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요한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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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5-31 ㅣ No.295

(공동번역성서) ~좀 길어요 끝까지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요한20:19-23)

19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닫아 걸고 있었다그런데 예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 하셨다. 20 그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21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하고 말씀하셨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여러 사람에게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숨어있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이 지금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시면 다음날이라고 시작을 합니다예수님께서 부활하신날 이라는 뜻입니다그 때는 이미 여자들과 마리아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 모두에게 전해진 후입니다뿐만 아니라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황급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예수님 만난 이야기를 전한 이후입니다그들이 다 모여 있는 것입니다.

 

(루가복음 24:31-35) 31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32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33 그들은 곧 그 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가 보았더니 거기에 열 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34 주께서 확실히 다시 살아나셔서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35 그 두 사람도 길에서 당한 일과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이렇게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이 보자마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32절 성경을 우리에게 풀어 주실 때에’ 이게 다른 거죠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설명해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웠다는 것이고 그게 신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이렇게 시몬도 이야기 하고...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본 이들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지 못한 것입니다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우리도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습니다그럼에도 우린 우리의 미래가 두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문들 잠그고 두려워 떨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그게 부활의 몸의 특징인 것입니다그리고 그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라고 인사를 하셨습니다지금 이 그림은 하느님의 은혜를 떠나서 땅안에 갇혀서빗장을 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의 처소로 하느님께서 직접 뚫고 들어오셔서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우리 주님이 뚫고 내려 오셔서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땅에 갖혀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평화의 상태로 만드는구속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제자들이 문을 열어줘서 들어온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신 것도 아닙니다.

