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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a IIae q36 질투(envy)의 정의와 그 결과들 1035_시기vs질투 capital [신학대전여행][성경해석] [칠죄종] [번역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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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vs질투 -1 신학대전여행 [175.115.220.*]

2011-04-06 ㅣ No.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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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장벽, 문화 장벽으로 발생한 이번에 지적드린 용어 번역 오류에 대한 글들 모두를 읽을 수 있습니다. 작성된 날짜 순서로 차분히 읽고 묵상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참고: 특히, 첫 번째 글이 2011년 4월 6일에 작성되기 시작하였고 두 번째 글이 2011년 4월 9일에 작성되기 시작하였기에, 첫 번째 글의 작성이 적어도 두 번째 글의 작성일인 2011년 4월 9일 오후 11시 38분 이전에 완료되었으며, 그리고 두 번째 글을 굿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들의 묵상 게시판 등에 2011년 4월 14일 오전 10시 경에 공지하였기에, 적어도 2011년 4월 14일 오전 10시 이전에 두 번째 글의 작성이 완료되었기음을 주목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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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이제 2011년 가해 사순 시기도 중반을 넘어서 약 보름 정도 남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칠죄종(七罪宗)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에 대하여 함께 학습하면서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질투의 정의(definition)를 제대로 학습하여 질투의 의미와 질투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좀 더 잘 알게 된다면, 상당한 경우들에 있어,
 
혹시 이 학습의 결과로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곱 개의 죄(대죄, 사죄)들 중의 하나인, 이러한 대단히 나쁜 마음을 자신이 품게 되는 것을 스스로 예방하고 또 자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희망과 함께, 이 글을 마련하였습니다.
 
 
1.
우선적으로, 다음은 네이버 국어 사전 및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질투 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질투
 
명사
(1)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 [비슷한 말] 강샘ㆍ모질3ㆍ투기6.
 
(2)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3) <가톨릭> 칠죄종(七罪宗)의 하나.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는 일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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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위의 국어 사전의 설명만으로는, 특히 윤리 생활, 더 나아가, 신앙 생활과 관련하여, 질투가 무엇이며 그리고 질투의 결과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에 대하여 이해하는 데에 상당히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01년 4월 10일]
 
그리고 대단히 헷갈리는 것은, 시기와 질투의 차이점을 국어 사전의 설명으로서는 구분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다음의 네이버 국어 사전에 주어진 "시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시기(猜忌)
 
명사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여 미워함.
 
참고 2: 그러나 아래의 글 중에서 분명히 언급되고 있듯이, 성경에 등장하는 용어들 중에서 "envy"로 번역되는 단어와 "jealousy"로 번역되는 단어의 의미는 동일하지 않으나, 우리말로 이들 두 개의 단어를 번역하면서 이들 두 단어들을 그동안 동일시해 온 것 같습니다.
 
이 글의 목적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차이점을 분명하게 살펴 보는 데에 있습니다.
 
참고 3: 이 글에서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66항의 우리말 번역에 따라,
 
envy = 질투,
 
jealousy = 시기
 
로 분명하게 구분하여 번역을 하였습니다만,
 
그러나 이렇게 번역할 경우에, 예를 들어. 탈출기 20,5에서, 영어로 "a jealous God"로 번역되고 있는 표현이 우리말 성경들에서 "질투하는 하느님"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과, 용어 번역에 있어, 충돌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 글에 이어지는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2011년 4월 14일 추가) 다루고 있으니 필독을 권유합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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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용어집에 주어진 질투(envy)에 대한 설명입니다. 괄호 안의 번호는 CCC 관련 항의 번호입니다. 이하,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ENVY: Resentment or sadness at another's good fortune, and the desire to have it for oneself. One of the seven capital sins, envy is contrary to the tenth commandment (2539).
 
