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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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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12-09-28 ㅣ No.2138



축일 10월2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San Giovanni Paolo II (Karol Wojtyla) Papa  

Wadowice, Cracovia, 18 maggio 1920 - Vaticano, 2 aprile 2005  

(Papa dal 22/10/1978 al 02/04/2005 ).

La sua beatificazione ha luogo a Roma il 1° maggio 2011.

Canonized : 27 April 2014 by Pope Francesco at Saint Peter’s Square, Rome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바도비체(Wadowice)에서 탄생한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Karol Josep Wojtyla)는 1978년 10월 16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아버지 카롤 보이티와와 어머니 에밀리아 카초로프스카의 둘째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1929년에 세상을 떠났고, 의사였던 그의 형 에드문트는 1932년에 사망하였다. 폴란드 육군 하사관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9살 때 첫 영성체를 하고 18살 때 견진성사를 받았다. 바도비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크라쿠프(Krakow)의 야겔로니카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39년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세력이 대학을 폐쇄하자 젊은 카롤은 독일로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광산과 솔베이 화학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제 성소를 발견한 카롤은 1942년부터 아담 스테판 사피에하 대주교가 운영하는 크라쿠프의 지하 신학교에서 비밀리에 사제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또한 카롤은 지하 극단인 ‘랩소디 극장’을 후원하기도 하였다. 종전 이후 카롤은 다시 열린 크라쿠프 신학교와 야겔로니카 대학교 신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1946년 11월 1일 크라쿠프 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러고 나서 사피에하 추기경은 그를 로마로 보냈고 그는 1948년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에 드러난 신앙을 주제로 쓴 논문으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에 그는 방학이 되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있는 폴란드 이민들을 대상으로 사목 활동을 하였다.

   1948년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크라쿠프 근처의 니에고비치 본당과 성 플로리아노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일하였다. 1951년까지 그는 대학교 교목으로 있으면서 철학과 신학 연구를 계속하였다. 1953년 그는 루뱅 대학교에서 “막스 쉘러의 윤리 체계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교 윤리학 성립 가능성에 관한 성찰”을 주제로 한 박사 논문을 제출하였다. 그 후 그는 크라쿠프의 신학교와 루뱅 대학교의 신학부에서 도덕 신학과 윤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1958년 7월 4일 교황 비오 12세는 그를 크라쿠프 보좌주교와 옴비 명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1958년 9월 28일 크라쿠프의 파펠 대성당에서 유게니우스 바지아크(Eu geniusz Baziak) 대주교에게서 주교품을 받았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64년 1월 13일 그를 크라쿠프의 대주교로 임명하였고 1967년 6월 26일에는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보이티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참석하여 사목 헌장의 마련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교황직에 오르기 전까지 보이티와는 주교 대의원 회의에 다섯 차례 참석하였다.

 

 

   그는 1978년 10월 16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1978년 10월 22일에 교황으로 즉위하여 보편 교회의 목자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교황은 이탈리아에서 146 차례의 사목 방문을 하고 로마 교구장으로서 로마의 332개 본당 중 317개의 본당을 방문하였다. 그는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모든 교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104 차례의 해외 순방을 하였다.

   그의 주요 문헌으로는 14개의 회칙, 15개의 교황 권고, 11개의 교황령과 45개의 교황 교서가 있다. 그는 또한 여러 책도 저술하였다. 여기에는 “희망의 문턱을 넘어서”(Crossing the Threshold of Hope, 1994년 10월), “은총과 신비 :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이하여”(Gift and Mystery : on the Fiftieth Anniversary of My Priesthood, 1996년 11월), “로마 삼부작 - 명상”(Roman Triptych - Meditations, 2003년 3월), “일어나 가자”(Rise, Let Us Be On Our Way, 2004년 5월), “기억과 신원”(Memory and Identity, 2005년 2월)이 포함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47차례의 시복식을 주재하여 1,338명을 시복하고 51차례의 시성식을 주재하여 총 482명을 시성하였다. 또한 9차례의 추기경 회의를 소집하여 231명(1명의 비밀 추기경 제외)의 추기경을 임명하고 6차례의 추기경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는 1978년부터 주교 대의원 회의를 15회 소집하였다. 여기에는 정기총회 6회(1980, 1983, 1987, 1990, 1994, 2001), 임시총회 1회(1985), 특별총회 8회(1980, 1991, 1994, 1995, 1997, 1998 [2회], 1999)가 있다.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성모님의 자애로운 손길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오랜 회복기를 거친 다음 그는 그 괴한을 용서하였다. 새 삶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는 영웅적인 아량을 발휘하며 사목 활동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는 목자의 배려로 많은 교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라틴 가톨릭 교회와 동방 가톨릭 교회를 위한 교회법전도 공표하였다. 그는 하느님 백성을 격려하는 특별한 영적 의미가 있는 구원의 해, 마리아의 해, 성체성사의 해, 2000년 대희년 등을 제정하였다. 그는 또한 세계청년대회를 제정하여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만큼 사람들을 많이 만난 교황은 없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일반 알현(1,160회 이상) 때 1천 7백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교황을 만났다. 여기에 특별 알현이나 예식(2000년 대희년에만 800만 명), 이탈리아를 포함 전 세계의 사도 방문에서 만난 수백만의 신자들이 추가된다. 38회의 공식 방문을 통하여 많은 정부 관리도 교황을 알현하였다. 그리고 738차례의 알현과 모임을 통해 국가 원수들을, 246회의 알현과 모임을 통해 총리들을 만났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교황궁에서 그가 제정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부활 제2주일, 사백주일) 전야인 2005년 4월 2일 토요일 오후 9시 37분에 선종하였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선종한 그는 4월 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장례미사 뒤에 바티칸 대성전의 지하 무덤에 묻혔다.

