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 천주교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 특히 개신교 신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인쇄

안성철 [zxya] 쪽지 캡슐

2005-08-12 ㅣ No.2314

■ 천주교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 특히 개신교 신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먼저 천주교나 개신교나 모두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믿는 교회입니다. 일부 잘못 알고 있는 개신교신자분들이 천주교는 마리아믿는 교회라고 선전하고 다니는데 그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미사를 한 번 참례해 보시면 알겠지만, 미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하느님과 예수님에 관한 전례로 구성되어있지 성모님에 관한 전례는 전혀 없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점은 천주교는 성모님(마리아)를 공경하지만 개신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마리아님을 신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잉태하신 "거룩한 몸"으로서,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공경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이나 예수님에게 기도할 때는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혹은 "용서해 주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성모님께 기도할 때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즉, 성모님이 하느님께 우리의 기도를 함께 빌어달라는 뜻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개신교에서는 성모동상을 세우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얘기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 "성상과 성화"부분에서 다루겠습니다.


1. 성모님을 공경하는 신학적 근거.


천주교에서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는 근거는 신약성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나안에서 첫 기적을 행하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술독에 술이 다 떨어진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 그것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마리아는 이미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그 일을 기적으로서 해결할 수 있는 분임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고 거절을 하셨지만, 끝내 어머니의 간청을 받아들여 영광스런 첫 기적을 행하게 됩니다( 요한 2,1-12). 즉 우리 혼자서 기도하는 것보다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더 효력(?)이 크기 때문에성모님께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도 좀 어렵고 큰 기도는 목사님에게 부탁하곤 하지 않습니까? 그것또한 본인이 기도하는 것보다 목사님이 기도하는 것이 더 효력이 클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의 기도가 더 효력이 있다면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기도는 더할 나위 없겠지요. 마찬가지 입니다. 이를 근거로 천주교에서는 성모님께 저와 함께 "빌어주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기 전에 십자가 위에서 성모님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심으로써 전 인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 그리하여 사도들도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마리아를 자신의 집에 모셔 어머니로서 공경하였습니다(요한 19,25-27).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성모님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개신교에서 성모님을 중시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을 어느 제자로부터 전해들었을때,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이며, 내 누이이냐? 하느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사람이 바로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이며, 내 누이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하여 하신 말씀이지 마리아를 당신의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그 근거는 위에 말씀드렸다시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마리아가 당신의 어머니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계십니다 .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어머니로서 공경하라고 말씀하심으로서 인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음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셨을 무렵 엘리사벳을 찾아가셨을 때, 엘리사벳은 마리아께 "은총을 가득히 입은 마리아님, 기뻐하세요.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십니다."라고 말하며, 그에 대해 마리아께서는 "이제로부터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신 덕분입니다."(루가 1.48-49)라고 하는 마니피깟을 읊어 답례하셨는데, 이 말씀은 이미 구약의 사무엘서에 예언되어있는 구절로서 온 백성에게 공경받는 마리아님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시므온은 마리아께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루가 2.35)라고 예언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함께 겪는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구약성서에서도 성모님의 출현을 여러군데서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성서의 많은 부분에서 성모님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시며 또한 복음서중 예수님의 어린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부분 성모님의 증언을 통해 취해졌음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모든 성서적 근거와 예수님의 인류구원사업의 협조자이며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마땅히 인류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어머니로서 공경받아야 마땅합니다. (하느님이 선택하신 여인을 성스럽지 않다고 말한다면, 하느님이 하신 일을 무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성모님을 "원죄없으신 분"이라 가르칩니다. 성모님이 원죄없으신 분이란 근거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시자 같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죄가 있는 더렵혀진 인간의 몸에 잉태하게 하실리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은 예수님이 잉태되기 전에 성모님으로 하여금 원죄가 씻어지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 놓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모 마리아가 원죄와 무관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모님도 인간으로 태어났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특은으로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원죄에서 구원되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뱃속에 잉태되시는 순간부터 예수님이 태어나는 순간까지 약 10달 동안 예수님께 살과 피를 제공하신 분이십니다. 만일 성모님이 원죄에 물들었다면, 죄인의 살과 피를 예수님께서 물려받으신 결과가 되는 데, 그럴리는 없겠죠? 이 말에 개신교분들은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10달동안 예수님께 살과 피를 제공하신 분은 마리아가 아니라 성령이다."라고. 하지만 그것 또한 옳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인간의 몸을 빌려 태어나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예수님의 잉태의 신비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 이전에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마리아를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셨으며 예수님이 잉태된 순간부터 성령님은 마리아를 감싸주셔서 마리아로 하여금 더이상 죄에 물듦없이 깨끗하고 순수한 살과 피를 10달 동안 예수님께 제공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천사가 성모님께 예수님의 잉태를 알릴 때 "은총을 가득히 입은 마리아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가 1.28)라고 하였는데 "은총을 가득히 입은 "이란 말은 구체적으로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라는 말은 단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뱃속에 있다는 장소적인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예수님과 마리아가 모자(母子)로서 '하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천주교에서는 사실적인 교리로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이 교리는 루르드(Lourdes)의 성모발현(1858)을 통해 확증 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들 중에 가장 깨끗하신 성모님을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모 승천]

