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신약의 산이 구약의 산을 부수다 (마태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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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6-08 ㅣ No.303

2020 6 8일 연중 제10주간월요일

 신약의 산이 구약의 산을 부수다

(마태 5:1~12)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슬퍼하는 사람들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온유한 사람들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자비로운 사람들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마음이 깨끗한 사람들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평화를 이루는 사람들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여러분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보편적인 것이 꼭 정답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산상수훈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드리는 거죠.  많은 신학자들이 이 산상수훈을 구원받은 자들의 행동 강령에 무게를 두어서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이 산상수훈은 타 종교인들까지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할 정도로 아주 보편적이며 인기가 있는 보편적 윤리 강령이죠물론 그들의 평가입니다그리고 서두에 팔복 강화의 부분에 마치 후렴구처럼 따라 나오는 복이라는 단어가 아주 매력이죠복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복그래서 타 종교인들까지도 광분하면서 이 산상수훈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실천에 옮기려고 하는 거예요그러면 복받을까 봐..

 

마하트마 간디가 죽는 날까지 제일 열심히 읽었던 책이 바로 이 산상수훈이었다는 것을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그런데 불교의 법화경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어요 아주 비슷해요노자의 도덕경에도 거의 흡사한 내용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만일 우리가 이 산상수훈을 도덕과 윤리 혹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지켜야 할 행동강령 정도로 이해를 한다면 성경과 타 종교인들의 경전과 다른 게 뭐예요과연 산상수훈이라는 것과 그러한 타 종교인들이 갖고 있는 경전이 목적하는 바가 같은 걸까요그러면 뭐 하러 꼭 성경을 공부합니까

정말 이 산상수훈이 인간들의 자존심과 가치와 유익을 챙겨주는 윤리강령의 나열이나 그런 윤리강령을 잘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선언에 불과한 것이겠습니까아닙니다.

이 산상수훈은 오히려 그러한 인간들의 자기 ’ 쌓기를 부수는 강화예요구약의 의가 신약의 새 언약에 의해서 박살이 나는 곳이 바로 이 산상수훈의 현장입니다완전히 반대 이야기예요그래서 제목을 신약의 산이 구약의 산을 부수다라고 붙인 거예요신약의 산은 바로 이 산상수훈이 뿌려지는 산을 말하는 거고구약의 산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율법의 산시나이산을 가리키는 거예요성경은 전체가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새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께서 어떻게 구약의 율법을 부수고 하느님이 준비하신 하늘의 의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해 내시는지를 보여 주는 게 성경이란 말예요.

 

이 산상수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강화가 어느 에피소드 뒤에 이어지는지를 눈여겨봐야 해요이 산상수훈이 5장이죠? 4장 말미에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부분이 나오죠거기에 붙어 있는 거예요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데 거기에 어떤 오해가 발생하고 예수님이 거기에 대한 설명으로 붙여 주는게 산상수훈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병자들이 치유되고 귀신들린 자들이 놓임을 받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 화려하게 시작이 됩니다그야말로 화려하게그런 단순한 기적 행함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본질에 대한 선포였죠?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메시아로 보내셔서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병들고 썩어지고 귀신들리고 왜곡된 것들을 새롭게 완성해 내시겠다는 완벽한 설계도를 작성하셨어요그게 바로 창조이전 계약이죠그 설계도에 의해서 옛 성전 즉구약이 무너지고 은혜를 재료로 한 새로운 성전이 지어지는 것이 구원인 거고하느님 나라 건설인 거예요그래서 주님이 당신의 공생애를 죽음의 증상들을 몰아내는 것으로 시작하신 거예요. ‘내가 이 일하러 왔다‘ 를 보여주는 거예요그게 바로 하느님 나라의 본질이라는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신 거예요예수님이 성취하실 하느님 나라의 본질,

 

(마태 4:23~25)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데카폴리스예루살렘유다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이 경사 난 거 아니에요?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쫓아왔는데 다 물리치고 제자 12명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사실은 하느님 나라가 이런 거란다'라고 다시 설명하신다 말입니다그게 산상수훈이란 말예요.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하늘 나라 복음이란 단어예요예수님께서 하늘 나라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과 약한 것을 고쳤다 그러죠그러니까 병과 약한 것을 고친그러한 모든 기적 행함이 모두 천국 복음에 관한 일이란 말예요 하늘 나라가 이런 것이다’ 를 보여 주기 위해 행한 기적이 그건데뭔가 거기에 모인 많은 무리들이 오해를 하고 있던 거죠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하늘 나라 복음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몰려든 거라면 당연히 예수님께서 기뻐하셔야 돼요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만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하늘 나라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거란 말예요.   5장부터 7장 마지막까지, 8장 1절에서 산에서 내려오니까. 5장부터 7장까지를 산상수훈이라고 해요산에서 내려온 그 이후부터는 산상수훈 아니에요.

하느님 나라가 이미 역사 속에 침노해 들어왔다면서요 언제십자가에서그럼 여러분이 지금 하느님 나라를 살고 계시잖아요행복하시냐구요 평안하십니까?   하느님 나라가 이렇게 오해되고 있는 거예요.   지금 분명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다니까요그런데 하느님 나라가 뭔지를 모르니까내가 지금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는 거야아냐 아닐 거야이리로 자꾸 가는 거예요.

하느님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느님 나라를 사는 거냐고 물어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하느님 나라가 침노해 들어와서 그냥 아예 그자를 장악해 버리는 거예요그게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이에요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기초와 근간을 다시 설명해 주시고 있는 거예요그래서 이 산상수훈의 맨 마지막이 모래 위에 지은 집반석 위에 지은 집의 그 비유그 기초의 문제로 끝나는 거예요산상수훈의 끝이에요그게그 비유를 끝으로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세요.

