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앞장서 가시는 분(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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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10-21 ㅣ No.3693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2004-10-21)

독서 : 에페 3,14-21 복음 : 루가 12,49-53

* 앞장서 가시는 분 *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한 가정에 다섯 식구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여 갈라지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
(루가 12,49-­53)

루가복음에서 22,`55를 제외하고는 ‘불’이라는 단어는 모두 예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3,`9.`16­17;9,`54;12,`49;17,`29) 불은 물과 더불어 정화의 상징입니다. ‘불을 지르러 왔다’라는 파격적인 말씀은 긍정적인 의미로,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 고향 동네에 큰 산불이 났습니다. 불은 삽시간에 숲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산은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 놓고 지날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어머니는 자주 산에 가실 일이 생겼습니다. 불난 산에는 고사리가 많다는 말을 들었나 봅니다. 불난 산에 고사리가 많기도 하겠지만 불이 난 곳에선 유독 고사리가 눈에 잘 띄기 때문이겠죠. 한번은 고사리를 꺾다가 보니 점점 깊은 산으로 들어가게 되어 길을 잃고 헤메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도 뭐가 그리 재미난지 한동안 계속 산에 오르셨답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성장이 빠른 고사리는 어머니의 표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세상이 겪어야 할 ‘성령과 불의 세례’(루가 3,`16 참조)는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관문입니다. 그 너머 불난 자리에 고사리순이 쑥쑥 자라듯 하느님 자녀들이 또렷이 서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수난의 여정을 ‘세례’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몹시도 괴로운 현실이었습니다. 분열과 고난의 세례는 예수께서 우리보다 먼저 겪으신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조차도 버림받은 채 혼자서 그 길을 가셨지만 교회는 앞장서서 승리하신 그분과 함께 그 세례를 받을 것입니다.

이정석 신부(전주 가톨릭신학원)

-  사랑과 슬픔의 만다라 -

너는 내 최초의 현주소
늙은 우편 배달부가 두들기는
첫번째 집
시작 노트의 첫장에
시의 첫문장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시는 너를 위한 것
다른 사람들은 너를 너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너를 너라고 부르지 않는다

너는 내 마음
너는 내 입 안에서 밤을 지샌 혀
너는 내 안의 수많은 나

정오의 슬픔 위에
새들이 찧어대는 입방아 위에
너의 손을 얹어다오

물고기처럼 달아나기만 하는 생 위에
고독한 내 눈썹 위에
너의 손을 얹어다오

나는 너에게로 가서 죽으리라
내가 그걸 원하니까
나는 늙음으로 생을 마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바닷새처럼 해변의 모래 구멍에서
고뇌의 생각들을 파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내가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넌 알몸으로 내 앞에 서 있다

내게 말해다오
네가 알고 있는 비밀을
어린 바닷게들의 눈속임을

순간의 삶을 버린 빈 조개가 모래 속에
감추고 있는 비밀을
그러면 나는 너에게로 가서 죽으리라

나의 시는 너를 위한 것
다만 너를 위한 것

- 류시화의 詩중에서 -


님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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