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3동성당 게시판

'불편함'에 대한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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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정 [selina] 쪽지 캡슐

2000-03-16 ㅣ No.689

어제 그리고 오늘 뜻밖의 휴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틀 연속 해지기 전에 그것도 고급 교통편(?)을 이용해 집에 들어오는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무릎에 붕대를 칭칭 감은채 말입니다.

 

어제 아침 수업에 늦은 관계로 이대 전철역의 드높은 에스컬레이터 위를

급하게 걸어 올라가다 발을 헛디뎠습니다.

평소에 넘어지면 "아픈게 문제냐..아우~ X팔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어제는 정말로 아픈게 문제였습니다.

청바지에 구멍이 나고, 피가 배어 나오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싶을

만큼 아팠지만 출석이 성적의 20%를 차지하는 대학원 수업의 특성이 저를

걷게 만들더군요.

 

수업이 끝난 후 제 무릎을 보고 기겁을 하신 선배님들과 선생님 덕분에 바로

학교 보건소에 가서 간단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뼈를 다친 것은 아니고 그저 힘줄이 놀란 것 같다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뼈를 다친게 아니라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지만 한쪽 무릎을 굽힐 수가 없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집에 갈 일이 걱정이었습니다.

다행히 학교 근처에 외근 나와 계시던 아빠와 연락이 되어 편하게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오늘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보다 좋아진게 없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하루 수업 제끼기로 했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평소 안입던 긴 치마까지 꺼내 입고 절뚝절뚝 잠실역으로 향했습니다.

아프다는 생각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부터였습니다.

한쪽 다리를 질질 끄는 이상한 걸음걸이 때문인지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더 아프게 다가오더군요.

 

게다가 4년동안 돌아다니면서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학교가 장애인들에게 매우 잔인한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오르막

내리막길, 엄청난 계단들...

평소 10분도 안되어 도착하던 강의실에 30분 가까이 걸려서야 도착 할 수 있었

습니다. 가는 도중 목발을 짚은 한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고, 동병상련의 희미한

미소를 주고받을 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계단 앞에서 주춤거리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아슬아슬 불편하게 걷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나의 시선은 어떻게 어디에 머물렀던가...

그리고 앞으로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볼 것인가...

 

결론은, 하루종일 생각해도 잘 내려지지 않습니다.

다만 한가지, 정상적이지 않은 광경을 보았을 때 바로 떠오르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워버리기로 했습니다.

 

어제의 그 바보같은 사고는 이틀간의 여유 외에 참 많은것을 안겨주었습니다.

 

1. 에스컬레이터에서 절대로 뛰지 맙시다. (모서리가 날카로워 2배로 다칩니다.)

2.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3. 신촌에서 잠실까지 올 때는 왠만하면 택시타지 맙시다. ^^;

 

내일은 새로운 실험을 배우러 연세대로 출근합니다.

제발 내일은 저벅저벅 씩씩하게 계단을 오르내리길 간절히 빌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여러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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