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4533회신]저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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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lgs1226] 쪽지 캡슐

2000-05-27 ㅣ No.4553

찬미 예수님

오늘 어린이 영세식이 있었고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그리고 부리나케 입에 저녁이라는 것을 처넣다시피 하고서는 신학교로 갔습니다.  나의 후배들이 나의 모교에서 축제를 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음악부장을 했던 터라 CANTABILE(신학교 성가대) 공연이 있어서 가야만 했습니다. 나도 고생이라는 모습으로 성가대를 했었고 지금 후배들고 기도와 학업을 하면서 축제를 준비하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서 맥주 2캔을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돌아왔지요.

내일 어린이미사 강론,  혼배미사의 강론,  그리고 주일 미사 강론을 쓰고 있는 중이지요.  지금 이 시간 주일 미사 강론을 써야 한답니다. 그 사이 게시판에 들어왔다가 프란체스카의 글이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생각이 나서 쓴다는 것이 이렇게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프란체스카(이하 프란)와 지도신부와 교사로서 두어 번 일 때문에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첫번째는 눈물많은 프란이 울어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놀랐고 한편으로는 '뭐 잘했다고 울어!'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눈물에 대해 저도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그런 입장입니다.  제가 얼마나 잘 우느냐 하면 혼자서 방에서 TV보다가 눌물을 자주 흘리는 편이지요.  프란이 왜 울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고 또 내가 무슨 일로 프란과 의견충돌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저와 관계가 있었던 일입니다.

프란은 일을 한 번 시작하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지요. 일을 한 번 맡겨 놓으면 뭔가 책임있게 이루고야 말지요. 그런데 젊은이들이 다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 특히 나이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고리타분하고 무사안일적인 느낌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경험이라는 것은 돈을 주고 사더라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일학교 여름행사는 도보성지순례를 합니다.  프란이 그 책임을 맡고 있지요.  저도 신나게 걷고 싶습니다.  지쳐 쓰러지다 못해 죽을 때까지 말입니다. 한 번 하면 그 정도는 해야지요.  그래서 지난 여름에 청년캠프를 설악산을 넘으려고 했지요.  이번에는 지리산을 넘으려는데 반발이 심하군요.  축구를 해도 그렇습니다. "! 너 왜 안 뛰어!"라고 제가 그랬더니 "힘든데 왜 뛰어요?"라고 하는 말에 한 방 갈겨주고 싶었습니다.  몸으로 때우는 일에는 굶어서라도 쓰러질 때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제 한몸은 그렇다치지만 이제는 함부로 할 수도 없는 그런 자리에 서버렸습니다. 그래서 초등부 도보 코스에 대해 반기를 들기 전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관철시키려는 느낌을 주는-흥분되고 그것만이 바른 것이고 의미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프란에게 반기를 들었지요.  먼저 저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보인 모습이 프란에게 너무 힘들게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역시 신부는 감정도 잘 표현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사실 이 글을 쓰면서 강론을 써야 한다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프란은 낙천적이고 강해 보이지만 너무나 소심하면서도 약한 사람입니다.  아니면 이제 나이가 들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에 사춘기에 생각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이제 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자신에 대한 고민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욱 인격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욱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프란은 베드로같은 사람이지요.  단순하고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단순하다는 것이 우리는 부정적으로 해석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영성적으로는 참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덕목입니다.  그 덕목을 우리는 바보로 취급해서 오히려 그 사람을 더욱 바보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린이는 착하지만 그 착함에는 단순함이 있고 또 있어야만 착함이 착함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프란이 자신의 고민으로 인해 그 단순함이 손상받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 열심함 때문에 프란에게 할 말도 못하는 때가 있기도 하지요. 그 기상을 꺽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기를 더욱 더 살려주고 싶기 때문에 프란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소리를 죽이고 있지요.  프란은 이 또한 사랑받고 있고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이 글이 프란의 인격에 손상이 간다면 용서를 청하고 싶습니다.  저는 다만 함께 나누고 싶어서 메일고 보내지 않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올렸습니다.

이상의 글은 저와 프란, 제가 생각하는 프란에 대해서 썼지만 함께 생각할 문제라고, 프란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길게 써 보았습니다.

 

고민은 하십시오. 그래야만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찾게 됩니다.  배부른 돼지가 되어서는 주님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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