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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필독]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과 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 773_love divine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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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권고 [119.194.105.*]

2016-04-30 ㅣ No.1691

 

질문 1: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과 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요?

 

질문 2: 피조물에 의한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의 한 예(an example)가 성경 본문에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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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질문 1: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과 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요?

 

질문 2: 피조물에 의한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의 한 예(an example)가 성경 본문에 있는지요?

 

 

1. 질문 1에 대한 답변 시작:

 

아래의 제2항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의 저자인 Hardon 신부님의 "거룩한 성체"에 대한 글 중에서 발췌한 글인데, "divine love(신성(神性)적 사랑/신성(神性)에 기인하는 사랑)"이라는(*1) 용어의 정의(definition)가 분명하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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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1) (중간 결론 1) "하느님의, 신성(神性)적/신성(神性)에 기인하는, 사랑(God's divine love)" 혹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적/신성(神性)에 기인하는, 사랑(Christ's divine love)" 등의 표현이, 다음의 파란색 글들을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문헌들에서 사용되어 왔으므로, "divine love (프랑스어: amour divin)"를 단순히 "하느님의 사랑"으로 번역하는 것이 번역 오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God's divine love" site:vatican.va

"Christ's divine love" site:vatican.va

"His divine love" site:vatican.va

 

(2) (중간 결론 2) (i) 아래의 글[즉, 본글의 제2항]을 읽고서, 그리고 (ii) 바로 아래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칠극卷之二_평투]의 마지막 부분(제829쪽, 게시자 주))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미 도출한 결과들에 근거하여,

http://ch.catholic.or.kr/pundang/4/천학초함/칠극/칠극卷之二_평투.htm <--- 필독 권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다음을, 즉, (2-1) - (2-5)를 본글의 결론들으로서 도출합니다

 

(2-1)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신성(神性)적 사랑'/'신성(神性)에 기인하는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실천하라는 새 규범(new precept)인, 예수님의 새 계명 안에 오로지(only if) "애덕(charity, caritas)"으로 불리는 초자연적(supernatural) 사랑(amor)의 행위가 가능할 수/존재할 수 있다.

 

즉, 초자연적(supernatural) 사랑(amor)"애덕(charity, caritas)"의  행위는 "신성(神性)적 사랑/신성(神性)에 기인하는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이라는 규범에 포함되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설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성(神性)적 사랑/신성(神性)에 기인하는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실천하라는 새 규범(new precept)인, 예수님의 새 계명 안에는 망덕(희망)이라는 덕(the virtue of hope)을 가지게 하는, 자기 본위의(self-interested) 그러나 이기적이지 않은(not selfish)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amor)의 행위가 있고 그리고 이 덕은 초자연적 애덕을 말하는 "애덕(charity, caritas)"아닐뿐만이 아니라, 또한, 예를 들어,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 등의 구약 시절의 성인(saints)들이 하느님을 위하여(for) 하였던 사랑, 그리고, 다른 자를 위한 사랑인애(, 예를 들어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의 행위, 그리고 부부애(夫婦愛, sposual love)의 행위 등은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실천하라는 새 규범(new precept)인, 예수님의 새 계명에 포함되는 행위이나, 그러나, 들로서 제시한 이 사랑 행위들은 초자연적 애덕을 말하는 "애덕(charity, caritas)"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2) 더 나아가, 존경하옵는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년)님께서, 모두가 마땅히 받아들여/수용하여 지켜야 하는 인륜의 근본 규범(fundamental precept of morality)이라고 제시하신, 다른 자들을 위한 사랑 행위인, "인()"의 행위는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실천하라는 새 규범(new precept)인, 예수님의 새 계명 안에 포함되나,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인()"의 행위는 초자연적 애덕을 말하는 "애덕(charity, caritas)"의 행위가 아니다.

 

(2-3)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85항에서 발췌한 다음의 문장은,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실천하라는 새 규범(new precept)(precept)인, 예수님의 새 계명이, 무한히 선한 참 하느님(true God)이시고 그리고 아무런 죄도 없고 또 아무런 결함/흠도 없는 참 사람(true man)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출처 1: https://www.vatican.va/archive/catechism_lt/p1s2c1p7_lt.htm#Paragraphus 7 LAPSUS [주: 라틴어 정본]

출처 2: https://www.vatican.va/archive/FRA0013/__P1D.HTM [주: 프랑스어본]

출처 3: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1s2c1p7.htm#385 [주: 영어본 옛 주소]

https://www.vatican.va/archive/ENG0015/__P1C.HTM [주: 영어본 또다른 주소]

(발췌 시작)

Revelatio amoris divini in Christo simul extensionem mali et superabundantiam gratiae manifestavit.

