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5년 6월호_특집'전쟁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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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5-05-19 ㅣ No.4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저는 태어난 흑석동에서 자랐으며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공소 시절을 기억해보면 봄, 가을 판공 때나 신부님을 뵈올 수 있었고, 어른들은 엄격한 교리시험을 거쳐야만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가장 큰 기쁨은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었고, 미사가 끝나면 신부님과 함께 식사하는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그 당시 공소신자인 우리는 교리를 충분히 배울 수 없었고 기도생활에만 익숙했습니다. 조과(아침기도), 만과(저녁기도), 그리고 묵주기도는 거르지 않고 매일 바치는 것이 생활화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쉬움을 모르고 신자로서의 긍지를 느끼고 있었는데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 당시 천주교 신자 수가 너무 적어서 우리는 늘 외롭게 살아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50년 6월 25일 뜻밖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몇 달이 지난 때였습니다. 한강다리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집은 흑석동이라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도 외갓집으로 피난을 갈 수 있었습니다. 외가 식구들은 신자가 아니었으므로 저의 신앙생활은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어도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은 전쟁과 같은 극한상황에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간의 피난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 1954년에 흑석동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제 신앙도 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해에 복사까지 되었으니 말입니다.
전쟁은 끝났어도 우리나라는 가장 어렵고 암울한 시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바쁜데도 고통과 시련을 달래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사찰이나 예배당에 가기보다는 성당에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각 성당에서는 미국에서 건너온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었고, 매일매일 강냉이(옥수수) 죽을 끓여서 배식했기 때문에 자연히 성당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새 영세자들을 가리켜 ‘강냉이 신자’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신자들은 대부분 기도생활에 충실했고 선교에 열의를 가졌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받게 된 상처, 가난과 절망을 주님께 의지하고 매달리는 심정으로 신앙이 두터웠습니다. 모두들 가난했기 때문에 신자들은 서로 나누고 돕는 생활을 했습니다. 주일이나 평일이나 성당에 오기를 즐겼고, 기도하면서 신부님 뵙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했습니다. 신앙과 생활이 그때만큼 일치된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본당인 명수대 본당(現 흑석동 본당)은 신설본당이었으나 주임이신 이경재 신부님은 매우 진보적이어서 새로운 사목방안을 세우고 실천을 강구하셨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서울대교구에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한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1956년 8월 18일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흑석동 본당에서 탄생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지만 제 어머니의 협조단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서울대교구의 레지오 첫 번째 최연소 협조단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모두가 신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분의 섭리를 뒤늦게나마 우리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956년 우리 서울교구에 레지오가 도입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세밀한 계획이셨습니다.
‘마리아의 군대’라는 용어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치른 직후여서 생활양식이나 태도에도 군대적인 요소가 깊숙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도 한국교회에 쉽고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레지오의 도입으로 한국교회의 위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와 선교가 병행될 때 복음화가 잘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각 본당에서는 레지오 마리애가 신심단체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한국교회에서 개인 신심을 공동체 신심으로 인도했고, 조직적인 선교방식을 알려주었으며 봉사와 활동의 중요성을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지금은 전쟁의 시기는 아니지만 또 다른 전쟁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6·25전쟁 때는 사람과 물질을 잃어버렸는데 지금은 진리와 도덕과 사랑을 잃어버리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께서 복음화를 위해서 다시 한번 일어나고 분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물론, 특별히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께서 통일을 위하여 6월 한 달 동안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쳐주셨으면 합니다.

 

나원균/바오로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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