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성당 게시판

산골 공소의 선교사 이야기.(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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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지 [JEJUBLUE] 쪽지 캡슐

2000-05-26 ㅣ No.829

안냐세여?

빵쥐 세실입니다.

오늘 저희 창세기 성서모임 책걸이 하는 날입니다.

그동안 넘나도 열시미 해왔던

한준오빠, 현숙언니, 현규, 미애, 수정, 병렬, 수봉오빠에게 감사의 말 전합니다.

 

저에게 메일이 오는 이야기인데 넘 재밌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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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공소의 선교사 일기

 

제 44 호 / 2000. 5. 18 (목) / 구름 뒤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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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거진은 강원도 산골의 천주교 공소에서 일하는

평신도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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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목사와 천주교 선교사의 입관 에큐메니컬

 

●…오후에 상남에 나갔는데 옥병이를 만났다.

엄마가 열심한 장로교 집사고, 아빠는 목수일을 하신다.

옥병이 엄마는 옥병이, 보병이, 은혜 3남매를 두었는데

초등하교 1학년인 옥병이를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고 싶어 할

정도로 개신교의 열심한 신자이다.

옥병이는 "교회에 가면 무엇이 좋니?"라고 물으면,  

거침없이 "말씀이요."라고 말할 정도로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 옥병이가 오후에 나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 슬프겠구나."

"아니요, 하늘나라에 가셨어요."

"이따 저녁 때 너희 집에 갈게"

"신부님, 꼭 오실 거지요?"

옥병이는 내가 선교사라고 가르쳐 줘도 금방 잊어먹고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아이이다.

 

저녁때가 되어 집으로 찾아갔더니 아직 입관도 안하고

모셔 놓은 상태였다. 혼자 침묵중에 연도를 하고 있는데

상남장로교회 목사님이 오셨다. 개신교 식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고 한다. 옥병이 엄마는 염과 입관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나보고 도와달라고 했다.

순간 뜨끔했다. 나도 전혀 해 본적이 없는데….

시골에 내려오기 전에 그렇게 염과 장례 예절을 배우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못배우고 온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기꺼이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목사님은 장례용품 중에서 개신교 방식에 맞지 않는 용품들을

먼저 가려내고 시신이 안치 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과연 내가 시신을 보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속으로 좀 걱정이 되긴했다. 초년 기자시절에도

사체 보는 것을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았었는데….

임시로 묶어 놓은 시신을 풀고 얼굴과 손과 발을 알콜로

닦기 시작했다. 나는 장갑도 안끼고 함께 쓱쓱 닦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베로 온 몸을 감았다. 개신교 식은 굳이 수의를 안입힌다고 했다.

시체를 만졌지만 전혀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몸이 참 차다는 느낌 뿐이었다.

 

왜소한 체구의 할머니 시체를 이리 저리 만지며 목사님과 함께

염을 하고 입관까지 끝낼 수 있었다. 목사님과 나의 얼굴에서는

구슬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속으로 무척 기뻤다.

’나도 염을 했다! 시신을 만졌는데도 거부감을 안느끼다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시골에 내려오면서 상가집이 있으면

반드시 궂은일을 앞장서서 하리라던 다짐을 이렇게 빨리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드렸다. 가족들이 무척 고마워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빈소가 마련되었다.

 

나는 얼른 집에 돌아와 염소와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성교예규 책을 갖고 다시 나갔다.

그런데 거기에 정수가 있지 않은가?

엄마가 암에 걸려 얼마 못사실거라던….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오늘 시신으로 누워 있는 옥병이 외할머니가 정수 어머니고,

옥병이 엄마가 상남에 산다는 정수의 둘 째 큰누나였다.

철원에 산다는 막내 누나도 와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정수 막내 누나는 요즘 성당에 나가고 있었다.

아직 예비자이긴 하지만. ’세상에 이럴 수가…’

하느님은 이렇게 복잡한 미스테리(?)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가족들에게 천주교식 연도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옥병이 엄마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혼자서 계응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조문객이 뜸한 시간에 나는 혼자 시신이 모셔진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한번 향을 피우고 연도를 노래로 하기 시작했다.

숨이 찼다.

갑자기 누가 들어와 연도를 못하게 할까 걱정하면서

그래도 35분만에 연도를 마칠 수 있었다.

 

밖에 나오니 모닥불가에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돌아가신 분 이야기, 상남 이야기,

그리고 선교사인 나에 대한 이야기까지 화제로 올려

보름달이 기울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옥병이가 "신부님"이라며 오라고 해서 기뻤고,

처음으로 염을 도울 수 있어서 기뻤고,

목사님과 둘이서 염을 했다는 사실도 기뻤고,

그렇게 마음에 두었던 정수 어머니를 염할 수 있어서 기뻤고,

정수 막내누나가 성당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기뻤고,

개신교식 장례에서 연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기뻤고,

더더욱 기뻤던 것은 혼자서도 느긋하게

연도를 해냈다는 사실이 참 기뻤다.

오늘은 하느님이 준비하신 복잡하고 기쁜 날이었다.

<4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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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공소의 선교사 일기 / 발행 최요안 /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미산2리

천주교 상남공소 / jachoi@catholic.or.kr / 0365-463-8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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