가부장제도의 기원과 교회에서의 발전과정, 그리고 예수시대의 유다인들이 품고 있었던 여성에 관한 입장 등을 설명해 주신 글 재미있게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질문한 문화적 배경이 예수께서 여성을 사도로 뽑지 않았던 이유가 된 것에 대한 설명은 매우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원한 답변은 여기에 관한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저의 생각을 말하고자 합니다. 물론 정론은 아닙니다. 저의 개인적 소견일 뿐입니다.

 

 

1.결론

 

먼저 계속 되풀이되지만 결론부터 말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가부장적인 제도를 천명하지도 않았으며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것을 인정한 적도 없습니다. 그대의 상처는 사회적인 불평등적인 사고에서(유교적 사고라든가, 힘의 논리) 비롯된 것이지 결코 교회에서 연유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대의 상처에 교회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상처를 얼마간 방조했던 교회는 그들과 함께 하면서 가부장적이며 남성우월적인 사회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을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여성을 사제로 등용해야 할 책임까지는 없습니다. 사회적인 사고와 구조의 불평등으로 파생된 문제에 여성사제직을 그 해결책으로 들먹인다는 것은 너무나 엉뚱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여성해방과 여성사제직은 아무 관련이 없으므로!

 

해방자 예수님께서 "문화"라는 미명아래 여성을 사도로 뽑지 않았다는 자매님의 주장은 곧 예수님께서 남존여비사상, 남성우월론적인 사상에 굴복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예수님의 말과 행동이 모순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직무에 여성이라는 신분이 그 시대에 장애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도에서 제외하였다는 주장은 여성과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배려라기 보다는 그 시대의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한 예수님의 굴욕적인 타협에 가까운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 이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2.예수님의 반문화적인 모습들

 

우리가 여성해방과 여성사제직을 논하려면 성서에서 예수님의 그 시대의 문화에 대한 언행과 특히 여성에 대한 모습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 먼저 문화에 대한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내어 봅시다. 그럼으로써 그 시대의 "문화"에서 여성사도를 뽑지 않으신 이유를 찾는 것이 얼마나 말도 되지 않는 추론인지, 얼마나 큰 모순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반문화적인 모습들.

1.베짜타 못가의 병자를 고쳐주심(요한 5,1-18) 그날은 유대인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안식일이었다.

2.라자로를 소생시켜주심(요한11,38-44) 죽은 자를 다시 살린다는 것은 유대인에게 있어 반문화적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3.세리와 함께 하심(루가19,1-10) 세리도 역시 죄인으로 분류되었으며 사람들은 세리와 함께 하는 것을 꺼려했다.

4.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드심(마태15,1-20) 유다인들의 문화에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했다.

 

5.아이들을 축복하심(마태19,13-15) 당시의 아이들도 천대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하늘나라를 차지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6.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냄(마르11,15) 당시 성전에는 봉헌을 위하여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환전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 관행이었다.

 

갈릴래아 사람들, 당시엔 죄인으로 분류되었던 세리와 병자들과 함께 하시는 모습들, 그리고 불평등한 문화에 대한 예수님의 가히 혁신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저항으로 인해 예수께서는 유다문화에서 따돌림당하게 되며 결국 이것이 예수의 죽음을 부르게 된 동기가 됩니다. 그밖에도 예수께서 유다문화에 항변하셨던 모습은 성서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수께서 여성사도를 시대의 문화적인 이유로 해서 선출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그만큼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것만은 문화, 사회적인 이유를 고려하셨을까요? 불평등한 문화에 대해선 과감히 항변하시던 예수님께서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여성에 관해서 만은 다른 입장에 섰던 것이었을까요? 그럼 예수께서 행하신 여성에 대한 모습을 성서에서 찾아내어 봅시다.

 

 

+여성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

1.과부의 아들을 살리심(루가11,11-17)예수께서는 측은한 마음이 드시고 친히 위로하시고 아들을 살려주셨다.

2.창녀를 용서하시고 함께 하여주심(요한 12,1-8) 여성은 그 당시에 죄인으로 분류되었다. 때문에 메시아가 창녀와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문화적 스캔들이었다.

 

3.하혈병에 걸린 여인을 고쳐주심(마르 5,34)

  죽은 소녀아이를 살려주심(마르 5,41)

4.과부의 헌금을 받으심(마르 12,41-44)

5.간음한 여자를 살리심(요한 8,1-11)

 

6.덧 붙여지는 계명-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마태오 5,27)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마태오 5,32)- 그 시대의 유다 남성들에게 이 말씀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으며 반대로 여성들에겐 해방과도 같은 소리였다

 

 

 

3.문화라는 이유에 대한 반론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분명 문화적인 영향에 굴복하시지 않으셨으며 여성에 대해서도 동시대의 남성들과는 달리 존중받아야 할 인격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행동은 앞서 제시한 문화에 대한 저항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이유가 되게 하였습니다. 때문에 앞서 제시한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반문화적인 언행과 여성들을 대하는 모습과 비교해볼 때 예수님께서 여성사도를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 시대의 문화적, 사목적 이유 때문에"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상치가 되는 주장입니다.

