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두줄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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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1-11-10 ㅣ No.2410

어떤 분이 주신 글인데 가슴이 찡해져서 여기 올려 드립니다.

 

어릴적부터 아버지는 술에 취했다하면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셨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아버지는 관절염이 심해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늘 술에 빠져 지내셨다.

그날도 아버지는 잔뜩 취해 어머니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고 계셨다.

그런 모습에 화가 폭발한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제발 그만 좀 해요. 한 두 번도 아니고, 부끄럽지도 않아요?

’엄마 불쌍한 사람이다. 너희들 엄마한테 잘 해야한다.’ 맨날 그런 말하면서 왜 엄말 그렇게 못살게 굴어요. 아버진 그런 말 할 자격도 없어!"

.....그 일이 있고 나는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아버지는 그 후 며칠동안 술을 전혀 입에대지 않으셨는데

그렇게 닷새 째 되던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다시 술을 들고 계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찾으니 어서 가보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실망이 컸던 나는 내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안절부절못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안방으로 건너갔더니

아버지는 이미 잠들어 계셨다.

잠든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쇠약해 보였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늘어진 눈꺼풀, 푹 패인 볼, 내려앉은 어깨, 핏줄이 심하게 불거진 가느다란 손.....

돌아서 나가려는데 아버지 머리맡에 있는 하얀 종이쪽지가 눈에 띄었다.

얼마나 매만졌는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 종이를 펼쳐든 순간 눈앞에 흐려졌다.

"막내에게,

미안혔다."

라는 단 두줄의 편지....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아버지는 삐뚤어진 글씨로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적어 보인 거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다 부서져버린 초코파이가 있었다.

눈도 안 맞추고 말도 하지 않았던 며칠동안.

마루에 앉아 주머니 속에서 자꾸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물 속으로 번져갔다.

 

추운 겨울이 성큼 다가오네요...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찹쌀 도너츠를 사들고 집에 갈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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