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바보닭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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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광 [paschal] 쪽지 캡슐

2000-03-25 ㅣ No.651

사람이 나이가 들면 과거를 들추어내는 버릇이 생긴다고 합니다.  돌아갈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는 시간들이지만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저도 오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렸을 때의 기억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쩌면 가장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기도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서 저에게 평생 교훈을 준 것을 생각하면.....

 

저의 어린 시절은 우리나라 전체가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는 몇 마리의 닭을 키웠습니다. 평상시에는 달걀을 먹어서 좋았고, 집에 큰 일이 있거나 중요한 손님이 오시면 잡아서 대접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집에서는 제가 닭장을 관리하는 도우미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시장에 가서 닭들이 좋아할만한 채소를 주워오고, 노는 날에는 들판에 나가 메뚜기며 지렁이들을 잡아다 주었습니다. 닭은 우리 식구에게는 단백질을 공급하는 중요한 먹거리였지만 저에게는 함께 놀수 있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닭들은 알을 낳으면 "꼬끼오"하고 소리를 냅니다. 아침에 소리가 나서 닭장에 가면 어김없이 탐스런 달걀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닭이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암닭인데 알을 낳지 못하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그 닭을 '바보닭'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먹이를 주어도 알을 낳지 못하는 그녀석에게는 항상 가장 맛이없어 보이는 찌꺼기만 주고 바보라고 놀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닭을 잡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우리 식구들에 의해 가장 먼저 지명된 놈은 바로 그 '바보닭'이었습니다. 놈은 저에게 살려달라고 하는 것처럼 닭장 여기저기를 도망다녔습니다. 하지만 바보닭을 이내 저에게 잡혔고 얼마 안가서 그는 운명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황당하게 한 일은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닭을 잡던 어머니가 저를 부르셨습니다. 닭의 내장을 자르다보니 그의 알집에는 알들이 있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알을 낳았다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바보닭'은 자신이 알을 낳았으면서도 "꼬끼오"하고 외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그놈은 알을 낳지 못한 놈이라고 오해를 받았고 그로 인해 끝내는 명대로 살지못했던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바보닭'에게 미안해 눈물을 흘렸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바보닭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습니다. 자신이 알을 낳았지만 울지 않았기에 알을 못낳는다고해서 죽은 '바보닭'은 저에게 확실한 교훈 하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묵묵히 해야할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고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인정해 줄 주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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