 

 

    그리고 2011년 5월 1일, 생전에 그가 제정하고 그 전야에 선종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단 기간에 복자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교황 즉위 기념일인 10월 22일로 정해졌다. 그리고 2014년 4월 27일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요한 23세(Joannes XXIII) 교황과 함께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과 시성은 한국 가톨릭교회에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1984년 5월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미사와 한국 103위 순교자 시성식을 거행했다. 1989년 10월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맞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광장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 메시지를 낭독했고, 5.18 광주 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은 한국 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가톨릭홈에서) 

* 성 요한 23세 교황 축일 10월11일(6월3일)

 

  

Joannes Paulus 2세(1920∼2005). 교황(재위 : 1978. 10. 16∼2005. 4. 2). 
1920년 5월 18일 폴란드의 바도비체(Wadowice) 출신으로 원명은 카롤 보이티야(Karol
Wojtyla).

  네덜란드 출신 교황 하드리아노(Hadrianus) 6세 이후 최초의 비(非)이탈리아인 교황이다. 일찍부터 가난과 노동을 겪으며 독학, 1938년 야젤로니아(Jagiellonian)대학 철학과에 입학, 시와 연극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후에 ‘안드레아 예비옌’이란 필명으로 다수의 시를 발표하였다. 나치 점령 때 채석장과 화학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조건 개선 및 지하 연극단체에서 배우로 활약하였다.

   1942년 성직에 뜻을 두고 나치 탄압 속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는 크라코프 신학교에 입학, 전쟁 뒤인 1946년 서품, 2년 동안 로마의 안젤리쿰대학(현재 성 토마스 아퀴나스대학)에 유학, 윤리신학을 연구하였으며 귀국 후 야젤로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교구 사목 후 곧 크라코프(Krakow)에서 대학생 사목을 담당, 1953년부터는 크라코프대학에서, 1954년에는 루블린(Lublin)의 가톨릭대학에서 윤리신학을 강의하였다. 학술잡지, 특히 윤리신학 분야에서 300여 종의 논문을 발표, 학계에 알려졌으며, 셸러(Max Scheler, 1874~1924)의 현상학 체계에 관심을 가졌다. 1958년 주교로 서품, 1964년 크라코프의 대주교로, 1967년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는 폴란드 교회를 대변하는 역할을 탁월히 수행하였으며, 특히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기초에 기여하였다.

   그 밖에 추기경 경력 11년 동안 세계 대표주교회의의 평의원(임기 3년)을 1971년 이래 연속 3번 역임하였는가 하면 교황청에서는 동방교회, 성직자, 성사전례, 교육 등 4개 성성(聖省)에 관계하였다. 한 때 평신도위원회 고문을 역임, 1976년 필라델피아 국제성체대회에서 폴란드 대표단장으로 참석, 미국에 알려졌다.

   폴란드 교회의 최고권자인 비스진스키(Stefan Wyszinski) 추기경과 함께 폴란드 교회를 대표하며 ‘노동자의 추기경’으로도 불려졌고, 1978년 10월 16일 제 254대 교황으로 선출되어 사상 초유의 공산국가 출신의 교황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세목이 집중되었다. 전임 교황 명에 따라 ‘요한 바오로 2세’로 명명, 10월 22일 즉위. 그는 교도방침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신중히 따르고 실천할 것을 약속, 신자들에게는 기본교리에 충실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또한 가톨릭 교회는 정치에 참여할 의도는 없지만 “이 순간 경제 · 사회 · 정치 · 종교적인 모든 불의와 차별로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낼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참고문헌] 崔奭祐 編著, 敎皇 그는 누구인가,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참고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는 2005년 4월 2일 바티칸에서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발자취를 찾아서] (5) 혼인 · 가정의 중요성 널리 일깨운다
30년 전 예언자적 시각으로 학교 설립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 앞에 섰다. 제삼천년기 교회의 새 문을 활짝 열고 복자로서 우리의 모범이 된 교황,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무엇일까. 그 숙제를 찾기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위에 세워진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을 찾았다.
 

