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울성당 게시판

낙엽 줍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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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선 [yu1214] 쪽지 캡슐

2000-07-23 ㅣ No.1229

 

 

가을이 되면 아버지는 거리에 즐비하게 나뒹구는 낙엽 때문에 더 바빠지십니다.

 

벌써 10년이 넘게 청소부 일을 해오신 아버지는 가을이면 퇴근길에 낙엽 몇 잎을 주워와 소주 몇 잔을 들이키고

 

멀거니 낙엽을 바라보면서 "야! 이거 참 예쁘지?" 하고는 내 손에 쥐어 주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어요.

 

뒹구는 낙엽이 아닌 장미꽃과 푸짐한 선물을 안고 들어오시는 능력 있는 아버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시인도 아닌 아버지가 주름만 쪼글쪼글 잡힌 추레한 모습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낙엽을 보실 때마다 누가

 

볼까 봐 창피했고 가슴이 옥죄어 들곤 했지요.

 

대학에 진학한 저는 준수하고 깨끗한 정서에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풍요로운 미소 앞에 설 때면 늘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무게에 짓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을이 시작되어 낙엽이 뒹굴기 시작할 무렵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의 슬픔을 말했습니다.

 

"괜찮아. 바보같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아버님인데, 널 이렇게 예쁘게 키워 주시고 대학까지 보내 주셨잖니."

 

그는 나를 꼬옥 안아 주었고 저는 그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엊그제 그는 아버지에게 선물할 낙엽을 주워야 한다며 저를 수목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그와 함께 주운 낙엽을 아버지께 드리고 소주를 한 잔 따라 드렸습니다.

 

"네가 웬일이냐?" 의아해 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저는 "죄송해요. 아버지" 하며 기어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어요.

 

아버지는 그런 저를 말없이 꼬옥 안아 주셨지요.

 

황갈색 낙엽은 열어 놓은 창으로 들어온 바람에 살랑거렸습니다.

 

거리에서 그러하듯 이름 모를 어느 숲에서 그러하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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