요한묵시록 3:20은 우리에게 문을 열라고 요구하는 것 아니라 했습니다그 말씀은 이미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어떤 성화에 보면 안쪽에는 문고리가 있는데 예수님이 서계신 밖에는 문고리가 없어서 예수님은 헛손질을 하고 안에서만 열어줄 수 있으니 안에서 반응하라고 사기를 칩니다예수님은 뚫고 들어오십니다무슨 문을 두르립니까그게 구원입니다폭력적으로 뚫고 들어오셔서 그의 인생에 평화를 심어버리는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왜냐하면 인간 존재 자체가 자기 가치를 염두에 둘 수 없는 그런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창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내가 내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두려움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두려움은 내가 내 가치를 스스로 정하여 두기 시작할 때 들어오는 것입니다창세기에서 인간의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라는 것은 하느님과 비슷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하느님의 형상이라는 단어는 하느님과 똑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고린도후서 4:4) 4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이 세상의 악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이말은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라는 말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성육신 하셔서 내려와 계신대 그를 가리켜 하느님의 형상 즉 하느님이시다고 이야기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성육신 하신 상태에서 자기를 완전히 비우고 하느님께서 그 안을 하느님의 영광으로 채우심으로 하느님의 형상을 사신 것입니다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인간이 대단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지어졌단 말이 아닙니다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을 완전히 비워낸 상태에서이것을 절대 의존적 존재라고 합니다하느님의 뜻과 말씀으로만 그 안을 채워서 하느님의 장갑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장갑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그 장갑속에 주인의 손이 들어가면 그 장갑이 그 주인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그게 하느님의 형상입니다이것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삶의 원리입니다다 비워지고 하느님으로 꽉차게 되어 그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삶이 하느님의 나라의 삶의 원리입니다그것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연합을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연합도 그런 원리로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각자가 자신을 비우고 상대방이 그 비워진 속에서 뜻으로 능력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느님은 3위인데 일체인 것입니다뜻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왜냐하면 비워진 상태에서 상대방이 들어오는데 그 비워진 속을 채우는 상대방들이 모두 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뜻이 갈라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완벽하고 완전한 것입니다그게 3위 1체인 것입니다그렇게 뜻과 성품과 능력이 하나가 되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존재 양식인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각 개체가 자기를 다 비우는데 그 상대방이 나를 채우는 방식인본주의 방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존재 방식입니다그렇게 하느님 나라의 존재 방식을 따라 인간이 존재할 때 인간에게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까내 안에 하느님이 가득차 있는데자기 안에 하느님의 능력과 뜻이 가득차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부끄러워하겠습니까주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분입니다. 그런데 장갑이 홀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을 떠나서 자신 안을 채우고 있던 하느님을 몰아 낸 것입니다그렇게 피조물에서 하느님의 능력이 차단이 된 상태를 성경은 죽었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그 죽음이 두려움을 동반하여 인간에게 들이닥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15) 15 한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두려워하므로이렇게 모든 인간의 두려움은 죽기를 두려워함에서 오는 것입니다죽음에서 기인한 것입니다모든 인간의 두려움은 다 그 죽음에서 오는 것입니다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에게 두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창세기 3:8-10) 8 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불 때 야훼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야훼 하느님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9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너 어디 있느냐?' 10 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여기에서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죄 때문에 죽음이 옵니다그 죽음에 의해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정녕 죽으리라 무트 타무트입니다그러니까 이들은 이미 죽음에 던져진 것입니다그 죽음 때문에 인간들에게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벗은 것을 부끄러워하도록 지어지지 않았습니다그렇다고 누드로 살도록 지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오히려 인간은 완전히 벗은 상태에서이것은 자기를 완전히 비운 상태란 뜻입니다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며 살도록 지어졌다는 것입니다자기의 옷을 입으면 안되는 것입니다자기의 뜻을 내세우면 안된다는 말입니다그래서 우리가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왕이 자기 옷을 입고 참석한 자를 내쫓은 것입니다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합니다주인이 준 옷,... 예복을 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이 세상의 어떤 옷으로도 자신을 치장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만을 복종하며 수행해 내는 상태를 짜다크의로운 상태라고 하는 것입니다그것을 의라고 하는 것입니다그것을 그림으로 표현을 하면 의의 힌옷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자기 것자기의 옷을 모두 내려놓고자기를 비우고 하느님으로 채워진 상태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내고 하느님의 영광을 반사해 내는 그 모습을 의로운 상태라고 이야기 하고 그것을 그림언어로 의 힌옷을 입었다고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기대나 뜻이나 소원을 가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우리 자신에 대한 기대나 뜻이나 소원 희망을 가지시면 안됩니다원래 그자리로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원래 우리 창조의 목적에 부합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그래야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기 가치 판단에 의해서 스스로 되어지고 싶은 자기를 설정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불안함이 오기 시작합니다그 때부터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는 말입니다조바심 상실과 손해실패와 상함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내가 되고싶은 어떤 지점이 설정되면 말입니다인간은 원래 그렇게 살도록 안지어졌습니다그래야 두려움이 없습니다그와 같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것을 자유라고 하는 것입니다그게 구속이 아니라 자유라는 것입니다그래서 성경이 두려워하는 자들이 둘째 죽음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그들은 반드시 형벌을 받게 된다고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묵시21:8) 8 그러나 비겁한 자와 믿음이 없는 자와 흉측스러운 자와 살인자와 간음한 자와 마술장이와 우상숭배자와 모든 거짓말장이들이 차지할 곳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뿐이다이것이 둘째 죽음이다.'

보는 것처럼 둘째 죽음으로 들어가게 되는 자들의 1순위가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첫째 죽음 속에서 태어납니다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가 첫째 죽음의 상태에 들어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영원한 지옥영원한 죽음이 둘째 죽음입니다그 둘째 죽음으로 들어가는 제1순위가 두려워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고 원래의 창조목적대로 하느님께 순종하며 다 맡기며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사는 자로 만들어 내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그러니까 그렇게 만들려면 꿈과 희망과 비전이 끊어져야 합니다그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그런데  교회에선 꿈과 희망과 비전을 심어주고 격려해주고 성취시켜준다고 하고 있습니다이게 교회가 맞나요아닙니다그것은 교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요한1서 4: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사랑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바로 앞 구절 16절을 보면 사랑은 하느님이시라고 합니다그러니까 하느님이 사랑이 되어 ,우리 안에 뚫고 들어와 ,두려움을 몰아내는 것이지 우리가 사랑하여 두려움을 몰아내고 형벌을 면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요한1서 4:16) 16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 전체 구원이야기를 작은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주님은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된 자들이 빗장을 걸어놓고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에 홀연히 그 두려움을 뚫고 그들 가운데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간의 두려움의 멸망과 인간의 죽음의 멸망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평화에이레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평화가 감정이 기뻐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우리가 결국에 처해지게 될 죽음이 하느님에 의해 멸망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수의 죽음 안에서 죽음의 그 죽음이것을 믿음으로 받아 이는 상태를 평화라고 합니다평화와 편안을 구별해야 합니다성경이 주는 평화는 세상이 말하는 평화나 세상이 말하는 편안함이 아닙니다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주는데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세상이 줄 수 있는 편안평화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그 평화가 아니란 말입니다그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다 줄 수 있는 것입니다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는 평화는 그러한 세상이 줄 수 있는 평화가 아닙니다.