질투(ENVY): 다른 이의 행운에 대한 분노 혹은 슬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다른 이의 행운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the desire)을 말한다. 일곱 개의 죄종(seven capital sins, 七罪宗)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는 십계명의 제10계명에 반한다(CCC 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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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설명 또한, 너무 간략하게 용어 설명을 하고 있어,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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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39항 전후의 질투(envy)에 대한 가르침들(제2538-2540항들)도 약간 부족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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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 에 주어진 "질투(envy)"에 대한 설명입니다. 위의 제1-3항들에 주어진 설명보다 상당히 상세한 설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ENVY
질투

다른 이의 우수함, 행운, 혹은 성공에 대하여 슬프함 혹은 불만을 말합니다. 이것은 어떤 이가, 다른 이에 대하여 자신이 질투하는(envies) 바에 의하여, 자기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박탈당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심지어 불의가 이미 행하여졌다고 생각함을 뜻합니다. 질투(envy)에 있어 본질적인 것은 박탈당함(deprivation)에 대한 바로 이러한 의미(sense)입니다. 그 결과 그것은 단순히 다른 어떤 자가 어떤 바람직한 재능 혹은 소유물을 가지고 있음을 슬퍼함이 아니며, 또한 다른 이의 수준에 이르고자 하거나 혹은 능가하고자 하는, 칭찬할 만한 경쟁일 수 있는, 포부(ambition)가 전혀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 고유의 소유물들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을 꺼리는 것을 뜻하는, 시기(jealousy)(*)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Sadness or discontent at the excellence, good fortune, or success of another person. It implies that one considers oneself somehow deprived by what one envies in another or even that an injustice has been done. Essential to envy is this sense of deprivation. consequently it is not merely sadness that someone else has some desirable talent or possession, nor certainly the ambition to equal or surpass another person, which can be laudable emulation. It is not the same as jealousy, which implies an
unwillingness to share one's own possessions.

 

질투(envy)는 애덕(charity)에 반하는 죄이며 그리고, 비록 본질적으로 심각하기는 하나, 전적으로 의도적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는가 그리고 질투(envy)를 당하는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달려있는, 중대함에 있어서의 정도들을 허용합니다(allows of). 질투(envy)에 기인하는 가장 심각한 죄(the most serious sin of envy)는 다른 이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받은 초자연적 선물들 혹은 은총들(the supernatural grafts or graces)에 접하였을 때의 슬퍼함, 즉 [다른 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성덕(聖德, sanctity, 거룩함)에 접하였을 때의 슬퍼함입니다.(**) (어원. Latin invidia; from invidere, to look askance.)

 

Envy is a sin against charity and, though serious in itself, allows of degrees of gravity depending on whether fully consented to and how important is the object envied. The most serious sin of envy is sadness at the supernatural gifts or graces that another has received from God, i.e., to envy sanctity. (Etym. Latin invidia; from invidere, to look ask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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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월 21일]

(0) "시기(jealousy)"라는 용어의 바로 정의(definition)는 다음과 같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 주어진 "시기(jealousy)" 정의(definition) 그대로 따르고 있다:


출처 1: Summa Theologica, III, Supp, q65, a1, Objection 9 (클릭하십시오)
(발췌시작)
Jealousy is "love impatient of sharing the beloved."

 

시기는 "사랑받는 이를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못 견디는 사랑(love)"을 말한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월 24일]

출처 2: Summa Theologica, Ia, IIae, q28, a4, Objection 2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thus husbands are said to be jealous of [zelare] their wives, because they will not share them with others.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남편들은 그들이 자신의 아내들에 대하여 시기합니다(jealous of their wives, 즉, 자신의 아내들을 지키려고 몹시 경계한다)고 말해지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장차 자신의 아내들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또한 Modern Catholic Dictionary의 저자인 Hardon 신부는 자신의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archives/Commandments/Commandments_010.htm

(발췌 시작)

Envy is not the same as jealousy, which implies unwillingness to share what I have, my possessions or gifts, whether natural or supernatural, whether physical or spiritual, with someone else.

 

질투(envy)는, "자연적이거나 혹은 초자연적이거나 간에, 형이하학적이거나 혹은 영적이거나 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바, 나의 소유물들 혹은 선물들을 타인(someone else)과 공유하는 것을 꺼리는 것을 의미하는, 시기(jealousy)"와 동일하지 않습니다(not the same as).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그리고 다음은, Hardon 신부 Archives 제공의 Questions & Answers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archives/Q_and_A/Q_and_A_024.htm

(발췌 시작)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envy and jealousy?

