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박보균의 세상 탐사] 서민을 위한다는 달콤한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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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landpia21] 쪽지 캡슐

2008-08-24 ㅣ No.7956

중앙SUNDAY
 
 
독자한테 메일이 왔다. 고교생 딸을 둔 평범한 주부 조모(41·경기도 수원시)씨. 광우병 괴담을 극복한 소박한 이야기다. 메일은 “순진했다”로 시작했다. 끝은 “제 얘기를 소개해 달라”고 맺었다.

“촛불시위로 난리법석일 때다. 나는 미국 유학생 귀국 소동이 벌어질 줄 착각했다. MBC PD, 야당의원, 시민·노조 운동가, 일부 대학 교수, 진보 변호사들 중 많은 사람이 자녀들을 미국에 조기 유학이나 어학 연수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미친 소=인간 광우병’이라는 공포심을 퍼뜨렸다. 당연히 광우병 불안에 어린 자식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엉뚱했지만 나로선 기발한 착상이었다. 그런데 웬걸 촛불시위가 계속돼도 자녀 소환, 집단 귀국 뉴스는 없었다. 그때 알아챘다.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소동이 없다는 것을.

그 사람들이 만든 괴담이 허풍, 진실 조작, 먹거리 악담인 것을 깨달았다.”
그 주부의 세상사 감별법은 독특했다. 떠들썩한 논쟁을 그런 방식으로 분간하다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렇지만 괴담 집단의 비열한 위선과 이중성을 실감나게 폭로하고 있다. 그 주부는 자기 판단을 놓고 이웃 주부들과 토론했다. 그 과정에서 100여 개국에서 우리처럼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탈 없이 먹고 있고, 미국에 인간 광우병 환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메일의 끝 부분은 분노와 각성을 담았다. “광우병 악담은 전염병 같았다. 두려움 속에서 부자들은 비싼 한우를 사 먹는다. 나 같은 서민은 삼겹살, 치킨 센터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촛불 세력은 국민 식탁 안전, 국민 건강 보호라며 국민을 잔뜩 팔았다. 그럴수록 순진한 서민만 피해를 본다는 이치를 터득했다. 촛불 주동자에게 한마디하고 싶다. 국민 건강은 내가 알아서 챙긴다. 싸고 맛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사 먹는 데 간섭하지 말라.”

그 주부의 관점은 정확하다. 촛불은 참여와 소통의 새로운 수단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순기능적 가능성의 순간은 짧았다. 반미·반정부의 본색을 드러냈다. 광우병 괴담은 서민들을 골탕 먹였다. ‘국민’을 내세울수록 이중성과 위선은 약삭빠르고 두터워진다. 그 주부의 시각은 교육 논란에 대입해도 유효하다.

평준화를 강조할수록 서민이 손해를 본다. 어설픈 평준화 환경에서 교사의 치열함은 떨어진다. 학생과 부모는 실망하고 학원을 찾는다. ‘평준화=서민 사교육비 절감’를 부르짖는 정치인, 시민 운동가, 대학교수, 진보 변호사들의 자식 교육을 살펴 보아라. 상당수가 자녀를 미국·중국·동남아에 조기 유학 보냈다. 겉으론 평준화지만, 집에 가면 사교육, 외국 보내기에 골몰한다. 노무현 정권 때 서민 우선과 평준화 외침은 유별났다. 그때 권력 실세들도 자녀 키우기의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돈 없는 서민들만 품질이 떨어지는 공교육에 의존한다. 서민은 평준화 깃발의 진정성을 믿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배신감과 혼란이다.

사교육을 줄이는 정답은 나와 있다. 학교를 ‘배울 것 많은 학교’로 리모델링하면 된다. 학원 못지않은 스타 교사를 키우면 달라진다. 그런 변신은 경쟁이 유일하다. 좋은 학교, 훌륭한 교사, 명품 수업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면 학생들이 학원 갈 이유가 없다. 사교육 의존도는 획기적으로 준다. 교원평가제가 변신의 확실한 출발점이다. 전교조는 그런 혁신과 경쟁을 줄 세우기 라고 거부한다. 서민 편을 든다는 전교조가 서민을 위한 공교육 향상을 막고 있다. 전교조 지도부의 자녀 교육 실상이 궁금하다.

경계해야 한다. 서민을 위한다는 달콤한 목소리는 교묘한 속임수로 바뀐다. 의심해야 한다. 그것의 정치적 노림수, 기득권 고수 목적에 이용당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중앙일보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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