 

구약을 기초로 한 집은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완전히 무너지는 거니까하느님 나라의 기초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잘 새겨 보라는 거예요그런데 12제자 에게만 가르쳐 주세요 12제자는 요한묵시록에서 교회교회에게만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관이나 천국관은 구약적 패러다임 속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그런 거였어요구약적 민속 메시아사상 속에서 그리스도는 힘 있고 강하며 일상에 유익하게 관계하고종말적 낙원까지 한꺼번에 들고 와야 하는 그런 분이었죠

인간들이 원하고 그리는 건 다 갖고 와야 되는게 메시아였어요그리고 구약적 패러다임 속의 천국은 자신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있는 그런 곳이었어요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원했던 것을 우리가 똑같이 원하고 있다니까요그러면서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심지어 거기에 자기들의 율법적 행위가 큰 영향을 미치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게 구약의 천국관이요구원관이었잖아요구원도 인간들이 그려놓은 그림대로 와야 하고천국도 인간들의 설계도대로 만들어져야 돼요이게 민속 메시아사상이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어떤 분이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일으키고 약한 자들의 무릎을 일으켜 세우시는 기적 같은 일을 행하시는 거예요사람들은 그런 기적들의 진의를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육적 필요를 채워 주는 엄청난 힘을 소유한 예수님에게 엉뚱한 천국을 기대하며 몰려들었던 거예요나중에는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니까 도망가시죠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에게 유익이 될 만한 것을 힘으로 갖고 있는 사람을 쫓게 되어 있어요그러나 그건 잘못된 메시아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그들의 그러한 그릇된 천국관과 메시아관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산상수훈이에요

따라서 산상수훈은 인간들의 행위와 자격에 상관없이 이미 완료가 된 하느님 나라가 어떻게 하느님의 택한 백성들을 치고 들어오는지에 관한 설명이 산상수훈이에요이렇게 산상수훈은 모형과 예표로 하느님 나라를 보여 줬던 그 구약의 산시나이산을 부수는 신약의 산인 거예요마태복음의 구조와 흐름을 잘 보면 이 산상수훈이 위치하는 자리가 구약의 어떤 산과 같은 자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요.

 

예수님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죠그리고는 헤로데의 칼을 피해서 애굽으로 피신을 하세요성경은 그 사건이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라는 구약의 예언 성취라고 합니다마태복음 2장에 나오죠 그 사건은 예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삶을 그대로 사실 것임을 암시하는 사건임과 동시에 율법주의와 유대주의로 자신들의 힘과 가치를 숭앙하는 이스라엘 자체를 힘의 세상인 애굽으로 선언해 버리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스라엘에서 애굽으로 가셨는데 성경은 하느님의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고 그런단 말예요졸지에 유대주의의 이스라엘이 애굽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하느님이 그걸 부수는 거예요그런데 그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베들레헴 지역의 두 살 미만의 남자아이들이 모두 도륙을 당하는 일이 발생해요그 흐름을 보시란 말예요이 산상수훈이 어떤 부분의 모형인지를.

 

(마태 2:15~18)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이상하지 않으세요하느님이 분명 요셉에게 그 자리를 피하라고 전언을 하셨죠그러면 그때에 다른 어미들에게도 전갈을 보내서 그 자리를 피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요왜 다른 얘들은 다 죽게 놔두세요예수님만 살짝 들어서 애굽으로 보내신단 말입니까하느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드신 거예요하느님은 성경의 독자들에게 뭔가를 교훈하시기 위해서 어린아이들을 다 죽여 버린 거예요그래서 그 하늘에 뜬 별이 동방박사들을 일부러 헤롯에게 데리고 간 거예요죽이라고요아니 그 별이 미쳤지바로 그냥 예수님 태어나신 구유로 갔으면 될걸,, 왜 헤로데에게로 동방박사들을 데리고 가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게 하냐구요죽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는 호세아의 예언이 인용된 곳에 라헬의 통곡이라는 예레미아의 예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을 주의하여 보셔야 해요지금 성경은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그 율법주의 자체를힘의 원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그 애굽으로 규정을 해 버리시고 그래서 예수님을 거기서 빼내는 거예요예수님이 첫 번째 엑소더스를 하고 그 뒤를 따라 하느님의 백성들이 엑소더스를 하는 거예요그런데 그게 정작 뭐였냐면이스라엘의 유대주의율법주의였어요그래서 예수님이 거기 와서 죽으시는 거예요애굽은 바로 교회 안에 그러한 율법주의유대주의의 모형으로 등장했던 거지애굽이 쳐 죽일 놈들이 아니라니까요그게 우리 안에 있는 바로 그 옛 자아’ 그 모습이란 말예요.

 

그렇게 성경은 바리사인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율법주의 자체를 힘의 원리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애굽으로 규정해 버리고 그곳에서 사는 모든 자들은 모두 다 죽어야 할 자들임을 어린아이들의 죽음으로 주지시키는 거예요다 죽어야 되는 거라는 거예요애굽이니까두 살 미만의 아이들은 어떤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자의에 의해서 내어 놓기도 전에 죽어야 할 자로 분류가 되는 거예요이걸 원죄라고 해요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은혜가 가입하지 않으면 다 죽어야 할 존재예요죽은 흙이니까나면서부터 죽어야 할 자로 분류가 되는 자들이 자라면서는 오죽하겠어요

그러니까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다 죽었다는 건..거기에 사는 모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할 자들이라는 선언이란 말입니다마태오는 그걸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통곡하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

이 예레미아의 예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대의 멸망과 관계있는 예언이죠라마라는 곳은 남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 집결된 곳이에요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죠여호수아 18장에 나오죠

그 라마는 라헬의 무덤이 있는 샐사 부근이에요예레미아 예언자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라헬이 그 무덤 속에서 자기 자식들이 끌려가는 걸 보고 통곡하는 것으로 묘사를 한 거예요

라헬의 두 아들이 요셉과 베냐민요셉의 큰 아들은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가 에브라임이죠망했잖아요남유다는 베냐민라마가 또 베냐민의 땅이고요셉과 베냐민두 아들을 다 잃은 거예요그래서 성경이 라헬을 이스라엘의 어미라고 하는 거죠그렇게 이스라엘 전체가 다 멸망했다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모든 인간은 다 죽어야 된다는 뜻이에요하느님의 백성으로 택해진 그자들도 원래 다 죽어야 된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렇게 다 죽어야 되는데그래서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다 죽었는데라헬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죠 왜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밖에 없어요죽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 이외에 다른 건 절대 위로가 안돼요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예수가 바로 그 죽은 아들을 살리러 왔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란 말입니다한 아기가 와서... 죽음에 던져져야 할 하느님의 아이들을 선택하여 살려 내는 거예요그걸 구원이라고 해요그렇게 예수는 죽어야 할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이지이 죄악의 세상에서 그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시기 위해 오신 게 아니란 말입니다인간들이 원하는 그런 복을 주어서 인간들의 역사 속에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 주러 오신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마태1:21)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모든 백성이 아니에요. 자기 백성만죄에서 구원그게 메시아란 말예요. 그렇게 구약적 이스라엘의 율법주의를 폭로한 성경은 역사적 애굽에서 예수님을 다시 불러 내시죠예수님께서 출애굽 이스라엘의 여정을 그대로 밟고 계시는 거예요예수님은 애굽에서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십니다이게 지금 마태복음의 흐름이에요.  세례라는 건애굽의 이스라엘이 죽고 가나안의 이스라엘이 새롭게 창조되는 구원의 모형이에요그래서 물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의식을 행하는 거죠그것도 하느님의 주권과 능력에 의해 성취될 새 창조의 모형이에요.