The difference between envy and jealousy is the motive. Envy does not have something that someone else has; jealousy has something that it is slow or unwilling to share with others.


질투(嫉妬, envy)시기(猜忌, jealousy)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요?

 

질투(嫉妬)와 시기(猜忌)의 차이점은 그 동기(the motive)입니다. 질투(嫉妬)는 다른 이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리고 시기(猜忌)는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데에 더디거나 혹은 꺼리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1) 바로 이 문장이, 다음의 글의 제1-3항에 발췌된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TOB)주석에서도 또한 동일하게 정의하고 있는, "시기(jealousy)" 라는 용어의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적 정의(definition)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6.htm  <----- 필독 권고  

 

**********
그리고, "사랑(love)"의 여러 결과들 중의 하나인 "시기(jealousy)"에 대한 더 정밀한 정의(definition)는 아래의 제9-1항, (4-iii)에 주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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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고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52항을 살펴보더라도 신약 성경에서 질투(envy)시기(jealousy)는 분명하게 구분되고 있다. 그리고, 위의 설명에 의하면, 시기(jealousy)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심각한 죄가 질투(envy)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1852.htm


CCC 1852
  죄는 매우 다양하다. 성서는 여러 번 죄를 열거하고 있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육정의 행동을 성령의 열매와 대조한다.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바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5,19`-21)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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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로마 1,28-32; 1고린 6,9-10; 에페 5,3-5; 골로 3,5-9; 1디모 1,9`-10;
2디모 3,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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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 1852
There are a great many kinds of sins. Scripture provides several lists of them. The Letter to the Galatians contrasts the works of the flesh with the fruit of the Spirit: "Now the works of the flesh are plain: fornication, impurity, licentiousness, idolatry, sorcery, enmity, strife, jealousy, anger, selfishness, dissension, factions, envy, drunkenness, carousing, and the like. I warn you, as I warned you before, that those who do such things sha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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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27 Gal 5:19-21; cf. Rom 1:28-32; 1 Cor 6,9-10; Eph 5:3-5; Col 3:5-8; 1 Tim 1,9-10; 2 Tim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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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2월 9일]

(**) 번역자 주: 다른 이의 영적 선에 대한 이 질투는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에 의하여 나열된, 소위 말하는, 성령을 거스르는/맞서는 죄(성령모독죄)들 여섯 개들 중의 하나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6.htm <----- 필독 권고

[이상, 2014년 12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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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1년 4월 9일]


새 번역 성경 본문 중의
용어 번역 오류 한 개


따라서, 예를 들어,
NAB 에서 뿐만이 아니라, 또한


여기를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로마서 1,29
에서, 영어 성경들에서 "envy"로 번역된 표현을, 새 번역 성경에서 "시기"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이들 단어들이 성경의 본문에서 사용 중이기에, 비록 이들이 한자 단어들이기는 하나 외래어들의 번역 용어들로서 사용 중이므로, 그리고 "질투(envy)""시기(jealousy)"로 번역되는 용어들이, 우리말로 번역되기 이전에 이미 명확하게 구분되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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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굿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질투(envy)" 에 대한 설명
은, 그 출처가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위의 Modern Catholic Dictionary 의 설명과 비교/검토를 해 보면, 위의 Modern Catholic Dictionary  혹은 이 Modern Catholic Dictionary 의 설명의 근거가 되는 자료를 참고하여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질투(envy)" 에 대한 설명이 마련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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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음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질투(envy)"에 대한 설명입니다.
 