죄와 죽음의 그늘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던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불가항력적 은혜로 찾아오신 주님의 값없는 은혜를 의지하고 믿는 것을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거기에 인간들이 보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그냥 두려워하고만 있었는데 하느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평화를죽음의 멸망두려움의 멸망을 선포해 버리신 것입니다이것이 구원입니다그런데 그리스도교가 변질 되었습니다그리스도교가 우리의 열심과 정성을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이상한 잡교가 되고 말았습니다성경은 그런 것은 그리스도교가 아니다라고 선언 합니다그러함에도 성당문을 나서면서 잃어버립니다.

 

(로마서 11:35-36) 35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36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영원토록 영광을 그분께 드립니다아멘.

만물, Everything, 모든 것이 다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그런데 너희 것이 무엇이 있다고 하느님께 드린다고 하느냐하는 말입니다그리고 보상을 받겠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는 하느님께 뭔가 기특한 것을 내어놓고 이 세상에서 보상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참 웃기는 얘기!!!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상을 받기를 원하다는 참 더 웃기는 얘기!!! 이세상 나라에서는 안 받아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받아야 된다는 참말로 웃기는 얘기!!! 로마서 11:35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보상)를 바라겠습니까?라는 말씀은 바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너희 것이 어디 있냐하는 말입니다너희 안에서 나오는 모든 선행도 하느님 것이다너희 소유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가지고 하느님께 드리겠냐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4-25) 24 그분은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이십니다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사람이 만든 신전에서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하느님께서는 사람 손으로 채워 드려야 할 만큼 부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십니다하느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지은 전에 하느님이 머무시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여기를 성전이라고 하면 안됩니다성전은 여러분 몸이 성전입니다하느님이 좌정하시는 곳이 성전입니다여기는 성당(예배당)입니다우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립니다신약시대이기에구약 때는 성전에서 예배 드렸지만 이제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든 예배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내가 성전이란 말씀입니다. 성지순례?...성도가 있는 곳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두려움 속에 있던 제자들에게 평화를 말씀하시면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세요두려움을 몰아내는 도구치고는 너무 초라합니다평화가 있기를내 놓는 것이 상처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입니다이와 같은 것이 어떻게 우리의 평화가 될 수 있습니까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평화를 빈다 하시면서 내어 놓는 것이 무엇입니까그것은 십자가뿐입니다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뚫린 구멍은 십자가를 모형하고 있는 것입니다십자가입니다인간의 평화의 근거는 오직 십자가뿐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평화를 기원하면서 십자가를 내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평화를 위해 돈과 명예와 관계와 인기와 건강 등을 챙깁니다우리는 이와 같은 것들이 평화의 근거와 조건으로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고작 벽을 뚫고 들어와서 내민 것은 십자가입니다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평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절대로 평화는 우리들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기뻐지고 이런 것들이 평화가 아닙니다그런 것들이 평화라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평화가 있기를!’ 두번 반복해서 말씀하시는데그 첫 번째 예수님이 평화가 있기를!’ 하시니까 제자들이 기뻐했다고 합니다그러면 그 제자들이 평화를 느낀 것입니까만약 그렇다면 또다시 금방 이어서 평화가 있기를!’ 반복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은 금방 그들이 기뻐하고 있는데 평화가 있기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와서 로마 왕국을 멸망시키고 다윗왕국을 재건할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고 추측한 것 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그것은 평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예수님이 또 평화가 있기를!’하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 또다시 그림언어로 보여 주십니다.