첫 창조 때 무대 배경이 어땠죠수면 위에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빛이 있으라 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창조가 시작됐잖아요예수님의 세례 현장은요저주 받을 구약이 빠져 죽을 물이 있고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 자신이 계시고 직접 하늘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또 떨어져요그리고 그 위에 하느님의 영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한단 말입니다

이게 새 창조라는 거예요첫 창조에서 모형 되었던그리고는 광야로 나가셔서 40일 시험을 받으세요그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이제 12제자를 모으시죠그건 교회입니다.12제자하느님의 교회를 대표하는 12제자를 모아서 그들을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의 도를 전하는 어떤 산으로 끌고 올라가시는 거예요그게 지금 산상수훈의 산이란 말입니다이건 정확하게 출애굽 이스라엘의 삶을 회복시키고 완성시키며 가는 모습이에요. 

어린 양의 피의 공로로 살아난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여 홍해를 건너죠그걸 바오로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는다고 그래요고린도전서 10장 2절에서그 홍해에서 애굽 군대가 빠져 죽었다라는 건애굽화된 이스라엘의 육적 자아의 죽음을 상징하는 거예요.

 

여러분 미국이 역사가 200년 밖에 안됐는데 여기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요그런데 400년간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 있었을 때그들의 그 정체성이 어떻게 확보가 됐을 것 같으세요확립이 됐을 것 같으세요애굽사람이에요애굽에서 태어났고애굽의 학문을 배웠고애굽의 것 먹고애굽에서 생활했어요애굽의 것을 배웠고애굽사람이에요.

그걸 저주의 바다 홍해에 빠뜨려 죽이는 거예요그리고는 가나안 쪽에서 봤을 때 새롭게 창조된하느님의 은혜로 새롭게 창조된 하느님의 백성이 살아 올라오는 걸세례라고 한단 말입니다그걸 나중에 이스라엘의 할례를 통하여 다시 확인 시켜주죠할례와 세례는 그 정신과 내용이 똑같은 겁니다그런데 할례를 길갈에서 행하게 하면서 뭐라고 그래요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고 그러죠그러니까 홍해 사건은 애굽의 수치이스라엘의 애굽화를 죽여 버리는 거예요그게 홍해예요그게 세례란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굳이 이스라엘을 홍해로 몰고 가신 건이스라엘 속에 있는 애굽을 죽여 버리기 위함이었던 거예요그리고는 40년 광야를 살게 하세요이스라엘은 그 광야에서 죽어야 할 자로 폭로가 되죠이게 우리의 인생입니다하느님의 법을 지키기는 개뿔이나 하나도 못 지키고이건 다 죽어야 될 자구나폭로되고 죽어요거기서 다그리고 새로운 2세대가 여호수아예수라는 인물을 앞세워서 은혜로 다시 요르단강을 가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거예요그게 구원이란 말입니다이 과정이 마태복음에서 그대로 재현이 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과정 속에 들어 있는 이 산상수훈의 이야기는 출애굽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중에 어디쯤 해당될까요광야 40년을 가면서 60만 명이 다 죽고이제 새로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형성이 되어 가나안에 가는 거니까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고, 12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어디 산으로 데리고 갔잖아요무슨 산시나이산이죠그러니까 이 산상수훈은 바로 출애굽 그 여정 속에서의 시나이산을 지금 그리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산상수훈을 구약의 시나이산이 어떻게 신약에서 회복되고 성취되는가의 측면에서 보아야죠신약에서 구약의 시나이산을 다시 그려내고 있는 산이 두 군데 나오는데그 하나가 이 산상수훈의 산이고나머지 하나가 변모산의 그 산이에요사실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산상수훈은 새로운 하늘의 법이 공포가 되고 수여되는데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고 있는 거고변모산은 그러한 새로운 법이 통치하는 완성된 하느님 나라가 모형으로 그려지고 있음과 동시에 두 산에산상수훈의 산에는 12지파를 상징하는 12제자가 올라가 있고 변화산에는 두 증인 모세와 엘리야두 증인으로 모형 되었던 교회교회가 예수님과 또 함께 있는 거예요그러나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다른 거란 말입니다두 증인과 12사도는 똑같은 거예요교회란 말예요그래서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엘리야와 모세로 대표되는 두 증인 즉교회가 그 변모산 위에 나타나는 건데모세는 시나이산엘리야는 호렙산두 산은 같은 산입니다그래서 변모산 위에 바로 그 시나이산에 올라갔던 두 사람이 올라가는 거예요그러니까 변모산과 이 산상수훈의 그 산은 구약의 시나이산의 신약적 성취를 보여주는 그러한 산이란 말이에요.

 

(루가 9:30~31) 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 別世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엑소더스에요엑소더스는 출애굽기의 제목이죠예수님의 엑소더스가 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그래서 시나이산에 올라갔던 세 분이 그 예수님의 엑소더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세상을 떠나실 일그러니까 산상수훈이 전해진 그 산이나 변모산의 그 산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부수어진 구약의 율법과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된 하느님 나라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자명한 거예요그래서 변모산 아래에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이 드러나는,, 마치 금송아지 사건 같은 그 사건이 일어나는 거예요먼저 구약의 시나이산이 갖는 메시지를 잘 정리를 해야 신약의 시나이산인 이 산상수훈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할 수가 있어요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지 50일째 되는 날시나이산에 하느님이 강림하시죠그리고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십니다.

 

(탈출 19:5~12) 5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6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려 줄 말이다.”7 모세가 돌아와 백성의 원로들을 불러주님께서 분부하신 이 모든 말씀을 전하였다. 8 그러자 백성이 다 함께, “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모세는 백성의 말을 주님께 그대로 아뢰었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너에게 다가가겠다그러면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이 듣고 너를 언제까지나 믿게 될 것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주님께 그대로 전해 드리자, 10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에게 가거라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옷을 빨아 11 셋째 날을 준비하게 하여라바로 이 셋째 날에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 12 그리고 백성에게 경계를 두루 정하여 주고 이렇게 일러라. ‘산에 오르지도 말고 산자락을 건드리지도 마라산을 건드리는 자는 누구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게 셋째 달의 이야기에요이스라엘의 유과월절 아빕월이죠이스라엘은 달력이 세 개가 있어요애굽에서 쓰던 민간력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이 주신 히브리력이 있어요성력이라고 해요그리고 그들이 로마에 들어가서 썼던 양력.

과월절이 있는 그 아빕월을 첫째 달로 하라고 그러죠그 아빕월 14일이 과월절이잖아요그날 애굽의 장자가 모두 다 죽고 나온 거죠 그러면 한 달을 30일로 쳤을 때 첫째 달에 17일 남죠둘째 달한 달, 30일이에요셋째 달세 번째 날까지 기다리라고 그러죠그러면 하느님이 지금 시나이산에 임하는 그날이 오십일 째이 때 하느님이 임해서 그들에게 법을 줬더니 3000명이 죽죠?