 

La révélation de l’amour divin dans le Christ a manifesté à la fois l’étendue du mal et la surabondance de la grâce (cf. Rm 5, 20).

 

The revelation of divine love in Christ manifested at the same time the extent of evil and the superabundance of grace.25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의 드러냄(the revelation of divine love)(#)은 동시에 [윤리적] 악(evil)의 범위/정도(extent)와 은총(grace)의 엄청나게 넉넉함/과다(superabundance)를 분명하게 나타내었습니다(manifested)(로마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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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여기서 말하는 바로 이 드러내어진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이, (i)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에 의하여 드러내어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실천하여야 하는 새 규범(precept)인, 예수님의 새 계명인,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하여라(diligatis)"[요한 복음서 13,34(diligatis).35(dilectionem; 15,12(diligatis).17(diligatis); 로마 13,8(diligatis); 1테살로니카 4,9(diligatis); 1요한 3,11(diligamus).23(diligamus); 4,7(diligamus, diligit).11(diligere).12(diligamus); 2요한 1,5(diligamus)]에서 드러내어진 바로 그 사랑/사랑 행위[라틴어: dilectio, 프랑스어: dilection, 영어: dilection]를 말함에 반드시 주목하고.(#2) 그리고 (ii) 바로 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준수하셨고 또 실천하셨음(요한 복음서 13,1,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09항)을, 말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내용 추가 일자: 2024-05-09]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근거를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예수님의_새_계명과_신성적_사랑이라는_법과_하느님의_뜻과_영원한_법은_일치한다_1562.htm <----- 꼭 필독 권고

[이상, 2024-05-09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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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4) 따라서, 당신 자신을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이라고 부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자(仁者)들 중의 인자(仁者)", 즉,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수용한 자들 중의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수용한 분, 즉, 지고한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수용한 분이시고, 그리고  역(converse)도 성립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실천하여야 하는 새 규범(precept)인, 예수님의 새 계명, 즉,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하여라(diligatis)"[요한 복음서 13,34(diligatis).35(dilectionem; 15,12(diligatis).17(diligatis); 로마 13,8(diligatis); 1테살로니카 4,9(diligatis); 1요한 3,11(diligamus).23(diligamus); 4,7(diligamus, diligit).11(diligere).12(diligamus); 2요한 1,5(diligamus)]에서 드러내어진 바로 그 사랑/사랑 행위[라틴어: dilectio, 프랑스어: dilection, 영어: dilection]를,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준수하고 또 실천하셨기(요한 복음서 13,1,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09항) 때문이다.


(2-5)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970항에서 발췌한 다음의 문장은,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실천하라는 새 규범(new precept)", 즉, 예수님의 새 계명 안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 쪽으로 믿음/신뢰를 통하여 열심 신자들에게 제공되는, 성령의 은총인, 한 개의 사랑의 법(a law of love)이라고 불리는(CCC 제1972항), 한 개의 은총의 법(a law of grace)이라고 불리는(CCC 제1972항)한개의 자유로움의 법(a law of freedom)이라고 불리는(CCC 제1972항)복음의 법, 즉, 새 법[the New(kainos) Law, 즉, 옛 법(the Old Law)보다 질적으로 더 우수한 법]"가능함/있을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3s1c3a1.htm#1970 

(발췌 시작)

CCC 1970 [...] The entire Law of the Gospel is contained in the "new commandment" of Jesus, to love one another as he has loved us.

 

CCC 1970 [...] 복음의 법 전체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한 복음서 15,12; 13,34 참조).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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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음의 참고 자료들을 클릭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라틴어 정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분문 중에서 "divine love"로 번역된 라틴어 본문 중의 해당 문장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divinae dilectionis" site:dhspriory.org/thomas/summa [주: 옛 검색]

"divinae dilectionis" site:logicmuseum.com/wiki/Authors/Thomas_Aquinas [(2023-12-25) 주: 새 검색][(2024-05-09)주: "divine love"에 대응하는 라틴어 표현인 "divinae dilectionis"가 "the love of God"로 번역된 번역 오류가 몇 군데 있음]

참고 자료 2: "divini amoris" site:dhspriory.org/thomas/summa [주: 옛 검색]

"divini amoris" site:logicmuseum.com/wiki/Authors/Thomas_Aquinas [(2023-12-25) 주: 새 검색]

(이상, (*1) 번역자 주 끝) 

 

2. 