천주교의 성모님의 승천 교리는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올바른 마리아의 위치와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교리는 마리아의 성덕과 품위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과 인간의 목적, 죄, 죽음, 육신의 부활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마리아가 성령님의 감쌈을 받아 원죄에 물들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루가 1. 35). 이 말씀은 마리아께서 예수님이 잉태되고 태어날 당시에만 성령님의 감쌈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마리아를 일생동안 감싸 보호해 주시어 평생 죄에 더럽혀지지 않으신 분으로 남게 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이 창세기때부터 준비된 여인으로서("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여자의 후손의 발목을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로서의 위치와 품위에 걸맞는 해석일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부터 얻어진 것입니다. 그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것입니다. 구약을 잘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보호아래 원죄와 본죄에 전혀 물들지 않은 마리아는 다른 인간들처럼 죽음을 맞이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 올리셨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하늘로 올림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의 능력으로 승천하셨지만, 죄에 물들지 않아 죽음을 맞이할 이유가 없으셨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불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에 단 3일 동안 머무셨던 무덤도 수백만이 찾아오는 순례지로서 추앙받습니다. 그런데 10달 동안이나 예수님과 하나되어 살과 피를 주님께 제공해주신 마리아를 공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모순이며, 심지어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참고]

◑ 루르드의 성모발현 : 1858년 베르나데트라는 14세 소녀가 이곳에 있는 마사비엘의 동굴에서 18회에 걸쳐 성모마리아를 보고, 기도와 보속행위, 생활의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들었다고 전해졌고, 그 이후 이곳은 해마다 300만이 넘는 순례자가 찾아오는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이때 성모님께서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라~"고 하시어 천주교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의가 진리임이 확증되었습니다.)


2. 성상과 성화

천주교에서는 성상과 성화를 만들어 교회에 장식을 하거나 세워 놓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그 성상과 성화 자체를 놓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의미, 즉 그리스도를 섬기고 믿는 것입니다. 성모상 또한 성모상 자체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의미 즉, 하느님께 대한 "성모님의 순명"을 본받기 위한 것이며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을 공경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 개신교에서 내세우는 성서구절을 봅시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출애 20, 3-5) 이 성서 내용은 하느님 외에 다른 어떤 물건을 또는 잡신을 하느님처럼 만들어 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예수님 상)이나 성화와 성상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서를 한번 봅시다.

"속죄판은 마치로 두드려 늘여서 거룹(천사의 이름 저자 주)둘이 양쪽에 자리 잡게 만드는데 거룹 하나는 이쪽에 또 한 거룹은 맞은쪽에 자리 잡게 만들어라."(출애 25, 18-19)

"야훼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쳐다보게 하여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하리라'."(민수 21, 6) 개신교 신자분들 보십시오. 천사 거룹도 만들라고 하셨고 구리뱀도 만들라는 성서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구약 시대 솔로몬도"한 거룹의 한쪽 날개가 한 벽에 닿았고 다른 거룹의 한쪽 날개가 다른 벽에 닿아 있었으며 각각 나머지 날개는 전의 중앙에서 서로 잇대어 있었다. 솔로몬은 거룹에 금을 입혔다. 그는 전의 온 벽을 돌아가며 거룹과 종려나무와 핀 꽃 모양의 돌을 새김으로 새겨 놓았다. 또 성전 안팎의 바닥을 금으로 입혔다."(1열왕 6, 27-29).구약의 성전을 장식하기 위해 이렇게 정성을 기울였다면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는 신약의 성전(교회)을 예수님의 상이나 성화 기타 사도들의 성상이나 성화로 장식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닙니까?

또한 성상과 성화는 신앙 교육에 있어서 시청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상 고통을 말로써 여러 번 되풀이하는 것보다 실상 그 고통의 십자가상을 한번 보여 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개신교의 카브코(KAVCO-한국 기독교 시청각 )가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성서에 묘사된 그림을 통해서 선교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충) 제사 인정의 여부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위패나 신주나 신방(방)을 놓고 지내는 제사는 천주교에서도 금하고 있습니다 . 그건 미신에 대한 우상숭배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패나 신주나 신방을 놓지 않은 제사는 어디까지나 우리 조상들에 대한 효행을 나타내는 우리 나라의 미풍양속으로서 인정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출애굽 20장 3-5절의 말씀만을 근거로 무조건 제사를 거부합니다


