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냉이를 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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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준 [bopark] 쪽지 캡슐

2004-03-29 ㅣ No.4330

어제는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교중 미사 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남양주시 별내면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성요셉수도원에 갔었지요.

작은 녀석(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늦둥이임)은 컴퓨터게임을 해야된다는 것을 강제로 차에 태웠고, 큰 녀석은 아빠의 눈치가 범상치 않음을 깨닫고 스스로 차에 올랐고, 아내는 바깥으로 나간다니까 아무런 생각없이 차에 오르고, 그외에 다른 한 분을 모시고 수도원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배밭에 앉아서 냉이를 캐고 있었지요.

오기 싫어하던 작은 녀석은 드넓은 배밭을 요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아빠 이게 뭐야?" "저것은 뭐야?"라면서 저를 무척 귀찮게 했지만, 자연과 함께 하면서 마음이 너그러워졌는지 아무런 짜증도 내지 않고, 아는대로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면서 아빠가 어렸을 때에는 들판으로 산으로 놀러다니기 바빴는데, 그리고 산이나 들에서 나는 식물들을 자연스럽게 익혔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들도 자연스럽게 익혔는데, 지금 아이들은 학원이네,학교네 하면서 오로지 틀에 짜여진 공부만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다가오더군요.

큰 놈은 냉이는 캐지도 않고 주위를 빙빙돌기만 하면서 아빠의 눈치만 보면서 가끔 냉이를 캐는 아빠 옆에 와서 "빨리 집에가자"고 조르다가 "아빠 식물들은 왜 겨울에는 보이지 않다가 날씨가 따뜻하면 이렇게 올라오는 거야?"라고 묻기에, 저는 근엄한 표정으로 "그것이 하느님의 섭리라는거야"

"추운 겨울에 땅속에 숨어 있다가 이렇게 치밀고 올라오는 풀들이 얼마나 아름답니, 너는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니?"라고 거창한 훈계를 했지만  큰녀석은 별로인 듯 애꿎은 땅만 발로 툭툭차고 있더군요.

어찌돼었든 일요일 오후 온 가족이 오랜만에 야외에 나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면서 파릇파릇 돋아 오른 풀잎들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고 많은 생각을 했던 하루였습니다.

비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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