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6월 21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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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환 [franco2] 쪽지 캡슐

1999-06-21 ㅣ No.102

08:20 - 아침 미사를 마치고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여전히 평온한 모습이다. 성모동산에서는 몇몇의 신자들이 아침기도를 드리고 있다.

      몇 대의 차량들이 출근을 위해 미사를 마치고 언덕을 내려가고, 계성 초등학교와

      여고에는 벌써 학생들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듯 보인다.

        언덕은 토요일과 주일에 많은 신자들의 출입으로 공사를 쉬었다.

      완성된 계단의 뼈대가 허옇게 말라 있어 더욱 덥게 느껴져 갈증을 느끼게 한다.

      고압선을 묻기위해 파헤쳐지고 난 뒤, 콘크리트를 치고 비닐과 헝겁으로 덮어논

      바닥이 어수선해 보이고 지저분해 보인다. 빨리 마무리를 서둘러야 하겠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당마당 맨 앞쪽 언덕 끝의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상 아래로 8동의 천막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마치 예수님께서 그 천막들을 품고 있는 듯이 보인다. 몇몇

      농성자들이 부시시한 얼굴로 목에 수건을 두르고, 칫솔을 들고 세면하러 마당을 가로

      지르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어떤 이들은 코펠을 들고 수돗가로 천천히 걸음을 옮

      기고 있다. 아침당번인 듯 보인다.

 

        민주노총 단식농성단 3동의 천막에는 "단식 8일째"라는 붉은 글씨가 걸려있다.

      단식 8일째라면 긴장감도 돌고 건강도 문제가 되련만 평온하기만 하다. 어찌된걸까?

      어쩌면 어제 마당을 지나가다 만났던 민노총의 한 간부의 "우리 국민의 정서상

      지금쯤은 벌써 단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두 잊고 있겠죠."라는 자조적 말처럼

      모든것이 잊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아니면 어떤 사람의 "단식 7일째

      인데 모두들 건강해 보인다"는 의심의 말처럼 정말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의심을 하던간에 그래도 그 사람은

      적어도 단식농성에 대한 관심은 있어 보인다.

 

        다른 수배자들의 천막에는 "수배 103일째"라는 붓글씨가 걸려 있지만, 잘 쓰여진

      글씨조차 무더위에 지친 듯 힘겹게 보일 뿐이다.

 

        천막의 대표들에게 성당의 행사나 성당의 관례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서 인지, 이제는 질서도 유지됐고, 성당의 행사에 방해되지 않도록 그들도 애써

      준 덕분으로 차분하게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결국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만 지리하게 시간만 계속 흐고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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