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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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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yckstefano] 쪽지 캡슐

2008-07-02 ㅣ No.5551

[여적] 정의구현사제단
 경향신문(www.khan.co.kr)  입력: 2008년 07월 01일 17:47:26
 
 
검사 출신 김용철 변호사. 그는 법조인들에게 뇌물을 퍼날랐다. 돈으로 양심을 매수했다.
그 대가로 사치스럽게 살았다.  하지만 양심이 찔렸다.
 
청와대·검찰·국세청·금감원·언론·재경부·국회 등은 거대한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사슬을 공룡기업 삼성이 끌고 다녔다.  검찰이, 국정원이, 청와대가, 언론이 실시간 정보보고를 했다.
심지어 시민단체 회의록까지 삼성에 보내졌다. 공범인 그는 ‘자수’하기로 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말렸다. 황량한 뒷골목에 쓸쓸히 버려질 것이라고. 그래도 자수할 곳을 찾았다. 몇 군데 언론사와 시민단체에 뜻을 내비쳤다. 모두 삼성이라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절망했다. 어느 날 보니 벼랑끝이었다.
 
이때 친구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으로 이끌었다.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목놓아 울었다. 사제단은 그를 위해 기도했다. “자신의 죄와 이 사회의 구조적 악을 고백한 김용철 변호사에게 끝까지 불의에 맞설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십시오.” 그리고 사제단이 일어섰다.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하느님의 명이라며.

사제단은 정의의 마지막 불빛이었다. 눈물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독재의 살기가 자욱할 때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은 횃불이었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유신정권에 반대하여 구속되자 이를 계기로 결성되었다. 3·1 민주구국선언, 5·18 광주민주항쟁, 효순·미선양 사건 등 그들의 기도는 역사의 고비마다 스며들었다. 특히 87년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됐다’는 사제단의 성명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다시 사제단이 거리에 나섰다. 6월항쟁 이후 21년 만에 처음으로 도심 한 가운데서 무릎을 꿇었다. 시국이 그만큼 엄중함이다. 사제단은 성명으로 꾸짖었다.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청정한 수도자들과 모든 교우들과 함께
무장경찰들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드리고자 합니다.”
 
모여든 3만명의 군중은 “이제 귀가할 시간”이란 신부의 한 마디에 집으로 돌아갔다.
폭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이 있어 밤이 따뜻했다.
누구는 그랬다. 어머니 품에서 실컷 운 느낌이라고.

<김택근 논설위원>
 
 2008.7.2(수)일자 경향신문 30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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