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목(裸木)의 겨울나기 / 혜천(김기상) -
잎을 떨군 앙상한 나무들
겨우내 한기(寒氣)에 떨면서도
추운 기색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
잔가지들 몸이 시려워
서로 안고 비비며 추위를 삭이고
어떤 놈은 기침까지 해대면서도
의연하게 겨울을 난다
걸친 것 하나없는 알몸으로
엄동설한(嚴冬雪寒)이 힘겹지만
으레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인 양
서로서로 도란도란 즐겁기만 하다
감출 것이 너무 많아 입고 껴입어
겨울의 참맛을 잊고 사는 사람들을 나무라듯
쯧쯧 도리질을 해댄다
바람 불고
비 뿌리고
폭설에 시달려
안쓰럽다 할라 치면
육질을 다지고 속쌀 찌우는 맛사지로는
이만한 게 없단다
어쩌다 바람없는 포근한 날
함박눈이라도 내려 가지가지에 소복히 쌓이면
쌓인 눈을 이불삼아 한잠이 든다
겨울나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기다리는 봄이 있어 견딜 만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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