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우동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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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균 [janggyoun] 쪽지 캡슐

2000-08-02 ㅣ No.1488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년중 가장바쁠때이다

"북해정"도 이날만은 아침부터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보통때는  12시쯤이되어도 거리가번잡한데 그날만큼은밤이깊어질수록 집으로돌아가는 사람

들의 발걸음도빨라지고 10시가넘자 북해정의손님도 뜸해졌다 사람들은 좋지만 무뚝뚝한주인

보다오히려 단골손님으로부터 주인아줌마라고불리우고있는그의아내는분주했던하루의 답례로

임시종업원에게 특별상여금주머니와 선물로국수를들려서 막 돌려보낸 참이었다 마지막손님이

가게를막나갔을때 슬슬문앞의옥호박(가게이름이 쓰려진 막)을 거둘까하고있던참에 출입문이

드르륵하고 힘없이열리더니 두명의아이를데리고 한 여자가들어왔다 6세와10세정도의사내들은

새로준비한듯한 트레이닝차림이었고 여자는계절이지난체크무늬반코트를 입고있었다

"어서오세요!"라고 맞이하는주인에게 그여자는 머뭇머뭇 말했다 "저......우동.....일인분만

주문해도 괞찮을까요..."  뒤에서는 두아이들이걱정스러운 얼굴로처다보고 있었다

"네......네, 자, 이쪽으로"  난로곁의2번 테이블로안내하면서 여주인은 주방 안을향해

"우동,1인분!하고 소리친다.

주문을받은주인은 잠깐일행 세 사람에게눈길을보내면서,"예!"하고 대답하고 삶지않은1인분의

우동 한덩어리와 거기에 반덩어리를 더 넣어삶는다 둥근우동 한 덩어리가 일인분의 양이다

손님과아내에게 눈치채이지않은 주인의서비스로 수북한분량의우동이 삶아진다

테이블에 나온가득담긴우동을 가운데두고 이마를맞대고 먹고있는 세사람의 이야기소리가

카운터있는곳까지 희미하게 들린다. "맜있네요"라는 형의목소리."엄마도 잡수세요."하며

한가닥의 국수를 집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가는동생.이윽고 다 먹자150엔의 값을 지불하며,"맛있게 먹었읍니다"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고맙습니다,새해엔

복 많이받으세요!"하고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했다.

신년을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나날속에서 한해를 보내고 다시12월31일을 맞이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바쁜하루를끝대고,10시를 막 넘긴 참이어서 가게를닫으려고

할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사람의 남자아이를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주인은

그여자가입고있는 체크무늬의반코트를보고 일년전 섣달 그믐날의 마지막 그손님임을알아

보았다 "저...우동.....일인분입니다만.....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주인은작년과같은2번테이블로 안내하면서,"우동 일인분!"하고 커다랗게 소리친다

"네엣!우동 일인분."라고 주인은 대답하면서 막 꺼버린 화덕에 불을붙인다. "저 여보 써비

스로3인분 내줍시다."조용히 귀엣말을하는 여주인에게,"안돼요.그런일을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여길거요."라고 말하면서 남편은 둥근 우동 하나 반을 삶는다."여보,무뚝뚝한 얼굴

을하고있어도 좋은 구석이있구려."미소를 머금는아내에대해 변함없이 입을다물고삶아진우동

을 그릇에 담는 주인이다

테이블위에 한그릇의 우동을 둘러싼 세 모자의 애기소리가 카운터안과바깥의 두사람에게

들려온다 "으.....맛있어요......"올해도 북해정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내년에 더 먹을수 있으면 좋으련만......"다먹고150엔을 지불하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주인 내외는,"고맙습니다!새해 복많이 받으셍요!"그날수십번되풀이했던 인사말로

전송한다

그 다음해의 섣달 그믐날밤은 여느때보다 더욱장사가 번성하는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은 누가먼저 입을 열지는않았지만 9시반이 지날무렵부터 안절부절

어쩔줄을모른다.10시를넘긴참이어서 종업원을귀가시킨 주인은 벽에붙어있는 메뉴표를 차례차례뒤집었다 금년 여름에 값을올려’우동200엔’이라고 씌어져 메뉴표가150엔으로

둔갑하고있었다 2번 테이블위에는 이미 30분전부터<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시반이되어 가게안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있었기나 한것처럼 모자 세사람

이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교복 동생은 작년형이입고있던 잠바를 헐렁하게입고있었다

두사람 다 몰라볼정도로 성장해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엄마는 색이바랜 체크무늬반코트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는조심조심말한다

"저...우동.....이인분인데도........괜찮겠죠?"