  
- 30년전 설립된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은 혼인과 가정을 위한 다양한 과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을 찾다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만큼 그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 이 대학은 ‘혼인’과 ‘가정’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과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평소 무엇보다 그 부분을 강조해온 요한 바오로 2세의 뜻이기도 하다.
 
이 대학 학장 리비오 멜리나 몬시뇰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방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사제의 삶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사회 안에서 사람이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고, 분리의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지에 대해 깨달으시고 지금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혼인과 가정이라는 생각으로 이 대학을 만드셨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 그리고 이를 가르칠 대학의 설립에 대해 그 필요성을 누차 제기해왔다. 그리고 1981년 5월 파티마의 동정마리아축일, 그는 이 대학의 창설 허가에 서명을 하고, 성 베드로광장에서 저격당했다. 따라서 대학의 설립일과 그의 저격일이 같은 날이 돼버렸다.
 
“이날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당신 스스로의 삶을 통해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본인 스스로 증인이 되셨기 때문이지요. 그는 우리 학교를 통해 혼인과 가정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고, 교회뿐 아니라 사회에도 이러한 요지의 문제를 재차 강조해왔습니다. 혼인과 가정 없이는 교회도 자신의 사명을 다할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지요.”
 
리비오 멜리나 몬시뇰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처럼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인간은 성숙할 수 있고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와 헌신을 배우고, 그 배움은 또 다른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자기증여의 삶은 곧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의 삶’이다.
 
“30여 년 전 ‘혼인과 가정’이 가져올 일련의 일들에 대해 예견하셨다는 것은 실로 예언자적 일입니다. 그러한 예언자적 시각이 학교의 교육과정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고요. 가정과 생명윤리, 혼인 등에 대한 전문가 과정을 마련한 것이지요.”
 
대학을 자신의 창조물처럼 여겨 자신의 이름까지 사용하게 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별장을 열어 직접 주최한 교수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생전 11번이나 학교를 찾아 다양한 만남을 가졌다.
 
 
교황의 선종과 시복, 남겨진 숙제는 자기 증여의 삶
 
리비오 멜리나 몬시뇰은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몸의 신학’ ‘혼인과 가정’ 등이, 선종했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당부하고 싶은 하나의 바람일 수 있다고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몸의 중요성을 말하며, 몸은 비가시적인 것에 대한 가시적 표징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자녀됨, 부부됨, 부모됨을 나타내주는 몸의 중요성을 알고, 이토록 소중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있게 해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알자는 것이지요.”
 
몸의 신학은 그리스도교를 단순히 일련의 규범으로만 여길 수 있는 위험성에서 벗어나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위대함을 선포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 또한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이 학교에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다. 올해 설립 30주년을 맞은 대학 구성원들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특별초청을 받아 알현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몸의 신학에 대한 강의도 진행했다.
 
또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야기한 가정공동체에 대한 학술심포지엄을 열어 ‘어떻게 가정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가정관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사랑으로 부르심 받은 인간의 소명은 가정과 혼인, 봉헌생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떠한 형태의 ‘자기 증여의 삶’도 결국 인간 서로 간의 친교를 지향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에게 그토록 전해주고자 했던 이야기와 남은 숙제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가톨릭신문, 2011년 6월 12일, 오혜민 기자]

  

 

▲ 요한 23세 교황(왼쪽)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두 교황이 동시에 성인 반열에
요한 23세- 가톨릭 변화 이끈 거룩한 인물, 요한 바오로 2세- 27년 재임 전세계 사랑 받아

【외신종합】 복자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 교황은 선종 후 6년 만에 교황 전구를 통한 치유기적이 확인되면서 2011년 시복됐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7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두 번째 치유기적을 승인하면서 시성을 확정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나 1946년 사제품을 받았다. 1958년 폴란드 최연소 주교가 됐으며 1963년 크라쿠프 대주교에 임명됐고 1967년 추기경에 서임됐다. 1978년 426년 만에 처음으로 비이탈리아 출신으로 교황에 선출된 그는 27년간 교황으로 재임하면서 평화의 사도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한 복자 요한 23세(1881~1963) 교황 역시 교황 전구로 병이 치유됐다는 한 이탈리아 수녀의 치유기적을 인정 받아 2000년 시복됐다. 복자가 성인이 되려면 시복 이후에도 기적이 있어야 하는데, 요한 23세 교황은 두 번째 기적 없이 이례적으로 성인 반열에 오르게 됐다. 교황청 시성성은 요한 23세 교황이 기적심사 없이도 시성될 수 있는 거룩한 인물임을 주장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시성을 요청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두 번째 기적을 승인하면서 같은 날 요한 23세 교황의 시성도 확정, 역대 두 교황을 동시에 성인 반열에 올리는 역사를 세웠다.

