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어버이날에...

인쇄

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5-08 ㅣ No.302

며칠 전부터 카네이션이 꽃집 앞에 즐비하고 부모님을 위한 선물셋트라는 것들이 백화점 로비에 전시되는 것을 보고 올 것이 왔구나 했다. 오늘은 아니나 다를까 라디오 프로그램마다 마음먹고 어버이날 특집이라며 효자들의 글들을 읊어주며 누가 제일 잘썼나 투표하란다. 내용은 모두 지난 철부지 시절을 반성하고 부모님을 갑자기 엄청나게 사랑하게 되었다는 얘기들이다. 어버이날이 무슨 마술 부리는 날인가? 느닷없이 부모님을 사랑하고야 말게 되다니... 물론 그들의 진심을 감히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로서는 좀 의아하다는 것일뿐... 가만히 생각 해본다. 나도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기(표현이 좀 센데...마땅한 것이 없다) 좀 쳐볼까하는... 내가 알고 있는 미사어구를 총 동원해서 난 심청이가 되고 우리 부모님은 전설속에서나 존재할 훌륭한 부모님으로 만들어 드리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부모님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것은 내 부모님이고 나를 낳아주셨다는 것외에 내가 나이를 먹고 세상을 살면서 인간적으로 두 분을 이해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다시 말하면 모자란 내가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시기를 지나서 이렇게 살기가 힘든데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고생을 참아내야만 했던 부모님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이 생겨났다. 사춘기 무렵에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고 그때의 뒷수습에 온 가족이 고생을 해야했다. 그 때의 일이 다행히 지난 일이 되어가는 요즘 감사하면서도 덕분에 우리 형제들이 자립심이 강해졌으니 감사하게 생각한다거나 신의를 지키신 부모님이 자랑스러웠다거나 하는 식의 자기 기만은 하고 싶지가 않다. 오히려 자식들에게 그런 짐을 지워야 했던 부모님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껴야 했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 편이 더 쉽고 인간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솔직히 부모님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모든 자식들을 이해하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부모님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늘이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갑자기 효도를 해보겠다고 팔을 걷어 부치기 보다는 난 고상 떨며 음악 듣고 싶은데 드라마 보자고 나를 방해하는 엄마한테 쌀쌀맞게 굴지 않기로 다짐하고 귀찮을 정도로 말 시키시는 아빠한테 단답형으로 대답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은 조금은 과장된, 온갖 어휘를 총 동원한 편지 한 통을 받고 싶으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도 해보면서 사람들이 최고의 선물이라는 현찰로 때운 내가 못마땅해서 쓴 투정이 너무 길다. 반성!!!

2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