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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3-07-01 ㅣ No.109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서를 읽는 현대의 독자들은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긴 서간을 읽어 가면서, 한쪽으로는 경탄을 금할 수 없으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낯선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여러 차례에 걸쳐 교리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내용이 깊은 말씀 앞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한편으로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한 표현을 구사해 가며 그리스도의 초월성을 선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과 그분의 “형제들”을 한데 묶는 철저한 연대성을 능숙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기 때문이다. 행마다 구약성서에 대한 필자의 폭넓은 지식이 여실히 드러나고, 신자들에게 하는 모든 권고는 그의 교회 사랑에서 흘러 나온다.

  그러나 이 서간이 여러 면에서 독자들에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구약성서의 여러 경신례(敬神禮)와 제사에 관하여 길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아주 유연하게 구약성서의 본문과 사건을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지상 현실과 천상 원형 사이의 관계, 또 역사적 사실과 하느님의 영원성 사이의 관계를 제시한다. 이러한 내용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은 당황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다시 가닥을 잡으려고 본문을 더욱 자세히 고찰하는 시도를 해 보지만, 내용을 감추듯이 전개시켜 가는 문체가 이해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이 밖에도 히브리서의 유래 자체가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문제가 이미 초대 교회에서부터 의혹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데, 종교 개혁 시대에 다시 불이 붙는다. 의혹과 논란은 주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이 작품이 누구에게서 유래하는가? 이 서간을 바오로 사도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는가, 없는가? 이 서간은 바오로 사도의 대서간들과 왜 공통점이 그리 적은가? 이 서간은 누구에게 보낸 것이며 그 계기는 무엇인가? 이 히브리서는 실제로 편지인가?

  먼저 이 문제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에 이 매혹적인 문헌이 담고 있는 풍부한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종합해 보기로 한다.

 

 

1. 초기의 필자 문제

  경전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히브리서는 4세기까지 부침을 계속한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 사이에 적지 않은 시각차가 있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동방 교회에서는 히브리서를 줄곧 바오로의 서신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통이 확고히 자리를 잡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교부들은 히브리서와 바오로의 다른 서간들을 구분짓는 차이점을 밝혀 낸다. 또 히브리서의 이러한 특수성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을 내놓기도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3세기 초) 바오로 사도가 히브리 말로 쓴 서간을 그리스 말로 번안한 것이 히브리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 말의 문체는 루가가 번역하였음을 가리킨다고 믿는다. 조금 뒤, 오리게네스는(184/185-253/254년) 더욱 명확한 구분을 제시한다. 그는 히브리서의 사상이 바오로에게 어울리기는 하지만 그가 이 서간까지 직접 집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히브리서는 스승 바오로의 가르침을 충실히, 그러나 자기 방식에 따라 표현해 내는 한 제자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 그 제자가 누구냐는 문제가 바로 대두되는데, 오리게네스는 자기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당시에는 사도가 저자라는 사실이 경전을 결정하는 데에 큰 구실을 한다. 오리게네스는 히브리서의 필자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러한 사실이 그가 이 문헌을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 후 동방 교회 주석가들은 이 서간의 문학적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자기들의 교회 전통이 보장하는 대로 이 서간이 바오로의 작품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서방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로마의 클레멘스가(?-101년) 고린토 교회에 보낸 서간에서 명백히 이용하는 것으로 보아, 히브리서는 이미 1세기 말에 서방에까지 알려져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아무런 이의 없이 경전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이 서간이 바오로의 친저라는 점에 의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령의 영감에 따라 쓰인 책이라고 주저 없이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부 특정 분파에서 히브리서를 즐겨 사용하였다는 사실도 의심을 더하게 만들었다. 곧 이 서간의 7장이 멜기세덱에 관한 기이한 추측을 내세우는 데에 근거로 이용된다. 엄격주의자들은 히브 6,4-6과 10,26을 바탕으로, 박해 중에 배교한 신자들은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에서는, 하느님의 “말씀”도 피조물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3,2를 논증으로 내세운다. 이는 이탈리아 브레시아 주교 필라스트리우스의 증언에 따른 것으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던 4세기 말엽에 이 서간은 교회 안에서 봉독되지 못한다. 다른 한편, 예로니모에(345-419/420년) 따르면 로마에서는 히브리서를 바오로의 작품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인 자신은 필자 문제에 부차적인 중요성만을 부여한다. 히브리서가 성서의 일부라는 점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증언해 온 동방 교회의 전통이 그에게는 결정적인 보증이 되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튼 4세기 말에 확정된 ‘성서 경전’ 목록에 이 서간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이 문헌에 관하여 주저하던 자세가 사실상 끝났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히브리서가 바오로의 서간들과 함께 배치됨으로써, 이후 그것은 이 서신을 바오로가 직접 썼다는 친저성을 옹호하는 쪽을 두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중세 시대에는 알렉산드리아의 견해와 비슷한 의견이 주를 이룬다. 곧 히브리서는 바오로의 서간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루가가 그리스 말로 충실히 번역하였다는 것이다.