 요한 23세 교황은 이탈리아 북부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4년 사제품을 받았고 1921년부터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53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그는 1958년 77세 나이로 교황에 선출됐다. 나이가 많아 과도기 교황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가톨릭교회 변혁을 이끈 제2차 바티칸공의회 소집을 발표했고, 1962년 10월 공의회 개막을 주재했다. 그러나 공의회 개막 이듬해 선종했다.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교황으로, '착한 교황'으로 불린다. 
                                                                        평화신문 2013. 10. 06발행 [1234호]


 
 
복자 요한 23세ㆍ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내년 4월 27일 시성    

【외신종합】 복자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14년 4월 27일 성인 반열에 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30일 두 복자 교황의 시성 관련 추기경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두 교황의 시성 날짜를 발표했다.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두 교황의 약력을 소개하며 "두 교황은 격동의 시대에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팎으로 큰 영향을 미치면서 복음에 투신하고 교회와 세상에 희망과 빛의 모범이 됐다"고 설명했다.

 원래 프란치스코 교황이 염두에 둔 시성식 날짜는 올해 12월 8일이다. 교황은 지난 7월 브라질 세계청년대회를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자단에게 "두 교황 시성은 올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며, 12월 중에 시성식을 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시성식 날짜는 내년 봄으로 결정됐다. 겨울에 시성식을 거행할 경우 날씨가 추운 데다, 혹여 눈이라도 내리면 두 교황 시성식에 참례하러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또 2014년 4월 27일은 부활 제2주일인 하느님 자비 주일이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 자비의 사도 파우스티나 성녀 시성식을 집전하면서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선포한 바 있다. 평소 하느님 자비를 강조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이날 시성되는 것은 더 의미가 깊다.  
                                                                        평화신문 2013. 10. 06발행 [1234호]

 

  

◆ 시성 ◆         
한자  諡聖  라틴어  canonizatio  영어  canonization
 [관련단어] 성인  시복   

출처 : [가톨릭대사전]  
 
   로마 가톨릭 교회 교황이 이미 시복(諡福)된 복자를 성인의 명우에 올리고 전세계 교회로 하여금 그를 공경할 수 있도록 하는 선언을 말한다.

   교회역사 초기에 신자들의 공경을 받았던 인물은 주로 순교자로서 이들은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영생(永生)을 얻고 그리스도와 완전히 결합되었으며 그리스도와 지상의 교회를 중계한다고 생각하였다. 313년 종교자유칙령으로 박해가 종결되면서 신자들의 이러한 신앙은 신앙의 증거자(confessores fidei), 교리의 탁월한 수호자(교회 박사), 사도적 열성과 자선 및 복음정신이 뛰어난 자, 참회와 엄격성으로 신자로서 모범적 삶을 영위한 자 등으로 확대되었다. 6~10세기에 성인으로 숭배되는 자가 크게 늘어나자 처음에는 지방주교가, 후에는 교황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이를 인가하는 관습이 생겼다. 기록에 남아있는, 최초로 교황이 인가한 성인은 성 우달리코(St. Udalicus)였으며(973년), 차츰 시성에 관한 절차법이 갖추어졌다. 그레고리오(Gregorius) 9세는 1234년에 합법적 조사방식을 책정하였으며 식스토(Sixtus) 5세는 1588년 역사와 교의상의 발전을 에서 공식화 하여 시성을 위한 교황청 업무를 유기적으로 분할하였고, 특히 이를 전담할 예부성성(禮部聖省)을 설립하였다. 우르바노(Urbanus) 8세는 1642년 을 발행하여 재위기간 중에 발표된, 시성에 관한 모든 법령과 해석을 실었으며 18세기 베네딕토(Benedictus) 14세는 를 발표하여 예부성성의 경험들을 집대성하였다. 현재는 시성시복 성성에서 이를 담당하고 있다.

   시성은 이미 시복되어진 복자(福者)에 한해서 행해진다. 시복에 이어 그 복자의 전구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이상의 기적이 보고되면 심사는 재개되고 시복과정이 시성을 위해 반복된다. 시성이 결정되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엄숙한 시성식이 열리고 교황은 시성선언을 통해 그 대상자가 영원한 광명 속에 있으며 세계 교회는 그에게 성인에게 합당한 공적 공경을 바칠 것을 명하게 된다.

   성인은 복자와는 달리 전세계 교회에 의해 공경되며, 그에게 바치는 공적 공경이란 미사 경본과 사제의 성무일도에 기도문이 삽입되고 전례력에 축일이 도입되며 성체행렬에서 그 유해를 공경하는 일 등을 말한다. 성인은 하느님께 지상의 신자들을 위해 전구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완전성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시성된다. 또한 시성은 교황만이 할 수 있는 무류성을 가진 행위다. 한국 교회에서는 1984년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사목 방문차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 순교복자 103위가 시성되었는데 이 시성수속에서 기적 심사가 면제되었고 아비뇽 교황 시대를 제외하면 역사상 처음으로 로마 교황청 밖에서 시성식이 거행되었다. (⇒) 성인, 시복 

  

 

 

update 2014.4.30.

