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나의사랑 골롬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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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영 [dykim77] 쪽지 캡슐

2000-07-13 ㅣ No.1472

나의 영원한 사랑 골롬바에게

 

당신이 훌쩍 내 곁을 떠나 하느님 앞으로 떠나간 지도 어언 10여일 이 되는구려, 그처럼 오고싶어 하던 당신의 집을 나 혼자 발을 들여 놓을 때의 심정,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있겠소.

 

당신이 말도 않통하는 미국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순간부터 나의 시간은 정지되어 버렸소 "쓰러진 날이 며칠이오?" "몇 시에 그랳소?"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의 의식은 어제 같기도 하고 그제 같기도 하고 일요일인지 월요일인지 분간을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라오.

 

미국 가기를 많이 망설이다가 결국 대학을 졸업하는 막내아들이 보고싶고 당신이 예뻐 하는 며느리를 보러 가야겠다고 결정할 때, 나는 내심 즐거웠다오, 나는 당신과 여행하는 것이 항상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었오 그러나 그 여행이 마지막일 줄은 감히 꿈에도 상상을 못하였소.

 

막내 아들의 졸업축하 미사를 드리기 위하여 공항에서 직접 대학교 대성당으로 달려가던 당신의 모습, 그 넓은 졸업식장에서 제일 먼저 아들을 찾아보고  좀더 가까이서 보기 위하여 막무가내로 내 손을 잡아 끌던 당신의 모습, 미국에서 처음으로 막내 며느리의 정성어린 생일 상을 받고 반가워 하던 당신의 모습, 이러한 것들이 한낮 추억으로 남을 줄 누가 알았겠소. "항상 깨어서 신랑 맞을 준비를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당신은 이러한 방법으로 나에게 알려 주는구려.

 

매일같이 아침에 눈뜨자마자 성모님 앞에 촛불 켜고 기도 드리는 당신, 차만 타면 묵주 알 돌리며 기도하는 당신, 서울 명동 성당 안에 있는  계성여고를 다닐 때를 생각하며 동기 중 누구 누구가 수녀님이 되었다고 이야기하여주던 당신, 지금은 내가 당신사진을 성모님 옆에 걸어놓고 당신이 기도하던 모습을 닮으려 성모님 앞에 꾸러 앉아 보지만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뛰어 기도책만 손에 들고 멍하니 당신의 사진속의 모습만 바라보며 앉아있을 뿐이오.

 

당신을 떠나 보내고 난 후에나 느꼈지만 분명 성모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오.

 

당신이 낮 설고 말도 않통하는 미국땅 시아틀의 병원 응급실에 있을 때 시아틀 성당 (그리스도의 평화 천주교회, Peace of Christ Korean Catholic Community)은 한 형제, 공동체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실제로 보여주었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당신이 혼수상태로 있을 때 수녀님들과 교우들이 계속 당신 곁에서 또는 병실이 좁아 병실 밖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으며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은 안 미카엘 주임 신부님과 수녀님께서는 먼 길을 머다 않고 급히 달려오시어 종부 성사를 거행하시던 것을 당신은 알고 있겠지. 당신이 숨을 거두는 그 순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교우들이 당신을 위하여 모두 기도 드렸다는 소식도 나는 나중에야 알았소.

 

당신의 장례미사를 레지오 장례로 결정하시고 행여 샌드위치 휴일 (진검다리 휴일)이라 장례미사가 쓸쓸할 것을 걱정하시고 일일이 레지오 단원들에 참석할 것을 전하신 안상철 주임 신부님의 따듯한 배려, 어떤 교우는 나에게 미국의 징검다리 휴일은 성당 나오는 사람이 적으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고 미리 위로 하였으나 의외로 성당 안을 가득 메워 엄숙히 레지오 장례미사를 거행 하였던 것은 오로지 인간의 힘 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그토록 당신이 사랑한 성모님의 배려라고 생각하오.

 

한국의 한 여행객이 머나먼 타국에서 쓸쓸히 죽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을 시아틀 성당에서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도움을 주었으며 그토록 엄숙히 레지오 장례미사를 거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한번 한 형제 자매, 공동체가 진정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쳤소.

 

우리 가톨릭에서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신중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소만 나는 이번 당신을 통하여 많은 기적을 체험하였소, 그 중 하나는 한국에서 그토록 사랑하는 큰 아들과 며느리가 오고 있는데 당신은 숨을 거두고 있었소 나는 의사에게 2시간만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의학적으로 불가능 하다고 하여 나는 "그토록 당신이 사랑하는 성모님께 아들, 며느리 보고 가게 해달라고 기도 좀 해 보라"고 애원하였지, 나도 그때 성모님께 "지금 서울서 오고있는 아들만 보고 가게 해주시면 그 이상 살려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겠다"고 성모님께 매달렸지, 결국 수녀님과 많은 교우들, 그리고 두 아들, 두 며느리 그리고 고모가 지켜 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그리고 조용히 당신은 하늘나라로 올라 갈수 있었던 것은 성모님이 죄 많은 내 기도보다  당신의 기도를 들어 주시었다는 설명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소.