게시자 주: 여기서부터 이번 글의 본문이 시작합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archives/Eucharist/Eucharist_054.htm

(발췌 시작)

What is Divine Love?


무엇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인지요?

 

Surely, no single monosyllable is more common in the literature of the human race than love. And by now, there are as many meanings of love as there are human beings. But what does it really mean to love? To love means to will good to someone, velle bonum aliquis. It also means to please someone either by sharing with that person what one possesses or by doing what someone wants.

 

확실하게, 어떠한 단독의 단음절어(monosyllable)도 인류의 문헌에 있어 사랑(love)보다 더 흔하지(common)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많은 의미들이, 인간들이 많이 있는 만큼,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사랑한다는 것(to love)은 어떤 이(someone)에게 선(good)을 의도하는 것, velle bonum aliquis, 을 의미합니다.(*2)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이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바를 바로 그 인격과 함께 나눔 혹은 어떤 이가 원하는 바를 행함 이들 둘 중의 하나으로써,(*3) 즐겁게 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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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자 주: 여기서 말하는 "어떤 이(someone)"는, 다른 이오로지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당사자 자신과 다른 이 둘 다를 말한다. "사랑하다(to love)" 동사의 바로 이 정의(definition)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66항에서 대단히 잘못 제시되어 있다(번역 오류). 다음의 글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36.htm <----- 필독 권고

 

또한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66항에도 번역 미숙/오류가 있음은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에서 지적되고 있다.

 

(*3)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바로 이들에 포함되는 우의적 사랑(the love of friendship)의 구체적인 실천을 위하여 권고하는, (i) 7개의 물적 자선들, 즉, "형애긍지행 7단" 그리고 (ii) 7개의 영적 자선들, 즉, "신애긍지행 7단"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형신애긍지행14단의_성경_출처들_2974.htm <-----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형신애긍지행14단의_성경_출처들_및_실천_사정들_3003.htm <-----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53.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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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ally, there are two kinds of love. They are not mutually exclusive, but they are distinctive. With self-interested love, I love another person, but for my own sake — for my sake as something useful or pleasant: “I love you. You are good to me. You satisfy me.” But there is another love much higher, the love of friendship. With this love, I have a selfless love for another person, for that person’s sake, for his or her good. To please that person is a love of benevolence.

 

기본적으로, 사랑의 두 종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상호 배타적이 아니며, 다만 그들은 [논리적으로] 구분될 뿐입니다. 자기본위의 사랑(self-interested love)[즉, love of concupiscence, 사욕(私慾)/사욕편정(私慾偏情)에 기인하는 사랑, 사욕(私慾) 사랑/사욕편정(私慾偏情) 사랑]과 함께 나는, 다음과 같이,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유용한 혹은 즐거움을 주는 어떠한 사물로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다른 인격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선합니다/좋습니다. 당신은 나를 충족시킵니다." 그러나 더 고급의, 우의(友誼)에 기인하는 사랑/우의(友誼) 사랑(love of friendship)이라는 또다른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사랑과 함께, 다른 인격을 위한, 바로 그 인격의 목적(sake)을 위한, 그자 혹은 그녀의 선(good)을 위한, 어떤 이기적이지 않은(not selfish) 사랑을 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정한 혼인하게 된 사랑(즉, 혼인한 부부 사이의 사랑, germanus amor coniugalis)이 포함되는 벗을 위한 사욕 사랑(love of concupiscience)]. 바로 그 다른 인격을 즐겁게 하는 것은 선의(善意)에 기인하는/선의(善意)의 어떤 사랑(a love of benevolence)입니다.

 

But how is divine love different from human love? Human love is the love of human beings, out of human motives and in a human way. On the other hand, divine love is the love for God or the love for others out of love for God in a divine way.

