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12년 9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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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2-11-05 ㅣ No.175

Allocutio September, 2012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교회 전례 안에서의 마리아
 
레지오 교본의 마리아에 대한 묘사는 성경, 성전 및 교회의 가르치는 권한인 교도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또한 성인들, 특히 레지오의 주된 스승인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마리아와 그의 가르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 중의 하나인 성 베르나르도의 저술을 그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지오에는 마리아의 정신과 삶의 또 다른 심오한 원천이 있으며 이는 바로 교회의 전례입니다. 우리는 전례 주년 내내 마리아의 축일을 통해 마리아의 신비를 알게 되고 또 그 신비를 기념합니다. 교회가 기도하는 방식은 교회가 믿는 것을 알게 하는 확실한 방식입니다. Lex orandi, Lex credenda(렉스 오란디, 렉스 끄레덴다 :교황(422- 432년)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짧은 형태의 유명한 금언으로 ‘기도의 법칙과 신앙의 법칙은 일치한다’는 의미 – 역주), 더  쉽게 풀어 말하자면 보편 교회의 기도 생활이 그 교회가 믿고 있는 바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전례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리아에 대해 드러내 보여주신 것들에 적절한 확실하고 믿음직한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례에서 성모님의 축일이 레지오 단원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첼레스티노 1
 
그러므로 꼰칠리움의 이 9월 회합에서, 이 달에 있는 3개의 성모님 축일에 대해 잠깐 다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동정마리아 탄생 축일(9월 8일)입니다.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로, 레지오의 탄생은 성모님 탄생의 멋진 축일을 맞는 철야 기도의 날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레지오의 정신은 이 축일의 정신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이 축일의 정신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성무일도의 교송에 간단명료하게 나와 있습니다. “천주의 성모 동정녀여, 당신의 탄생은 온 세상에 큰 기쁨을 전하였나이다.”(9월 8일 아침기도 즈카르야의 노래 후렴) 기쁨은 마리아와 일치하여 살면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의 특징이 되는데 왜냐하면 마리아가 은총과 구원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계는 그런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가장 큰 환희를 가지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와가 우리에게 눈물을 주었다면 마리아는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와가 우리의 인간 본성에 상처를 주었다면 마리아는 그것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즉, 마리아의 신앙은 하와의 불신앙을 보상해 왔습니다. 하와는 이 세상에 슬픔의 한탄을 가져왔고 마리아는 기쁨의 노래를 가져왔습니다.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합니다.’” 만일 레지오가 설립된 곳마다 성모님의 특별한 현존으로 부름 받는다면 레지오는 기쁨의 정신과 모든 사람에게 은총과 구원을 주는 조직으로 성격 지어져야만 합니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도 또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모두 같이 와서 즐거이 세상 전체에 기쁨이 탄생했음을 찬양합시다. 이 날은 이 세상의 구원이 시작된 날입니다. 마리아는 순결한 문으로 하느님께서 아 문으로부터 또 이 문을 통하여 이 세상에 당신의 육화된 모습을 막 보여주려고 하십니다.”
 
두 번째 축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 영명 축일(9월 12일 : 1513년 경부터 시작되었으나 1969년부터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과 겹친다는 이유로 축일 지정 제외-역주)입니다. 마리아의 이름에 대한 주제는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마리아가 매우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 세상의 구원이 성모송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각 개인의 구원도 성모송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이름을 부름으로써 건조하고 삭막한 세상에 생명의 열매를 가져오눈 것처럼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기도 중에 경건하게 불러도 하느님의 말씀이 영혼 안에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고 예수님께서 생명의 열매를 맺으시게 될 것입니다. 성모송은 천상의 이슬로 우리 영혼의 땅에 물을 공급하고 제때에 열매를 맺게 합니다.” 묵주기도가 레지오에게 그렇게 귀중한 것은 마리아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른다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세 번째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입니다. 수세기에 걸쳐 마리아의 고통에 대해 언급한 몇몇의 여러 목록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마리아의 고통과 슬픔은 요한복음에 간결한 구절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있었다.”(요한 19,25) 그리스도의 수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마리아의 동정심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유일하고 독자적인 근원을 갖고 있으나 하느님의 무한하신 관대함을 통해 주님의 구원 사업에 당신만의 방법으로 우리도 각각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도직 활동이란 것이 사제와 평신도 사도직 둘 다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 외에 마리아가 우리의 구원 활동에 함께 하는 것은 최상이며 필수적입니다. 이것이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 또는 구원의 협력자(Co-Redemptrix : 교황청의 인준을 받은 성모님의 호칭은 아닌 듯함-역주)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이고 또, 이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 스며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프랭크 더프가 성모칠고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에 대해 가졌던 특별한 신심을 기억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들, 특히 교회와 레지오가 마리아에 대해 사용하는 표현과 우리가 마리아께 가진 신심의 형태를 불편하게 여기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을 만납니다. 때에 따라 그 표현이 전문적이고 복잡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표현들의 진실성과 사실성은 매우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런 어려움에 대답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마크 미라발 박사(Dr. Mark Miravalle)의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복되신 성모님의 역할을 공동 구속자로 심도 있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예’라고 응답하고 그럼으로써 피앗(Fiat : 그대로 이루어지소서)으로 수락한 주님 탄생 예고 때에 마리아는 구세주께 구원의 수단을 드린 것입니다. 즉, 그분의 육화된 몸입니다. 성모님의 공동 구속자 역할에 대한 교황의 위엄있는 정의에 관해 제가 캘커타의 고(故) 마더 데레사 수녀와 가진 대화에서 데레사 수녀가 말하기 시작한 지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마리아가 공동 구속자라는 것은 물론이고 말고요. 마리아가 예수님께 몸을 드렸고, 예수님의 그 몸이 우리를 구원하신거죠.’ 이에 저는 다음과 같이 응대하였습니다. ‘수녀님, 신성(神性)과 신학 사이의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수녀님께서 2분 동안 말씀하신 것이 신학자에게는 책 3권을 쓸 수 있는 분량입니다.’”
 
이 훈화에서 9월에 있는 성모님의 세 축일에 대해 제가 단지 맛만 보여드렸으나 만일 여러분이 전례 주년 상에서 성모님에 대한 모든 축일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면, 여러분은 마리아의 신비에 대한 점차적으로 확실히 이해하고 마리아에 대한 훨씬 더 참된 신심을 함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레지오 가족은 이 모든 축일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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