그런데 신약에 그 똑같은 오순절 날에는 똑같은 인간들이 하느님 임재 앞에 있는데 베드로가 설교를 했더니 3000명이 똑같이 살아나요그 가운데에 뭐가 있었던 거죠십자가가 있었던 거예요그 이야기하는 거예요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취될 신약의 산신약의 새 계약의 성취가 구약의 이 시나이산을 부수는 거란 말입니다이게 산상수훈의 이야기란 말이에요.

 

(출애19:12)12 그리고 백성에게 경계를 두루 정하여 주고 이렇게 일러라. ‘산에 오르지도 말고 산자락을 건드리지도 마라산을 건드리는 자는 누구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느님의 언약을 지켜내면그들이 하느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거라는 약속을 주세요그리고는 또다시 말씀하시기를 하느님의 임재가 있는 그 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그래요아직까지 이스라엘은 계약을 지켜내기 이전이기 때문에 그 부정함이 거룩에 닿으면 하느님의 돌격으로 죽게 돼요.. 그러니까 못 올라오게 하는 거예요그런데 이스라엘이 이구동성으로 다 지킬게요걱정하지 마세요그랬어요이게 구약의 시나이산이에요다 지킬게요걱정하지 마세요상이나 준비해 두세요하느님이 그 말을 듣고 확인 도장을 딱 찍으세요분명히 너희들 그렇게 말했어.

 

(출애 24:6~8)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가져다 여러 대접에 담아 놓고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러고 나서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8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계약의 피라는 말이 뭐냐면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피를 뿌렸다는 건너희들 그 약속 안 지키면 다 죽인다 라는 뜻이에요지키면 복 주고하느님 백성 되는 거지만못 지키면 다 죽어 라는 뜻이에요그래서 피를 뿌리는 거예요언약이에요피의 계약그런데 이스라엘은 모세가 그 법을 받는 그 시간에 금송아지 만들고 있었어요뒤 돌아서서 바로피 닦기도 전에인감도장에 인주 마르기도 전에 계약을 위반한 거죠죽어야 돼요그래서 3000명이 거기서 죽습니다다 죽어야 돼요.. 그런데 모세가 그 앞을 가로막죠. ‘하느님 저 사람들 다 죽이려고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겁니까하느님 차라리 내 생명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세요.’ 그래요

이게 누구의 모형이에요예수님의 모형이에요그리고는 두 번째 돌판이 주어지는 거죠그 돌판이 법궤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그 돌판을 볼 때마다 뭘 생각해야 되요우리는 벌써 그때 죽었어야 되는데모세의 중보로 덤으로 산거구나 라고 모세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도 하느님의 법을 대할 때 이걸 지켜야지 하면 구약사람 되는 거예요나는 벌써 죽었어야 될 자인데이걸 못 지키니까.  예수님이 가로막고 아버지 차라리 날 죽이세요그래서 내가 산 거야.. 이렇게 은혜를 붙들어야 되는 거거든요그런데 오늘날 그 산상수훈을 가지고 지키겠다라고 그래요그리고 지켜야 하느님 백성다운 사람이라고그걸 지켜야 복 받는다고 그래요지켜야 하느님 나라 들어간다고 그래요이게 청교도 신앙이었어요조심하세요산상수훈은 그런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엄밀히 말해서구약의 옛 성전은 그 자체 안에 자체 부정과 자체 충돌을 내포하고 있는 거예요성전이라는 거 자체가 율법의 표상이죠물론 그 안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다 못 지켰을 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준 거예요그러나 그 안에서 율법에 정해진 규례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그 제사는 무효에요그러니까 그것 또한 율법이란 말이에요그런데 그 율법의 표상인 성전 안에 지성소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인간들의 그 죄가 십계명 돌판으로 들어가 있고 그것이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염소의 피로 덮임으로 말미암아 용서가 되는 은혜의 현실이 그 안에 숨어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그 지성소가 나중에는 이 성전 전체를 먹어 버리는 거예요그래서 나중에 그 요한묵시록에 가면은 성전을 측량하는데 정사각형이 되는 거예요성전 안에서 정사각형은 지성소 밖에 없어요그러니까 구약의 성전은 그 자체로 어떤 가치가 있는 게 아니었어요지성소에게 먹히기 위해 존재한 거예요그 지성소가 뭐냐면신약의 새 계약이라니까요예수의 피제물의 피에 의해 인간들의 죄가 그냥 거저 덮이는 것그 은혜가 바로 이 율법의 성전을 부술 것이다이것이 구약의 성전이 담고 있는 거예요그래서 실제로 신약에 와서 그 성전이 부숴지는 거란 말입니다.

 

아무튼 이스라엘은 그 두 번째 십계명 돌판을 볼 때마다 나는 벌써 죽어야 할 사람인데 모세의 중보로 살아난 자라는 자기 부인의 고백을 해야 됐어요따라서 우리도 성경의 법을 대할 때하라하지말라의 명령을 대할 때먼저 머리 싸매고 지켜야지 그리로 가기보다지키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성령이 우리 안에서 그걸 지켜야 되겠다 라는 지향성을 갖게 만들어요그러나 이걸 먼저 지켜야 되겠다 라는 그 의지를 발동하는게 아니라 나는 벌써 이 법 때문에 죽었어야 할 자인데 예수 때문에 산 자라는 그 은혜의 현실을 먼저 붙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성전의 의미를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또다시 출애굽기 19장의 그 허탈한 맹세를 하고 있었던 게 구약의 이스라엘이었어요다 지킬게요그러다가 다 죽을 뻔했잖아요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어땠어요다 지키고 있어요그랬다구요지금은 어때요그거 잘 지키는 사람이 훌륭한 신앙인이에요또 이러고 있잖아요계속해서 에덴의 아담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언행일치니 뭐니 이런 소리들을 하는 거죠왜 훌륭한 신앙인이 언행일치가 안 돼그게 돼야 되는데그게 된다고 우기는 게 바리사인들이었다니까요그래놓고 굉장히 건강하고 건전한 신앙인이라고 착각하는 거예요이 역사는 그러한 아담들의 하느님처럼의 그 행위가 즉구약이 부인되고 깨지는 곳이에요그래서 미가서에 보면 한 산이 부수어지고 다른 산이 새롭게 서는 장면이 나오는 거예요.