 

 

2. 종교 개혁 시대 이후의 필자 문제

  히브리서를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잠잠하다가 문예 부흥 시대에 다시 뜨겁게 달아오른다. 이 논란의 반향을 루터가 1517-1518년, 곧 그가 ‘비텐베르크 성명’을 발표하던 해에 강의한 히브리서 주석에서도 잘 볼 수 있다. 그는 히브리서가 바오로 사도의 작품이라고, 이 서간에 바오로 사상의 근본적인 주제까지 잘 나타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서간에서 바오로는 율법에 따른 인간적 의로움의 교만에 맞서 은총을 드높인다.” 그러면서도 2,3과 같은 구절을 지적해 낸다. 이 구절에서 필자는 자기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복음을 이어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이렇게 이어받은 이들 가운데에 끼지 않기 때문에(예컨대 갈라디아서 참조), 이는 루터의 말대로 히브리서가 바오로의 작품이 아님을 보여 주는 “매우 강력한 논거”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13,19는 바오로가 필자임을 가리킨다고 여긴다. 이 구절이 바오로의 감옥살이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몇 년 뒤에 신약성서 번역본을 내놓으면서 히브리서에 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곧 이 서간은 바오로의 작품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의 저술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무명 필자가 구약성서를 이용하는 능숙한 솜씨에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서간의 몇몇 구절이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이 서간은 세례를 받은 뒤에 다시 죄에 떨어진 신자들에게 회개의 가망성이 없다고 가르친다(6,4-6; 10,26; 12,17). 그래서 루터는 히브리서가 여러 부분이 합성된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놓는다.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 칼뱅은 루터와 달리 히브리서에 관해서 아무런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서간이 이론의 여지없이 사도들에게서 내려오는 성서의 일부임을 공언하고, 이전에 이 서간의 권위가 공격을 받은 사실은 사탄의 음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히브리서를 바오로 사도의 작품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개신교 주석에서는 그 뒤로도 다양한 의견이 계속된다. 17세기에는 다시, 히브리서가 바오로의 친저라는 가설에 거의 이구동성으로 찬성한다. 그 다음에는 바오로의 친저가 아니라는 반대 가설이 우세하게 된다.

  반면에, 초대 교회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의 증언을 중시하는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에서는 이 서간이 바오로에게서 유래한다는 것을 옹호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친저성의 문제에 관하여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바오로가 저술한 원작을 그의 제자가 손질하여 내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엽 이에 관한 논쟁이 한창일 때, 교황청 성서위원회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히브리서가 바오로에게서 유래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편집 자체는 바오로 손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인정하였다. 최근의 가톨릭 주석가들은 이 서간이 넓은 의미에서 바오로 사도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예컨대 히브리서의 전문가 가운데 어떤 이는, 바오로 사도가 순교한 뒤에 그의 측근이었던 아폴로가(사도 18,24; 1고린 1,12; 3,4-6; 16,12; 디도 3,13 참조) 이 서간을 저술하였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물론 확실한 근거가 되는 사료는 없다.

