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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4:11에서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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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6 ㅣ No.1688

질문 1: 다음은 "새 번역 성경"의 요나서 4,10-11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지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11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상, 발췌 끝)

 

위의 발췌문에서,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로 번역된 표현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질문 1: 다음은 "새 번역 성경"의 요나서 4,10-11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지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11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상, 발췌 끝)

 

위의 발췌문에서,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로 번역된 표현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1. 들어가면서

1-1. 우선적으로, 요나서 4:10-11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홀수해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요나 4,1-11)에 포함됩니다.

 

1-2. 그리고 "주성 성경"요나서 4,11에 주석에도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주석은 없습니다

 

1-3. 다른 한편으로, "공동번역성서"요나서 4,11 전문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old&code=39&JangNo=4&JangSum=4

(발췌 시작)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4월 21일]

그리고 다음의 표준국어대사전에의 "앞뒤" 단어의 설명에 또한 주어진 우리말 관용구/속담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발췌 시작)

[관용구] 앞뒤(를) 가리지 않다

신중히 이것저것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구 행동하다. 

(이상, 발췌 끝)

 

따라서, "앞뒤를 가리지 못한다" 함은 밚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논리적으로(logically), 사변적 추론 행위(speculative reasoning) 에 있어 오류(error)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아래의 제2-3항에서처럼, 결코 윤리적 문제(a moral problem)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1-4. 그런데,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의 국내의 개신교측의 여러 성경들의 요한 4,11 우리말 번역 표현들은 다음에 있는데, 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위의 "공동번역성서"에서의 우리말 번역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http://www.bskorea.or.kr/infobank/korSearch/korbibReadpage.aspx?version=GAE
&readInfo=%uC698%204%3A11&cVersion=HAN^SAE^&fontString=12px&fontSize
=1#focus
 <----- 클릭하여 또한 꼭 확인하십시오

 

(중간 결론 1) 따라서, "공동번역성서"요나 4,11 우리말 번역 표현에 번역 오류의 문제가 없다고 아니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1-5.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질문 2: 다음에 있는, 매일미사 홀수해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요나 4,1-11)복음 말씀(루카 11,1-4)에 대한 "오늘의 묵상"에서는, 아무런 추가적 설명의 제시 없이, "공동번역성서"의 요나서 4,11"새 번역 성경"의 요나서 4,11에 대한 의미로 제시되고 있는데,

 

출처: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6866&gomonth=2015-10-07

(발췌 시작)

물론 익살스러운 표현입니다만, 아주까리 때문에 투덜거리는 요나와,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살고 있는 니네베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측은히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이 매우 대조적이며 훌륭한 묵상 내용이지요.
(이상, 발췌 끝)

 

그러나, 어떻게 "새 번역 성경"요나서 4,11에서의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름" 과 "사람(persons)" 이, 각각(respectively)"공동번역성서"요나서 4,11에서의 "앞뒤를 가리지 못함" "어린이(children)"와 동일한 의미인지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이상 함께 고찰한 바로부터 우리는 위의 질문 1에 발췌된 "새 번역 성경"요나서 4,11 우리말 번역 표현과 위의 제1-3항에 발췌된 "공동번역성서"요나서 4,11 우리말 번역 표현이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공동번역성서"요나서 4,11 우리말 번역 표현이, 성경 본문의 지역 언어로의 번역 시에 표준으로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요나 4,11의 본문과는 대단히 다른, 정도가 지나친 해석이 성경 본문에 이미 포함된 어떤 번역본 혹은 어떤 번역 대본의 우리말 번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묵상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위의 제1-4항에 안내된 국내의 개신교용 성경들의 요나서 4,11에서도 "새 번역 성경"요나서 4,11과 대동소이하게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http://biblehub.com/jonah/4-11.htm <----- 클릭하여 또한 살펴보십시오.

 

[네용 추가 일자: 2016년 4월 21일]

그러나, 예를 들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소장중인 "Good New Bible"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있는 "Good News Translation"에서는 "innocent children(아무런 [윤리적] 죄 없는 어린이들)"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이 되었습니다. 또한 추가로 참고하십시오: 

 

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parallel-bible/passage/?q=jonah+4:11&t=gnt&t2=niv

(발췌 시작)

11 How much more, then, should I have pity on Nineveh, that great city. After all, it has more than 120,000 innocent children in it, as well as many animals!"

(이상, 발췌 끝)

[이상, 2016년 4월 21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질문 2에 대한 답변 끝)

 

2.

