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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짝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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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toughgay] 쪽지 캡슐

2000-06-06 ㅣ No.213

제가 아는 수유골에 사는 권 모군이 올린 글임다...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화창한 초여름, 어느 지방 국민학교의 운동장이다. (8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그때는 분명 국

 

민학교였다.) 그 학교 체육대회가 이틀에 걸쳐 펼쳐지고 있었다. 운동장에선 지금 사학년 야

 

구대회의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다. 3반과 6반의 대결이다.

 

공을 던지는 투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올해부터 시작한 프로야구의 영향인 듯

 

포수와 온갖 사인을 주고 받는 시늉을 한다. 뭐 사인대로 공이 들어 갈리는 없었지만 제법

 

체계가 갖추어 진 듯한 모습이다. 5회말 6반의 마지막 공격을 막아내면 이 소년 투수는 우

 

승이라는 영광과 함께 결승전 완투승을 하게 된다. 원 아웃이다. 6반의 타자는 소년투수 보

 

다 덩치가 훨씬 큰 그 반의 반장이자 강타자였다. 스코어는 6대 2다. 주자도 없기 때문에 신

 

경 쓰이지 않으련만 소년투수는 자주 덕아웃을 쳐다보았다. 덕 아웃을 자주 쳐다 본 것은

 

자기를 야유하는 6반의 계집애들 때문이었다.

 

"우우, 투수 얼었다. 투수는 집에 가서 엄마 젓이나 먹어라."

 

자기 보다 훨씬 키가 큰 계집애가 유난히 방방 뛰며 소년투수를 약올렸다.

 

’뭐야? 저거.’

 

소년 투수는 딱딱한 고무로 된 야구공을 꽉 잡았다.

 

’에라이.’

 

"퍽!"

 

이 소년 투수의 공은 남달리 빨랐다. 그 때문에 투수로 선발된 것이지만 다른 투수들에 비

 

해서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컨트롤이 들쑥날쑥해서 점수를 주었지 제대로 들

 

어가면 누구도 이 소년이 던지는 공을 칠 수가 없었다. 그 빠른 공이 6반 반장의 머리를 심

 

하게 강타했다. 플라스틱 헬멧이 벗겨져 나갔다. 고무공이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타자인

 

6반의 반장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정신이 아찔한 지 머리를 흔들어 됐다. 소년투수

 

는 그저 멀뚱히 쓰러진 타자의 모습만 바라본 채 서 있다. 자신도 좀 놀란 모양이다.

 

6반 계집애들이 난리가 났다. 반장은 그 반 여자 애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우루루

 

6반 학생들과 담임이 쓰러진 반장에게로 갔다. 아까 방방 뛰며 자신을 놀리던 그 키 큰 여

 

자애가 쓰러진 반장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원망스런 눈빛을 소년 투수에게로

 

던졌다.

 

’니가 째려 보면 어쩔건데? 참 예쁘네 근데. 여태 쟤하고는 같은 반이 되질 않았었구나.’

 

소년의 마음에 소녀가 들어 온 것은 바로 이때였다.

 

 

 

소년 투수의 빠른 공에 힘입어 3반은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자기 반 학생들이 몰려나와

 

잘했다고 난리를 쳐주었지만 소년투수는 자기 반으로 힘없이 돌아가는 6반의 학생들 틈에서

 

아까 그 여자 애를 찾고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김철민이었다. 다소 엄한 고교 교사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엄마, 그리고 여

 

동생이 하나 있는 평범한 가정의 맏이었다. 제법 잘 생긴 얼굴과 상위권인 성적, 그리고 다

 

방면으로 잘하는 것이 많아 자기 반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지만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

 

고 살고 있다. 엄한 아버지의 가정교육 탓이리라. 철민의 아버지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

 

다. 돈을 모으려고 부업으로 하는 일들이 참 많은 아버지는 아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적었다.

 

그리고 아들을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 어쩌다 야단 치는 일이 있으면 항상 ’잘난 척 하지마

 

라. 너보다 잘난 사람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그냥 평범해야 한다.’는 식으로 끝을 맺

 

어 아들이 튀는 것을 원천 봉쇄했다. 또 80년대 초부터 시작한 치맛바람의 영향으로 학교를

 

자주 찾아와 담임에게 돈 봉투를 건네거나 빵이나 우유 등을 학생들에게 돌림으로써 환심을

 

사는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과 학교에 무관심한 자신의 엄마가 비교되어 철민은 다소 열등감

 

도 있었다. 이 국민학교에는 유난히 의사와 중소기업 사장들의 자제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

 

아이들의 위치는 부모의 위치와 연관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철민은 조금 위축된

 

 

 

 

마음으로 학교를 다녔다. 자신과 어울리는 아주 친한 아이들을 제외하곤 별로 말도 없었다.

 

하지만 성격은 참으로 밝고 착했다.

 

자기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자신을 괴롭혀서 그랬는지 몰라도 여학생들에게 특히 무관심

 

했다. 그와 친해지고 싶어서 칭찬의 말을 하면서 여자애가 접근하면 슬 자리를 피해 버리고,

 

생일이라 초대를 해도 단지 여자 애의 생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철민에게 예쁜 소녀로 인식되어 마음에 들어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하지만 철

 

민이는 그 소녀가 눈에 띄지 않자 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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