 

 

3. 친저성의 문제

  아무튼 바오로의 친저성에 반대되는 논거는 많다. 히브리서의 전반적인 모습이 바오로 사도의 기질에 전혀 맞지 않는다. 문체는 너무나 평온하고 구성은 너무나 정교하며, 본문에서 드러나는 필자의 개성은 너무나 밋밋하다(2,3 참조). 이 밖에도 바오로가 직접 쓴 서간들과 히브리서 사이에는 어휘와 어법에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조차 상이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바오로의 서간에서 그토록 자주 이용되는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칭호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을 히브리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구약성서를 인용할 때에는, (‘성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라든가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처럼) “성서”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고, 늘 (‘이렇게 말씀한다.’처럼) “말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히브리서 필자는 자주 그리스도의 천상 등극을 말하는데 반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딱 한 번만 언급한다(13,20). 이 때에도 그냥 당시에 통용되던 관용적인 표현을 이용할 따름이다. 그리스도를 사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신약성서 전체에서 이 히브리서가 유일한 경우이다. 간단히 말해서, 히브리서의 필자는 바오로 사도와 상당히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까닭으로,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서의 내용과 바오로의 사상 사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는 명백한 과장이다. 사실 여러 중요한 점에서 바오로의 교리와 히브리서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의 수난은 필립 2,8과 로마 5,19에서처럼 히브 5,8과 10,9에서도, 그분의 자발적 순종이라는 관점에서 서술된다. 둘째, 히브 7,11-19와 10,1-10에서도 옛 율법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제 폐기되었다는 사실이 갈라 3,21-25나 로마 4,15; 5,20 못지 않게 강력한 어조로 언명된다. 신약성서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바오로의 이 주제가 히브리서에서처럼 명백히 표현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셋째, 거꾸로 히브리서에서 펼쳐지는 근본 주제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바오로의 서간에 근거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갈라 2,20과 에페 5,2.25를 비교해 보면, 바오로와 그의 제자들에게서 구원의 제사적인 면과 사제적인 면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뚜렷한 모습을 띠게 되었는지 잘 알아볼 수가 있다. 이러한 면이 히브리서에서 완전한 형태로 제시된다. 끝으로, 히브리서의 그리스도론과 바오로계의 옥중 서간(에페소서, 필립비서, 골로사이서, 필레몬서)의 그리스도론 사이에 적지 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한다. 곧 하느님의 모상이신 아드님, 천사들 위로 등극하심,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신 끝에 받으시는 “이름” 등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사실들은 히브리서가 바오로에게서 유래한다는 동방 교회 전통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한 마디로, 바오로 사도의 어떤 협력자가 이 서신을 집필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하다.

  그 필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추정하려면 확실성이 훨씬 뒤떨어지는 영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실 교회의 옛 전통에서도 여러 가설 가운데에서 하나로 정착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곧 루가, 로마의 클레멘스, 바르나바 등의 이름이 제시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현대의 학자들은 또 다른 인물들을 찾기도 한다. 그 가운데에서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아폴로라는 이름을 제시한 루터의 가설이다. 유다인 출신으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레니즘의 교육을 받고 성서에 능통하며 화술이 능란함은(사도 18,24-28; 1고린 3,6),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유다인 저술가 필로의 언어와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는 히브리서 필자의 모습에 완전히 들어맞는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해서 옛 사료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아폴로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문헌이 하나도 없어서 히브리서와 비교해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역시 다른 것들과 함께 확증할 수 없는 가설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필자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감수해야 한다.

