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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 프란치스코 이모저모1: 내가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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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6 ㅣ No.94

새 교황 프란치스코 이모저모 (1) 내가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님

문한림


1. 사목방문을 하러 다니실 때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셨다. 사목현장에서 무슨 경축행사라도 있으면 비서 없이 작은 가방 하나만을 들고 불쑥 나타나곤 하셨다. 그저 또 한 명의 사제처럼 슬쩍 모임에 오곤 하셨다. 차를 보내드리는 것은 원치 않으셨다. 대체로 차로 모시는 걸 사양하셨다. 정부 측에서 추기경에게 제공하는 차량도 타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2. 대교구소유의 정원을 갖춘 거창한 추기경 저택이 있었지만 보통 동네에 있는 사제관에서 살기를 선호하셨다.

3. 누구라도 당신께 전화를 걸면, 특히 어떤 본당신부가 전화를 걸고 자기 전화번호를 남겨놓기라도 하면, 으레 몇 시간 이내로, 때로는 한 시간 안에, 직접 연락하셨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말씀은 간단히 하셨고 필요한 점만 이야기하셨으며, 짤막한 농담으로 끝내셨다.

4. 면담시간은 보통 30분이다. 시간은 꼭 지키시면서 문제의 해결책을 내신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면 다음 기회로 미루지 않으신다.

5. 당신이 주관하시는 행사는 짧다.

6. 놀라운기억력의 주인이시다. 우리는 사제 약 500명에 수도자 300명인데, 이들 모두의 이름을 이력과 함께 하나하나 다 기억하신다. 그 밖에 아시는 분들도 물론이다.

7. 누구를 대하실 때면 같은 종류의 의자에 동등하게 앉으신다. 책상 저편에 앉아서 장상으로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람을 대하지 않으신다.

8. 만나신 사람을 늘 문간까지 배웅하신다. 그러실 필요 없다고 여쭈면 “여기서 제대로 나가는지 확인하려는 건데.” 하고 농담으로 대답하신다.

9. 언젠가 지구 담당 총대리로 계실 때 서재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서가에는 책도 많지 않았다. 공부벌레도 아닌 나보다도 책이 더 적었고, 소박한 책상이 하나 있었다. 침실을 엿보니 침대와 옷 한 벌, 옷도 여러 벌 없으신지 늘 같은 옷차림이셨다.

10. 교종이 되신 지금도 지구장 주교로 계실 때 신던 구두를 늘 신고 계시는 게 눈에 띄었다. 같은 신이 닳지도 않는지, 어떻게 그렇게 오래 신으시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 전에 하시던 가슴십자가를 걸고 계신다.

11. 성목요일 밤이면 보통 에이즈병원 한 군데를 찾아가 그들의 발을 씻어주시곤 하셨다. 본당을 찾아가시듯 극빈 부랑자 숙소를 찾아가곤 하셨는데, 혹 있을 우범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그 동네 본당신부가 어귀에서 맞아들일 법도 한데, 때론 아무 동반자도 없이 나타나신다.

12. 언제나 어려운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신다.

13. 악을 행하는 정치인들은 서슴지 않고 비판하시되 예의바르게 하신다.

14. 사람들 하나하나를 인격적으로 대하신다. 친근하게 동반자로서 각자에게 다가가신다. 아픈 사람이든, 일신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든,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사람이든 도우려고 애쓰신다. 성직을 포기한 사제나 주교도 관심의 대상이어서 그들이 마땅한 환경에 자리 잡도록 배려하셨다.

15. 어떤 행사나 강연회 끝에 그냥 사라지기도 하신다. 어떤 때는 필요하다고 여기시면 사람들에게 강복하시면서 오래도록 그들 틈에 머물기도 하신다.

16. ‘요직’에 있는 매우 많은 이들과 교분도 ‘우정’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많은 종교적 또는 정치적 문제들이 재빨리 해결되는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지만, 결코 거론은 안 하신다.

17. 당신 친히 본당 주임들과 보좌들을 임명하신다. 지구 주교대리들의 도움을 받으시면서.

*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신 일성대로였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일치의 뜻으로, 1054년 교회가 동서로 갈라진 이래 처음으로 동방교회 수장이신 총대주교를 즉위미사에 모셨고, 전례복이나 행사 자체를 매우 간소화하셨다.

3월 19일 즉위미사 때 로마 주교이자 베드로의 후계자를 상징하는 ‘어부의 반지’도 순금 대신 은에 금을 입힌 것으로 하였으며, 성 베드로 광장에서 타시는 방탄차를 버리고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무개차를 택하셨다. 정식으로 마련해 드린 붉은 구두조차 마다하시고 어느 분이 맞추어드린 평범한 검은 구두를 신으셨다.

문한림 유베날 - 신부. 1976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서 1984년 사제품을 받았다.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고스마와 다미아노 본당 주임 겸 학교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이 글은 문 신부가 전 춘천교구장인 원로사목자 장익 요한 주교에게 스페인어로 써서 보내온 것으로 장 주교가 우리말로 옮겼다(*부분은 장익 주교가 덧붙임).

[201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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