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5년 6월호_가톨릭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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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5-05-19 ㅣ No.6

<복자 슈브리에>

 

1. 어떤 시대에 살았나?
복자 슈브리에 신부는 1826년 4월 16일에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여파로 공업화가 한창이었고 그 중심은 리용이었다. 농촌을 떠난 많은 농민들이 리용의 변두리에 몰려들어 공장에서 열악한 조건으로 일하며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2. 새로운 회심의 때, 1856년 성탄 밤
1846년 10월에 대신학교에 입학한 슈브리에는 교회가 가난한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음에 대해서 마음 아프게 생각하였다. 1850년 5월 25일에 리용교구 사제가 된 슈브리에는 보좌신부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1856년 여름에 리용을 뒤덮은 대홍수 때 헌신적으로 동네 사람들을 도와주던 중에 그들이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1856년 성탄 밤에 구유 앞에서 묵상하면서 자신의 회개를 위한 큰 빛을 받았다.
‘나를 회개시킨 것은 강생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또 죄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땅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가? 세상에는 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은 계속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 주님을 더 가까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3. 프라도 카바레에서 교리교육 시작
그는 평신도 랑보를 만나서 가난한 사람들처럼 가난하게 생활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직접 전하는 사명을 분명하게 의식하게 된다. 사제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이다.
1860년 12월 10일에 그는 리용 변두리에 있는 프라도 카바레를 인수하여서, 성당에서 제대로 교리를 배우지 못한 동네의 비참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6개월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여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글을 가르치고 첫 영성체 준비를 시켰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사랑하고 일치하게 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4.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 양성
그는 점차로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한 가난한 사제들을 양성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리용 교구장의 허락을 얻어서 댄스홀이던 그 프라도의 집에서 소신학생들을 받아들여서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활동하던 라기요띠에르 동네의 가난한 집안 젊은이들의 부모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사제’의 성소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그 젊은이들을 소신학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프라도 사제들을 양성하는 데 그는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신학생들이 복음연구에 충실하여서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진리를 배우고 익히기를 원했으며, 그들의 양성을 위해서 「참다운 제자」를 저술하였다. 교구 사제들이 형제적 공동체를 이루기를 염원한 그는 교회와 세상을 위해서 새롭게 일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리하면 교회가 많은 결실을 거둘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5. 생퐁의 영성
프라도의 집에서 아이들의 첫 영성체를 준비하고, 필요로 하는 재원을 마련하고, 신학생들을 양성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에도 슈브리에 신부는 리용의 남쪽 변두리에 있는 생퐁이라는 동네 밭 한가운데 있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피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분의 영을 따라서 가야 할 길을 잘 정리해서 헛간의 벽에 기록해놓았다.
지금도 전 세계의 프라도 회원들이 그곳을 찾아가서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되새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이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내가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으니 내가 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요한 13,15 참조)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예수님의 구유의 가난과 십자가의 봉헌과 성체성사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제는 헐벗은 사람이고,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며 먹히는 사람이어야 한다.

6. 하늘나라로
슈브리에 신부는 1879년 10월 2일에 27세의 젊은 후계자를 남겨두고 하느님 나라에 갔다. 가난하게 살고,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을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어준 그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 세상을 떠났다. 1986년 10월 4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리용에서 그를 시복했다.

7. 한국에서는
1972년에 한국에 ‘프라도 수녀회’가 진출하였고, 슈브리에 신부의 뜻에 따라서 교구신부들로 이뤄진 ‘프라도 사제회’는 1975년부터 한국에 있어왔으며, 1997년부터는 봉헌된 평신도 여성들로 이뤄진 ‘프라도 여성재속회’가 조직되었다.

주수욱/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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