 

 

4. 문학 양식: 서신과 설교

  히브리서의 문학 양식이 무엇이냐에 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 문헌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서간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편지처럼 시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본디 있었던 서한체의 시작 부분이 상실되었거나 제거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사실 (그리스 말 본문의) 첫 문장인 1,1-4는 문서의 시작으로 매우 훌륭하기는 하지만, 편지의 시작이 아니라 설교의 서론이다. 그리고 이 히브리서는 전체적으로 똑같이 설교의 성격을 드러낸다. 필자는 한 번도 자기가 편지를 쓴다고 하지 않고 언제나 말한다고 한다(2,5; 5,11; 6,9; 8,1; 9,5; 11,32). 본문 자체에도 서간문에 고유한 요소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어조가 바뀐다. 곧 13,22-25는 편지를 끝맺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보내는 말이 나온다. 이어서 관례적인 끝인사와 축복의 말로 끝을 맺는다. 다른 한편, 서론(1,1-4)에 전혀 상응하지 않는 이 마지막 부분 직전에, 강론의 결론에 딱 들어맞는 엄숙한 문장이 눈에 띤다(13,20-21). 그래서 현재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히브리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야 한다. 하나는 말로 하게 되어 있는 강론이고(1,1─13,21), 다른 하나는 거기에 덧붙여진 아주 짧은 서간이다(13,22-25). 이 강론은 실제로 어떤 한 곳 또는 여러 곳의 신자 공동체 앞에서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다음, 이 강론을 문서로 정리하여 다른 곳의 신자들에게 보내는데, 그 기회를 이용하여 소식과 인사를 전하는 몇 마디 말이 덧붙여진 것이다. 이 몇 마디 말과 앞의 강론이 서로 다른 두 사람 손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강론 부분은 문체로 볼 때에 바오로의 작품일 수 없다. 그러나 짧은 서간만큼은 사도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5. 수신인

  히브리서에는 수신인에 관한 확실한 표지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이 문헌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여기에서 “보낸 서간”이라는 말은 내용상 덧붙인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말도 본디 이 문헌의 본문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이 제목이 오래 되기는 하였지만, 이 문서를 서간집에 배치할 때에야 비로소 붙여졌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제목의 의미조차 분명하지 않다. 고대의 주석가들은 이 제목으로부터, 수신인이 팔레스티나 땅에 살면서 히브리 말을 쓰던 유다인들이라고 추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수신인이 히브리 말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원문이 히브리 말로 쓰여졌을 터인데, 히브리서의 그리스 말은 전혀 번역투의 그리스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 모두 인정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학자들 가운데에는 이 서간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다인, 더 정확하게는 유다교 쿰란 종파의 신도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 가설도 가능성이 없다. 이 서간에 개종하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고, 꾸준히 믿고 그 믿음을 키워 나아가라고 권고할 따름이기 때문이다(3,6; 5,12; 6,9-12 등). 물론 히브리서는 사해 곁 쿰란에서 발견된 문서들과 부정할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 그러나 헬레니즘의 유다교와 매우 명백한 관련이 있음도 사실이다. 그 밖에 영지주의의 영향까지 발견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영지주의에 관해서는 요한 복음서 입문 20-22쪽 참조). 히브리서를 다른 여러 가지 문헌과 비교해 보면, 사상적으로 매우 비옥한 토양에서 양분을 취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문헌이 집필된 곳은 외부의 영향을 다양하게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서간의 수신인은 설립된 지 한참 된 공동체들이지만(5,12; 13,7), 그렇다고 그 설립 시기가 팔레스티나에서 시작된 최초의 교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2,3 참조). 이들은 처음에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였지만(6,10; 10,32-34), 그 뒤로는 일종의 권태에 빠진다(5,11; 10,25; 12,3). 그런데 이제 새로운 어려움이 일어나리라고 예상됨에 따라, 신자들이 기가 꺾이고 낙담할 위험에 처한다(10,35-36; 12,4.7). 게다가 그리스도교를 다소간 유다교화하려는 경향을 지닌, 교리상의 탈선의 위험마저 있었음에 틀림없다(13,9). 아무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이 이 공동체들에 깊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6. 집필 동기와 연대