"넷......어서어서. 자 이쪽으로"라며 2번테이블로 안내하먼서, 여주인은 거기있던<예약석>

이란팻말을슬그머니감추고 카운터를향해서 소리친다."우동 이인분!"그걸받아,"우동 이인분!"이라고답한 주인은 둥근우동 세덩어리를뜨거운 국물속에던져넣었다 두그릇의 우동을 함께먹는 세모자의밝은목소리가들리고 이야기도활기가있음이느껴졌다 카운터안에서

무심코눈과눈을마주치며 미소짓는여주인과,예의무뚝뚝한채로"응응"하며고개를끄덕이는

주인이다

형아야,그리고쥰아........오늘은 너희둘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무슨 말씀이세요?"  "실은,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사고로 여덟명이나되는사람이부상을 입었잖니. 보험급으로도 지불할수없었던 만큼을 매월5만엔씩

계속지불하고있었단다." "음......알고있어요"라고 형이대답한다. 여주인과주인은몸도 꼼짝않고 가만히듣고있다 "지불은 내년3월까지로되어있었지만,실은오늘전부끝낼수수있었

단다" "넷!정말이예요?엄마!" "그래,정말이지.형아는 신문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쥰이

장보기와 저녁준비를 매일해준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수있었던거란다 그래서 정말열심

히 해서 회사로부터특별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끝마칠수있었던거야"

"엄마!형!잘됏어요!하지만 앞으로도 저녁식사준비는 내가할거예요" "나도신문배달,계속할래요.쥰아!힘을내자!" "고맙다 정말로고마워"형이눈을반짝이며말한다

 

"지금 비로소 애긴데요.쥰이하고 나 엄마한테숨기고 있는것이있어요 그것은요......11월

첫째일요일 학교에서쥰이의 수업참관을 하라고 편지가왔었어요.그때쥰은 이미선생님으로

부터 편지를받아놓고 있었지만요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대표로 뽑혀 전국콩쿠루에출품

되게 되어서 수업참관일에 이 작문을 쥰이읽게됐대요.선생님이 주신편지를엄마에게 보여

드리면.....무리를위해서회사를쉬실걸알기때문에 쥰이그걸감췄어요" "그래....그랬었구나.....그래서."

"선생님께서,너는 장래 어떤사람이되고싶은가,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쓰게하셨는데

쥰은<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지금부터 그 작문을 읽어드릴께요.

<우동한그릇>이라는 제목만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걸 알았기 때문에.........

쥰녀석 무슨그런 부끄러운 애기를썼지! 하고 마음속으로생각했죠.작문은......아빠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셔서 많은 빛을남겼다는것,엄마가 아침일찍부터 밤늦게까지일을하고계시다는

것,내가 조간신문을 배달하고있다는것등........전부씌어있었어요.그리고서12월31일밤

셋이서 다만 한그릇밖에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많이받으세요!라고 큰소리로말해주신일. 그목소리는......지지말아라! 살아갈수있어!라고

말하는것같은기분이들었다고요.그래서쥰은,어른이되면 손님에게힘내라!행복해라!라는속마음

을 감추고,고맙습니다!라고 말할수있는 일본제일의 우동집주인이되는것이라고,커다란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안쪽에서,귀를기울이고있을주인과 여주인의모습이보이지않는다.카운터

깊숙이웅크린 두사람은 한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듯이 붙잡고 참을수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닦고있었다

작문읽기를 끝마쳤을때 선생님이,쥰의형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와주었으니까,여기에서 인사를 해달라고해서...."그래서 형아는어떻게했지?" "갑자기 요청받았기때뭉에,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지만......여러분 항상쥰과사이좋게지내줘서고맙습니다...동생은 매일저녁식사

준비를하고있습니다 그래서 클럽활동도중에돌아가니까,폐를끼치고있다고생각합니다 방금동생이,우동한그릇>이라고 읽기시작했을때.....나는처음엔부끄럽게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펴고 커다란목소리로읽고있는 동생을보고있는사이엔 한그릇의우동을부끄럽

다고 생각하는그마음이 더 부끄러운것이라고생각했습니다 그때,한그릇의 우동을시켜주신

어머니의용기를 잊어서는안된다고생각합니다....형제가 힘을합쳐,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앞으로도쥰과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라고 말했어요"

차분하게 서로 손을잡기도하고 웃다가넘어질듯이 어깨를두드리기도하고 작년까지와는 아주

달라진즐거운그믐날밤의광경이었다. 우동을다먹고 300엔을내며 ’잘먹었습니다’라고 깊이

깊이 머리를숙이며 나가는세사람을 주인과여주인은 일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전송했다

다시일년이 지나......북해정에서는 밤9시가 지나서부터<예약석>이란 팻말을2번테이블위에

올려놓고는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 세 모자는 나타나지않았다.다음해에도,또다음해에도,

2번테이블을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나타나지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번창하여

가게내부수리를하게되자,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이바꾸어지만 그2번테이블만은그대로남겨

두었다 새테이블이 나란히있는가운데에서 단하나낡은테이블이중앙에놓여 있는것이다

"어째서,이것이 여기에?하고 의아스러운손님에게,주인과여주인은<우동한그릇>의일을 이야기하고,이테이블을보고서 자신들의 자극제로하고있다 어느날인가 그 세사람의 손님이

와줄지도모른다,그때 이 테이블로맞이하고싶다,라고 설명하곤했다

그이야기는’행복의테이블’로써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우동을먹고가는여학생이 있는가하면 그 테이블이 비길기다려주문을하는 젊은커풀도

있어 상당한인기를불러일으켰다. 그리고나서 또 수년의 세월이흐른어느해 섣달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는같은거리의상점회회원이며 가족처럼사귀고있는이웃들이 각자의가게를

