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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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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 [bosco99] 쪽지 캡슐

2000-05-28 ㅣ No.775

죽음의 행진 (26일)

 

 

 

새벽 5시 30분 경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돌연 초비상 사태를 맞이했다. 탱크가 진입해 온다. 순간 수라장으로 변했다. 총을 가진 시민군, 학생 전원이 소리를 지르면 달렸으며, 혼란은 극에 달했다. 어떻게 할 것이냐, 모두 자폭하자. 상황실에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하여 차가 출동하였으며, 여기저기 다이얼을 돌리면서 농성동 부근의 동태를 살폈다. 의자에서 자고 있던 부지사가 벌떡 일어나 확인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또 속은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철야로 화약고를 지키고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하던지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설득을 계속해 왔는데....

 

 

 

 

 

아침 햇살이 솟아오면서 두 신부가 데려온 청년들과 YMCA에서 모여온 대학생 약 100명이 총을 교대받고 무기를 수거하여 수습할 수 있는 큰 희망이 익어가고 있었는데 순간, 자칫 잘못하면 광주시민은 파멸한다. 자지 못하고 끊임없이 공포와 피로에 심신이 소모된 젊은 사람들이 TNT에 불을 붙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막아야 한다. 흥분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이 위기를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나의 머리를 스쳐갔다. 용기를 내자. 주님, 도와주소서! 힘을 주시옵소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조용해졌다. 나의 말을 들어 주시오. 전원 흥분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일단 성공이다. 주여 감사합니다. 또 한번만 더 용기를 주십시요.....

 

 

 

우리 어른들이 총받이로 나섭시다. 철야한 수습대책위원은 17명이었다. 탱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갑시다. 지금 이 상태로는 우리들은 불을 뿜을지 모르는 탱크 앞에 나가도 죽을 것이며, 여기 있어도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원 나갑시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여기 남아서 여기를 지켜 주십시오. 전원이 찬동하여 일어났다.

 

 

 

제의합니다. 그들과 대화가 이루어 질 수 있다면 우선 항의합니다다. 왜 약속을 배반했는가 하고, 해명하고, 사과하라 합시다. 그것을 이 자리에서 결의합시다.

 

 

 

1, 1시간 이내에 군은 본래의 위치에 철퇴하라.

 

2. 그렇지 않으면 전 시민의 무장화를 호소하고,

 

3. 게릴라전으로 싸웁시다.

 

4. 최후의 순간이 오면 TNT를 폭발시켜 전원 자폭합시다.

 

 

 

전원 찬동하고 굳게 결의했다. 밖에 나가 공중 전화를 잡았다. 방송반이 이미 시민을 향하여 외치고 있었다. 계엄군이 공격해 옵니다. 탱크가 진공해 옵니다. 모두 10까지는 도청 앞에 모여 주십시오.

 

 

 

까리따스 수녀원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나는데 받는 사람이 없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 지난 것 같다. 미사시간인가 보다.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박 신부가 대답한다. 빠른 말로 상황을 알리고 대주교님께 보고해 달라고 부탁하고 죽음의 행진을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외국인 기자들이 차까지 동원하여 처음부터 취재를 계속하며 따라온다.

 

 

 

4Km정도 행진했을 것이다. 농촌진흥원 앞 밑을 차단하고 서 있는 전차가 마치 괴물과 같은 포문을 길게 뻗치고 있다. 한 사람 두 사람 따라오기 시작한 시민이 어언간 수백명에 달했다. 드디어 2중으로 쳐진 바리케이트까지 갔다. 소령 한 명이 굳은 표정으로 맞이하면서 부사령관이 다녀갔는데 곧 올 것이니 기다리라고 한다. 아침 9시 경이다. 시민은 점점 증가했다. 양측 인도에는 착검한 계엄군이 실탄을 장진하고 시민을 경계하고 있으며, 양측 빌딩 2층 옥상에도 군인들이 기관총을 내걸고 시민을 향하여 발포태세를 취한다. 어처구니 없는 광경이다. 외국인 기자 앞에서 부끄럽다. 이것이 대한민국 군대인가, 괴뢰군인가. 외국인 기자가 우리들의 치부를 필름에 수록하기 위하여 탱크 사이를 내왕해도 말 한마디 못하는 자들이 국민에 대해서 으시대며 총을 대는 모습이 원망스럽다. 이야말로 깡패의 무리 깡패의 졸개들이 아닌가. 강자 앞에는 비굴하고 아첨을 떨고 약자를 짓누르고 뭉개버리는 졸장부의 로보트가 아닌가.