평화는 우리가 일시적으로 느끼는 편안함이나 안전함 안락함이 아닌 것입니다평화는 하느님이 이루신 역사적이며 객관적인 사실에 의한 어떠한 완료그 상태를 평화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게 나에게 뚫고 들어와서 이 완료된 상태 이게 나의 삶 속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 때문에 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그걸 평화라고 합니다그래서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조금 알았을 때아예 몰랐을 때그리고 지금 처럼 많이 알 때 각각의 때를 비교해 보세요변한 점이 무엇인가요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조금 성숙된 분도 있을 것입니다진짜 변한 것은 죽음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습니다이제는 우리는 죽음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두려움의 대상이 아닌게 되었습니다이와 같은 마음이 나를 평화 속으로 이끌고 있습니다하느님께서 완료하신 어떤 현실이 있다는 말입니다우리가 그 평화를 이끌어 가는 길이라면 우리는 절대 평화를 느낄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기 때문에 절대 그걸 평화라고 하지 않습니다나를 전혀 기대하지 않고 하느님이 완료해 놓으신 역사적 객관적 사실만을 붙드는 것을 평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6:22-26) 22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3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 주라고 하여라. '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니 너희를 지켜주시고, 24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 주시고, 25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26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면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보세요모세가 출애굽한 목적지를 뭐라고 하는지요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가는 첫번째 목적이 평화입니다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교회를 상징)의 목적지를 평화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바오로 편지 인사말에는 모두 평화가 들어가 있습니다평화는 하느님만을 의존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이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그런데 구약에서는 거짓 예언자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그것도 평화입니다어떻게 구약에서 이와 같이 사람들을 미혹했을까요예수께서 평화롭다한 것과 거짓 예언자들이 평화롭다라고 한 것과 뭐가 다른게 없습니다그런데 왜 거짓 예언자들의 특징을 평화롭다고 외치는 자들이라고 할까요?

(예레미야 6:12-14) 12 집도 남의 손에 넘어 가고밭과 아내들도 함께 넘어 가리라내가 친히 손을 들어 이 땅 주민들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다이는 내 말이라어김이 없다. 13 위 아래 할 것 없이 모두 남을 뜯어 먹는 놈들예언자 사제 할 것 없이 모두 사기나 치는 것들, 14 내 백성의 상처를 건성으로 치료해 주면서 '괜찮다' '괜찮다하는구나사실은 괜찮은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 14:13-14) 13 '그렇지만 주 야훼님예언자들은 주의 말씀이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희를 여기에서 평화롭게 살게 하여 주었다그러니 적이 쳐들어 오지도 않고기근이 들지도 않으리라.'' 14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예언자들은 내 이름을 팔아서 거짓말을 하였다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그런 말을 하라고 예언자들을 보낸 적도 없다그것들은 엉뚱한 것을 보고허황한 점이나 치고제 욕망에서 솟는 생각을 가지고 내 말이라고 전하는 것들이다.

거짓 예언자자들이 평화 평화를 예언한 것입니다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자들을 보낸 적 없다는 것입니다그럼 뭐가 다른 것일까요 이런 거짓 예언자들의 거짓 평화와 예수님이 전한 평화와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같은 예레미야서에서 진짜 예언자 예레미야도 평화를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둘을 비교해 보면 진짜 평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29:3-11) 3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키야의 아들 그마리야가 유다 왕 시드키야의 사명을 띠고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을 알현하러 바빌론으로 갈 때 가지고 갔던 것이다그 내용은 이렇다. 4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간 모든 사람에게 말한다. 5 너희는 거기에서 집을 짓고 살아라과수원을 새로 마련하고 과일을 따 먹으며 살아라. 6 장가들어 아들 딸을 낳고 며느리와 사위를 삼아 손자 손녀를 보아라인구가 줄어서는 안 된다불어나야 한다. 7 나에게 쫓겨 사로잡혀 가 사는 그 나라가 잘 되도록 힘쓰며 잘 되기를 나에게 빌어라그 나라가 잘 되어야 너희도 잘 될 것이다. 8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말한다너희 가운데 있는 예언자들과 박수들한테 속지 않도록 하여라그 꿈장이들의 꿈이야기를 곧이듣지 말라. 9 그것들은 내가 보낸 것들이 아니다내 이름을 팔아 거짓 예언을 하는 것들이다이는 내 말이라어김이 없다. 10 나 야훼가 말한다너희가 바빌론에서 칠십 년을 다 채운 다음에야 약속대로 나는 너희를 찾아 가 이 곳으로 다시 데려 오리라. 11 너희에게 어떻게 하여 주는 것이 좋을지 나는 이미 뜻을 세웠다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 주지 않고 잘 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이는 내 말이라어김이 없다.