닫고모여들고있었다 북해정에서 섣달그믐의풍습인 해 넘기기우동을먹은후 제야의종소리를

들으면서 동료들과 그 가족이모여 가까운 신사에 그 해의첫참배를가는것이5,6년전부터의

관례가되어있었다

그날밤도9시반이지나 생선가게부부가 생선회를가득담은큰접시를 양손에들고들어온것이

신호라도되는것처럼 평상시의동료30여명이 술이랑안주를손에들고 차례차례모여들어 가게

안의분위기는들떠있었다.2번테이블의유래를 그들도알고있었다 입으로말은안해도 아마금년에

도 빈 채로 신년을맞이할것이라고 생각했지만’섣달 그믐날10시예약석’은 비워둔채 비좁은

자리에전원이조금씩몸을좁혀앉아 늦게오는동료를맞이했다 우동을먹는사람 술을마시는사람

서로가져온요리에손을떠는사람 카운터안에들어가돕고있는사람 멋대로냉장고를열고뭔가

꺼내고있는사람 등등으로떠들석하다 바겐세일이야기 해수욕장에서의에피소드 손자가 태어난

이야기등.  번잡함이 절정에 달한10시반이 지났을때 입구의 문이 드르륵하고열렸다

몇사람인가의 시선이 입구로향하며 동시에그들은이야기를멈추었다 오바를손에든 정장차림의

두사람의 청년이 들어왔다

다시 애기가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

여주인이 죄송하다는듯한얼굴로"공교롭게 만원이어서"라며 거절하려고 했을때 화복(일본옷)

차림의부인이 깊이 머리를숙이며 들어와서 두청년사이에섰다 가게안에있는 모두가 침을 삼키며귀를기울인다 화복을입은 부인이조용이 말했다

"저........ 우동.....3인분입니다만...괜찮겠죠?"그말을들은 여주인의얼굴색이 변했다

 

십수년의세월을순식간에 밀어젖히고 그날의젊은엄마와어린두아들의모습이눈앞에 세사람과

겹쳐진다 카운터안에서 눈을크게뜨고바라보고있는주인과방금들어온세사람을번갈아가리키면

서"
저...저...여보!" 하고 당황해하고 있는여주인에게 청년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14년전 섣달 그믐날밤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얻어 세사람이 손을맞잡고 열심히 살아갈수있었습니다

그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금년 의사국가시험에합격하여 교토의 대학병원에소아과의병아리의사로근무하고있습

니다만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종합병원에서근무하게되었습니다 그병원에 인사도하고 아버님묘에도들를겸해서왔습니다

그리고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슴니다만 교토의 은행에 다니는동생과상의해서 지금까지의 인생가운데서 최고의 사치스러운것을 계획했습니다........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찾아와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끄덕이면서 듣고있던 여주인과주인의눈에서 눈물이넘쳐흘렀다 입구에 가까운 테이블

에 진을치고있던 야채가게주인이 우동을 머금은채 있다가 그대로꿀꺽하고 삼키며일어나

"여봐요,여주인 아줌마!뭐하고 있어요!십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놓고 기다리고기다린,

섣달그믐날10시예약석이잖아요 안내해요,안내를!"

야채가게주인의말에 번뜩정신을차린여주인은,"잘오셨어요....자 어서요...여보! 2번테이블

우동3인분!" 무뚝뚝한 얼굴을 눈물로적신 주인,"네엣! 우동 3인분!"

 

예기치않은 환성과박수가터지는 가게밖에서는 조금전까지 흩날리던눈발도그치고 갓내린 눈에 반사되어 창문의빛에비친 <북해정>이라고 쓰인 옥호만이 한발앞서 불어제치는 정월의바람에 휘날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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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89년2월일본국회의예산심의 위원회회의실에서 질문에나선 공명당의 오쿠보의원이

난데없이 뭔가를꺼내읽기시작했다 대정부질문에 일어난 돌연한행동에 멈칫했던장관들과

의원들은 낭독이 계속되자 그것이한편의동화라는사실을깨달았다 . 이야기가반쯤진행되자

좌석의 여기저기에서는 눈물을훌쩍이며손수건을꺼내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끝날

무렵에는 온통 울음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정책이고 이념이고 파벌이고 모든것을 다 초월한

숙연한순간이었다 장관이건 방청객이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편을가를것없이 모두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못하는모습이었다 국회를울리고 학교를울리고 결국은 나라 전체를울린

’눈물의피리’가 바로<우동한그릇>이란동화다

감격에굶주렸던 현대인에게<우동한그릇>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감동 연습을시켜준셈이다

"울지않고배겨낼수있는가를 시험하기위해서라도 한번 읽어보라고"고 일본경제신문이추천한

이작품의화제는 전일본을들끊게하더니 급기야 전세계로확산되고있는중이다

찢어지게가난했던 어린시절을 체험한 어른들과,

가난을 모르고 자란 요즘 어린이들에게

이<우동한그릇>은 어떠한 실체로 투영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들의 작은 봉사활동이

우동 한 그릇처럼 어려운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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