2-1. 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NAB(New American Bible)요나서 4,10-11 본문과 이에 대한 주석 전문인데, 여전히, 대응하는 "who cannot distinguish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자신들의 오른손을 자신들의 왼손으로부터 구분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주석은 없습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TZ.HTM 

(발췌 시작)
10 Then the LORD said, "You are concerned over the plant which cost you no labor and which you did not raise; it came up in one night and in one night it perished.

11 And should I not be concerned over Nineveh, the great city, in which there are more than a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rsons who cannot distinguish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not to mention the many cattle?"

 

-----

[10-11] Jonah is selfish in bemoaning his personal loss of a shady gourd plant without any concern over the threat of loss of life to the Ninevites through the destruction of their city. If God in his kindness provided the plant for his prophet without the latter's effort or merit, how much more is he disposed to show love and mercy toward all men, Jew and Gentile, when they repent of their sins and implore his pardon! God's providence is also shown here to extend even to animals. 

 

[10-11] 요나는, 니네베인들 쪽으로 목숨의 상실이라는 위협에 대한 어떠한 관심 없이 한 그루의 그늘을 드리우는 식물의, 자신의 개인적, 상실을 한탄함에 있어, 이기주의적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를 위한 이 식물을, 이 예언자의 노력 혹은 공로 없이, 당신의 친절함 안에서 제공하셨다면, 유다인과 이방인, 모든 사람(all men)들에게, 그들이 자신들의 죄들을 회개하고 그리고 당신의 용서를 간청할 때에, 얼마나 더 많이 당신께서 사랑(love)과 자비(mercy)를 보이는 쪽으로 기울어지실 것인지! 하느님의 섭리가 [사람들을 넘어서] 심지어 동물(animals)들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이 여기에서 또한 보여지고 있습니다.

-----

(이상, 발췌 및 주석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4월 21일]

게시자 주 2-1: (i) 바로 위에 발췌된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1970년에 초판된, NAB(New American Bible) 주석은, (ii) 이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또한 당연히 이미 읽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그러나 미사 중의 독서들을 발췌하는 것이 교황청 유관 부서에 의하여 허락되지 않은,(*) 따라서 개인 학습용인(*)NABRE(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요나서 4,11에 대한 주석과,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교회 안쪽으로 침투해 들어오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는 세속의 양성평등주의가 야기하는 문제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동일하다는 생각입니다.

 

-----

(*) 게시자 주:

(1)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 중에서 NABRE의 본문 및 주석을 발췌 인용하는 것을 그동안 되도록 삼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2) 그리고 이 지적에 대한 더 구체적인 확인을 원하는 분들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의 마지막 부분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75.htm

-----

 

그리고, 여전히, 개인 학습용인NABRE(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요나서 4,11에 대한 주석과도, 대응하는 "who cannot distinguish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자신들의 오른손을 자신들의 왼손으로부터 구분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주석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작성 시에 이 글의 본문 중에 굳이 발췌하지 않았던 것인데, 혹시라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오늘 날짜로 추가합니다:

 

출처: http://www.usccb.org/bible/jonah/4 

(발췌 시작)

10 Then the LORD said, “You are concerned* over the gourd plant which cost you no effort and which you did not grow; it came up in one night and in one night it perished.

11 And should I not be concerned over the great city of Nineveh, in which there are more than a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rsons who cannot know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not to mention all the animals?”

 

-----

[4:11] A selfish Jonah bemoans his personal loss of a gourd plant for shade without any concern over the threat of loss of life to the Ninevites through the destruction of their city. If a solicitous God provided the plant for a prophet without the latter’s effort or merit, how much more is God disposed to show love and mercy toward all people, Jew and Gentile, when they repent of their sins and implore divine pardon. God’s care goes beyond human beings to all creation, as in Job 38.

 

[4:11] 이기적인 요나는, 니네베인들 쪽으로 그들의 도성의 파괴를 통하여, 목숨의 상실이라는 위협에 대한 어떠한 관심 없이, 한 그루의 그늘을 드리우는 식물의, 자신의 개인적, 상실을 한탄합니다. 배려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를 위한 이 식물을, 이 예언자의 노력 혹은 공로 없이, 제공하셨다면, 유다인과 이방인, 모든 백성(all people)에게, 그들이 자신들의 죄들을 회개하고 그리고 당신의 용서를 간청할 때에, 얼마나 더 많이 당신께서 사랑(love)과 자비(mercy)를 보이는 쪽으로 기울어지실 것인지! 하느님의 돌보심이, 욥기 제38장에서처럼, 인간(human beings)들을 넘어서 심지어 모든 피조물(all creation)에게까지 나아갑니다.

