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복음에서 22,`55를 제외하고는 ‘불’이라는 단어는 모두 예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3,`9.`1617;9,`54;12,`49;17,`29) 불은 물과 더불어 정화의 상징입니다. ‘불을 지르러 왔다’라는 파격적인 말씀은 긍정적인 의미로,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 고향 동네에 큰 산불이 났습니다. 불은 삽시간에 숲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산은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 놓고 지날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어머니는 자주 산에 가실 일이 생겼습니다. 불난 산에는 고사리가 많다는 말을 들었나 봅니다. 불난 산에 고사리가 많기도 하겠지만 불이 난 곳에선 유독 고사리가 눈에 잘 띄기 때문이겠죠. 한번은 고사리를 꺾다가 보니 점점 깊은 산으로 들어가게 되어 길을 잃고 헤메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도 뭐가 그리 재미난지 한동안 계속 산에 오르셨답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성장이 빠른 고사리는 어머니의 표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세상이 겪어야 할 ‘성령과 불의 세례’(루가 3,`16 참조)는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관문입니다. 그 너머 불난 자리에 고사리순이 쑥쑥 자라듯 하느님 자녀들이 또렷이 서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수난의 여정을 ‘세례’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몹시도 괴로운 현실이었습니다. 분열과 고난의 세례는 예수께서 우리보다 먼저 겪으신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조차도 버림받은 채 혼자서 그 길을 가셨지만 교회는 앞장서서 승리하신 그분과 함께 그 세례를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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