3. 연옥의 존재와 4. 성인의 통공(=개신교;성도들이 서로 교통)

천주교에서는 연옥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 성서적 근거는 먼저 구약의 여러군데에서 죽은 영혼을 위하여 기도했다는 구절이 있고 신약성서 베드로전서에 또한 명백한 연옥의 존재에 대한 구절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9절을 보면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영혼들의 감옥에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영혼들의 감옥"이 바로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기약할 수 없는 영원한 불속인 지옥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실 리가 없으며 그렇다고 천국을 "영혼들의 감옥"이라 표현할 리는 없으므로 "영혼들의 감옥"은 구원을 기약할 수 있는, 남은 죄에 대한 잠벌을 씻는 연옥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천주교는 성인들의 통공교리(사도신경에 포함되어있음)를 믿기에 지상의 인간이 연옥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므로서 죽은 영혼들의 죄값을 대신 치루어 연옥영혼들이 하루라도 빨리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교리를 믿으며, 천상에서 성인들(성모님 포함)도 지상의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기도를 함으로서 지상의 인간이 천상의 성인들의 기도에 대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천주교신자들은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며, 지상의 인간의 교회와 천상의 성인들의 교회(건물의 의미가 아님)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로 일치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연옥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무조건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2분법적 교리로서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가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지옥간다고 가르칩니다.

<사도신경에 포함된 "성인의 통공"(천주교), "성도들의 교통"(개신교)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하지만, 개신교의 성도들의 교통에 대한 해석(살아있는 신자들끼리의 교통)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신도들끼리 함께 모여 하느님께 기도하거나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굳이 사도신경에 포함시켜 믿도록 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살아있는 신자를 "성인"이나 "성도" 즉 "Saints"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하늘의 성인들(성모님포함)과 지상의 인간이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기도로서 돕고 일치될 수 있다는 천주교의 "성인의 통공"교리가 맞습니다. 그러면 왜 개신교에서 사도신경의 "성도들의 교통"을 잘못해석하는가! 그것은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 근본적으로 연옥의 존재를 부인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개신교에서 어느 하나를 부인함으로서 그것과 연관된 많은 부분에 수정을 가해야 했고 그것은 비단 "성도들의 교통"해석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된다는 교리 하나로 인해 "고해성사"의 부인, "성체성사"의 부인, 심지어 "세례성사"의 부정까지도, 그리스도교에서 실로 중요시 여겨할 수많은 교리들이 부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구원되고 심지어 앞으로 지을 죄까지도 이미 용서받았다는 교리 하나로 나머지는 모두 필요없다는 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구원되므로 나머진 중요하지 않다는 주먹구구식 교리는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개신교 입장에서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집전할 권리가 없으므로 그것들을 일소에 모두 부정할 수 있는 파워풀한(?) 교리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그런 주먹구구식 교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런 주먹구구식 교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마련해 주신 고해성사와 성체성사, 세례성사 등의 성사적 행위를 모두 필요없는 것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입니다. - 이는 개신교를 비방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최후의 만찬"을 보는 견해에서의 차이

천주교에서는 미사(missa)시간에 성체성사를 집전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의 길로 가시기 전날 저녁 2층 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드린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나눈 뒤에 또 그와 같이 잔을 들어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하셨다(루가 22,19-21). 분명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예식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새로운 계약 을 맺기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를 사도들에게 행하라고 하셨으므로 11사도는 제사를 집전하는 사제로서의 권리를 예수님으로 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때문에 천주교에서 사도들의 권한을 이어받은 주교와 신부를 이 새로운 계약을 맺는 '제사'를 집전하는 사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신품성사). 천주교에서는 2000여년 동안 이 예식을 행해 오고 있습니다.

(많은 개신교분들이 천주교의 신부를 '사제'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구약시대의 사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제정하신 이 새롭고 거룩한 제사(성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로서의 의미인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월절제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과월절제사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백성이 하느님의 지시대로 문설주에 어린 양 의 피를 발라 놓음으로서 재앙을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이집트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그런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며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제사입니다. 그리고 이와 비교하여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제가 되시고 동시에 어린 양이 되시어 당신의 성체와 성혈을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께 제물로서 봉헌하시고 새로운 계약 을 맺으심으로써 우리 인간을 아담이 만든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키심을 기념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한 제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최후의 만찬"은 구약의 과월절제사를 예수님께서 새로이 제정하시는 것("새로운 계약의 잔")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과월절에, 과월절 음식으로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사제가 되시고 동시에 어린 양이 되시어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거룩한 제사'가 되게 하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였으므로 천주교에서는 "최후의 만찬"을 사제(신부)의 손으로 바치는 거룩한 제사(미사)로서 거행하며 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하느님께 제헌되는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제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지 밀떡과 포도주가 아닌 성령의 힘으로 성체와 성혈로 성화(거룩한 변화)되어야 하며 우리는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 56 designtimesp=10682>). 이를 성체성사 라 합니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 51),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요한 6,54) 이 말씀은 성체성사를 통해서 밀떡과 포도주가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로 성화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일치를 위해서는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고린토 11,27) 라는 성서말씀을 따름으로서 가능해 집니다. 이 말씀에 따라서 성체를 영함에 있어 깨끗한 마음으로 성체를 영해야 하며, 때문에 천주교에서는 세례(성세)성사를 받고 고해성사를 받은 신자들에 한하여 영성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지켜주고 깨끗하게 해 주는 "생명의 양식(요한 6. 48)"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최후의 만찬"을 단지 기념하는 차원 이지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사의 의미가 아닙니다. 또한 밀떡과 포도주가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개신교에서는 요한 복음 6장의 "생명의 양식"에 대한 많은 양의 말씀을 다 어떻게 해석하는 지 궁금합니다.