 

죄인들과 함께 하시고 특히 여성의 간청을 묵살하지 않고 언제나 사랑에 넘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예수께서 무엇이 두려워서 그러셨겠습니까? 그 정도로 나약한 분이셨습니까? 불의에 대해 언제 이해를 구하셨으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적이 없던 분이셨습니다. 더군다나 세상 끝 날까지 지속되어야 할 그분의 대리자를 뽑는 일에 당시의 문화적, 사회적 상황을 의식하여 여성을 사제로 뽑는 것을 자제하셨다는 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이치에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말이 문화적, 사회적이지 한마디로 당시 기득권세력의 눈치를 봤다는 얘기 아닙니까? 이게 말이나 됩니까? 다른 건 다 말씀대로 행하셨으면서 유독 그것만은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셨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설이 타당 가능한 것이 된다면 이는 정의로운 예수께서 교회와 여성의 고난을 염려한 나머지 불의에 침묵하셨다는 얘기가 됩니다. 여성을 해방시켜 주셨으면서도 문화적인 이유로 여성을 사도로 뽑는 일만은 차마 하지 못하신 분. 그것이 해방이라면 진정한 해방일텐데 말입니다. 한마디로 자매님께서 말씀하신 "문화적인 이유"가 예수께서 여성사도의 선출을 기피하신 이유로 타당한 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혹자는 또 "박해를 받아야 하는 교회와 여성을 너무 아끼셨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말도 되지 않는 가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 말고도 교회와 여성이 박해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다 감수하시면서 왜 여성사도로 인한 박해만은 기피하셨을까요. 그런 여성에 대한 박해를 염려하셨다면 예수께서는 여성을 사도를 뽑는 것이 더 좋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만큼 여성의 뒷받침이 되어주는 것은 없을테니까요. 처음에야 반발과 박해가 심하겠지만 나중에 여성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훌륭한 장치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누구도 여성의 사회적, 종교적 신분에 의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겠죠.

 

그럼 또 "선교지 주민들에게 있어서 여성사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말도 되지 않는 가설입니다. 당시 선교지 주민들에게 이해 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 윤리가 한 두 가지였습니까? 그래서 선교에 장애가 되었던 것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윤리적, 도덕적으로 동시대의 사람들에겐 가히 충격적인 가르침을 주었던 예수님께서 여성해방의 가르침만은 선교지 주민들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뒤로 숨겼다? 선교에 장애가 될 것 같아서? 초대교회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동시대의 그리스, 로마문화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습니까. 하지만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선조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두 신앙했으며 선교하였습니다. 초대교회신자들께서는 만약 "여성사제직"이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것이었다면 어떠한 문화적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박해와 선교의 장애도 아무 문제가 되질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성사제직을 예수께서 가르치시고자 한 생각이 있으셨다면 선교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선포하셨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성해방론자의 기대를 저버린 채 선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곧 "여성사제직과 여성해방에 대해 예수님께서 아무 관련을 두지 않으셨다."라는 것을 뜻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성사제직이 여성해방을 이루는 데에 어떠한 조건이 되는 것이었다면 예수께서는 어떠한 문화적인 반발을 감수하고서라도 여성을 사도로 임명하셨을 것입니다. 아니 여성을 사도로 뽑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는 아니었다."라는 결론을 내려보았습니다. 이러한 결론은 여성을 사도로 뽑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른 두 가지의 가정을 낳게 합니다. 하나는 "예수께서도 가부장적인 유대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남성우월적인 사고를 지니신 분이었다."이며 또 하나는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우선 전자의 추론에 동의하실 분은 없다고 봅니다. 아무리 급진적인 여성해방론자라도! 그렇다면 이제 나머지 하나의 가정이 남게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여성해방과 사도직과는 아무 관련을 두지 않으셨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주장이 바로 그것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사도직과 오늘날의 사제직에 여성을 부르실 생각을 하지도 않으셨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4.남은 질문들

 

그래도 질문은 남을 것입니다. "남성에겐 사제직이라는 소명을 주셨는데 왜 여성에겐 그것을 주시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남성과 여성에 차별을 두셨다는 것인가? 여성은 아무 것도 아닌가?"하는 물음말입니다. 더 많이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고민을 저는 "교회론적 여성해방론"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성모님과 많은 성녀, 동정녀들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어순만 바뀐 것이긴 하지만, 교회를 여성해방의 도구로, 여성사제직을 계급으로 이해하는 여성해방론적 교회론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페미니즘 자신들도 그들의 사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페미니즘은 시대별로 그 모습을 달리하며 그 자신들을 보완해나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런 미비한 사상을 가톨릭 교회에 가져와서 "여성해방론적 교회론"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직을 실험용으로 선택한다는 것두요. 접목과 실험 이전에 더 많은 고민이 자매님을 비롯한 여성해방론자들에게도 필요하다고 보는데 자매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제가 여성해방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너무 과격하다는 것입니다. 아래 어떤 분께서 큼지막하고 시커먼 글씨로 "거세"라는 망측한 표현을 아무 거리낌없이 쓴 것이나 자매님께서 ’쉬쓸러 피오렌자’가 쓴 책을 보라고 하신 것 등 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성신학자인 그 분은 성서마저도 가부장적인 사고에 사로잡혔던 남성 사도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의심하고 비판하고 새롭게 창조하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너무 과격하지 않나요? 그러한 행동들과 주장들은 여성해방론에도 도움이 되질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질문이 있는데요, 사도 바오로와 그의 후학들이 노예제도를 당연시하였다고 하셨는데 그 사실을 어디에서 찾으면 알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주장하고자 한 얘기는 하나인데 재주가 없어서 글이 길어졌습니다. 모쪼록 저의 의도를 가늠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솔직히 여성해방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단지 여성사제직은 그리스도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의 설명이 모자라기에 여성사제직에 대해 더 좋은 조언을 해주신 이웃들의 글을 경청하시는 것이 이 대화를 위해 좋을 듯 싶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교회도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교회를 변질시키느냐? 아니면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곧,가톨릭적인 페미니즘은 존재하여도 페미니즘적인 가톨릭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worker

 

 



155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