 

(미가 3:9~12) 9 올바른 것을 역겨워하고 올곧은 것마다 왜곡하는 야곱 집안의 우두머리들아 이스라엘 집안의 지도자들아이 말을 들어라. 10 너희는 피로 시온을불의로 예루살렘을 세운다. 11 그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받아 판결을 내리고 사제들은 값을 받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 점을 친다그러면서도 그들은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느냐우리에게는 재앙이 닥칠 리 없다.” 하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너희 때문에 시온은 갈아엎어져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가 되며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수풀 언덕이 되리라.

 

성전율법의 모형인 그 성전이 서 있는 그 곳을 산이라고 그러죠이 시나이산이라는 말이에요그것 다 부수어질거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그래서 시온과 예루살렘이 등장하는 거거든요구약의 산율법의 산은 부수어질 거래요그런데 똑같이 그런 산이 다시 등장할 거라고 이야기해요그 다음 장으로 가보세요.

 

(미가 4:1~4) 1 마지막 때에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산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이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백성들이 이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민족이 모여 오며 말하리라. “주님의 산으로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올라가자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3 그분께서 수많은 백성 사이의 시비를 가리시고 멀리 떨어진 강한 민족들의 잘잘못을 밝혀 주시리라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4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고 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지내리라만군의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이 내용은 이사야서 2장 1절에서 4절까지 똑같이 또 기록되어 있어요두 예언자가 똑같이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이야기하는 거예요이 부분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시면 주님의 집과 주님의 산이 다른 산들의 꼭대기에 선다고 그래요다른 산들이 부정되고 이 새로운 산이 그들을 점령하는 거예요그리고 이스라엘도 아닌 많은 이방이 그 산 즉성전에 올라가서 새 성전이죠하느님이 주시는 도를 받아 그 길로 행하게 되는 거예요

산상수훈에서는 어떤 성전이 있었어요예수라는 성전 사흘 만에 내가 다시 지을 거야그건 예수님의 성전됨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그랬잖아요똑같은 이야기잖아요그런데 이미 부수어진 그 율법의 산야훼의 말씀의 산시나이산이 다시 나타나서 또 다시 율법과 야훼의 말씀이 전해지게 된다는 거예요물론 그 율법과 말씀은 이미 부수어진 구약의 산옛 성전에서 전해지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 되겠죠그게 바로 산상수훈의 내용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때에는 근처에만 가도 다 돌격하여 죽이시던 하느님이 그 말일의 산그 말일의 성전에서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도를 가르치고 야훼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거예요옛날 구약시대 같으면 지금 이런 하느님의 말씀이 여기 떨어지면 우리는 다 죽어야 돼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어요제발 하느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지 말게 해 주세요모세에게 부탁했잖아요그런데 여러분은 듣고 있다니까요바로 이 현실을 12제자가 예수님과 함께 표현해 내고 있는 거예요이건 바벨탑이라는 옛 성전을 부수시고그 자리에 거룩한 성새 예루살렘을 지으시는 하느님의 구속 사역에서도 나타난 거고똑같은 이야기에요.

느브갓네살의 그 금신상 이게 힘의 원리 속에서의 그 용사들을 상징하는 거죠세상의 용사들그 금신상이 다른 산에서 뜨인 돌뜨인 돌이 둥둥 떠 있는 돌이 아니라 산에서 삽으로 이렇게 뜨여진 돌이라는 뜻이에요다른 산에서 뜨여진 어떤 돌에 의해 박살이 나는 거죠그 이야기에요이 산상수훈의 그 산 위에 있는 뜨인 예수라는 돌이 구약의 그 시나이산그 산을 박살을 내버리는 거예요. 그 이야기란 말입니다산상수훈은바로 이 새로운 산율법의 산이 무너진 곳에 새로운 산새로 선 산새로 선 새 성전의 모습이 산상수훈의 산인 거예요그리고 그 새로운 산에서 전해지는 새로운 하늘의 법과 새로운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산상수훈의 내용인 거구요물론 그런 구약의 산과 신약의 산 사이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는 거죠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바로 이곳 산상수훈의 이 현실을 구약의 시나이산과 비교해서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히브 12:18~24)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0 “짐승이라도 산을 건드리면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하는 경고를 견디어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1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모세는 나는 두렵다.” 하며 몸을 떨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그분께서 뿌리신 피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산상수훈의 이 산은 예수에 의해 성취된 새 계약의 산이며어린양 예수의 피로 뿌린 피로 말미암게 된 은혜의 산인 거예요그래서 너희들은 이제 그곳에서 율법과 무관하게 하느님의 돌격으로부터 해방이 된 자들이 된 거야이 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가 선포되어지는 곳이 산상수훈의 산이란 말이에요.

시나이산그 율법의 산은 모세도 못 들어갔던 산이에요여기 나오잖아요모세도 두려워했다그런데 하느님의 은혜가 부어져서 많은 이방까지도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산이 섰단 말이에요그게 산상수훈이란 말입니다그 입구에 예수의 십자가가 서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산상수훈을 지금도 우리가 지켜야 할 도덕이나 윤리나 행동강령으로 해석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완전히 거꾸로구약으로 돌아가자는 거죠그런데  그분들(??)이 그렇게 해석을 했다니까요그리고 그게 옳다고 그래요이 설교가 나가면 또 아마 난리들 칠 거예요그건 성경의 전체의 맥을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그런 의미에서 산상수훈은 다른 종교인들까지 쫓기를 원하는 그리스도교 윤리나 실천 강령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하느님 나라가 이 역사 속에서 성도를 어떻게 구별하여 들어내시고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명쾌한 선포인 거예요.

 

 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라는 말이 나오죠이거 마태오가 일부러 끼어 넣은 거예요그럼 입을 열어 가르치지코를 열어 가르칩니까그런데 왜 굳이 이 단어를 썼을까요구약에서 하느님의 법이 떨어질 때마다 하느님의 입이라는 단어가 종종 나오죠여기서 마태오가 지금 예수를 하느님으로 선언하는 거예요구약에서는 그 하느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이 떨어지게 되면 죄인들이 죽었어요벌벌 떨었다니까요그런데 여기서 하느님의 법이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데 제자들이 턱을 괴고 이렇게 듣고 있는 거예요재미나게이게 신약인 거예요. 어린양의 피 때문에그게 중점이라니까요산상수훈의 핵심은 어린양의 피란 말입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그런 행동강령이 절대 아니란 말입니다지금 그 자체가 뭔가 해결되어 있는 모습이잖아요하느님이 입을 열어 뭔가 말씀을 하시고.. 하늘의 도를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이 아무런 제지나 방해 없이 그것을 듣고 있어요즐겁게

그게 지금 뭔가 해결된 게 아니에요그게 어린양의 피라니까요그러니까 지금 이 산상수훈은 예수님에 의해 이미 완료가 된 하느님 나라의 기초와 근간에 대해서 확실하게 설명을 하고그건 너희들의 행위가 아니라는 거예요그래서 마지막에 기초로 끝나는 거라고 그랬어요. 7장 마지막이 모래위에 세운 집반석 위에 세운 집그렇게 기초와 근간에 대해서 확실하게 설명을 하고 구약의 율법을 부수며 새 계약의 성취를 확고하게 세우는 그런 내용이란 말입니다.