 
Jealousy
시기(*)

Jealousy is here taken to be synonymous with envy.(*) It is defined to be a sorrow which one entertains at another's well-being because of a view that one's own excellence is in consequence lessened. Its distinctive malice comes from the opposition it implies to the supreme virtue of charity. The law of love constrains us to rejoice rather than to be distressed at the good fortune of our neighbour. Besides, such an attitude is a direct contradiction of the spirit of solidarity which ought to characterize the human race and, especially, the members of the Christian community. The envious man tortures himself without cause, morbidly holding as he does, the success of another to constitute an evil for himself. The sin, in so far as it defies the great precept of charity, is in general grievous, although on account of the trifling matter involved, as well as because of the lack of deliberation, it is often reputed to be venial. Jealousy is most evil when one repines at another's spiritual good. It is then said to be a sin against the Holy Ghost. It is likewise called a capital sin because of the other vices it begets. Among its progeny St. Thomas (II-II:36) enumerates hatred, detraction, rejoicing over the misfortunes of one's fellow, and whispering. Regret at another's success is not always jealousy. The motive has to be scrutinized. If, for instance, I feel sorrow at the news of another's promotion or rise to wealth, either because I know that he does not deserve his accession of good fortune, or because I have founded reason to fear he will use it to injure me or others, my attitude, provided that there is no excess in my sentiment, is entirely rational. Then, too, it may happen that I do not, properly speaking, begrudge my neighbour his happier condition, but simply am grieved that I have not imitated him. Thus if the subject-matter be praiseworthy, I shall be not jealous but rather laudably emulous.
 
여기서 [즉, 이 글에서] 시기(jealousy)질투(envy)동의어인 것으로 받아들인다(is taken).(*) 이것은 다른 이의 번영/행복(well-being)에 대하여, 자신 고유의 우수함이 결과적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견해(a view) 때문에, 어떤 사람이 선호하면서 지니고 있는(entertains) 어떤 후회/뉘우침(a sorrow)으로 정의된다(is defined). 이것의 명확한 악의(malice)는, 이것이 의미하는, 애덕(charity)이라는 지고한 덕에 대한 반대로부터 나온다. 우리의 이웃의 행운에 대하여 사랑의 법(the law of love)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태도는 인류의, 그리고 특별히,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특성을 나타내어야만 하는 연대성 정신(the spirit of solidarity)에 대한 직접적인 모순(contradiction)이다. [이 글의 원 저자가 투(envy)와 동의어인 것으로 받아들인] 시기(jealousy)가 많은[즉, 질투(envy)가 많은](*) 사람은 아무런 이유없이, 다른 이의 성공이 자신에 대한 어떤 악(an evil)을 구성한다는 것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병적으로 주장하면서, 자기 자신을 몹시 괴롭힌다. 이 죄는, 신중함의 결여 때문 뿐만이 아니라, 개입된 사소한 일 때문에 비록 이 죄가 소죄(venial)라고 자주 반박되기는 하더라도, 애덕(charity)이라는 위대한 규범을 무시하는 한, 이 죄는 일반적으로 중대하다(grievous). [이 글의 원 저자가 투(envy)와 동의어인 것으로 받아들인] 시기(jealousy)[즉, 질투(envy)](*)는 어떤 자가 다른 이의 영적 선함(spiritual goodness)에 대하여 불평할 때에 최고의 악이다. 그럴 경우에 그것은 성령(the Holy Ghost)에 반하는/거스르는 죄 [성령모독죄] 라고 말해진다. 마찬가지로 이 죄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a capital sin)라고 불리는데 이는 이것이 낳는 다른 악습(vices)들 때문이다. 질투의 결과물 중에서 성 토마스(St. Thomas)증오(hatred), 비방(detraction), 자신의 동료의 불행에 대하여 즐거워 함, 그리고 속삭임을 열거한다(enumerates)(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II-II, 36). 다른 이의 성공에 대한 후회(regret)가 항상 [이 글의 원 저자가 투(envy)와 동의어인 것으로 받아들인] 시기(jealousy)[즉, 질투(envy)](*)인 것은 아니다. 그 동기가 면밀하게 검토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만약에 다른 이의 승진 소식 혹은 부자로의 상승 소식을 접하고서, 그가 자신의 행운에 마땅히 접근할 만하지 않음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혹은 그가 자신의 행운을 나 혹은 다른 이들을 해치는 데에 사용할 것임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후회/뉘우침(sorrow)을 느낀다면, 나의 태도는, 나의 (감정이 섞인) 의견(sentiment)에 있어 지나침이 전혀 없다는 조건으로, 전적으로 이성적(rational)이다. 그리하여, 또한, 내가, 적절히 말하여, 나의 이웃의 더 행복한 상태를 시샘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내가 그를 본받지 않아 왔음을 슬프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주제가 칭찬할 만하다면(praiseworthy), 나는 [이 글의 원 저자가 투(envy)와 동의어인 것으로 받아들인] 시기를 할(jealous) 것이 아니라, [즉, 질투를 할(envious)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할 만하게 열망하여야(laudably emulous)만 한다.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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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이 글은, 아래의 제8-2항에 또한 안내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36(즉, II-II, 36)에 주어진 "envy(질투)"에 대한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으며, 특히 신학 대전, IIa, IIae, q36, 본문 중에서, "envy" 라는 단어를 클릭하면 위의 제5항설명을 읽도록 링크 설정되어 있음을 확인하라.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는 [이 글의 원 저자가 투(envy)와 동의어인 것으로 받아들인] 시기(jealousy)[즉, 질투(envy)]는 "악한/나쁜 시기(evil/bad jealousy)"에 포함됨에 또한 유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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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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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위의 제4-5항들의 설명은, 위의 제1-3항들에서의 설명들보다, 상당히 더 자세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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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른 한 편으로, 위의 제1-2항들에서의 설명에 있어, 특히 칠죄종(七罪宗, seven capital sins)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용어집에 주어진 칠죄종(七罪宗)에 대한 설명입니다. 괄호 안의 번호는 CCC 관련 항의 번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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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실, 이들 칠죄종들 중에서 다른 대죄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는데, 특히 질투(envy)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이 글을 마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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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ITAL SINS: Sins which engender other sins and vices. They are traditionally numbered as seven: pride, covetousness, envy, anger, gluttony, lust, and sloth (1866).
 