  히브리서의 끝 부분은 구체적인 배경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수수께끼처럼 들리는 이 단편적인 말만 가지고서는 자세한 시기와 장소를 추정할 수가 없다. 디모테오가 감옥에서 석방되었다고 하는데(13,23) 언제 어디에서 풀려났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의 석방 이유도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탈리아에서 온 이들”이라는 말도(13,24)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 짤막한 편지(13,22-25)가 쓰일 당시에 그들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서간의 수신인들이 이탈리아 출신의 몇몇 신자들을 안다고 해서, 그들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것도 아니다.

  집필 연대도 매우 다양하게 추정된다. 예스러운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는 학자들은 그 시기를 매우 일찍, 곧 바오로 사도의 대서간 이전으로 잡는다. 다른 학자들은 1세기 말엽, 때로는 그 뒤로 추정한다. 그러나 로마의 클레멘스가 95년경에 히브리서를 이용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너무 늦게 잡을 수는 없다. 그래서 특히 히브리서에 나오는 성전 예식에 관한 서술이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되던 전례를 반영한다고 해석하는 학자들은, 성전이 파괴되기 이전 몇 년을 집필 연대로 지목한다. 반대로, 그 서술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만남의 천막 예식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학자들은, 이 서간이 80-90년 사이에 집필되었다고 주장한다.

 

 

7. 구 성

  히브리서가 집필된 배경을 우리가 잘 모르긴 하여도, 그것이 이 서간을 이해하는 데에 큰 지장이 되지는 않는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이 문헌의 문학 유형은 특이하다. 그 덕분에 이 문헌은 집필을 둘러싼 특수 상황에 크게 종속되지 않는다. 이러한 본문 외적인 여건을 아는 것보다 본문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구조를 구분해 내는 것이 사실은 훨씬 더 중요하다.

  옛날에는 히브리서를 바오로의 다른 서간들처럼 두 단락으로, 곧 교리 부분(1,1─10,18)과 도덕 부분(10,19─13,25)으로 나누곤 하였다. 그러나 이는 필자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애쓰는 필자는 처음부터 교리에 관한 설명과 삶에 관한 권고를 번갈아 제시한다(2,1-4; 3,7─4,16; 5,11─6,12 참조).

  근래에는 더러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기도 한다. ㄱ. 하느님의 말씀(1,1─4,13); ㄴ. 그리스도의 사제직(4,14─10,18); ㄷ. 그리스도인의 삶(10,19─13,25). 이러한 구분이 특정 사항들을 돋보이게는 하지만, 이 서간의 전체적인 모습에는 잘 부합되지 못하는 면이 있다.

  히브리서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확고한 구성 기술이 드러난다. 이 기술은 구체적으로 앞뒤 단락을 같은 낱말로 연결하기, 앞뒤로 같은 낱말이나 구를 되풀이하기, 하나하나 여러 단락을 대칭으로 구성하기 등, 성서의 문학 전통과 연계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을 따라가 보면, 서두와 결론 사이에 필자가 직접 예고하는 대로(1,4 각주; 2,17 둘째 각주; 5,10 각주; 10, 36.39 각주; 12,13 각주 참조) 다섯 단락이 연이어짐을 알 수 있게 된다.

  (1) 첫 단락(1,5─2,18)에서 필자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정의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인다. 곧 하느님과의 관계에서(1,5-14), 또 인간과의 관계에서(2,5-18) 그리스도의 위치를 확정짓는 것이다. 이러한 자리 매김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하여 천사들의 위치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밝히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2,17).

  (2) 둘째 단락(3,1─5,10)에서는 모든 사제직의 두 가지 근본적인 특성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는지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곧 하느님께 신임을 받은 사제이시며(3,1-6) 모든 사람들과 굳게 결속된 사제이시다(4,15─5,10). 이러한 그리스도의 위치는 모세와 동시에(3,2) 아론의 위치에 비길 수 있다(5,4). 이 두 가지 비교 사이에, 필자는 충실한 신앙에 관하여 길게 권면한다(3,7─4,14).