거짓예언자 꿈 예언 이런 얘기 제발좀 하지 말라는 거에요하느님이 말씀하시잖아요제발 꿈얘기 하지 마세요거짓 예언자들도 평화를 전하고 예레미야도 평화를 전하는데 예레미야가 전한 평화에는 공의가 전제되어 있습니다그 공의는 바벨론 포로라는 형벌입니다그 바벨론 포로가 전제되어 있는 평화인 것입니다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형벌을 받은 후에즉 공의가 채워진 후에 평화가 임할 거라는 이야기 입니다그 평화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하느님의 공의가 채워진 이후완료된 이후에 우리에게 주어진 그 평화그런데 그 공의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평안 평화너희가 한번 열심히 해봐!! 평안에 이를 수 있을거야라는 평화는 거짓 예언자들이 주는 잘못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화는 일차적으로 하느님께서 완성시킨 것입니다하느님이 완료하여 우리에게 선물해 주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느님의 아들 안에서십자가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공의를 충족하여 챙겨가시고 그리고 완료된 그 상태그 언약의 성취된 그 현실그게 바로 평화인 것입니다그걸 우리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예레미야가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신 것입니다그래서 부활의 현장에서 평화가 있을 지어다가 나오는 것입니다구약에서 이야기한 바로 그 평화모세가 이야기한 그 평화예레미야가 이야기한 바로 그 평화내가 그 공의를 충족시키고 그 평화를 완성해 냈으니까 이제 너희가 받으라는 것입니다그걸 우리가 믿음 안에서 확실히 붙드는 것입니다그게 신앙생활입니다.붙들면 붙들수록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상태를 평화라고 합니다그래서 미가는 예수가 바로 인류의 평화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예수님이 평화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그 어떤 상황이나 현상이 평화가 아니라 예수님이 평화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미가 5:2-5) 2 그 연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시리라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돌아 오면, 3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서리라야훼의 힘을 입고 그 하느님 야훼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하리니그의 힘이 땅 끝까지 미쳐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아시리아가 쳐들어 와 이 땅을 짓밟을 때우리는 목자 일곱을 세워 맞서리라장군 여덟을 세워 맞서리라 그들은 아시리아를 칼로 다스리리라칼을 빼어 들어 니므릇 땅을 다스리리라아시리아가 쳐들어 와 우리 국토를 짓밟을 때야훼께서 우리를 아시리아의 손에서 살려 내시리라.

그런데 예수님이 누군지 알아야 평화를 누리죠두려워하는 것입니다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 두려운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이 빗장을 걸고 숨어 있는 것입니다그렇게 하늘과 차단된 상태에서 이 땅에다 빗장을 걸고 숨어있는 상태가 지옥인 것입니다그곳에 하느님이 뚫고 들어오는 것입니다그리고 당신의 백성만 싹 골라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평화를 주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그들을 덮치고 있는 죽음을 죽이고 그들을 건져서 올라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그 복음의 현실을 믿는 이는 이제 두려워할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심지어 육신의 몸이 죽는다고 해도 그 죽음 속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성도인 것입니다우리의 육의 죽음의 현장에서 바로 그 평화의 모습을 보이고 갈 것입니다.

 

(마태복음 10:28)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몸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혼을 영원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이것이 두번째 죽음인 것입니다런데 우리의 몸이 죽어도 하느님이 우리의 편인 이상 우리의 영혼은 영원 속에서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영적 현실을 이해한 사람은 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죽음이라는 것은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731부대에서 죽음의 무서움이 보여진 것입니다사형수 들이 교수대로 향하는 길에 계단을 잘못 밟으면 아이고 죽은 뻔했네 한답니다그런데 성도만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요우리가 그 자리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그걸 평화라고 합니다그러한 평화를 우리에게 바로 보여줬던 인물이 사도 베드로입니다사형 바로 전날 감옥에서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입니다그를 깨우기 위해서 옆구리를 발길로 차야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2:1-9) 1 이 무렵 헤로데왕이 교회의 모모한 사람들에게 박해의 손을 뻗쳐 우선 요한의 형 야고보를 잘라 죽였다. 3 유다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또 베드로를 잡아 오라고 하였다그 때는 바로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네 사람으로 편성된 네 패의 경비병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과월절이 지나면 그를 유다인들 앞에 끌어 낼 속셈이었던 것이다. 5 이렇게 되어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 있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하느님께 줄곧 기도를 드렸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유다인들 앞에 끌어 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의 일이었다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군인 두 사람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감옥 문 앞에는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자기 주의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 앞에 서자 환한 빛이 감방을 비추었다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찔러 깨우며 '빨리 일어나라하고 재촉하였다그러자 곧 쇠사슬이 그의 두 손목에서 벗겨졌다. 8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어라하는 천사의 말을 듣고 베드로는 그대로 하였다그랬더니 천사는 '겉옷을 걸치고 나를 따라 오너라하였다. 9 베드로는 천사를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하는 일이 현실이 아니고 환상이려니 하였다.