죄종들(罪宗, peccata capitalia, CAPITAL SINS): 다른 죄들과 악들을 낳는(engender) 죄들을 말한다. 이 죄들은 전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곱 죄[seven deadly sins, 七罪宗]들로 헤아려진다:
교만[pride, 驕傲(교오), 교만하고 오만하여 남을 업신여김],
탐욕[avarice, covetousness, 貪慾,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갖고 싶어 하고 또 구하는 마음],(**)
질투[envy, 嫉?, 嫉妬, 우월한 사람을 시기함],
분노[wrath, anger, 忿怒, 분에 겨워 몹시 화를 냄],
음욕[lust, 迷色(미색), 성욕의 노예가 되어 사물을 올바르게 보지 못함],
식탐[gluttony, 貪?(탐도), 음식이나 음료를 탐하여 지나칠 정도로 먹고 마심],
나태[sloth or acedia, 懶惰(나타), 懶怠,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함]
(CCC 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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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866항에서 ‘avarice’ 혹은 ‘covetousness’에 해당하는 표현을 ‘탐욕(貪慾)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인색(吝嗇)’으로, 그리고 ‘gluttony’에 해당하는 표현을 ‘식탐’ 대신에 ‘탐욕’으로 번역한 것은, 다음의 Merriam-Webster's On Line Dictionary의 어원 설명에 따르면 ‘gluttony’라는 단어가 ‘glutton’의 라틴어 어원에서 유래하는 단어이므로, 번역 오류라는 생각이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1월 17일]

여기를 클릭한 후에, <----- 또한 제5항 필독 권고

"칠죄종들" 중의 일부 죄들에 대한 성경의 근거들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근거들을 또한 밝히고 있는, 제5항을 또한 읽도록 하라.

[이상, 내용 추가 끝]. 
 
7.
그리고 대단히 나쁜 악습(vice)인‘인색(吝嗇)’이라는 한자 단어의 뜻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629.htm  <----- 또한 필독을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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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1년 4월 8일]
 
8.
 
"A Tour of Summa by Paul G. Glenn" 에 주어진, 다음과 같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있는 "질투(envy)"에 대한 설명의 요약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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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전여행 IIa IIae q36

36. Envy
    질투

1. Envy is sorrow or sadness over another's good, because that good is regarded as something withheld or taken away from the envious person's excellence or reputation.


