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성당 게시판

예수님께서 보게 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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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2-03-09 ㅣ No.1602

 

 

2002, 3, 10 사순 제4주일 복음 묵상

 

요한 9,1-41

(소경을 고쳐 주시다, 바리사이들의 관여, 눈뜬 이에 대한 예수의 자기 계시)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도부터 소경인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께 묻기를 "랍비, 누가 죄를 지어서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혹은 그의 부모입니까?" 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에 해야 합니다. 밤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아무도 일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그 침으로 진흙을 개신 다음 그 진흙을 소경의 눈에 바르시면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시오" 하셨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파견된 자"라는 말이다.] 그래서 소경은 물러가서 씻고 보게 되어 돌아갔다.

 

이웃사람들과 또 그가 거지였던 것을 그전에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다"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아니다, 그와 비슷할 뿐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 (소경) 자신이 "나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이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시면서 '실로암으로 가서 씻으시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물러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 사람은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 그는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전에 소경이었던 그를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바리사이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묻자 그는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얹어 (발라) 주신 후 내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바리사이들 가운데 몇몇은 "그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죄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표징(이적)을 행할 수 있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다. 그들이 또다시 소경에게 "그가 그대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그대는 그에 대해서 무엇이라 하겠소?" 하고 묻자 "그분은 예언자입니다" 하고 그가 말하였다.

 

유대인들은 그가 소경이었다가 보게 되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들은 그 볼 수 있게 된 사람의 부모를 불러서 "이 사람이 당신네 아들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부모가 대답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가 우리 아들이고 또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우리가 압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지금은 보게 되었는지 모르고 또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제 나이가 있으니 제 일은 스스로 말할 것입니다." 그의부모는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회당에서 추방하도록 이미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애서 그의 부모는 "제 나이가 있으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하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재차 불러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은 죄인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아는 것은 제가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그들은 "그 사람이 그대에게 무슨 일을 했소? 어떻게 그대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당신들에게 말하였는데도 당신들은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왜 다시 들어 보려 합니까?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을 하며 말했다. "너는 그자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모세에게는 하느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자로 말하면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도 당신들은 그분이 어디서 오셨는지 모른다니 그거 참 놀라운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죄인들의 (청은) 들어주시지 않지만 누구든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면 그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누가 소경으로 태어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은 태초부터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분이 하느님으로부터 오시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응수하여 "온통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가르치려 드는가?" 하고는 그를 밖으로 쫓아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그 사람을 밖으로 쫓아냈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를 만나자 "당신은 인자를 믿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는 대답하기를 "주님, 그분이 누구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당신은 그를 보았습니다. 당신과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는 "주님, 믿습니다" 하며 예수 앞에 꿇어 절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에 심판하러 왔습니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게 하고 보는 이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말했다. "우리도 소경이란 말이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차라리) 소경이었더라면 당신들에게 죄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지금 '우리는 본다'고 하니 당신들의 죄는 그대로 남습니다."

 

 

<묵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빛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매일 들이마시던 공기를 보고, 삶의 터전을 보고, 함께 했던 이들을 봅니다. 삶이 새롭습니다. 기쁨... 더 이상 무슨 말로 이 순간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 주위에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함께 기뻐하지 않습니다. 온갖 의심의 눈빛 가득합니다.

 

"너 지금까지 진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던 소경이었어?"

"예,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누가 네 눈을 뜨게 했느냐?"

"예수라는 분이 하셨습니다."

 

의심의 눈길은 눈뜬 이의 부모에게까지 미칩니다. 부모는 뒤로 물러섭니다. 그들과 맞섰다가 무슨 해를 당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내 아들이 눈을 뜬 것은 사실이지만, 누가 그랬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진짜로 모릅니다."

 

그러나 눈뜬 이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더욱 큰 소리로. "내가 분명히 말했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나를 고쳐주셨다고. 내가 그분을 만나 다시 보게 되었다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주는 새로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아집 가득한 사람들에게 눈을 뜬 소경은 걸림돌이 됩니다. 이들은 눈을 뜬 소경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답을 강요합니다. 한 마디만 하면 소경은 이들의 성가신 질문과 차가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난 모릅니다. 누가 내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는 이제 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러나 소경은 굽히지 않습니다. 바보같이 예수가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고 점점 더 강하게 증언합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소경은 공동체로부터 쫓겨납니다. 그렇지만 이제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았던 이 바보 같은 소경은 겉으로 드러난 세상만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까지 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소경의 용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외치는 소경의 당당한 목소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각박한 세상 한 가운데 스며있는 넉넉함을 보고 있습니까?

차가운 세상 녹이는 따스한 온기를 보고 있습니까?

절망 속에서도 솟구치는 희망을, 갈라짐 속에서도 하나되려는 절박한 몸짓을 보고 있습니까?

누가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까?

 

안타깝게도 아직도 많은 이들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넉넉함을, 따스한 온기를, 희망을, 하나됨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애써 눈을 감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 예수 그리스도인으로 말미암아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된 우리는 우리가 본 것들을 힘차게 외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것을 보게 했다고 외쳐야 합니다.

 

숨지 말고 당당히 우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강요하는 세상에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힘에 의한 지배를 당연시하는 세상 안에서 겸손과 헌신의 삶으로써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해야 합니다.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재물을 숭배하는 이들에게 청빈의 삶으로써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외쳐야 합니다.

갈라진 세상 한가운데서 화해의 삶으로써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았습니다.

사람이 되어 오신 겸손과 헌신의 하느님이신 예수님, 나자렛의 막노동꾼 가난한 예수님, 십자가 죽음을 통해 갈기갈기 찢겨진 세상에 화해의 잔치를 마련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써 우리가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맘껏 기뻐하고, 이 기쁨 모든 이에게 나누어지도록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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