-----

(이상, 발췌 및 주석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이상, 2016년 4월 21일자 내용 추가 끝]

 

2-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있는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edition에도 요나서 4,11에서 "that know not how to distinguish between their right hand and their left"에 대한 주석이 없습니다:

 

http://haydock1859.tripod.com/id532.html

 

2-3. (질문 1에 대한 답변) 

다음은 RSV(Revised Standard Version)요나서 4,11 전문과 "who do not know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27_wed.htm <----- 해설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11] And should not I pity Nineveh, that great city, in which there are more than a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rsons who do not know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also much cattle?" 

 

-----
The fact of the matter is that the Ninevites did evil because they knew no better (they did not know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cf. Eccles 10:2)

 

이 문제에 대한 사실은 니네베인들이, 그들이 더 선한/더 나은/더 좋은 것(better)을 알지 못하였기(#1) (그들은 자신들의 오른손을 자신들의 왼손으로부터 알지 못하였다: 코헬렛(진도서) 10,2(#2)를 참조하라) 때문에, [윤리적] 악([moral] evil, 즉, 죄)을 과거에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

(#1) 번역자 주:

(1) 이 주석은 또한, 사물들의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선한/더 나은/더 좋은 것으로서 많은 방식들에 있어 인정된다고 설명하는, 다음의 유다 백과사전(Jewish Encyclopedia)에 주어진 "right and left(오른쪽과 왼쪽)"에 대한 설명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12757-right-and-left

 

(2) 동일한 선상에 있는, 또다른 유다 백과사전(Encyclopedia Judaica)에 주어진 "right and left(오른쪽과 왼쪽)"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있다:

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judaica/ejud_0002_0017_0_16755.html

 

(3) 그리고 "이사야 41장10절 - 오른팔의 의미" 제복의 졸글은 다음에 있으니, 또한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80.htm
-----

(이상, 발췌 및 "who do not know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에 대한 해설의 우리말 번역 끝)

 

즉, 나바르 성경 주석서요한 4,11에서의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의 의미가, 윤리적(moral) 선(good)과 악(evil)의 판단에 있어, "더 선한/더 나은/더 좋은 것(better)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4월 21일]

그런데,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 주어진 바로 이 해설은 "공동번역성서" 본문에서의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 라는 번역 문장이 의미하는, 논리적으로, 사변적 추론 행위에 있어 오류(error)가 있음을 의미하는 바와는 문학적/수사학적 대비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윤리적 문제(a moral problem)를 지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2-3-1. 그리고

(#2) 다음은 "새 번역 성경"코헬렛(전도서) 10,2 전문과 각주입니다:

 

(발췌 시작)
지혜로운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어리석은 마음은 왼쪽에 있다.(##)

 

-----

(##) 오른쪽은 행복의 자리이고(창세 48,14; 마태 25,33) 왼쪽은 불행의 자리이다. 지혜는 행복을 가져오고 불행은 어리석음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

(이상, 발췌 끝)

(이상, 질문 1에 대한 답변 끝)
 

3. (추가 읽을꺼리 한 개)

다음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 349-307년) 2코린토 1,10-11에 대한 강론집, Homily 2 on Second Corinthians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바로 위의 제2-3항에서 전달해드린 질문 1에 대한 답변이 이 강론에서의 문맥 안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도 대단히 적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fathers/220202.htm

(발췌 시작)
How then saved He the Ninevites? Because in their case, there was not only a multitude, but a multitude and virtue too. For each one “turned from” his “evil way.” Jonah 3:10; 4:11 And besides, when He saved them, He said that they discerned not “between their right hand and their left hand:” whence it is plain that even before, they sinned more out of simpleness than of wickedness: it is plain too from their being converted, as they were, by hearing a few words.

 

그렇다면 어떻게 니네베인들을 하느님께서 구제하셨는지요(saved)? 왜냐하면 그들의 경우에, 다수(a multitude)일 뿐만이 아니라, 다수와 덕(virtue)이 또한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즉, 덕이 있는 이유는] 각자가 자신의 "악한 길"로부터 "돌아섰기" 때문입니다(요나 3,10). 그리고 게다가, 당신께서 그들을 구제하실 때에, 당신께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오늘손과 자신들의 왼손 사이에서" 식별하지 뭇하였다고 말씀하시는데(요나 4,11), 그리하여 그 결과 심지어 이전에, 그들이 사악함(wickedness)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단순함(simpleness) 때문에 죄를 지었던 것이 분명하며,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그렇게 하였듯이, [요나로부터] 몇 마디의 말들를 들음으로써, 그들이 회심하게 된 것/윤리적으로 변하게 된 것으로부터도 또한 분명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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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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