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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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연 [aldus119] 쪽지 캡슐

2005-04-25 ㅣ No.431

 

4월 20일 이른 새벽, 로마 시간 4월 19일 저녁에 독일 출신의 요셉 라칭거(Joseph Ratzinger)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등장하셨습니다. 한자락 수줍은 듯한 느낌을 주는 환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들의 환호에 팔을 활짝 폈다가 손을 모아 올리신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주보 성인 베네딕토를 교황명으로 선택하신 것이 기쁩니다. 요즘에는 미사를 드리면서 교황을 위한 기도문에서 "교황 베네딕토"라고 말하면서 뭔가 짜릿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또 하나는, 제가 독일어권에서 유학을 하였기에,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교황님이 참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아, 언젠가 만나뵈오면(그럴 기회가 거의 없겠지만), 그분의 모국어로 몇 마디라도 나눌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새 교황님이 왜 선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요한 바오로 3세'가 아니라 '베네딕토'라는 이름을 교황명으로 택하였을까요? 그분 스스로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것이야 할 수 없지요. 추측컨대, 베네딕토 15세가 1차 세계대전 중에 세계 평화를 위해 분투하신 것을 본받아 세계 평화에 헌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한 베네딕토 성인(480-543)이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기존의 모든 질서가 사라져 혼란에 빠진 서구 사회에 수도원 생활을 도입하여 새로운 삶과 질서를 이룩한 것을 본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요. 사실 오늘날의 사회도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많은 이들이 방황하고 있고, 그래서 뭔가 새로운 가치관, 특히 젊은 이들이 확신하고 투신할 수 있는 가치와 삶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가톨릭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요셉 라칭거라는 이름은 익숙합니다. 그분의 30대 초반의 약관의 나이에 신학 교수가 되었고, 30대 후반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신학 자문위원으로 큰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저서를 읽으면 참으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분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세상이 반기든 그렇지 않든, 복음의 진리를 성실하게 지켜나가려고 무던히 애를 쓰시는 분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보수라는 비난을 받는 것 같습니다. 복음 진리에 철저히 헌신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비난과 마주해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운명이 그랬습니다. 스승의 운명이 그랬다면, 그분의 제자들의 운명도 그러하겠지요(요한 13,16).

예수님은 수난 전에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들어라. 사탄이 이제는 키로 밀을 까부르듯이 너희를 제멋대로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돌아 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루가 22,31-32).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던 그 당시 못지 않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그리스도 신앙을 방해하는 온갖 세력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세력들은 악마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손짓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속아넘어가기 쉽습니다.

모쪼록 우리 새 교황님께서 성령의 인도로 혜안과 명석한 판단력을 지니고 교회가 온갖 방해 세력을 물리치고 굳건하고 활기찬 신앙을 간직하도록 인도하실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이 확신과 열정 속에서 온 세상에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전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위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후임으로, 추기경단은 주님 포도원의 평범하고 미천한 일꾼인 저를 선출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불충분한 도구를 사용하여, 일하고 활동하는 법을 아신다고 하는 사실이 저의 걱정을 달래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기도에 의지합니다.
영원토록 우리의 항구한 도움이 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기쁨 안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과 지극히 사랑받는 어머니 마리아님이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새 교황님이 선출 직후 강복 전에 하신 말씀. /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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