 

그러나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으로부터 어떻게 다른지요? 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인간적 동기들에 기인하는 그리고 어떤 인간적 방식으로, 인간들 사이의 사랑을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은 (i) 하느님을 위한(for) 사랑 행위(dilection) 혹은, (ii) 하느님을 위한(for) 사랑에 기인하여 어떤 신성(神性)적 방식으로(in a divine way), 다른 이들을 위한(for) 사랑 행위(dilection)를 말합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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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번역자 주: 바로 여기서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정의(definition)가 주어지고 있는데, 바로 이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그리고 당신 자신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실천하셨던(요한 복음서 13,1,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09항) 새 규범(precept)인, 예수님의 새 계명인,,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하여라(diligatis)"[요한 복음서 13,34(diligatis).35(dilectionem; 15,12(diligatis).17(diligatis); 로마 13,8(diligatis); 1테살로니카 4,9(diligatis); 1요한 3,11(diligamus).23(diligamus); 4,7(diligamus, diligit).11(diligere).12(diligamus); 2요한 1,5(diligamus)]에서 드러내어진 바로 그 사랑/사랑 행위[라틴어: dilectio, 프랑스어: dilection, 영어: dilection]를 말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 때에, 위의 제(2-5)항에 발췌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70항을 반드시 읽도록 하라.

 

[내용 추가 일자: 2024-05-09]

(#)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근거를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예수님의_새_계명과_신성적_사랑이라는_법과_하느님의_뜻과_영원한_법은_일치한다_1562.htm <----- 꼭 필독 권고

[이상, 2024-05-09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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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let’s look at divine love for God Himself. When we say divine love is the love of God, we include both levels of loving God. On one level, self-interested (but not selfish) love of God is really the virtue of hope. Indeed, we love God, but we love Him with the expectation He will reward us for our love by blessing us with His gifts in this life and with the gift of Himself in the life to come. On another level, totally selfless love of God is more than just a higher degree of the self-interested love. It is really an elevated, higher kind of love. It means I love God, not precisely because I expect to be rewarded for my love, but because God is so good, so great, so lovable in Himself that I want to please Him and do whatever He wants, just because He wants it and not because I will get anything from Him in return. The highest form of love of God is loving Him without looking for or expecting any recompense.

 

첫 번째, 하느님 당신 자신을 위한(for)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을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the love of God)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느님을 사랑함에 있어서의 둘 다의 수준(levels)들을 포함합니다. 하나의 수준에서, 하느님에 대한 자기본위의(self-interested) [그러나 이기적이 아닌(not selfish)] 사랑은 실제로(really), [통상적으로] 희망이라는 덕(망덕, the virtue of hope)을 말합니다. 정말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그러나 우리는 당신께서 우리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에게, 바로 이 삶에서 당신의 선물들로 그리고 장차 오게 될 삶에서 당신 자신이라는 선물로 우리를 축복하심으로써, 장차 보상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당신을 사랑합니다.(#1) 또다른 수준에서, 하느님에 대한 전적으로 이기적이지 않은(not selfish) 사랑은 단지 어떤, 자기본위의 사랑의 고급의 정도보다 더 선한/나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실제로 사랑의 어떤, 승격된(elevated), 고급의 종류입니다. 이 사랑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내가 나의 사랑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을 내가 예상하기 때문이 정확하게 아니고, 다만 하느님이 당신 자체로 너무도 선한 분이시고 너무도 위대한 분이시며 그리고 너무도 자애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그리하여 그 결과, 단지 당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는 이유 때문만인 것이지 내가 당신으로부터 댓가로(in return) 어떠한 것을 장차 갖기 위함 때문이 아닌 이유로, 당신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을 그리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바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을 내가 원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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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따라서, 바로 이 신성적 사랑은, 하느님, 나, 그리고 이웃 이렇게 3자들 사이에 있어, 사실은, 피조물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 그리스도교 윤리 규범(moral precepts)들을 충족시켜야 하는 "당사자 자신을 위한 신성적 사랑"(the divine love for me/myself)"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그리고 바로 이 "당사자 자신을 위한 신성적 사랑"(the divine love for me/myself)""하느님을 위한 신성적 사랑"(the divine love for me/myself)" 이 들 둘 다에 화답하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희망이라는 덕(망덕, the virtue of hope)자연적 애덕(natural caritas)초자연적 애덕(supernatural caritas) 이들 둘로 구성되는 속(屬)적 애덕(generic caritas)에 적절함(pertains to)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라. 