 

♬시편15(16)편

 

 

 

 

 

 

 

 

 

 

 

 

 

 

 

 

 

 

 

 

 

 

 

San Giovanni Paolo II (Karol Wojtyla) Papa

22 ottobre 
 

 Wadowice, Cracovia, 18 maggio 1920 - Vaticano, 2 aprile 2005

 

(Papa dal 22/10/1978 al 02/04/2005 ).
 Nato a Wadovice, in Polonia, è il primo papa slavo e il primo Papa non italiano dai tempi di Adriano VI. Nel suo discorso di apertura del pontificato ha ribadito di voler portare avanti l'eredità del Concilio Vaticano II. Il 13 maggio 1981, in Piazza San Pietro, anniversario della prima apparizione della Madonna di Fatima, fu ferito gravemente con un colpo di pistola dal turco Alì Agca. Al centro del suo annuncio il Vangelo, senza sconti. Molto importanti sono le sue encicliche, tra le quali sono da ricordare la "Redemptor hominis", la "Dives in misericordia", la "Laborem exercens", la "Veritatis splendor" e l'"Evangelium vitae". Dialogo interreligioso ed ecumenico, difesa della pace, e della dignità dell'uomo sono impegni quotidiani del suo ministero apostolico e pastorale. Dai suoi numerosi viaggi nei cinque continenti emerge la sua passione per il Vangelo e per la libertà dei popoli. Ovunque messaggi, liturgie imponenti, gesti indimenticabili: dall'incontro di Assisi con i leader religiosi di tutto il mondo alla preghiere al Muro del pianto di Gerusalemme. Così Karol Wojtyla traghetta l'umanità nel terzo millennio. La sua beatificazione ha luogo a Roma il 1° maggio 2011.

 


 

 

Karol Józef Wojtyła, eletto Papa il 16 ottobre 1978, nacque a Wadowice, città a 50 km da Cracovia, il 18 maggio 1920.

 Era il secondo dei due figli di Karol Wojtyła e di Emilia Kaczorowska, che morì nel 1929. Suo fratello maggiore Edmund, medico, morì nel 1932 e suo padre, sottufficiale dell’esercito, nel 1941.

 A nove anni ricevette la Prima Comunione e a diciotto anni il sacramento della Cresima. Terminati gli studi nella scuola superiore Marcin Wadowita di Wadowice, nel 1938 si iscrisse all’Università Jagellónica di Cracovia.

 Quando le forze di occupazione naziste chiusero l’Università nel 1939, il giovane Karol lavorò (1940-1944) in una cava ed, in seguito, nella fabbrica chimica Solvay per potersi guadagnare da vivere ed evitare la deportazione in Germania.

 A partire dal 1942, sentendosi chiamato al sacerdozio, frequentò i corsi di formazione del seminario maggiore clandestino di Cracovia, diretto dall’Arcivescovo di Cracovia, il Cardinale Adam Stefan Sapieha. Nel contempo, fu uno dei promotori del "Teatro Rapsodico", anch’esso clandestino.

 Dopo la guerra, continuò i suoi studi nel seminario maggiore di Cracovia, nuovamente aperto, e nella Facoltà di Teologia dell’Università Jagellónica, fino alla sua ordinazione sacerdotale a Cracovia il 1 novembre 1946. Successivamente, fu inviato dal Cardinale Sapieha a Roma, dove conseguì il dottorato in teologia (1948), con una tesi sul tema della fede nelle opere di San Giovanni della Croce. In quel periodo, durante le sue vacanze, esercitò il ministero pastorale tra gli emigranti polacchi in Francia, Belgio e Olanda.

 Nel 1948 ritornò in Polonia e fu coadiutore dapprima nella parrocchia di Niegowi?, vicino a Cracovia, e poi in quella di San Floriano, in città. Fu cappellano degli universitari fino al 1951, quando riprese i suoi studi filosofici e teologici. Nel 1953 presentò all’Università cattolica di Lublino una tesi sulla possibilità di fondare un’etica cristiana a partire dal sistema etico di Max Scheler. Più tardi, divenne professore di Teologia Morale ed Etica nel seminario maggiore di Cracovia e nella Facoltà di Teologia di Lublino.

 Il 4 luglio 1958, il Papa Pio XII lo nominò Vescovo titolare di Ombi e Ausiliare di Cracovia. Ricevette l’ordinazione episcopale il 28 settembre 1958 nella cattedrale del Wawel (Cracovia), dalle mani dell’Arcivescovo Eugeniusz Baziak.

