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성당 게시판

[감사]제가 추기경께 축사를 올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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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agneskim] 쪽지 캡슐

2001-09-15 ㅣ No.755

 

+ 찬미 예수님

 

"김희정 아네스? 우리 얼굴은 처음 보는 것이지? 반가워요~

 우리 참 편지 왕래 많이 했다... 그렇지?"

 

미사 전...

그렇게 가까이서 뵙고 싶었던 추기경할아버지를 막상 뵙고 보니...

그동안 수없이 생각해두고 연습했던 말들은 모두 목구멍 안으로 사라져 들어갔습니다.

 

제가 추기경할아버지께 올린 말씀이라고는 쿵덕쿵 가슴을 찍고 올라오다 힘에 부쳐 거의 기어들어 가는 "예~" "추기경할아버지.... (어물어물.. 아~ 떨려라...)" 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축사에도 그 내용이 있듯 처음 저에게 축사를 하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을 때 그렇게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수많은 사람 중에 몇 단계의 심사(?)를 거쳐 선발되는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담당 신부님께서 저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오~ 신앙의 신비여~' 라는 정말 웃지 못할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담당신부님들의 도움과 주변 분들의 격려로 축사를 작성하기는 했으나, 정말 그 미흡함과 어딘지 모를 어색함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해결이 나질 않았습니다.

담당신부님들께서는 아마 처음부터 다시 작성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끝까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며 오히려 이런 것이 더욱 신선하다시며 저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올립니다.

 

결국 저는 축사를 하기 위해 추기경할아버지와 대주교님 앞에 섰고....

그 이후로는 거의 제 정신도 아니었으며, 너무 떨려서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나중에 가족들이 평화방송에 나온 제 모습을 보더니, 거의 떡판에 펑퍼짐 그 자체였으며 (사실이 그런가???)~

무엇보다 저의 떨림과 실수로 인해 신자들 마음을 제대로 전달도 못했다고...

내용이 부실하면 읽기라도 잘 읽었어야 했는데, 너무 죄송합니다~

 

행사 당일의 감동적인 부분들을 하나 하나 나열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아마도 저의 긴~ 글로 인해 귀한 시간 뺏기실 분도 많을 것 같아 적당히 끝내려고 했으나...

기억에 남았던 것 한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사 후 추기경할아버지께서 신자들의 영적 선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실 때

 

"제가 나중에 죽어 주님 앞에 갔을 때, 제가 아무리 나쁜 일을 많이 했다 해도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에 주님께서 봐주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제가 죽을 때 이 기도문을 꼭 가져가서 주님 앞에 보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유머조차도 멋지게 펼쳐 놓으시던 추기경할아버지께서는 언제든 어리광 부리며 달려가 안기고 싶은 그런 우리의 할아버지이십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담으시고 저를 안아주셨던 추기경할아버지...

축하연에서 '사랑으로'를 부르시던 그 모습 또한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다시 한 번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많은 신자분들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영원히 잊지 못 할 '엄청난 선물'을 주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께 감사 드립니다.

 

<<축사 내용>>

 

+  찬미 예수님

 

저는 불광동 본당의 김희정 아네스입니다.  

 

추기경할아버지의 '사제수품 50주년과 80회 생신'을 축하드리는 자리에서 제가 많은 신자들을 대표하여 축하인사를 올리는 엄청난 행운을 누리게 된 데에는, 가톨릭 인터넷 사이트 '굿뉴스'의 [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란를 통하여 추기경할아버지와 몇 번의 서신왕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축사를 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이 후부터 '정말로 믿을 수 없다', '혹시 중간에 바뀌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들로 잠을 설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도 아니고 너무도 큰 어른이신 추기경할아버지의 '사제수품 50주년과 80회 생신'을 축하드리는 무척 영광되며 뜻 깊은 자리에서, 과연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떠한 방법으로 나열하여 모든 신자들 가슴 하나 가득 담고 있는 축하와 기쁨을 전할 수 있을까 그저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말 외에는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저 "축하드립니다"라는 너무도 일반적인 인사말로 신자들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는 저의 부족한 표현력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추기경할아버지께서는 저희 신자들에게 언제나 스스로를 '친구' 또는 '할아버지'라 칭하고 계십니다.  

추기경님을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당신께서 선뜻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시며, 언제나 변함 없는 사랑으로 당신을 거침없이 낮추시고 저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런 추기경할아버지께서 종교의 유무를 떠나 또한 가톨릭 신자 여부를 떠나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겁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정치·경제·문화등 너무도 다양한 부분에 걸쳐, 그동안 추기경할아버지께서 남기신 훌륭한 업적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모든 신자·수도자·사제들의 중심이 되어주셨고, 이곳 저곳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우매한 이들에게는 이정표가 되어주시기도 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런 추기경할아버지께서 언제까지나 저희와 함께 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만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추기경할아버지께서 사제로서 살아오신 50년 세월과 그 중 서울대교구장으로 지내셨던 30년 세월.

그리고, 은퇴하신 이 후에도 걷고 계신 그 사랑의 길을 저희가 어찌 알 수 있겠으며 어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할아버지께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오신 그 세월과 주님 닮은 삶은 세상의 그 어떤 잣대나 그 어떤 것으로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나 큰 것임을 저희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추기경할아버지께 저희의 존경과 사랑을 올립니다.  

그 사랑은 금방 달아올라 어느새 허무하게 식어버리는 냄비 같은 사랑이 아닌, 은근히 달아올라 오래도록 따뜻한 기운을 유지하는 뚝배기 같은 사랑이라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교회의 큰 어른이시며 참 목자이신 추기경할아버지, '혜화동에 가면 할아버지가 계신다'라는 생각만으로도 저희 신자들은 알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힙니다.  

이 기쁨! 이 사랑! 언제나 느낄 수 있도록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신자들은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 드리며, 할아버지와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올립니다.

 

추기경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2001년 9월 14일

 

김희정 아네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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