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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와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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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환 [cyrus] 쪽지 캡슐

2000-09-15 ㅣ No.2871

 황금같던 추석연휴가 다 지나갔습니다. 지옥같은 교통체증과 계속된 태풍으로 얼룩져 많은 이들을 조금은 힘들게 했던 ’민족 최대의 명절’

 늘 반복되는 체증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는 것은 아마도 그 힘겨움보다 몇배 큰 인간과 역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자라온 삶의 자리들을 확인하고 또 이런 내 모습이 있기까지의 배경이 되어 준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자신이 산업사회의 일개 부품이 아니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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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와 명절...

 그닥 어울리는 말은 아닙니다. 남들이 연휴라고 좋아하는 때이면 늘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 연휴에는 언제나 주일이 끼기 마련이어서 연휴가 주는 편안함이나 명절이 주는 참 의미를 되새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일들이 쉬는때에도 미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변화때문이 아니라면 신부의 일상은 별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그 변화는 명절이기 때문에 생기는 변화입니다.  명절이라고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또 저 역시도 많은 분들을 찾아가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하는 그런 일들이  변하지 않는 사제의 일상에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내가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도 역시 부모님을 찾아뵙고 몇 안되는 식구들을 만나 식사라도 하려고 했지만 차가 많아서 당일날 점심으로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명절때나 되어야 만날 수 있는 가족들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이러저러 시간을 내서 아버님만을 따로 찾아가 뵙긴 했습니다만 영 개운하지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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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이나 축제에 담긴 의미들을 어쨌거나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교통체증이건 다른 일들이건 먹고살기에 힘겨워하던 일상을 잠시 떠나 자신과 가족, 하느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내려고 노력하는 것. 결국 이것이 지친 일상을 회복시켜 주고 늘 똑같아 보이던 가족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며, 삶 언저리 곳곳에 숨겨져 있던 하느님의 손길을 찾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미사와 찾아오는 사람들과 기타등등을 핑계로 하느님께서 주신 감사의 시간을 소홀히 보내지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앞으로는 신부일뿐만 소중한 가족과 여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저 역시 제 일상을 멀리서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이 자리를 통해 독신남 처소에 명절이라고 여러 선물과 음식들을 챙겨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보좌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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