1.
질투(envy)는 다른 이의 선(good)에 대하여, 바로 이 선이 질투하는(envious) 자의 탁월성 혹은 평판으로부터 보류되거나 혹은 떠나가게 된 어떤 것으로서 간주되기 때문에, 애석해 하거나(sadness) 혹은 후회하는 것(sorrow)을 말한다.


2.
Envy is a sin; it grieves over what charity finds capable of causing joy; it is a spiritual disorder.


2.
질투(envy)는 죄이며, 그리고 이것은 애덕(charity)이 기쁨을 초래할 수 있는 바를 찾아냄에 대하여 비통해 하며, 그리고 이것은 한 개의 영적 무질서(a spiritual disorder, 영적 기능 장애)이다.


3.
Envy in its kind (or genus) is a mortal sin, for it is in conflict with the precept of charity. But in the envious person the sin of envy is mortal only when it is committed with full knowledge and full consent.


3.
질투(envy)는 그 종류 (혹은 분류)에 있어 대죄(a mortal sin)인데, 이는 이것이 애덕(charity)이라는 규범(precept)과 갈등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투하는(envious) 자에게 있어 질투의 죄(the sin of envy)는 이 죄가 완전한 인식(full knowledge) 및 완전한 동의(full consent)와 함께 범하여지게 될 때에 한하여 대죄이다.


4.
Envy is a fruitful source of other sins, and therefore it is listed with the capital sins.


4.
질투(envy)는, 결실이 많은, 다른 죄들의 원천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이 죄는 죄종(the capical sins)들 안에 나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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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여기를 클릭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영어본)에 주어진 "질투(envy)"에 대한 설명
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의 저서인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는 "질투(envy)"에 대한 간단한 언급만 네 번 정도 있으나,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인 "수사학(Rhetoric)"에서 "질투(envy)"에 대하여 21번 정도 언급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II, 10(클릭하십시오); III, 19,3 (클릭하십시오) 참조). 그리고 위의 "신학 대전"의 "질투(envy)"에 대한 상세한 설명 중에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언급이, 주어져 있습니다.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Damascene (De Fide Orth. ii, 14)
calls envy a species of sorrow, and says that “envy is sorrow for another’s good.”(IIa IIae q. 36 a. 1).


[내용 추가 일자: 2011년 7월 24일]


다마스쿠스 사람(Damascene)
질투(envy)를 후회(sorrow)의 한 종류라고 부르며, 그리고 "질투(envy)는 다른 이의 선(good)에 대한 후회(sorrow)" 이라고 말합니다(De Fide Orth. ii, 14).
 


참고 1:
여기를 클릭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서 다마스쿠스 사람(Damascene)으로 불리면서 그의 저술들로부터 총 365번[그의 대표적 저술인 De Fide Orthodoxa(정통 신앙에 대하여)로부터 총306번]이 인용되고 있는, 마지막 그리스 교부(Greek Father)인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St. John of Damascus, 676-749년)에 대한 요약 글을 읽을 수 있다.


참고 2:
또 여기를 클릭하면,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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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1년 4월 10일]


9.

9-1. 여기를 클릭하면


"A Tour of Summa by Paul G. Glenn"
에 주어진,
다음과 같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있는 "사랑(love)의 결과들"에 대한 설명의 요약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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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전여행 Ia IIae q28

28. The Effects of Love
    사랑의 결과들

1. Love seeks either to possess what is loved or to bestow benefit upon it. In either case, love seeks to be united with its object, in fact or in affection. Hence union with the beloved thing is an effect of love.


1.
사랑(love)은 사랑하게 되는 바를 소유하거나 혹은 그것 위에 혜택을 베푸는 것 둘 중의 하나를 추구합니다. 둘 다의 경우에 있어, 사랑은, 사실적으로(in fact) 혹은 정의(情意)적으로(in affection), 그 대상과 결합되는 것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사랑받는 자(the beloved)와의 결합(union)은 사랑의 결과입니다.


2.
Another effect of love is that lover and beloved dwell in each other in some manner. The lover says, "I have you in my heart," or "This project is close to my heart." And, speaking of the love of God, scripture says (I John 4:16):"He that abideth in charity, abideth in God, and God in him." Thus a kind of mutual indwelling of lover and beloved is an effect of love.


