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1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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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2-08-12 ㅣ No.951

연중 제19주일(가해. 2002. 8. 11)

                                             제1독서 : 1열왕 19, 9a. 11∼13a

                                             제2독서 : 로마 9, 1 ∼ 5

                                             복   음 : 마태 14, 22 ∼ 33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한 주간은 장마때 보다 더 많은 비가 왔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물위를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아마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차도 걱정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위를 걸어다닐 수 없습니다.  결국 물위를 걸어다니는 기쁨보다는 물이 무섭고, 두렵다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물이 한 번 휩쓸고 가면 남는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물이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성서에서 물은 죽음을 상징하곤 합니다.  모든 생명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물이지만, 사람의 키보다 훨씬 깊은 강물이나 바다, 호수나 저수지 등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은 우리는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이 힘겹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해에서 험난한 바다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며 하느님 나라까지 데려다주는 '배'를 교회라고 우리는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그 배가 흔들리거나 떠내려가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오천명을 먹이신 후 제자들을 배에 태워보내시고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떠난 제자들은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죽음의 위협에 떨고 있는 자신들에게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베드로는 반가운 마음에 그분처럼 물 위를 걸으려 합니다.  온갖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우신 예수님을 닮아, 죽음을 상징하는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으려 합니다.  물 위를 걸으며 잠시 우쭐해졌던 베드로가 물에 빠지고 맙니다.  밀려오는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절규하는 베드로, 그 순간 베드로는 오직 그분밖에는 바라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절구를 그분은 모른 체 않으시고, 손을 내밀어 함께 배에 오르십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시라고, 그분이 계시지 않는 듯 살기도 합니다.  그분을 바라보던 눈길을 잃고, 그분보다 내가 더 드러나려 애쓰기도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우리는 물 속에 빠져 살려달라 버둥대곤 합니다.  흔들리는 배에서 울부짖던 제자들, 물에 빠져 살려달라 외쳐대는 베드로, 그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조용히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배에 오르십니다.

 

  오늘 제1독서의 주인공인 엘리야 예언자는 오직 야훼만이 권능을 지닌 이스라엘의 참 하느님이심을 선포하고 우상인 바알의 예언자 450명을 모두 쳐죽였습니다.  아주 통쾌하고도 멋진 승리의 장면이었으며 이때 엘리야의 놀라운 기세는 아무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광신자였던 왕후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복수를 다짐하자 그는 이제 거꾸로 무서움에 떨며 죽어라고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놀라운 신앙을 증거 하였던 그도 하느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판단했습니다.  신앙의 위기를 만난 것이며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느님께서 새롭게 다가오십니다.  엘리야는 조용하고 여린 소리 가운데 나타나신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인생은 자신의 능력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만함에 젖어 살아갈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오만함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세상의 많은 어려움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믿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어 흔들리는 우리를 잡아주십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이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아, 저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고 있구나, 나를 믿어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일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쉽게 타인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한번 신임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대한다고 합니다.  설사 그 사람이 나중에 배신할 지라도 사람을 잘못 본 자신의 눈을 탓한다고 합니다.

  "왜 하느님을 믿습니까?"  "행복해지려고요."  이 때의 행복은 좀 더 배부르고,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했을 때 느끼는 쾌락의 일종이 아닙니다.  하느님 뜻에 따른 삶의 가치를 신뢰를 갖고 선택했을 때, 그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함과 그 무엇도 겁낼 것 없는 당당함에서 비롯한 행복입니다.  믿으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믿음으로써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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