이렇게 평화는 하느님의 절대 주권하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하느님이 선물입니다우리는 하느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함으로 해서 그 선한 하느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당신의 약속대로 영원속에서 영생으로 살리실 것을 믿기에 평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평화라는 단어 샬롬이 동사로 쓰인 곳이 있는데 좀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열왕기상 9:25) 솔로몬은 그가 야훼께 지어 바친 제단 위에서 번제와 친교제를 일 년에 세 차례 드렸고 야훼 앞에서 분향제도 올렸다이리하여 솔로몬은 성전 공사를 모두 마쳤다.

성전 짓는 일이 완료되었다는 말입니다여기에 평화란 단어가 숨어 있어요완수하다마치다성전을 완수했다성전을 마쳤다 가 바로 그 샬롬의 동사입니다그 완수마치다가 평화롭다는 뜻입니다평화샬롬이라는 단어는 하느님께서 마치시고 완료하시는 것에서 기인하는 하느님의 선물의 개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평화가 있어없어같은 말 하지 마세요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평화가 아니란 말입니다평화는 하느님이 성전짓기새 성전인 우리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이 성전 짓기를 완료하신 상태를 평화라고 하는 것입니다하느님 측에서의 완료를 의미합니다그게 평화입니다우리가 그걸 믿느냐는 것입니다그러면 우리는 평화를 가진 것입니다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왜냐하면 세상은 아무도 그것을 안믿습니다그것을 믿는 성도만 그 평화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하느님 나라의 완료의 주도권을 하느님이 쥐고 계시다는 것을 그 백성들에게는 평화인 것입니다.

 

어떠세요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가기 위해서는 너희들은 계속해서 업그레드되어야 하고 발전과 성숙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갈 자신 있는 사람 있을까요만약 그렇다면 불안하고 항상 두려울 것입니다그것을 평화라고 하지 않습니다구원 받은 이들은 평화가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그 평화가 들어왔다고 하는 것은 내 구원의 시작과 진행과 완료를 하느님께서 다 이루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붙들고 있는 것을 평화를 가진자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런 자들에게서 진정한 성숙진정한 변화와 발전이 일어납니다아니면 껍데기만 변해 가는 것입니다아니면 모양만 열매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제철 과일이 아닌자연의 해빛이 아닌인공과일은 풋과일의 꼭지 부분에 독소가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그래서 꼭지 부분을 많이 잘라내고 먹습니다그런데 그러한 독소들의 그러한 과일 전체에 골고루 함유가 된답니다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진짜 과일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올리브나무이신 하느님이 맺으시는 그 열매가 진짜 열매인 것입니다그게 진짜 과일인 것입니다그렇지 않고 내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은간디슈바이쳐 처럼그런데 그 안에는 독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하느님이 그런 열매를 받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서 샬롬평화라는 단어와 가장 비슷한 단어가 다 이루셨다는 말입니다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 이것이 평화인 것입니다주님께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이 이루신 것도 아니고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이 다 이루신 것입니다그게 평화입니다우리에게 닥쳐올 평화입니다.본문 21절에 나오는 평화의 기원은 조금 다른 전제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21-22) 21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하고 말씀하셨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요게 20절의 이야기를 다시한번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그런 구절입니다예수님께서 두번째로 제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면서 그 평화의 근거로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너희는 평화 로워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이세상으로 보냄을 받으신 분이 맞습니다그것을 요한복음 1장이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요한복음 1:1-4, 14) 1 한 처음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2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말씀으로 보냈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 육신이 되어 내려와서... 그 하느님의 뜻을 담고 와서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는 자로 살았다는 것입니다이것이 말씀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하느님에 의해 보내졌다고 하는 말이 함유하고 있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말씀이 이 땅에 내려와서 창조를 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예수님께서 한 처음(태초)에도 무엇을 하셨는데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시편 33:6-9) 6 야훼의 말씀으로 하늘이 펼쳐지고그의 입김으로 별들이 돋아났다. 7 바닷물을 독에 담으시고 깊은 땅 속 창고에 넣어 두셨다. 8 온 세상아야훼를 두려워하여라땅 위에 있는 사람들아모두 그 앞에 조아려라. 9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생기고한 마디 명령에 제 자리를 굳혔다.

