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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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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2-12 ㅣ No.76

 

 

신약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해제

 

 

-진 토마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8b 필립비서 필레몬서, 분도출판사, 1991

 

 

 

1. 집필 배경

본서는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지만 그 집필 배경을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어렵다. 우선 집필 동기와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힐 수 있겠다. 부유층에 속한 신자 필레몬의 노예인 오네시모는 도망했다가 바오로 사도를 만났다. 그는 바오로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믿게 되었고, 얼마 동안 옥중에 있는 바오로의 시중을 들었다. 그 후 바오로는 그를 주인에게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 이유로는 "사랑하는" 필레몬에 대한 바오로의 의리를 들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네시모를 돌려보내지 않을 경우 그는 언젠가 당국에 붙잡힐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바오로도 그의 도주를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겠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다. 오네시모는 이미 주인집에서 바오로를 만나 알고 있었으니, 처음부터 사도의 도움과 보호를 받으려고 찾아갔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바오로는 오네시모를 가까이 두고 함께 지내며 그의 사람됨이 성실함을 알고는 그를 아들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를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며 이 편지를 전하게 하였다. 그 내용은 노예로서 주인에게 죄를 지은 그를 용서하고 신앙의 형제로 대하며 바오로 자신처럼 너그럽게 받아들일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사연이다. 바오로는 오네시모를 풀어 주라고 똑똑히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필레몬이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자기에게 요구된 것 이상의 일을 하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바오로는 필레몬이 오네시모를 다시 자신에게 보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편지의 사연은 이렇게 명백하지만, 집필 장소와 연대 그리고 수신인의 소재지는 다만 추측해 본다. 골로사이서를 바오로의 친서로 간주한다면, 바오로는 필레몬서를 골로사이서와 함께 보냈다고 보아야한다. 골로 4,7-9에 의하면 바오로는 골로사이서를 전하는 디키고와 함께 오네시모를 골로사이로 보내며 그를 "여러분의 동향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오네시모와 그의 주인 필레몬도 골로사이 사람이다. 필레 23-24에서 인사를 전하는 인물들이 골로 4,10-14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사실은 앞의 추정과 부합한다.

  그러나 이렇게 가정할 때 좀 이상한 것은 골로사이서에 필레몬의 이름이 없고 필레몬서에 디키고의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오히려 골로사이서를 70년 전후에 바오로의 제자가 쓴 작품으로 생각하는 학자들의 가설과 더 잘 부합한다. 그렇게 가정하더라도 오네시모는 골로사이서 집필 당시 골로사이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었고 따라서 그 전에도 골로사이나 그 근방 도시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론된다.

  집필 장소로는 이전에 로마나 가이사리아가 추정되어 왔다. 왜냐하면 사도 22,33-28,31에 바오로가 이 두 군데서 감옥살이를 했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바오로가 에페소에서도 투옥된 적이 있다고 보고, 그 기회에 필립비서와 필레몬서를(그리고 골로사이서도?) 집필했으리라고 추론하고 있다(필립비서 해제 참조). 만약 그렇다면 본서의 집필 연대도 필립비서와 같을 것이다(55∼56년경). 사실 오네시모가 골로사이 또는 그 근방 사람이라면 로마나 가이사리아까지 도망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에 비해 에페소는 아시아주의 수도였고 골로사이도 이 주에 속해 있었으니 별로 먼 거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본서와 필립비서의 내용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이다.

 

2. 특색

본서는 바오로의 친서들 가운데서 가장 짧고 유달리 사사로운 편지로서 서간의 고유한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편지도 순전히 두 개인간의 사정만을 다룬 글은 아니다. 바오로는 서두에서 이 편지를 "필레몬 그대와… 그대의 집에 있는 교회에" 보낸다고 했고, 또한 마지막 인사도 복수("여러분의 영과 함께")로 되어 있다. 본서의 구조도 바오로가 단위 교회에 보낸 다른 서간들과 같다. 즉, 인사(1-3), 감사와 간구(4-7), 구체적인 사연(8-20) 그리고 끝맺는 인사와 강복(22-25)의 정형적 순서로 씌어 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에서 이 서간을 중시하고 경전 목록에 넣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본서의 내용은 거의 개인적인 사연이어서 바오로의 친서 중에서도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 다른 어느 편지보다 여기서 바오로의 수사학적 솜씨와 부드러운 인품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친분과 권위를 아름답게 조화시키며 정답고 재치 있는 어조로 수신인을 감동시킨다. 그는 이 편지에서 분명히 지도자로서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필레몬의 성숙한 신앙과 애덕에 의한 선처를 기대한다. 그래서 그는 지시를 피하고 구체적인 결정을 필레몬에게 맡기고 있다.

 

3. 교훈

본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 당시의 사회제도에서 빚어진 노예 문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노예제도 자체를 거론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하나의 실제적 사건에 대한 의견을 맑힘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와 방법을 보여 준다. 다른 서간에서도 바오로는 노예제도를 기정 사실로 인정한다(1고린 7,20-24). 일반적으로 신약성서에서는 노예의 해방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노예들에게 주인에 대한 순종을 권하고 있다(에페 6,5-9; 골로 3,22-4,1; 1디모 6,1-2; 디도 2,9-10; 1베드 2,18-25). 그러나 한편으로 바오로는 노예의 지위와 관련해서 혁명적인 주장을 내세웠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는…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으며, 노예도 없고 자유인도 없으며, 남성도 없고 여성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 3,28; 1고린 12,13; 골로 3,11 참조)라고 했다. 이와 같이 철저한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사회제도를 건드리지 않는 변증법적인 입장은 필레몬서에서도 드러난다.  바오로의 생각에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나 노예로 지내는 것이나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1고린 7,20-24). 그렇다고 바오로는 노예제도를 적극 찬동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매우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시사한다. 법적인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덕행으로 선처하기를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모두 서로 형제로 대하며 성찬을 함께 나누는 교우들의 상호관계는 실제로 사회적 신분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일찍부터 노예들이 지도적 직분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에 의하면, 2세기초에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에페소의 주교로 있었다(이냐시오의 에페소 서간 1,3; 2,1; 6,2). 그 사람이 본서의 오네시모와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노예 출신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217∼222년에는 노예 출신 갈리스또가 로마의 주교 곧 교종이 되었다. 물론 그 당시 노예들을 속량하는 신자도 많았으며, 심지어 다른 집 노예를 풀어 주기 위해 자신이 대신하여 그 집의 노예가 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노예제도의 폐지 문제나 도주한 노예의 은닉 혹은 보호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신자나 신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포된 후 노예들이 도주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났고 또한 그들의 입장을 옹호한 교부들도 많았다. 그러므로, 고대 말기에 노예제도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은 경제적 변화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서는 오늘날의 인권운동을 위해서도 귀중한 교훈을 제공해 준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담겨 있는 자유와 친교의 기쁜 소식은 공리 공론이 아니라, 각 개인의 일상생활과 사회 풍조의 변혁을 요구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를 무엇보다 존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강제와 폭력에 의한 사회제도의 전복을 원하시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변혁을 기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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