산상수훈의 맨 앞부분과 맨 뒷부분을 샌드위치 빵처럼 감싸고 있는 단어 하느님 나라바로 그 앞에서는 하늘 나라 복음을 전했는데 병자가 낫고 귀신이 나가고 그랬다라고 하늘 나라이 나오는데그 하늘 나라가 오해되니까 하느님이 하늘 나라를 다시 설명해 주는 거예요그래서 시작이 하늘 나라고 마지막이 하늘 나라에요.

 

(마태 5: 3) 3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7:21)21 “나에게 주님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아니 뜻대로 실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잖아요하늘 나라는 대접을 받고자 해서..먼저 남을 대접한 예수에 의해 완료가 되어서..이미 교회에게 주어진 곳이라는 거예요이게 7장 서두에 나오죠너희들이 대접받으려면 먼저 남을 대접해 줘라. 이거는 불경에도 나오는 얘기에요.

 

너희들이 대접받으려면 먼저 남을 대접해 줘라이거 초등학교 도덕책에도 나올 거요 그 이야기겠어요아니에요예수님이 대접받기 위해 우리를 먼저 대접한 게 십자가거든요그런데 어떤 대접을 받기를 원했어요예수님이 왕이네요당신이 구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네요라는 그 대접믿음그 대접받기 위해 예수가 대접하여 이룬게 하느님 나라다,를 설명해 주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아닌인간들의 선악 구조로 행하는 자들은 절대 못 들어간다이게 산상수훈의 요지란 말이에요. 7장의 결론 부분을 보시면 인간의 선악 구조의 판단에 의해서 열심을 부린 사람들이 지옥 문 앞에 서서 막 항의하는 장면이 나오죠.

 

(마태 7:22~23)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주님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내게서 물러들 가라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이거 나쁜 일입니까주님의 이름으로 사제목사,교사 노릇하고 예언자 노릇했다고 하잖아요주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주고많은 권능을 행했는데왜 예수님이 나는 너희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그러냐구요지금 이게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인데 산상수훈이 붙어있는 부분이 똑같은 부분이었죠예수님이 병 고치고예수님이 귀신 쫓아내고 그런 일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는 진의가 숨어 있던 건데사람들이 그걸 이게 진짜 하느님 나라로구나 라고 표피적으로 이해를 했잖아요그게 오해죠그걸 그대로 갖고 와서 이게 하느님 나라이겠거니 하고 이 세상에서 그대로 행한 거란 말입니다착하게 산 거예요.. 귀신 쫓아내주면서 다른 사람들 위해서 이 한 몸 불살라 산 것이라니까요그런데 그렇게 해야 하느님 나라 들어간다라고 생각한 그게 죄란 말입니다그 행위가 잘못된 게 아니라 이걸 하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이게 바로 지옥 갈 일이다를 보여주는 거란 말입니다이게요

그래서 앞뒤가 인클루지오 구조로 병자가 낫고 귀신이 나가고 이렇게 붙어 있는 거예요샌드위치 빵처럼그러니까 산상수훈은 적어도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니까요구약식으로 표피적으로만 문자적으로만.

그 중에서도 팔복은 오늘 우리가 읽은 완료된 하느님 나라를 선물로 받은 이들이 이 역사 속 현실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팔복 전부 마카리오의호이로 시작이 되요그건 감탄문의 형식이거든요복 있는 자여~라고 선언하는 거예요뭐뭐 하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니가 아니라 복 있는 자요복 받은 자여너희는 이렇게 될 거야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너희의 현실은 이거야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에페소서 1장에서 뭐라고 그래요하느님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너희들에게 복 주셨다 그러죠복 주시되 과거 시제거든요복을 이미 받았단 말이에요그러면 복을 받기 위해 산상수훈을 실천하는 게 옳아요아니면 복받은 자들이 어떻게 살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게 옳아요복을 받았다 면서요그런데 무슨 복을 또 받아요뭘 해서 복을 또 받냐구요하느님은 이미 창조이전에 우리에게 신령한 복으로 복 다 주셨다는데 산상수훈은 지켜서 복받는 비결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를 살고 있는 이들이 이 역사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인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어떠한 모양으로 만들어 가실 것인지에 대해서 선포해 주시는 거예요그게 팔복이에요안 그러면 탈락한다가 아니요 내가 그렇게 만들거야라니까요

그런데 복 있는 사람들의 현실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죠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복의 개념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개념을 구약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어요부자 되는 게 복이고애통이 없는 삶을 사는 게 복이고핍박을 할지언정 핍박을 당하는 자 위에 서지 않는 것이 복이잖아요.

우리가 원하는 복 아니에요그런데 여기서는 복 있는 자여~너희는 심령이 가난하고, 슬퍼하고 온유한 자고의에 주리고 목 마르게 될 거고, 자비롭마음이 청결하게 될 거고, 평화로운 자가 될 거고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예수로 인해 욕먹고 핍박을 당하고거짓으로 모함을 당하는 자 이게 너희의 복이다복의 현실이다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구요완전히 다르잖아요.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러면 부자는 복이 있나니 이 세상이 저희 것임이어죠바꿔 말하면그러면 뭐예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자라는 것이 단순히 돈이 많은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와 영광을 챙겨서 인간의 자존심을 챙겨 갖는 그 부자그들의 영역은 세상이다 라는 거예요지옥이라는 뜻이에요그래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인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의 복의 개념과 신약의 복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요구약의 복은 실제로 그런 거였어요왜냐하면 복의 실체이신 예수가 오기 전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가장 좋은 거라고 여기는 것으로 복을 설명했단 말입니다.

그러나 복의 실체가 온 이후에 신약 어디에 복 받은 자는 이렇게 부자로 살 거고 자식들 많이 낳을 거고 땅이 많이 생길 거고 이런 얘기가 어디에 있어요오히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본이다이렇게 초를 치잖아요그런데 그게 복이라잖아요그걸 안 사랑하게 되는 것이 복이라잖아요그러면 친구나 사랑하는 이웃의 개업식에 갈 때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이걸 들고 가야 돼요~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근본이니… 이걸 들고 가야 돼요후자를 들고 가야 되잖아요그런데 왜 이걸 안 들고 가냐구요?

여러분 이런 삶을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그렇게 살다 가셨죠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은 이 역사 속에서 예수의 삶에 연합이 된다는 뜻이에요예수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여 살게 된다라는 그런 뜻이에요예수의 삶이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삶이었잖아요.

