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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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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 [bosco99] 쪽지 캡슐

2000-05-28 ㅣ No.774

수습해야지 (25일)

 

 

 

오늘은 성령강림의 대축일이다. 은혜로운 날 축복이 넘쳐 흘러야 하는 날이다. 교회가 창립되고 성령의 은혜로 새 인간이 된 날이다. 그러나 유독 광주지역은 공포와 피비린내가 나는 혼란의 수렁 속을 방황하고 있다.

 

 

 

윤공희 대주교님으로부터 메시지를 읽었다. 어제 오후 4시경 불신을 뼈아프게 느끼면서 도청 앞 광장에서 빠져나와 센터에 들렸다. 바로 대주교님의 메시지가 인쇄되어 시내 각 본당에 받으러 오라고 연락하는 참이었다.

 

 

 

5시경 본당에 돌아와 민주인사 10여명과 사태수습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내일 오후 2시에 확대회의를 갖기로 약속하고 그들을 돌려 보낸 후 송정리 신동 성당의 정 바오로 신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7시 반에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교우들에게 알릴 수 있게 메시지를 녹음하게 했다. 그리고 가능한한 지방의 본당에 전해질 것을 원했다. 계엄군이 광주시를 완전 포위하고 시외에 통하는 도로를 전부 차단하고 시외전화도 통할 수 없게 하였다. 10시 미사에도 메시지를 읽어서 들려 주었다.

 

 

 

기뻐용약해야할 기간이었던 지난 한 주간 오직 광주시민만이 피를 흘리는 불행을 겪어야 했지만 결코 피의 값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 유래가 없는 비극이기는 하지만 슬기롭게 수습하며 크리스챤적 사랑으로 증오와 불의를 이기자고 위로와 호소하며 격려하는 내용이다. 이미 희생된 사람들과 유가족을 위하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강론을 했다.

 

 

 

1. 이제 우리는 네 발로 기어다녀야 하며, 개나 도야지와 같이 입을 먹이 그릇에 처박아 먹어야 하며, 짐승과 같이 살아가야만 한다.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 유신 잔당이 우리를 짐승같이 취급하여, 때리고 개를 죽이듯이 끌고 가고, 찌르고, 쏘았기 때문이다.

 

 

 

2. 두다리로 걷고 인간답게 살려고 하면 생명을 걸고 민주화 투쟁에 몸을 던져야 한다. 과거의 침묵, 비굴했던 침묵의 대가를 지금 우리들은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3. 부산, 마산 사건에서 죽은 사람들은 유신 괴수의 죽음으로 피의 값을 받았다. 그리고 유신 괴수도 김재규 일당의 죽음으로 보상된 이 때에 자유와 인권을 위하여 죽어간 많은 시민의 피도 보상되어야 한다.

 

 

 

4. 이제야말로 우리는 결단의 때를 맞이하였다. 비굴해져서 짐승같이 천한 생명을 유지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다운 민주시민으로서 살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이다.

 

 

 

오후 2시 변호사, 교수, 민주시민청년들, Y측 인사, 신부들이 모였다. 2시간 동안 진지한 토의를 거듭한 끝에 수습하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전원이 도청으로 향했다. 수습해야지. 무조건 수습해야 한다. 4시가 지나서 UIP 기자의 전화를 받고 도청으로 갔다. 그리고 잠시 흥분된 대화를 나눈 후 수습위원을 재정비하고 정식 절차를 따라 협의를 시작했다. 수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핵심을 찾아내야 한다. 피의 대가를 요구하자. 그래야 비로소 수습할 수 있다. 드디어 나의 제안이 만장일치로 결의되었다.

 

 

 

최 대통령이 방송망을 통하여 전국민에게 다음과 같이 사죄할 것을 요구한다.

 

 

 

1. 금번 사태는 정부의 과오로서 가져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2. 사죄하고 용서를 청해야 한다.

 

3. 모든 피해는 국가가 보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4. 여하한 보복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진실을 말하고 사죄한다면 자유를 사랑하는 광주시민의 누구 하나 용서안 할 사람이 있을 것인가, 진실이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진실 속에서만이 불신이 제거되는 민족적 화해와 참된 국민총화가 이루어지며, 국가안보가 보장될 것이다.

 

 

 

6시 경이라고 기억한다. 학생회장이 피곤한 모습으로 들어와 무엇인가 호소한다. 광주시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TNT를 어른들이 지켜달라는 것이다. 3일간 한잠 못자고 지켜왔으나 이제는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성직자들이 지키자, 목사와 신부에게 총을 주면 우리들이 지키겠다고 제의했다. 결국 목사와 신부들이 신뢰할 수 있는 청년신도들을 데리고 와서 지키기로 합의하고 비가 계속 내리는 밤길을 걸어서 본당으로 돌아왔다. 급히 식사를 하면서 5명의 청년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밤 본당 신부와 같이 죽어도 좋다는 용기있는 청년이 필요하다. 용기가 있으면 곧 나에게 와 주게, 빵과 음표수를 준비하고 2명의 청년과 같이 도청으로 향했다. 또 하루가 지나간다. 피가 스며든 대지에 밤비가 내려 쏟는다. 하느님이 흘리는 눈물일 것이다.

 

 

 

밤 9시경 조신부가 7-8인의 학생과 청년을 데리고 왔다. 공포와 불안에 쌓인 도청내는 시간마다 비상경계가 내려졌으며, 때때로 공포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학생과 시민대표가 교대로 들어와서 대화를 나누었다. 자정이 지나 나는 학생대표 한 사람의 보호를 받으며, 아랫층에 있는 상황실에 들어갔다. 거기서 17-8세 정도의 술에 취한 소년을 보았다. 만취한 그는 공포를 쏘며 소란을 피워서 출동한 시민군 기동타격대가 연행해왔다 한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옆방에서는 평소에 잘 아는 젊은 여성들이 헌금을 정리하고 있었다. 10원 동전만도 16만원이 된다고 말했다. 새벽 4시까지 개인접촉을 계속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자. 그리고 정말로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게 수습하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느냐, 하느님은 알 것이다. 죽음의 참상을 감춰진 죽음의 실상을...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고 싶다는 이러한 상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한다. 무기는 군대가 갖고 외적과 싸우는 것이니 무기를 버리고 맨손으로 자유와 민주화를 위하여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공산군이 오면 총부리를 빨갱이에게 돌리겠다면 대한민국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겠다고 맹세한다.

 

 

 

아! 이 애국 청년들을 누가 폭도라고 쫓아버리는가. 수습하자, 기어이 수습해야 한다.

 

 

 

(내일 계속 이어집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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