 

(#2) 번역자 주: 따라서, 바로 이 신성적 사랑은, 하느님, 나, 그리고 이웃 이렇게 3자들 사이에 있어, 사실은, 피조물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그리스도교 윤리 규범(moral precepts)들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하느님을 위한 신성적 사랑"(the divine love for God)"임에, 따라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애덕(caritas, charity)에 적절함(pertains to)에, 반드시 주목하라. 달리 말하여, 하느님을 위한 신성적 사랑에 화답하는 이 애덕은, 따라서, 자연적 애덕(natural caritas)초자연적 애덕(supernatural caritas) 이들 둘로 구성되는 속(屬)적 애덕(generic caritas)에 적절함(pertains to)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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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also remember that divine love includes love for others out of love for God. But we must stress that this love of others is always based on our love of God, flowing from our love of God, expressing our love for God, putting into practice our love of God, proving our love of God and living our love of God.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이 하느님을 위한(for) 사랑(dilectio)에 기인하는(out of) 다른 이들을 위한(for) 사랑(dilectio)을 포함함을 또한 기억하도록 합시다.(*5) 그러나 다른 이들에 대한 바로 이 사랑이, (i)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ii) 하느님을 위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iii)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실천 안쪽으로 앉히는, 그리하여 (iv)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고 그리고 (v)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실천하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항상 근거하고 있음을 반드시 강조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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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번역자 주: (1) 다른 이들을 위한(for) 자연적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랑이 하느님을 위한(for) 사랑에 기인할 경우에는 또한,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인데, 이는 이 사랑 또한, 결국에, 하느님을 위한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2) 따라서, 바로 이 신성적 사랑은, 하느님, 나, 그리고 이웃 이렇게 3자들 사이에 있어, 사실은, 피조물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그리스도교 윤리 규범(moral precepts)들을 충족시켜야 하는 "이웃을 위한 신성적 사랑"(the divine love for neighbor)"임에, 따라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애덕(caritas)에 적절함(pertains to)에, 반드시 주목하라. 특히 바로 이 "이웃을 위한 신성적 사랑"진정한 혼인하게 된 사랑(즉, 혼인한 부부 사이의 사랑, germanus amor coniugalis)이 포함되는 벗을 위한 사욕 사랑(love of concupiscience)이 포함됨을 결코 잊지 말라.(#) 달리 말하여, 이웃을 위한 신성적 사랑에 화답하는 이 애덕은 자연적 애덕(natural caritas)초자연적 애덕(supernatural caritas) 이들 둘로 구성되는 속(屬)적 애덕(generic caritas)에 적절함(pertains to)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라.

 

[내용 추가 일자: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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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39항에 제시된 가르침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892.htm

(발췌 시작)

 

출처 1: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doctrine/doctrine_view.asp?menu=doctrine&seq=7702&level1=2&level2=2&level3=3&level4=7&level5=0&level6=4&level7=1&lang=la_ko&topkey=1639 

 

출처 2: https://www.vatican.va/archive/ENG0015/__P54.HTM 

(발췌 시작)

1639 Consensus quo coniuges sese mutuo dant et accipiunt, a Deo Ipso sigillatur. Ex eorum foedere, “institutum ordinatione divina firmum oritur, etiam coram societate”. Sponsorum foedus in Dei cum hominibus inseritur Foedus: “Germanus amor coniugalis in divinum amorem assumitur”.

 

1639 The consent by which the spouses mutually give and receive one another is sealed by God himself.141 From their covenant arises "an institution, confirmed by the divine law, . . . even in the eyes of society."142 The covenant between the spouses is integrated into God's covenant with man: "Authentic married love is caught up into divine love."143

 

1639 바로 그것에 의하여 배우자(spouses)들이 공동으로(mutually) 서로 주고 받은 승낙(consent)은 하느님 당신 자신에 의하여 봉인된다(is sealed).141 그들의 계약으로부터 "심지어 사회의 눈들 안에서, ... 신법/신성적 법(the divine law)에 의하여 확인된, 한 개의 제도[an institution, 즉, 한 개의 가족 제도]"가 일어난다.142 배우자들 사이의  이 계약은 다음과 같이 사람(man)과 하느님의 계약(covenant) 안쪽으로 통합된다(integrated into): "진정한, 혼인하게 된(married), 사랑(amor)은 신성적 사랑(divinum amorem, divine love) 안쪽으로(*) 완전하게 받아들여진다(assumitur, is caught up into)."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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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자 주: 여기서 말하는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https://www.catholiccrossreference.online/catechism/#!/search/"divine love"

 