  (3) 셋째 단락(5,11─10,39)에서 필자는 자기의 기본 교리를 완전히 펼쳐 보인다. 그리스도의 사제직이 지니는 여러 특성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부류의 대사제이시다(7,1-28).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것은 예전의 제의(祭儀)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이러한 희생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참 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여셨다(8,1─9,28). 그리고 우리에게 실제로 죄의 용서를 얻어다 주셨다(10,1-18). 그리스도의 이 희생으로 옛 사제직과 옛 율법과 옛 계약이 종말을 고한다. 이 셋째 부분이 다른 단락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서론(5,11─6,20)과 결론(10,19-39)이 갖추어져 있다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4)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열린 길로 신자들을 이끌어 가려고 필자는 넷째 단락(11,1─12,13)에서 영성 생활의 두 가지 근본적인 면을 강조한다. 선조들의 모범에 따른 믿음과(11,1-40) 그에 따른 인내이다(12,1-13).

  (5) 다섯째 단락(12,14─13,18)에서는 끝으로, 거룩함과 평화의 길로 정진하라고 신자들에게 권고하면서 그리스도적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 준다.

 

 

8. 그리스도의 사제직

  교리와 관련하여 히브리서가 한 기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신비를 사제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것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신약성서 전체에서 유일하게 히브리서에서만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사제와 대사제라는 칭호가 쓰인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바로 이 사실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고 경신례라는 구약성서 전통의 주요 흐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제사와 전례, 사제직,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모시는 성소 등이다.

  언뜻 보기에, 예수님과 그분의 업적은 경신례라는 종교의 외형적 표현 방식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사제 계층에 속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제의 무슨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나서신 적도 전혀 없다. 골고타 동산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장면에서도 겉으로는 아무런 경신례의 특성을 볼 수가 없다. 구약성서의 제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과 그분의 백성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의식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죽음은 법적인 형벌의 결과이다. 십자가는 그 벌에 해당되는 사람을 하느님의 백성에게서 치욕스럽게 잘라 내는 사법 행위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지니는 희생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하려면 이중의 ‘도약’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경신례 거행과 결부된 전통적 개념의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겉으로 벌어지는 모습 너머의 그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 예언서와 예수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받고(이사 53,10; 1고린 11,25) 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과월절과 일치하는 것과 같은 몇몇 정황에서 착상을 얻은 초대 교회에서, 바로 그러한 쪽으로 이해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로마 3,25; 1고린 5,7; 에페 5,2; 1베드 1,19 참조). 그리고 히브리서에서 가장 명료하게 밝혀진다. 이러한 결론은 예수님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비롯한 구약성서의 여러 경신례와 면밀히 비교한 끝에야 비로소 얻어진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러한 이른바 ‘옛 것들’을 읽어 가려면 현대의 독자들은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신자들을 새로운 것으로 이끌어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새 것’으로 올라가려면 ‘옛 것’을 통과해야만 한다.

  필자는 수난 끝에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에게서 사제직이 완벽히 실현되었음을 깨닫는다. 영광스러운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동시에 사람들의 맏이로서, 그들에게 하느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을 열어 주신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대사제이심이 분명해진다. 그분께서는 아론의 사제직을 이어받으시기는 하지만(5,4-5), 그분의 사제직은 아론의 것을 뛰어넘는다. 시편 110의 증언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뒤를 잇는’ 새로운 부류의 사제를 세우기를 원하셨다(7,1-28).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은 진정한 희생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 희생이야말로 구약의 모든 제사를 대체하는 유일한 참 제사이다. 사실 구약의 제사는 현세적이고 지상적인 차원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관습적인 행위로 이루어진 그것은 인간의 양심을 근본적으로 정화할 수도 없었고(9,9; 10,1-4), 사람을 하느님께까지 들어올려 줄 수도 없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죽음은 관습적으로 이루어진 행위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바치는 완벽한 희생이다(9,14).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은 인간 전체를 받아들여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만든다(5,8; 10,9-10). 그와 동시에 인간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고 하느님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천상 사제가 되시고(9,24) 죄를 없애는 정화를 실현하셨으며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세우셨다(9,15; 13,20). 그분의 피는 우리가 하느님께 자유로이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10,19).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로,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하느님 자신이 당신의 아드님을 통하여 인류에게 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셨기 때문이다(2,10).