 Il 13 gennaio 1964 fu nominato Arcivescovo di Cracovia da Paolo VI che lo creò Cardinale il 26 giugno 1967.

 Partecipò al Concilio Vaticano II (1962-65) con un contributo importante nell’elaborazione della costituzione Gaudium et spes. Il Cardinale Wojtyła prese parte anche alle 5 assemblee del Sinodo dei Vescovi anteriori al suo Pontificato.

 Viene eletto Papa il 16 ottobre 1978 e il 22 ottobre segue l'inizio solenne del Suo ministero di Pastore Universaledella Chiesa.

 Dall’inizio del suo Pontificato, Papa Giovanni Paolo II ha compiuto 146 visite pastorali in Italia e, come Vescovo di Roma, ha visitato 317 delle attuali 332 parrocchie romane. I viaggi apostolici nel mondo - espressione della costante sollecitudine pastorale del Successore di Pietro per tutte le Chiese - sono stati 104.

 Tra i suoi documenti principali si annoverano 14 Encicliche, 15 Esorta-zioni apostoliche, 11 Costituzioni apostoliche e 45 Lettere apostoliche. A Papa Giovanni Paolo II si ascrivono anche 5 libri: "Varcare la soglia della speranza" (ottobre 1994); "Dono e mistero: nel cinquantesimo anniversario del mio sacerdozio" (novembre 1996); "Trittico romano", meditazioni in forma di poesia (marzo 2003); "Alzatevi, andiamo!" (maggio 2004) e "Memoria e Identità" (febbraio 2005).

 Papa Giovanni Paolo II ha celebrato 147 cerimonie di beatificazione - nelle quali ha proclamato 1338 beati - e 51 canonizzazioni, per un totale di 482 santi. Ha tenuto 9 concistori, in cui ha creato 231 (+ 1 in pectore) Cardinali. Ha presieduto anche 6 riunioni plenarie del Collegio Cardinalizio.

 Dal 1978 ha convocato 15 assemblee del Sinodo dei Vescovi: 6 generali ordinarie (1980, 1983, 1987, 1990; 1994 e 2001), 1 assemblea generale straordinaria (1985) e 8 assemblee speciali (1980, 1991, 1994, 1995, 1997, 1998 [2] e 1999).

 Nessun Papa ha incontrato tante persone come Giovanni Paolo II: alle Udienze Generali del mercoledì (oltre 1160) hanno partecipato più di 17 milioni e 600mila pellegrini, senza contare tutte le altre udienze speciali e le cerimonie religiose (più di 8 milioni di pellegrini solo nel corso del Grande Giubileo dell’anno 2000), nonché i milioni di fedeli incontrati nel corso delle visite pastorali in Italia e nel mondo; numerose anche le personalità governative ricevute in udienza: basti ricordare le 38 visite ufficiali e le altre 738 udienze o incontri con Capi di Stato, come pure le 246 udienze e incontri con Primi Ministri.

 Muore a Roma, nel suo alloggio nella Città del Vaticano, alle ore 21.37 di sabato 2 aprile 2005. I solenni funerali in Piazza San Pietro e la sepoltura nelle Grotte Vaticane seguono l'8 aprile.
 

 

 

Fonte:  
 
  www.karol-wojtyla.org  

 

Note:  Per approfondire: Cristina Siccardi - Giovanni Paolo II. L’uomo e il Papa - Paoline Editoriale Libri, 2011 

 


Spunti bibliografici su  Giovanni Paolo II - Papa Wojtyla a cura di LibreriadelSanto.it
•G. Franco Svidercoschi, Il papa e l'amico ebreo, Cairo Publishing, 2014 - 128 pagine
•Wojtyla Karol, Educare ad amare, Cantagalli Edizioni, 2014 - pagine
•Benedetto XVI (Joseph Ratzinger), Abrid las puertas a Cristos!,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14 - 112 pagine
•Marin Lucia, Un Papa per amico, Shalom, 2014 - pagine
•Ambrogetti Angela, Giovanni Paolo II raccontato da chi lo ha..., Tau Editrice, 2014 - 124 pagine
•Paolo Fucili, , Elledici, 2014 - 112 pagine
•Wojtyla Karol, Sposi, amici dello Sposo, Cantagalli Edizioni, 2014 - pagine
•Bianco Enzo, Bosco Teresio, Santo!, Elledici, 2014 - 144 pagine
•Truqui Cesare, Mio viaggio con un santo, Edizioni Art, 2014 - pagine
•Andrea Tornielli, L' ultimo miracolo, Piemme, 2014 - 164 pagine
•Corba Ercole, Il sogno di Lolek + cd, Mimep-Docete, 2014 - pagine
•Tradigo Alfredo, Nel nome di Giovanni, Mimep-Docete, 2014 - pagine
•Stanislaw Dziwisz, Ho vissuto con un santo, Rizzoli, 2014 - 220 pagine
•Andrea Riccardi, , San Paolo Edizioni, 2014 - 112 pagine
•Slawomir Oder, Saverio Gaeta, Karol il santo, San Paolo Edizioni, 2014 - 192 pagine
 Altri suggerime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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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ggiunto il 2011-02-08