신앙과 윤리(faith and morality)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적 가르침에 포함되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서 10번에 걸쳐 말해지고 있는(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 385, 609, 678, 1639, 1804, 1827, 1991,2090, 2094, 그리고 2801항), 예수님의 새 계명에서 실천할 것이 명해지고 있는, 그리스도교 윤리 규범(moral precepts)들을 충족시켜야 하는 바로 그 신성적 사랑(divine love)를 말한다 [특히, 우리말본이 아닌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91항 필히 참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졸고를 학습할 수 있다. 제6-2-1항을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예수님의_새_계명과_신성적_사랑이라는_법과_하느님의_뜻과_영원한_법은_일치한다_1562.htm <----- 꼭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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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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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4-05-17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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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ly, as with faith and hope, divine love is impossible without divine grace. Divine love is supernatural love and is impossible to practice naturally. It must be nourished and sustained by the grace of God. In fact, divine love doesn’t even begin to exist unless it first has been touched by grace. Christ’s statement at the Last Supper “without me you can do nothing” is especially true when it comes to divine love. Nowhere is this statement more real than when it comes to loving God as He wants to be loved. We cannot do it without Him. It can only be done with the divine grace which comes from Christ as God and through Christ as man. Call this the alphabet of faith, but we have to explain what this alphabet is before we use it to penetrate more deeply into the mystery of the Holy Eucharist.

 

끝으로, [초자연덕들인] 신덕(faith, 믿음)망덕(hope, 희망)과 함께에서 처럼,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은 신성(神性)적 은총(divine grace)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은 초자연적 사랑(supernatural love)이며 그리하여 자연적으로/본성적으로 실천하는 것불가능합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의 은총(the grace of God)에 의하여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하고 그리고 유지되어야 합니다. 사실,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는 심지어, 만약에 그것이 은총(grace)에 의하여 이미 접촉되지 못하였다면, 존재하기 시작하지도 못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복음서 15,5)라는 서술은, 이 서술이 [우리가 그 주체로서 하게 되는]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 amour divin)에 도달할 때에, 특별히 참(true)입니다. 이 서술은 하느님을, 당신께서 사랑받기을 원하시는대로 사랑함에 도달할 때를 제외하고, 어느 장소에서도 더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즉,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으로서 그리스도로부터 및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comes), 신성(神性)적 은총(divine grace)과 함께만 오로지 행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신앙(faith)의 알파벳[즉, 기초]이라고 부르는데,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이것을 사용하기 전에, 거룩한 성체의 신비 안쪽으로 더 깊숙히 침투하기 위하여, 바로 이 알파벳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여야 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이어지는 글로서, 영어가 수월한 분들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십계명 해설(Explanation of the Ten Commandments)"을, 아무리 바쁘더라도 적어도 이 해설의 서문(Prologue)을, 또한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dhspriory.org/thomas/TenCommandments.htm <----- 필독 권고

 

예를 들어, 다음의 key words 들이 이 해설의 서문(Prologue)에서 사용되고 있다:

 

"law of fear" "law of love" "law of charity and grace" "law of divine love"
"law of Christ"  -"summa theologica" site:dhspriory.org/thomas

 

그리고 다음의 key words 들이 이 해설의 서문(Prologue)에서 사용되고 있다:

 

"law of nature" "law of concupiscence" "law of Moses" "law of Scripture"
"law of divine love" "law of Christ"  -"summa theologica" site:dhspriory.org/thomas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6월 14일]

질문 2: 피조물에 의한, 하느님을 위한 사랑(the love for God)을 말하는, 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의 한 예(an example)가 성경 본문에 있는지요?

 

 

4. 질문 2에 대한 답변 시작


4-1. 예, 있다는 생각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루카 7,35-50), 다해 연중 제11주일 복음 말씀(루카 7,36-8,3)에 포함되는, 상등통회(上等痛悔, perfect contrition)의 성경 근거 구절인 루카 복음서 7,47을 한 예로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새 번역 성경"의 루카 복음서 7,47인과 관계가 뒤바뀌는 번역 오류의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한 글들인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들을 여러 번 천천히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74.htm [제4항]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75.htm <----- 필독 권고

 

4-2. 그리고 많이 부족한 최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바로 위의 주소들에 있는 글들에서지적하고 있는 인과 관계가 뒤바뀌는 번역 오류라는 동일한 문제가 NAB(New American Bible), GNB(Good New Bible) 루카 복음서 7,47)에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1월 14일]

4-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본글에 이어지는 졸글[제목: 3자들 사이의 자연적 사랑 dilectio 에만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 가능하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3.htm <----- 필독 권고

[이상, 2021년 11월 14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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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15시간 (자료 조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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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_T_SOH,신성적_사랑(divine_love)의_세_종류들,CCC1970,새계명,새법,복음이라는법,사랑이라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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