 

 

9.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의 위치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과 사제적(司祭的) 관계를 맺는 것으로 정의된다. 구약에서 거행된 속죄일의 전례는(레위 16)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시도로, 결국은 미래의 것을 가리키는 예표일 수밖에 없었다(9,9; 10,1). 이 예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완전한 현실이 된다. ‘우리에게는 대사제가 계신다’(8,1. 그리고 4,14-15; 10,21). 이 완전한 대사제께서 최종적이며 결정적으로 참 성소에 들어가시어(9,12), 이제는 하느님 면전에서 우리의 대리인으로 일해 주신다(7,25; 9,24). 대사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부르심을 받는다(4,16; 7,19; 10,22). 죄는 없어지고(9,26; 10,12) 원수는 멸망하였으며(2,14), 궁극적 해방이 주어졌다(2,15; 9,12).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올 세상의 행복에 한몫을 차지하게 되었다(6,4-5). 그들은 이제 궁극적인 나라를 이어받는 것이다(12,28).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미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1,2; 9,26).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말은 아니다. 하늘로부터 받은 그들의 소명이(3,1)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계속 지상 세계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이 곳은 그들이 영구히 살 곳이 아니다. 그들은 미래에 영원히 살 곳을 향하여 나아간다(13,14). 그러면서 자기들의 구원자께서 두 번째로 나타나시기를 고대한다(9,28). 그들은 그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안다(10,25.37). 그러나 아직은 그 날의 광명을 완전히 누리지는 못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맺은 것은 실제적이며 긴밀한 관계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믿음 안에서만 주어진다. 그들은 벌써 지금부터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데(4,3), 그것은 신앙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불신이 마음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3,14와 3,12; 10,38) 마침내 멸망하게 된다(10,39). 필자는 믿음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두 가지 매우 다른 관점을 통합시킨다. 하나는 지성적인 것으로 믿음의 내용을 밝힌다(11,1ㄴ.3.6). 다른 하나는 실존적인 것으로, 믿음의 역동성을 보여 주면서 믿음을 희망과 접근시킨다(11,1ㄱ.8-10 등). 이렇게 그리스적인 사고 방식과 유다적인 사고 방식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서의 다른 설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옛 경신례는 두 가지 관점으로 정의된다. 구약의 종교 의식은 곧 변하지 않는 천상 실재를 반영하기도 하고(8,5; 9,24), 아울러 ‘앞으로 일어날’ 사건 곧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하기도 한다(9,7-12). 이렇게 히브리서의 예표론(豫表論)은 풍부한 의미를 지닌다. 필자는 한편으로, 역사를 뛰어넘는 것들 곧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들을 고대하는 일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단 한 번”(7, 27; 9,12.26.28; 10,10) 일어난 역사적 사실의 결정적 효력을 강조해 마지않는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서로 융화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이러한 두 전망의 역설적 결합은 필자의 통찰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깊은 신앙을 명백히 보여 준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과 율법 준수에만 얽매인 유다인들을 상대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것이 행동과 대립된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히브리서의 필자는 그와 같은 대립을 포기하고 자기의 서간에서 그러한 것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믿음이야말로 풍부한 행동을 내포하고, 또 구약성서에서 유효하게 실현된 모든 것은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필자는 이 밖에도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항구함을 배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6,12; 10,36; 12,1-13).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시어, 당신 영광의 길과 함께(2,9) 우리 구원의 길도 열어 주셨다(5,8-9). 그렇다고 우리가 고통과 죽음에 직면하는 일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덕분에 희망에 찬 마음으로 그것들을 대면할 수가 있는 것이다(12,2-3).