2.
사랑(love)의 또 다른 결과는 사랑하는 이와 사랑을 받는 이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안에 거주함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나는 그대를 내 심장에 가지고 있다" 혹은 "이 과제는 나의 심장에 가깝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할 때에, 성경 본문은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요한 4,16)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의 일종의 상호 내재(indwelling)는 사랑의 결과입니다.


3.
Sometimes love is so intense that the lover is said to be "carried away" or "raised out of himself." This effect of love is called ecstasy.


3.
때로는 사랑(love)이 너무도 강렬하여(intense) 그 결과 사랑하는 이는 "넋을 잃게 된다(carried away)" 혹은 "그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들어 올려지게 된다(raised out of himself)" 라고 말해집니다. 이러한 사랑의 결과는 "황홀 상태(ecstasy, 황홀경)" 라고 불립니다.


4.
Another effect of love is zeal. In its good meaning, zeal is steady ardor in loving. In one evil meaning, zeal is an unreasonable and intemperate ardor for making other people love something; this zeal is called zealotry. In another evil meaning, zeal is an inordinate ardor for exclusive possession of the object of love, and an unreasonable effort to block out others from loving it; this zeal is called jealousy. Zealous and jealous are, in root, the same word. Zealotry and jealousy are effects of misdirected and disordered love.


4. 사랑(love)의 또 다른 결과는 열의(zeal)입니다.

 

(4-i) 그 좋은 의미에 있어, 열의(zeal)사랑하는 행위(loving)에 있어 지속적인 열성(ardor)을 말합니다.(*)

 

(4-ii) 한 개의 악한/나쁜 의미에 있어, 열의(zeal)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한 비이성적인(unreasonable) 그리고 무절제한(intemperate) 열성(ador)을 말하며, 그리고 이러한 열의(zeal)열광(zealotry, 광신)이라고 불립니다.(**)

 

(4-iii) 또 다른 악한/나쁜 의미에 있어, 열의(zeal)사랑의 대상에 대한 독점적 소유(exclusive possession)를 위한 과도(過度)한(inordinate) 열성(ardor), 그리고 이 대상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다른 이들을 차단하려고(block out) 하는 비이성적 노력(unreasonalble effort)을 말하며, 그리고 이러한 열의(zeal) 시기(jealousy)라고 불립니다.(***)

 

열의가 있는(zealous)시기하는(jealous) 단어들은, 어근(語根, root)에 있어, 동일한 단어입니다. 열광(zealotry, 광신)시기(jealousy)는 엉뚱한 방향으로 보내진 그리하여 질서가 결핍된 사랑(misdirected and disordered love)결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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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여기서[즉, (4-i)에서] "열의(zea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가 주어지고 있다.
(**) 번역자 주: 여기서[즉, (4-ii)에서] "열광(zealotry, 광신)"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가 주어지고 있다.

(***) 번역자 주: 여기서[즉, (4-iii)에서] "시기(jealousy)"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가 주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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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Love in itself is a perfecting and preserving force. But in its material aspects and elements, love may sometimes induce excessive and hurtful change in the lover.


5.
사랑(love)은 그 자체로 완미(完美)하게 하는(perfecting) 그리고 보존하게 하는(preserving) 힘입니다. 그러나 그 질료적 양상들 및 요소들에 있어, 사랑은 사랑하는 자 안에 때로는 과도하며 그리고 해를 끼치는 변화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6.
Love is appetite for good; good defines end; all things act to an end. Therefore, all things act from love of one kind or another.


6.
사랑(love)은 선(good)에 대한 욕구(appetite)이고, 그리고 선(good)은 끝/목적지(end)를 정의하며(defines), 그리하여 모든 사물들은 어떤 끝/목적지(an end) 쪽으로 행동합니다(act to). 그러므로, 모든 사물들은 한 종류 혹은 다른 종류의 사랑(love)으로부터 행동합니다(act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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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여기를 클릭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영어본)에 주어진, 사랑(love)의 한 결과인, "시기(jealousy)"에 대한 설명
을 읽을 수 있습니다. "Article 4. Whether zeal is an effect of love?" 을 읽으십시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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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순태 마태오 교수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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