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THE ROCK!(꼭 읽어봐!!!- 2번째 조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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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윤 [monster-31] 쪽지 캡슐

1999-07-18 ㅣ No.608

간밤에 비바람이 몹시 치더니 도시 한복판에 큰 돌덩어리 하나가 날아와 박혀있었다.

아침 출근길에 북새통이 벌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차들은 길게 늘어서서 꼼짝하지 않았고, 재빨리 지하철로 몰려간 사람들 덕분에 땅속도 아수라장이 연출된 건 역시 뻔한 일이었다.

사실 그 돌덩어리는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차선 두개를 차지한 모양새가 소형 트럭이 전복된 꼴을 하고 있긴 했지만 견인차에 달랑 싣고 강가 같은데다 던져놓으면 될 성싶은 크기였던 것이다. 실제로 교통경관에 의해 긴급하게 호출된 견인차량 몇 대가 달려오긴했다.그런데 문제는 그돌덩어리를 실으려던 인부 하나가 한사코 작업을 거부한 것이다.

"나, 난 못해!"

돌덩어리 가까이로 다가갔던 그 인부는 갑자기 뒤로 물러서며 말까지 더듬어댔다.  그러자 작업에 투입되었던 다른 사람들도 멈칫거렸다.  경찰관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이 양반이? 왜 못한다는 거야?"

그러자 문제의 그인부는 벌벌 떨기까지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가, 간밤에 꿈자리가......"

"다큰 어른이 꿈타령이나 하고 있다니"


"그, 그게 아니라구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저거호, 혹시 악령이 쓰, 씐 건지도 모, 모르잖아"

인부의 입에서 악령이란 말이 비어져나오자 갑자기 주위가 술렁거렸다

경찰관도 잠시 고민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길게 늘어서서 연신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려대고 있는 차들을 보자 강하게 도리질을 쳤다.  

"당신은 저쪽으로 물러서있어, 이봐들, 머뭇거리지 말고 서둘러!"

경찰관은 다른 인부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작업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자꾸 흘러갔고, 성질급한 운전자들이 앞질러 가기 위해 반대편차선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양쪽 방향의 차도가 소통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교통경찰관들이 대거 투입되고 반대편 차선을 상행과 하행으로 나누어 소통시키자 겨우 교통 대란만은 막을수 있었다. 하지만 간밤에 날아든 그 돌덩어리는 여전히 한쪽 차도를 완전히 막아버린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겁을 집어먹은 인부 하나 때문에 생겨난 이 어쳐구니 없는 해프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묘하게 꼬여가기만했다.

"악령 따위에 홀려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이제 그 누구도 그렇게 큰소리를 치지 않았다.  두어 시간만에 차도위의 돌덩어리는 "악령의 바위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 퇴락한 시대를 징벌하기 위해 신이 내린 형벌이야"

"저 바위를 잘못 만졌다간 손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만데"

"맨 처음 저 바위를 발견한 사람의눈이 멀어버렸다는 애기도 있어"

돌덩어리를 둘러싼 진원을 알수없는 애기가 삽시간에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방송사의 기자들과 카매라맨들로 또한번 그곳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얼마뒤, 머리가 하얗게 센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현장에 모여선 사람들을 뚫고 바위앞으로 다가가서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큼지막한 돋보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집에서 텔레비젼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곳으로 달려온 고고학자였다.  

마침 그 고고학자를 알아본 한 방송국 기자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박사님, 뭐 집히는 데라도 있습니까?"

기자의 질문을 받은 고고학자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지만,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뭔가 여운을 남겼다.  눈치바른 기자가 고고학자를 재촉했다.

"뭔가 잇는 거죠? 그쵸?"

"냄새가 나긴해.  뭐라고 아직은 단정할 수가 없지만, 이건 고인돌의 상석일 가능성이 높아요."

"고,고, 인, 돌.....?"

기자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들고 있던 마이크의 스위치를 재빨리 켜면서 고고학자의 턱밑에다 갖다댔다.  언제왔는지 그들앞에는 방송카메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인돌의 상석이 어떻게 간밤의 비바람에 이곳까지 날아올수가 있죠? 아니면 누군가 옮기다가 여기에 떨어뜨린건 아닐까요?"

이번엔 고고학자의 눈이 번쩍거렸다.

"그럼 누가 고인돌을 도둑질이라도 하였더라는 말이요?"

"그게 훨씬 더 신빙성이 있는거 아닙니까! 별로 크지는 않지만 어떻게 이 무거운 돌이 비바람에 날려올수가 있겠습니까"

고고학자는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기자를 뜨악한 눈으로 한번 바라보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당황한 기자는 그의 코앞까지 디밀어진 카메라 앞에서 제멋대로 지껄여댔다. 도로위에 누워있는 돌덩어리는 아무개 고고학자가 고인돌의 상석이라고 주장했다는 애기, 그리고 그것이 도굴꾼에 의해 밤중에 몰래 운반되다가 사고로 도로위에 떨구어졌다는 애기를 그는 입에 침도바르지않고 주워섬겼다.

"젠장!"

카메라가 그를 벗어나자 기자는 도로 위에다 침을 뱉으며 낮게웅얼 거렸다.

 

 

 

 

모든 텔레리젼의 정규방송은 중단되었다.  방송국마다 느닷없이 벌어진 "바위사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 고고학자가 현장을 다녀간 뒤 얼마있지않아 지질학자가 현장을 찾았고,여러분야의 종교 연구가들이 소문대로 과연 그것이 악령이 덮인 바위인지를 조사했고,심지어 유명한 조각가도 다녀갔다.  그들이 돌덩어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이 텔레비젼 화면에 나타났고, 기자는 '바위의 정체'를 밝혀내기위해

그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 무렵, 한적한 시 외곽에 자리잡은 어느 석재공장.

마침 하던 일을 멈추고 사무실로 들어온 석공박씨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보리차를 한잔 따라 벌컥거리며 마시다가 텔레비젼 화면을 가득 채우고있는 돌덩어리를 보았다. 그는 마치 불에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고기덩어리라도 본듯 침까지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놈 참 잘생겼네, 저 녀석 조금만 손 보면 비석 몇개는 거뜬히 나오겠는걸!"

그리곤 창가에 앉아있는 경리 아가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봐, 새벽에 돌 싣고오던 석산차 뒤집어졌다더니 어떻게 됐어?, 기사는 병원에 입원했대? 그럼, 오늘 중으로 돌은 못오는 거야?"

 

 

 

 

     바위

 

이 세상 그 누구의 이름을

바위에 깊이 새기랴

 

아무리 날카로운 정으로 살점을 떼어내도

비명을 지르거나

피흘리지 않으리니

 

어디에 길이 있는지

한마디로 말해보라

 

문명은 진보해도 인간은 퇴보하는 시대

오늘도 침묵속에서

인왕산 바위들만

텅 빈 가슴을 열어보이고 있다.

 

 

                                      이외수

 

 

 

 

 

 ps: 오늘도 역시 미국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을 누나가 몹시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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