 

 

 

검은 세단차에 탄 장군이 나타났다. 두 개의 별이 빛난다. 부관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장군은 창피했던지 계엄사령부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행진 중 대변인으로 선택된 나는 단호히 말했다. 군이 어제밤의 위치에서 후퇴하지 않는 한 갈 수가 없다. 장군은 후퇴하겠다고 말하고 전차병에게 명령하자 탱크차는 소음을 내면서 사라졌다. 시민은 일제히 박수의 총탄 세례를 보냈다.

 

 

 

 

 

우리들은 군인이다. (26일 오전 10시-오후 2시 30분)

 

 

 

부사령관 김 소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학생대표를 포함 11인이 상무대로 갔다. 서로 인사를 교환하고 자리에 앉으니 오전 10시가 되었다. 대변인으로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김 소장은 이야기를 막고 30분간만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판문점 회담을 연상케 한다. 준장이 두 명, 소장이 두 명, 그리고 중령인 헌병대장의 순서로 앉고 그 옆에 내가 앉게 되었다. 나는 항의했다. 대화라는 것은 대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일방적으로 윽박지르고 대화를 중단시키고 시간을 제한하면 어떻게 대화가 되는가고, 약속을 위반하고 탱크를 이동케한데 대한 항의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결의를 말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신부가 여기에 왔는지 진심으로 이 이상 귀중한 피를 흘리지 않고 수습될 것을 요청했다. 이 일은 전 광주 시민 뿐 아니라 국가적인 일이니 이렇게 신부도 수습위에 참가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말은 통하지 않았다. 교묘히 나의 말을 왜곡하고 유도하면서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군인이다. 정치문제는 모른다. 그러므로 대화를 하자면 1. 무기회수, 2, 군에 반납, 3, 그렇게 하면 경찰로 하여금 치안을 회복케 하고 싶다는 일방적인 각본을 강요하는 것이다. 분명히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개념이 달랐다.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습회의는 무려 4시간 반이나 계속되었다. 군인들과 이 이상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다. 그들은 명령대로 행동하는 자들이다. 무력으로 작전을 수해할 뿐이다. 밤 12시까지 수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최후 통첩이다. 기가 막힌다. 그러나 무조건 수습을 위하여 5개 항목의 요구를 제시했다.

 

 

 

1. 시간이 필요하다. 노력해서 수습할 것을 굳이 약속을 깨었으니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며칠을 참고 후퇴까지한 군의 사기에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군은 항상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타당한 말이다. 국군은 언제나 이겨야 한다. 그러나 적군에 이겨야하는 것이니 나라의 주인인 국민, 80만 광주 시민에게 이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없어서 다시 묻지 못했다.

 

 

 

2. 약속을 위반하여 전차를 행동하게 한데 대한 이유를 분명히 하고 사과하라. 이미 방송을 통하여 시민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3. 군은 절대로 광주 시내에 진입해서는 안된다. 오늘 아침에도 느낀 일이지만 총구를 국민에게 돌리는 군대를 어떻게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더구나 돌연 무자비한 살상행위를 한 군을 광주 시민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신부이며, 살상행위를 목격하지 않았으나 김 장군을 처음 만났을 때 혐오감을 느꼈다. 하물며 직접 살상을 목격한 시민, 가족을 잃은 시민, 분노와 원한에 찬 시민이 어떻게 군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군인 중에도 많이 죽어간 전우의 이러한 모습을 본 젊은 군인들이 분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애국 애족에 관하여 교육이 잘되어 있어서 참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민주학생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시위하고 있는 것을 총검으로 무차별 살상하고 울분을 참지 못한 전 시민을 의거케 해놓고 지금 와서 오리발을 내밀다니...

 

 

 

4. 경찰에게 치안을 담당시켜라. 무기가 회수되어 군에 반납되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조건을 낸다.

 

 

 

5. 보도로 화해와 호소하는 방법을 지양하고 시민을 자극하지 말라. 메모로 하여 전령에게 주면서 건의하며 노력한다고 약속한다.

 

 

 

지금와서 거의 불가능하게된 수습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시민들에게 돌아가서 호소해 보아야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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