 

 

 


 

Beato Giovanni Paolo II (Karol Wojtyla) Papa
22 ottobre 
Wadowice, Cracovia, 18 maggio 1920 - Vaticano, 2 aprile 2005

(Papa dal 22/10/1978 al 02/04/2005 ).
Nato a Wadovice, in Polonia, è il primo papa slavo e il primo Papa non italiano dai tempi di Adriano VI. Nel suo discorso di apertura del pontificato ha ribadito di voler portare avanti l'eredità del Concilio Vaticano II. Il 13 maggio 1981, in Piazza San Pietro, anniversario della prima apparizione della Madonna di Fatima, fu ferito gravemente con un colpo di pistola dal turco Alì Agca. Al centro del suo annuncio il Vangelo, senza sconti. Molto importanti sono le sue encicliche, tra le quali sono da ricordare la "Redemptor hominis", la "Dives in misericordia", la "Laborem exercens", la "Veritatis splendor" e l'"Evangelium vitae". Dialogo interreligioso ed ecumenico, difesa della pace, e della dignità dell'uomo sono impegni quotidiani del suo ministero apostolico e pastorale. Dai suoi numerosi viaggi nei cinque continenti emerge la sua passione per il Vangelo e per la libertà dei popoli. Ovunque messaggi, liturgie imponenti, gesti indimenticabili: dall'incontro di Assisi con i leader religiosi di tutto il mondo alla preghire al Muro del pianto di Gerusalemme. Così Carol Wojtyla traghetta l'umanità nel terzo millennio. La sua beatificazione ha luogo a Roma il 1° maggio 2011.

 

Karol Józef Wojtyła, eletto Papa il 16 ottobre 1978, nacque a Wadowice, città a 50 km da Cracovia, il 18 maggio 1920.

Era il secondo dei due figli di Karol Wojtyła e di Emilia Kaczorowska, che morì nel 1929. Suo fratello maggiore Edmund, medico, morì nel 1932 e suo padre, sottufficiale dell’esercito, nel 1941.

A nove anni ricevette la Prima Comunione e a diciotto anni il sacramento della Cresima. Terminati gli studi nella scuola superiore Marcin Wadowita di Wadowice, nel 1938 si iscrisse all’Università Jagellónica di Cracovia.

Quando le forze di occupazione naziste chiusero l’Università nel 1939, il giovane Karol lavorò (1940-1944) in una cava ed, in seguito, nella fabbrica chimica Solvay per potersi guadagnare da vivere ed evitare la deportazione in Germania.

A partire dal 1942, sentendosi chiamato al sacerdozio, frequentò i corsi di formazione del seminario maggiore clandestino di Cracovia, diretto dall’Arcivescovo di Cracovia, il Cardinale Adam Stefan Sapieha. Nel contempo, fu uno dei promotori del "Teatro Rapsodico", anch’esso clandestino.

Dopo la guerra, continuò i suoi studi nel seminario maggiore di Cracovia, nuovamente aperto, e nella Facoltà di Teologia dell’Università Jagellónica, fino alla sua ordinazione sacerdotale a Cracovia il 1 novembre 1946. Successivamente, fu inviato dal Cardinale Sapieha a Roma, dove conseguì il dottorato in teologia (1948), con una tesi sul tema della fede nelle opere di San Giovanni della Croce. In quel periodo, durante le sue vacanze, esercitò il ministero pastorale tra gli emigranti polacchi in Francia, Belgio e Olanda.

Nel 1948 ritornò in Polonia e fu coadiutore dapprima nella parrocchia di Niegowi?, vicino a Cracovia, e poi in quella di San Floriano, in città. Fu cappellano degli universitari fino al 1951, quando riprese i suoi studi filosofici e teologici. Nel 1953 presentò all’Università cattolica di Lublino una tesi sulla possibilità di fondare un’etica cristiana a partire dal sistema etico di Max Scheler. Più tardi, divenne professore di Teologia Morale ed Etica nel seminario maggiore di Cracovia e nella Facoltà di Teologia di Lublino.

Il 4 luglio 1958, il Papa Pio XII lo nominò Vescovo titolare di Ombi e Ausiliare di Cracovia. Ricevette l’ordinazione episcopale il 28 settembre 1958 nella cattedrale del Wawel (Cracovia), dalle mani dell’Arcivescovo Eugeniusz Baziak.

Il 13 gennaio 1964 fu nominato Arcivescovo di Cracovia da Paolo VI che lo creò Cardinale il 26 giugno 1967.