  필자는 단 한 번 거행된 제사 곧 그리스도의 희생이 지니는 완전한 효력을 부각시킨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주저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로 제시한다(13,16: 여기에서 “제물”은 복수로 쓰인다. 곧 우리로서는 제물을 단 한 번 바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찬양제물”을 하느님께 올리도록 이끌어 간다(13,15).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형제들을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 역시 제물의 가치를 지닌다고 단언한다(13,16).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제물을 본보기로 삼아, 그리고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경신례를 자기의 삶과 별개의 것으로 자리잡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신례와 삶이 하나 되는 자기의 실체적 실존으로 자신을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지상 생활에 빠져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13,12-14 참조).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해체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 반대로 필자는 그리스도인들의 단결의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곧 서로간의 배려(3,12; 4,1.11; 10,24; 12,15), 신자들의 모임에 대한 열성(10,25),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으로(13,17) 실현되는 단결이다. 필자는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자기가 설교와 그리스도교 전례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2,1.3; 4,2; 5,11; 13,7과 6,4; 10,19-22.29; 13,10). 사실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않고서 또 형제들과 하나 되지 않고서 하느님께 다다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고 상당히 균형 잡힌 생각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0. 구약과 신약의 변증법적 관계

  히브리서가 들려 주는 가르침의 마지막 부분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구약성서의 내용이 어떻게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는지를 히브리서가 아마도 신약성서의 다른 어떠한 문헌보다도 잘 보여 줄 것이다. 서간은 이 그리스도의 성취를 규명하는 모든 관계 사항을 밝혀 내는데, 그것은 복합적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인 집합체이다. 긍정과 부정을 합쳐 뜻밖의 ‘도약’을 이루어 내기 때문이다. 가장 의미심장한 본보기는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은 어떤 의미에서 옛 경신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 죽음은 구약성서의 제의(祭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여러 면에서 그것과 대립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깊은 연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구약에서나 그리스도에게서나 다 제물이 바쳐진다. 또한 그것은 피를 흘리는 제물로서 죄의 용서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우가 구약의 제사보다 월등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쪽에서는 정해진 의식에 따라 짐승들을 잡아 바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순명과 사람들과의 전적인 연대성 속에, 치욕적인 십자가형을 받으면서까지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 이렇게 하여 구약의 경신례에서 추구되던 목표가 이제 일회적이면서 결정적으로 달성된다. 동시에 그 이전의 모든 경신례는 기한이 지나 무효가 된다.

  이 예가 유일한 경우는 결코 아니다. 필자는 서간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약속과 실현, 옛 예표와 성취를 대조시키면서, 하느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것을 특징짓는 다양한 인과 관계들을 계속 부각시킨다. 필자는 구약과 신약을 통일시키는 하느님의 이러한 계획의 연속성에 대하여 예리한 감각을 지닌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계시의 새로움과 최종적 성격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11. 결 론

  이러한 히브리서의 본문에 접근하려면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노력은 곧바로 큰 보상을 받는다. 우리는 신약성서의 이 문헌에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읽게 되고, 그리스도의 중개에 관한 깊은 교리와 함께 그리스도인들의 실존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관한 진정한 이해를 보게 된다. 그리하여 이렇게 내용이 풍부한 서간을 계속 손에 들게 된다. 이러한 히브리서의 공헌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값질 것이다. 히브리서는 사실 방향을 잃고 절망에 빠질 위험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서간이다. 이 서간은 그러한 부류의 불행을 치료할 수 있는 대책을 알려 준다. 그리고 그것을 막연한 훈계조의 권고로 주입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책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는 진지한 노력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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