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영성

성 프란치스꼬 하비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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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숙 [hsryu] 쪽지 캡슐

2001-02-21 ㅣ No.8

                           성 프란치스꼬 하비에르

 

                                                                           (축일 12 월 3 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의 생을 가장 잘 특징을 지우는 것은 평생에 걸치도록 가득채운 복음전파의 열정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사명에 충실하고,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드렸기에, 당시에는 낯설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동양으로 선교의 닻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인 팜프로나 교외에 있는 사비엘 가종성(城)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대학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거기서 예수회의 창설자인 이냐시오 로욜라를만났다. 처음에는 이냐시오의 생각에 반대했던 그가 일단 생각을 바꿈으로써 예수회의 창설위원 7명 가운데 들게 되었다. .그들은 1534년에 몽마르뜨르에서 첫 서원을 발하였다. 그는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들과 함께 베니스에서 서품 되었고(1537년) 그 다음해에 로마에파견 되었으며 1540년에는(예수회가 공식 승인을 받은 해) 그와 시몬 로드리게스 신부가 예수회원으로써는 첫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 인도에 파견 되었다. 그가 인도의 교황 대사자격을 부여 받은 뒤(1541년) 고아에 도착 한 후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 보는일과 어린이의 신앙 교육 및 그곳의 포르투갈인들의 비도덕성을 바로 잡는 일부터 착수하였다.

 

그 후 그는 인도의 남단 인케이프 코모린에서 3년을 지내면서 파라바스인들을 사목하여 수천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5년 그는 말라까를 찾아갔고 또 1546~47년 까지는 뉴기니아에 인접한 클루카스와 모로타이를 1549~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 하였다. 그는 인도의 첫번째 관구장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중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안태오라는 중국인 청년과 복음을 전하려고 출발하였으나 상치안 섬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흔히 그는 사도 바오로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 할 수 없는 거리와지역을 여행 하였고 그 자신이 개종 시킨 교우수만 하더라도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그러므로 그는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라고 불리며 1622년에 그레고리고 15세 교황으로부터 시성 되었으며, 비오 10세에 의하여 외국 선교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 되었다.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의 사명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주어진 과제이다. 성인의 편지를 읽으면서 복음 전파의 열정을 가슴에 담도록 하자. ”주님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선교의 사명을 새겨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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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교 사업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

 

8년 전에 세례 받은 신자들이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땅이 몹시 매 마르고 가난에 시달리는 이 부근에는 포르투갈인들이 한명도 살지않습니다. 이곳 원주민 신자들에게는 신앙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으므로, 그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사실뿐 입니다. 그들을 위해 미사드릴 사제도 없고, 사도신경이나 주의기도, 성모송 그리고 십계명을 가르칠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온 후 저는 쉴 틈이 없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 두루 다니면서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모두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흔히 말하듯이 오른손과 왼손을 구별 할 줄 모르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자주 졸라서 성무일도를 보거나 식사하거나 또는 휴식을 취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도 거룩한 청원을 양심의 가책 없이는 거절 할 수 없으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도신경과 주의기도 그리고 성모송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들 중에 머리 좋은 아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르쳐줄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지극히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맙니다. 유럽의 대학 특히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가서 사랑 보다는 지식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 지식으로 열매를 맺도록, 미친 사람처럼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꾸짖을 마음을 자주 먹었습니다. ”여러분의 게으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학문에 대해   쏟는 열성만큼만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과 자신이 얻은 지식에 대해 결산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관심을 쏟았다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영적 수련과 다른 방법으로 자기 마음속에 하느님의 뜻을 알고 느끼도록 노력하고, 자신의 욕망을 떠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 입니다. ”주여 저는 여기 있나이다.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저를 보내주십시오. 인도까지라도”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성 이냐시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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