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졸업신고 늦었습니다. 빨치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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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cathol7] 쪽지 캡슐

2000-03-06 ㅣ No.1318

추기경님! 안녕하셨는지요?

 

이광호 베네딕도 빨치산 대장입니다. 그동안 너무 바쁘고 분주하다는 핑계로 굿뉴스에 자주 들어와보지 못해서 이렇게 인사가 늦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랜만에 굿뉴스에 들어와 보니 저희 공동체 fiat의 후배 상목 마르꼬가 추기경님께 지난 달 편지를 올렸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추기경님의 답장 또한 오늘에서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의욕만 앞서고 실수만하는 보잘 것 없는 선배의 졸업식을 축하할 뿐 아니라 저에 대한 과찬까지 하는 상목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보잘 것 없는 선배의 작은 뜻을 깊이 있게 헤아려 주는 후배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또한 저 자신에 대한 심한 부끄러움 또한 느꼈습니다.  

 

 지난 한해는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안에서나 제게 어려움이 많은 시간들이었습니다. 헌신을 약속했던 저의 후임자 가브리엘라가 하느님 곁으로 갔다는 공허감과 후배들을 사도로 양육해야만 한다는 짐과 논문의 짐을 동시에 지고 나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었지만 어디서나 함께 해주시는 임마누엘 하느님(God with us)의 도움의 손길을 체험하며 제 능력 이상의 삶을 살았다고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고통스럽고 바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무일도를 구해서 바치면서(꾸준히 하지는 못했지만...) 성인들의 정신을 제 마음에 새길 수 있었고 또한 우연히 구한 레지오 마리애의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전기를 읽으면서 제 삶의 방향성 또한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존경하는 성인은 바울로 성인과 프란치스꼬 성인이지만 프랭크 더프의 전기를 여러번 반복해서 읽은 후 평신도로서 제 사도직의 방향성은 프랭크 더프에게서 찾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프랭크 더프, 그분의 영성과 그분의 행적과 저서들을 연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대학 학부과정 때 체험했던 세상과 석사 과정 때 체험했던 세상이 달랐던 것처럼 또 이제 박사과정에서 체험하는 세상이 또 다르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그 마음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길들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깨달은 것도 있습니다. 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길 때 학부 과정에서 도와주신 주님이 석사 과정 때도 변함없이 도와 주셨으며 박사과정에도 도와주실 것이며 앞으로의 삶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제가 가장 절실하게 체험했던 것이 임마누엘 하느님, 야훼 이레 하느님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성장이 때로는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속을 태우는 적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느님의 일에 집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사도직(대학 선교)이 제 안에 있는 무엇보다고 존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주님께 의탁하지 않고는 도저히 저 개인의 힘과 함께 해주는 몇 명의 동지들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제가 개인적인 어려움들 때문에 (학업, 생계, 군복무 문제, 세상의 압박 등) 이 소중한 사도직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항상 주문을 외우듯이

 

"주님! 저의 사도직을 지켜 주십시오. 성모님! 저의 사도직이 열매맺게 해 주십시오. 제게는 이 사도직이 저의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라고 기도합니다.  

 

 보잘 것 없는 청년들의 모임을 언제나 후원해 주시는 추기경님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추기경님의 답장을 읽으면서 추기경님의 저에 대한 과찬이 제게는 심한 부끄러움과 함께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채찍으로 다가 왔습니다.

 

 추기경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로 그리고 복되신 동정녀의 전구로 지난해 논문이 하나 나올 수 있었습니다. 별 내용은 없지만 추기경님께 그 논문을 저희 공동체원들과 함께 찾아 뵙고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추기경님의 격려 말씀을 저희 공동체원들과 함께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보내 주신 답장에서 저희가 읽으면서 미소를 머금었던 구절이 있었습니다.

 

 "실탄 보급이 필요하냐?"

 

전쟁을 하려면 실탄도 필요하지만 그 실탄을 정조준해서 발사할 수 있는 군인의 양성이 더 긴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군인들을 사령관께서 면담, 격려해 주셔서 사기를 높여주시면 그 실탄의 정확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추기경님 !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빨치산 대장은 관악산으로 물러 갑니다.  

 

 이광호 베네딕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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