 

우리는 또다시 서울로 가기 위하여 그곳 안 신부님, 수녀님들에 변변한 인사도 못드린채 당신만 그곳에 남겨놓을 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LUX 회원들이 계속 당신이 외롭지 않게 기도 드리며 지켜 주겠다며 떠나는 우리를 위로해 주던 시아틀 성당의 LUX 회원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정말로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오.

 

당신이 서서히 숨을 거두는 순간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였소,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중에 숨을 거두시는 외 아드님을 멀리 서 바라보고 계셨을 그분의 고통을 이제야 아주 조금이나마 묵상할 수 있었소.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공짜가 없다"는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당신은 다시 한번 서울에서 나에게 확실히 보여 주었소.

 

정말로 기적적으로 사람의 능력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에 예정 데로 당신이 돌아 왔을 때 이미 당신은 다시 한번 우리 본당인 중계동 성당에서 당신을 레지오 장으로 치르기로 결정되어 있었으며 공항에서 밤 9시가 지나서야 병원 영안실에 도착하였는데도 많은 성당 교우분들 사목위원장님, 많은 레지오 단원분들, 제7지구 형제모임의 조 지구장님, 총무님, 마태오, 이루 나열할 수 없는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연도를 드렸소 뿐만 아니라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당신과 함께 레지오 활동을 하였던 수락산 성당의 자매님도 어찌 소식을 들었는지 달려 왔으며 그분들도 다음날 장례미사 후 산소까지도 당신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 주었소.

 

장례미사가 끝난 후 산에 갈 때에는 대형 버스 한대와 리무진으로 갈 작정이었소 그러나 생각치 못한 상황이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었소 즉 교형 자매님들이 너무나 많이 당신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였기 할 수 없이 가족들은 각자 승용차를 이용 할 수밖에 없었소.

 

59세란 나이는 요즈음 젊은 측에 속해서 당신 같은 사람은 전철에서 자리도 양보 받지 못하는 나이인데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떠나간 당신이 한없이 불상하고 안타깝지만 솔직히 말해서 부럽기도 하구려.

 

우리 본당인 중계동 성당에서는 그리 흔치 못하다는 레지오 장 역시 많은 교우분 들의 기도 속에 엄숙히 거행 되었다는 것을 당신은 하늘나라에서 알고 있겠지, 항상 차분하시고 담담한 강론이 좋아서 9시 미사를 택하던 바로 그 신부님이신 권 신부님께서 당신의 장례미사를 집전하셨던 것을 당신도 내 마음 같이 영광으로 생각했겠지.

 

수요일인 오늘은 레지오 회합 날이라는 것을 당신도 기억하지? 당신이 속해있던 레지오 팀에서 오늘 연미사를 올렸소 나는 그 미사 내내 자리를 지키기가 힘들었소 오늘 미사도 권 신부님께서 집전하시기에 더욱 어려웠소, 언제나 권 신부님의 강론을 들을 때는 당신이 내 곁에 있었으며 간혹 주보를 펼치려면 옆구리를 쿡쿡 치던 당신의 자리에 지금은 나 혼자만 강론을 듣고 있다는 현실을 느낄 때 이성만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감정이 복바치는 구려.

 

2년 전인가 미국에서 안 신부님의 "수도꼭지" 강론을 듣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야기하던 추억, 이번에는 안 신부님의 "짜리" 강론을 들으며 머리를 끄덕이던 당신의 모습, 어찌 내가 살아 있는 한 잊을 수가 있겠소 10층의 젬마는 당신의 소식에 쇼크를 받고 이틀이나 몸 져 누워 있었다는 구려, 당신이 속해있던 레지오 단장이신 마르타 역시 당신에 대한 쇼크로 운전하다가 사고를 당하였다는 구려, 그러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몸 둘바를 모르겠소.

 

내가 기침한번하면 당장 병원 가라고 날리 치던 당신, 백화점만 가면 내 옷을 사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나는 사지 말라고 싸우던 당신의 모습,  그러나 당신이 아플 때는 같이 병원 간적이 별로 없는 나, 차 태워 주겠다면 버스가 바로 병원 앞에서 정지 한다며 한사코 333번 버스를 이용한 당신, 오늘도 나는 런닝셔스 한장 찾느라 온 설합을 뒤졌소. 아무리 빈 자리가 크게 느껴 진다지만 이럴 줄이야!.

 

너무나 갑작스럽게 닥친 나의 불행을 시아틀 성당의 안상철 주임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모든 형제 자매님들, 그리고 우리 중계동 본당 신부님과 교우 여러분들, 레지오 단원 모든 분들께서 직접 당한 일인 양 많은 기도와 도움을 주신데 대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마음 한이 없구려, 그래서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은 이제까지는 당신의 손에 이끌려 다니던 송아지 신자에서 내 자신이 진심으로 참여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한 방법이라 생각하여 며칠 전부터 우선 새벽 6시 미사에 참석하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도 바라던 아침과 저녁기도를 하리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오.

 

주님, 저의 처 골롬바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성 마리아, 골롬바를 위하여 빌으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골롬바를 용서하소서.

주님, 골롬바를 구원하소서.  

 

짧지 않은 인생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그토록 많은 도움을 주신 신부님,수녀님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에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이 항상 같이 하시길 기원 합니다.

 

아멘.

 

 

Doo-Young Kim

dykim77@kornet.net

Fax # (+82) 2 974-9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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