[참고: 세례(성세)성사]

세례(성세)성사: 이 또한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일곱 가지 은사(7성사) 중의 하나이며 이는"정말 잘 들어 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요한 3,5) 의 성서구절로서 이해되며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서 원죄와 본죄가 사해지고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 합니다.


6. 고해성사

천주교에서는 죄의 경중(대죄 혹은 소죄)에 따라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아야하는 죄와 그냥 기도로서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는 죄로 구분됩니다. 대죄냐 소죄냐 하는 것에 대해선 법조항과 같이 뚜렷한 기준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작은 죄라 하더라도 "죄인지 알고서도 짓는 죄"는 대죄에 속하고 또 인륜적으로 큰 죄 또한 대죄로 받아드려집니다. 소죄는 사람이 살면서 흔히 지을 수 있는 죄 또는 다소 큰 죄라 하더라도 죄인지 모르고 짓는 죄는 소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의무적으로 반드시 일년에 두 번(성탄절, 부활절) 고해성사를 보아야 합니다. 이를 판공성사라고도 합니다.

신부가 고해소에서 신자들의 죄를 사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죄권(죄를 사해주는 권한)을 받은 사도직인 신부로서 죄를 사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12사도(지금의 신부님)에게 사죄권을 주었고 그 사죄권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교회가 갖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며,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1-23 ). 사도들은 교회를 세울 분들이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사도들에게 사죄권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사죄권은 인간구원을 위하여 세상끝날 때까지 교회에 주신 것이며, 교회의 사죄권은 예수님으로 부터 받은 사도들의 권한을 ?!--"<-->

 

 

■ 천주교식 제사 ■

예전에 천주교회에서는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것이 조상 숭배라고 하여 금지 시킨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족의 전통을 그대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점을 강조한다.

조상의 영혼을 하느님과 같이 숭배 할 수는 없다. 길융화복은 조상의 영혼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자비 하심에 죽은이를 맡기고 바치는 것을 위령미사와 기도로 충분 하지만 풍습상 가문에 따라 제사를 거행 해야 할 경우 아래와 같이 행할수 있다.


▶ 준비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제사 지내는 방을 잘 정돈한다.

목욕 제계하고 단정한 옷으로 정장하고 고해성사로 마음을 깨끗이 한다.

정성껏 상을 차리되 형식을 갖추려 하지말고 평소에 고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린다.

상에는 촛불과 꽃을 놓으며 향을 피워도 좋다.

벽에는 십자 고상을 걸고 그 밑에는 선조의 사진을 모신다.(사진이 없으면 이름을 정성스럽게 써 붙인다)


▶ 제사 순서

1. 성호경 :

2. 성가 : 가톨릭 성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 하거나 고인이 즐겨 불렀던 성가를 부른다.

3. 성서봉독 :

4. 가장의 말씀 : 고인의 역사, 인품, 유언 등을 간단하게 말하고, 그분의 후손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감에 대해 이야기 한다.

5. 위령문 봉헌 : 생시에 자신들을 위해 애쓰신 노고에 대해서 돌아 가신 다음에 소홀히 했던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신자들의 기도 형식으로 미리 준비)

6. 침묵의 기도 : 잠시 위의위령문 내용을 생각하고 각자 고인에게 드리는 말씀을 마음 속으로 드린다.

7. 분향 : 정성과 기도를 올리는 마음으로 가장이 대표 하거나, 참여자가 적으면 모두 한다.

8. 배례 : 고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동이 함께 큰 절을 한다.

9. 위령 기도 :

10. 성가 :

11. 주의 기도 :

12. 식사 : 고인을 추모 하는 날 나누는 식사는 고인과 유족들 그리고 가족들 사이의 ‘일치의 식사’ 이다. 고인의 유지를 더욱 빛낼수 있는 대화를 하며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도모 한다.

13. 식사후 기도

14. 성호경

(*상차림, 분향, 배례는 생략할수 있다.)






264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