Partecipò al Concilio Vaticano II (1962-65) con un contributo importante nell’elaborazione della costituzione Gaudium et spes. Il Cardinale Wojtyła prese parte anche alle 5 assemblee del Sinodo dei Vescovi anteriori al suo Pontificato.

Viene eletto Papa il 16 ottobre 1978 e il 22 ottobre segue l'inizio solenne del Suo ministero di Pastore Universaledella Chiesa.

Dall’inizio del suo Pontificato, Papa Giovanni Paolo II ha compiuto 146 visite pastorali in Italia e, come Vescovo di Roma, ha visitato 317 delle attuali 332 parrocchie romane. I viaggi apostolici nel mondo - espressione della costante sollecitudine pastorale del Successore di Pietro per tutte le Chiese - sono stati 104.

Tra i suoi documenti principali si annoverano 14 Encicliche, 15 Esorta-zioni apostoliche, 11 Costituzioni apostoliche e 45 Lettere apostoliche. A Papa Giovanni Paolo II si ascrivono anche 5 libri: "Varcare la soglia della speranza" (ottobre 1994); "Dono e mistero: nel cinquantesimo anniversario del mio sacerdozio" (novembre 1996); "Trittico romano", meditazioni in forma di poesia (marzo 2003); "Alzatevi, andiamo!" (maggio 2004) e "Memoria e Identità" (febbraio 2005).

Papa Giovanni Paolo II ha celebrato 147 cerimonie di beatificazione - nelle quali ha proclamato 1338 beati - e 51 canonizzazioni, per un totale di 482 santi. Ha tenuto 9 concistori, in cui ha creato 231 (+ 1 in pectore) Cardinali. Ha presieduto anche 6 riunioni plenarie del Collegio Cardinalizio.

Dal 1978 ha convocato 15 assemblee del Sinodo dei Vescovi: 6 generali ordinarie (1980, 1983, 1987, 1990; 1994 e 2001), 1 assemblea generale straordinaria (1985) e 8 assemblee speciali (1980, 1991, 1994, 1995, 1997, 1998 [2] e 1999).

Nessun Papa ha incontrato tante persone come Giovanni Paolo II: alle Udienze Generali del mercoledì (oltre 1160) hanno partecipato più di 17 milioni e 600mila pellegrini, senza contare tutte le altre udienze speciali e le cerimonie religiose (più di 8 milioni di pellegrini solo nel corso del Grande Giubileo dell’anno 2000), nonché i milioni di fedeli incontrati nel corso delle visite pastorali in Italia e nel mondo; numerose anche le personalità governative ricevute in udienza: basti ricordare le 38 visite ufficiali e le altre 738 udienze o incontri con Capi di Stato, come pure le 246 udienze e incontri con Primi Ministri.

Muore a Roma, nel suo alloggio nella Città del Vaticano, alle ore 21.37 di sabato 2 aprile 2005. I solenni funerali in Piazza San Pietro e la sepoltura nelle Grotte Vaticane seguono l'8 aprile.


Fonte: karol-wojtyla.org


Spunti bibliografici su Giovanni Paolo II - Papa Wojtyla a cura di LibreriadelSanto.it

Weigel George, La fine e l'inizio, Cantagalli Edizioni, 2012 - 300 pagine
Linus Dragu Popian, Georges Picu, Nel mondo di Karol Wojtyla, Paoline Edizioni, 2012 - 152 pagine
Santorsola Leonardo, Femminismo cristiano e cultura della persona, Cantagalli Edizioni, 2012 - pagine
Semen Yves, La famiglia secondo Giovanni Paolo II, San Paolo Edizioni, 2012 - 64 pagine
Giovanni Paolo II, Mandato d'amore, San Paolo Edizioni, 2012 - 136 pagine
Cardillo Antonio, Democrazia ed economia nel magistero sociale..., Vivere In, 2012 - pagine
Giovanni Paolo II, La sinfonia della fede,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12 - 348 pagine
Comastri Angelo, Ricordo di tre papi, San Paolo Edizioni, 2012 - 184 pagine
Francesco Pilloni, Przemyslaw Kwiatkowski, Guardo con ammirazione lo sposo, Effatà, 2012 - 160 pagine
Romano Aurelio, Fides et ratio per tutti, Armando Editore, 2011 - 208 pagine
Di Giosia Dario, La pastorale dei giovani,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11 - 336 pagine
Marchesini Roberto, Amore e sessualità, Il Timone, 2011 - pagine
Comastri Angelo, Giovanni Paolo II, San Paolo Edizioni, 2011 - 136 pagine
Marini Piero, Cescon Bruno, Io sono un papa amabile. Giovanni Paolo II, San Paolo Edizioni, 2011 - 192 pagine
Semen Yves, La spiritualità coniugale secondo Giovanni..., San Paolo Edizioni, 2011 - 208 pagine
Altri suggerime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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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giunto il 201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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