그 자기 부인과 십자가로 밀고 내려갈 때 남들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자비로  여기는 자가 되고 아무리 남들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려도 내가 원래 그런 존재인데 뭐나중에 소금 먹인 배추처럼 흐물흐물해져 가지고 온유해지는 거죠여기에서 동사의 시제를 보면 3절과 10절에 하늘 나라가 너희 것이요,는 현재형이에요그런데 나머지는 전부 미래 시제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 나라라고 그러잖아요새 성전성전 자체가 하느님이 계신 곳이니까그러니까 하늘 나라가 제자들과 함께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하늘 나라가 임한 거죠지금 하늘 나라는 너희 것이다현재로 이야기하는데 이 하늘 나라에 의해 관계를 맺게 되는 하늘 나라에 의해 침공 당한 그 자들은 이렇게 살게 될 거야이거는 어느 시점에 이렇게 완료가 되는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미래에 어떤 점을 향하여 지향되어지는 거라는 뜻이에요그래서 우리가 죽는 날까지 이렇게 밀려간다는 뜻이에요그런데 이 삶이 쉽냐구요어렵죠?

 

그러니까 하느님의 나라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이렇게 힘든 거예요내가 무슨 하느님의 나라를 살고 있어요이렇게 불행한데이렇게 늘 우울한데외로운데그게 하느님 나라예요내가 지금 부정되고 있고부인되고 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힘이 드는 거예요그래서 마치 내가 기대하고 내가 그려 놓은 그 하느님 나라가 나한테 안 왔는 줄 아는 거예요그거 하느님 나라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 역사 속에서는 그 하느님 나라를 절대 경험할 수 없어요. 우리가 그려 놓은 그 하느님 나라는 불교의 극락이라니까요하느님나라는 바실레이야 통치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통치가 온전히 시행되어지는 곳이 예요예수님의 삶이 그렇게 하느님의 통치가 온전히 다스린 삶이었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하느님 나라라고 한 거예요.

겸손이라는 것이 뭔지 아세요많이 가진 자가뭐 멋지게 성화된 자가 그리고 많이 배운 자가 마치 없는 사람처럼 못 배운 사람처럼 이렇게 겸양을 떠는 게 겸손이 아니라 겸손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뜻은 하느님 앞에 서다라는 뜻이에요그러니까 엉뚱한 겸손 떨려고 하지 마세요겸손은 모든 존재가 하느님 앞에 섰을 때그 엄청난 권세와 그 영광 앞에서 깨갱거리고 나는 죽은 자네요이 상태가 되는 것을 겸손이라고 그래요그게 하느님 나라의 존재 양식이란 말입니다.

팔복의 내용은 전부 인간의 육적 자아가 존재성과 주체성이 점점 부인되어지고 부정되었을 때에만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에요그것 말고 더 좋은 인간의 덕목들 많잖아요왜 이것만 해야 해요인간의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삶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그런 대표적인 것들 몇 개만 적어 놓은 거예요바오로는 그러한 내 안에서 일어나는 하느님 나라의 침공으로 인한 이 자체 충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어요.

 

(로마 7:21~25)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23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24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이 구약의 법이 자꾸 이겨요그때에 신자에게서 터져 나오는 부르짖음이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예수님이 중보자로 서서 내가 산 거야이리로 가야 되요그 때에 진짜 하느님이 원하시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삶이 요만큼씩 나타는 것일 뿐입니다.

무슨 언행일치는 얼어 죽을 언행일치에요됩니까그게그래서 내가 말을 안 하는 거예요행동이 따라 주질 않아요.

우리 한 번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구요정말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그런 천국이 우리가 원하시는 천국 맞습니까오른 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을 즐겁게 대 주는 곳이 천국이라는데 그런데 가고 싶으세요진짜로?

오른손 잡이가 오른편 뺨을 때릴려면 손등으로 때리는 거거든요그건 모욕이에요아프라고 때리는 게 아니라그런데 그 상태에서 왼편 뺨 한대 더 때려서 마음을 더 풀어이게 돼요그런 천국 가고 싶으세요가끔은 할 수 있죠그러면 내가 상 줄게 그러면 내가 이를 악물어서천국이 그렇게 벼르는 곳입니까오리를 가자 그랬을 때 십리를 함께 가줘야 되는 그런 천국에 가고 싶으세요이게 뭐예요에게우리가 원하는 천국 아니잖아요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곳이에요.

하느님 나라의 존재 양식 자체가 나를 비우고 털어서 다른 이의 유익을 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가 하늘 나라 맞아요그런데 우리는 솔직히 안 가고 싶잖아요저도 안고 싶어요여기에요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아야 되냐구요이건 내가 원하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니까요그러니까 도저히 우리는 이 법을 지켜낼 수가 없어요이 육신을 갖고 있는 이상도저히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지켜내야 할 그 법을 다 지켜낼 수 없다니까요안 가고 싶단 말입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되요하늘 나라가 나를 뚫고 들어와야 되요장악해야 되요그래서 역사 속에서 죽여야 된다니까요그게 신앙생활이란 말입니다그걸 설명하는 게 산상수훈의 팔복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훤한 빛이 나를 비추고 비둘기 다섯 마리가 저기서 푸득거리며 내려와서 아침 식사를 대령해 주고그런 천국 없어요.  이 땅에서 그런 천국이 체감되어질 때는 ...하느님의 말씀이 내 삶의 접촉점을 형성한 그 잠깐 동안에 그 순간에 희망으로 내가 잠깐 땡겨서 얻을 수 있는 그 기쁨밖에 없어요나머지는 전부 이 육이 그 하느님의 법과 충돌을 하여 내 속에서 전쟁밖에 안 일어나요그러니까 수시로 내가 구원받은 자가 맞나이런 고민에 휩싸이게 돼요에이삶이 그러니까 자꾸 그런 의심이 들지언행일치를 해봐라 왜 그런 마음이 드나그것들이 마귀에요.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교를 도덕과 윤리를 실천해서 다른 종교인들보다 더욱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착각들을 해요그래서 언행일치니 뭐니 하면서 인간들의 삶을 가지고 그 사람의 영적 성숙도를 진단하곤 하는 거예요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가 설 자리가 어딥니까인간들이 자신들의 선악 구조로 판단하고 정의한 착함과 악함이 정말 모두 참인 명제가 맞아요?

