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친정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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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애 [ellibudy] 쪽지 캡슐

2000-11-09 ㅣ No.1342

 

 

 

위로 오빠 둘

딸을 얻은 기쁨으로

당신의 무릎

닳도록 안으시고

 

투정 많고

토라지기 잘하는 딸

등에 없어 달래시고

 

텁텁한 막걸리

주막에 드실 때

문앞에 세워두고 눈깔사탕 들리시고

 

얼근한 속가슴

쓰라린 세상 탓하지 않으신 채

나를 업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아버지, 아버지,

철없는 딸 가여워

나직이 노래를 부르시고.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모래고개 넘으시며

이곳은 밤만 되면 여우가 나와

지나는 사람에게 모래를 던져

모래고개가 되었다며

숲속 좁은 길 바삐 걸으셨지요.

 

그 이야기가

너무 무서워

저는 아버지께

또 업어달라

울음섞여 졸랐지요.

 

(지금은 어느 시인의 아내가

싸늘한 주검으로 묻힌 그 고개)

 

 

 

 

 

 

 

자식들 제대로 먹이지 못한다고

아버지는 늘상 가슴앓이를 하셨지요.

봄이 되면 칡뿌리를 캐시고

진달래며 찔레순, 아카시아꽃 꺾어오시고

여름이면 풋밀 훑어 아궁이에 그을리어

손으로 쓱쓱 비벼 후후 티를 불고

가을엔 머루 다래

메뚜기 꿴 꾸러미

겨울엔 개구리 뒷다리, 군밤, 군고구마

화롯불 뒤적이며 구워 먹이시며

자식들 입에 먹을 게 들어가면

마른논에 물드는 것처럼 기쁘다던 아버지

당신 먹을 것 하나도 남김없이

흐뭇한 웃음 속에 눈물은 번지셨지요.

 

 

 

 

 

 

 

시골집 굴뚝 양지바른 곳에

어린딸이 소꿉살이 펼쳐놓으면

아버지는 부지런히 살림살이를 모으십니다.

 

사발깨진 밑둥

병뚜껑

엄마 구리무(크림) 빈통

바가지 깨진 것

동그랗게 오려놓고

 

오빠들 학교간 새 심심한 딸에게

아버지는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풀뜯어 김치담고

흙담아 밥을 지어

아버지께 놓아드리면

 

밤 쭉정이로 만든 수저로

흙밥을 푸시면서

맛있게 맛있게 잡수시는 아버지.

 

 

 

 

 

 

 

---이제 너도 일곱 살 공부를 해야지

반들반들한 차돌 주워 하나 둘 셋 가르치고

동화책을 살 수 없는 당신의 빈주머니

달력 뒤 흰종이에

선녀와 나뭇꾼을 적어주셨네.

 

하얀 종이새를

곱게 접어주시고

시를 가르치고

노래를 가르치고

 

귀밑머리 곱게 땋아

무릎맞대 앉혀놓고

하늘천 따지....

천자문을 가르치고

 

당신이 못 펼치신 세상의 큰뜻을

철모르는 딸에게 슬프게 가르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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