 

여러분 성탄절 날크리스마스 때 선물 못 받는 애들은 누구죠다른 건 다 몰라도 우는 애들은 못 받아요그죠울면 안 돼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대요거기에서 우는 건 악이죠그러니까 선물 안 준다고 하잖아요 아이들이 우는 게 진짜 악입니까그건 아이들의 의사 표현이에요

의사 전달 방법인데 내 의사 전달 능력이 미력할 때 처절하게 절규하는 게 울음이라구요그런데 우는 애들에게 선물 안준다는 건 어른들이 아이가 울면 귀찮거든싫다구요그러니까 이 이기적인 어른들의 이 선악구조가 우는 건 악이라고 이렇게 해 놓은 거죠그래서 울면은 선물 못 받는 거로 알아요이 노래를 부르고 자란 아이들은요인간의 도덕과 윤리와 사회법이라는 건 전부 인간들이 자기 정당화를 위한 합리화의 수단일 뿐이에요.  그런데 그것 몇 가지를 정해 놓고 그걸 잘 하는 사람들이 착한 사람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는 건 아직 유치원 수준도 못 올라 간 거예요막대 사탕 쭉쭉 빨면서 울면 안 돼이러고 앉아 있는 거예요.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라고 그랬죠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예언자 노릇도 하고 여러 가지 능력 행했는데 왜 날 모른다고 하십니까그랬을 때 날더러 주님 주님 한다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실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 라고 그러죠

예수님이 나중에 진짜 성전을 박살내시면서 똑같이 이야기를 해주세요구약의 성전이 구약의 산이 신약의 성전예수에 의해 신약의 산에 의해 박살내는 것으로 이렇게 그려지는 게 산상수훈이라면 진짜 옛 성전이 박살이 나면서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게 무엇인지를 예수님이 이야기해주신다니까요.. 보세요.

 

(마태 21:28~32)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맏아들에게 가서 얘야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그는 가겠습니다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예수님이 성전을 막 뒤집어 엎으시자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와서 당신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일하냐고 막 따졌어요그때 예수님이 대답을 안 해주세요너희는 요한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온 건지 땅으로부터 온 건지 아니대답 좀 해봐대답 안 하죠 그럼 나도 대답 안 할 거야그리고 이 이야기해 주시는 거예요.

첫 째 아들은 바리새인들이에요그죠하겠습니다 라고 한 자들은 결국 아무것도 안하더라는 거예요안 한 게 되더라는 거예요세리창녀처럼 그랬는데.. 하느님의 은혜가 임했더니 그들이 뭘 한 게 아니라 예수를 믿었다구요그랬더니 그들을 둘째 아들에게 확 집어넣어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다 그래요그죠그래 놓고는 그들이 세리와 창녀들이 예수를 믿었다라고 한다구요그러니까 예수를 믿는 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지 그 '주님 주님' 했던 그 사람들처럼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저것도 했는데요왜 나를 하늘 나라에 안 넣어 주세요이 일 아니다 를 설명해 주는 거란 말입니다그래서 주님의 뜻대로 행한 자가 누구냐그러는 거예요둘째다 그러는 거죠뉘우치고 갔다라는 게 회개하고 예수 믿었다는 뜻이란 말입니다그게 하느님의 뜻대로 행한 거예요.

 

 왜 하느님이 선악과를 주시면서 금지 명령을 내리셨는지 아세요선악과 먹지 말라가 율법이죠구약의 산이죠이게요그리고 생명열매는 허용이죠먹어도 돼그러니까 금지명령과 허용명령이 떨어지는 거예요율법과 은혜가.... 선악과와 생명나무로 제시가 되는 거죠

그런데요하느님처럼 되겠다 라는 그런 존재는 금지명령이라는 걸 받게 되면 명령한 자와 명령을 받은 자를 구별해 내구요별도의 주체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품게 돼요나는 명령을 받았고 저 존재는 나에게 명령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구별이 일어나죠그리고는 내 존재성을 챙기려고 하는 욕구가 어떻게 표출이 되죠내 존재성을 챙기기 위해서는 내가 저에게 굴복하면 안 되잖아요그 위반이에요그런데 그렇게 위반을 하게 되면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벌이 떨어지는데 그 벌이 뭐냐면 반드시 죽으리라예요. 죽음이란 말입니다.

재밌는 건요하느님께서 선악과를 가장 보기 쉬운 곳에 배치를 했고 아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만들어놨다는 거예요뭐 하라는 거예요따먹으라는 것입니다먹고 정녕 죽음이 뭔지를 경험하라는 거예요그게 우리들 인생이에요. 계속 매일같이 12개씩 따 먹고 있잖아요선악과그것 먹으면서  고통스러워야 된다니까요이런 식으로 살아야 되나 진짜이렇게 살려면 확 죽고 싶다일이 안돼서가 아니라 이 내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게 되면 고통스러운 거예요그게 정녕 죽음이에요.

한 번 네가 내 앞에서 별도의 나를 한 번 챙겨봐별도의 너를 한번 내 앞에서 챙겨 가져봐라그때 정녕 죽음이 뭔지 알게 될 거야그때 너에게 허용되었던 은혜로 허용되었던 너라는 존재를 별도로 챙겨 가지 않을 수 있는... 그 허용되었던 생명나무 열매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건 그냥 덥석 먹으면 되는 거예요은혜로 뭘 해서 다리를 놓아가는 게 아니라.

그런데 이것들이 자기의 존재 주체성을 챙기려고 하다 보니까나라는 존재를 별도로 확립을 하려고 보니까이 위반이라는 걸 통해서 나의 가치를 챙기려고 하는 것이죠이게 죽음이라니까요나의 가치를 챙기려고 하는 시도를 얼른 버리고 쪽팔리더라도 주는 걸 그냥 먹는 거예요그걸 구원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때 어 이거 내가 내 존재를 별도로 구축하여 챙겨 가지려고 하면 이게 죽는 거구나 라고 했을 때 그때 생명나무 열매에 그 위대함이 나에게 자각이 되고 그들에게 생명나무 열매가 뚫고 들어가는 거예요구약을 부수고 들어가는 거란 말입니다생명나무가그래서 요한묵시록에 생명나무만 있는 거예요선악과가 없는 거예요구약은 부수어지는 거니까그게 산상수훈이에요산상수훈을 이거 지켜라저거 지켜라

그럼 복주께 안돼도 오른편 뺨 때리면 왼편 뺨 대줘그렇게 연습하면은 나중에는 된단다되긴 뭐가 돼요.. 어금니 다 빠져요그렇게 벼르고 벼르다가 막 꿈속에서 그냥 난도질하고 그 뭐냐구요하느님이 그 정도의 선을 우리에게 원하시겠어요복음은 그게 아니에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자들이 이 세상에서 별도의 자아를 주체로 확보하려고 하는 율법주의와 인본주의를 공격당해서 .결국 자기 부인의 자리.... 마음이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애통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리로 끌려 내려가게 되는 거예요그게 산상 수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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