야훼의 말씀으로 하늘이 펼쳐지고그의 입김으로 별들이 돋아났다.’고 합니다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말씀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그러니까 하느님의 뜻을 예수님이 말씀이 되셔서그 뜻을 성취하는 자가 되셔서 예수가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입니다그게 말씀으로 보내진 예수님이란 뜻입니다.

(시편 147:12-19) 12 예루살렘아야훼를 기리어라시온아너의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13 네 성문빗장으로 잠그시고 성 안의 네 백성을 축복하시니, 14 네 강토 평화로 지켜 주시고 밀곡식 그 진미로 너를 배불리신다. 15 당신 말씀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16 양털 같은 흰눈 내리고 재와 같이 서리 쌓이며 17 우박이 덩어리로 쏟아질 제그 추위를 어느 누가 감당할손가. 18 당신 말씀 보내시어 모두 녹게 하시고 바람 불게 하시어 물 흐르게 하신다. 19 당신 말씀을 야곱에게 알리시고 법령들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도다,

말씀을 들고 뛰는 자를 사자라고 합니다요한복음 중간쯤에 설명 했듯이 구약에 나오는 야훼의 사자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야훼에게 보내심을 받는 야훼시므로 야훼의 사자가 되는 것입니다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그러니까 사자는 말씀을 전하는 자 예수님이십니다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은예수님은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뜻은 위대한 새 창조의 성취입니다이 세상에 원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혼돈과 공허였어요였습니다그러니까 무엇인가 존재 생겼다는 것은 전부 하느님의 창조 사역의 일환입니다.

지금도 과학이 발전하고 여러가지 새로운 것이 개발이 되는데 라하프 성령이 수면 위에서 운행하시는 그 상태에서 성령의 掌中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인간들이 머리가 좋아서 만들어내는 게 아닙니다의학과학문명이런 것들이 나쁜 게 아닙니다인간들이 그것들을 자기들의 유익만을 위해서 사용하기 때문에그것을 이용하여 무기도 만들고 여러가지 해로운데 쓰고 하니까 나쁜 것이지 그것들은 성령의 창조사역하에 창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병원을 거부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사역을 거부하는 것입니다그 의술 자체가 하느님의 역사인 것입니다그렇게 모든게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고 있는데 그 창조 사역의 대리인으로 말씀으로 오신 예수가 달리고 있단 말입니다예수님은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란 말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한 처음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라고 하는 것은 창세기 1장에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창조가 일어난 그 1장 전체를 그 한줄로 줄인 것입니다그래서 첫번째 날에 빛이 있으라,.... 예수라는 빛이 등장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장에는 빛이 오셨는데 그 빛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새창조를 이루시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그걸 원시모형으로 보여주는 게 첫 창조란 말입니다그래서 하느님이 말씀하시니까빛이 day yom으로 첫날 서고 이 때부터 창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말씀예수빛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가 시키는 말과 일만 했다고 합니다그럼 도대체 무슨 창조를 한것일까요다시 하느님 나라의 존재 양식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존재 양식은 내가 무슨 능력을 발휘해서 뭘하는게 아닙니다나는 비워지고 하느님이 내 안에 채워져서 하느님 나라의 일을 하시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존재 방식인 것입니다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일을 하시는데 예수님이 자기를 비워서 하느님의 뜻을 받습니다말씀을 받습니다말씀이 되서 성취의 현장에서 달리는 것입니다그랬더니 하느님의 역사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그리고 결국은 자기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를 모형으로 보여 주는게 십자가에서 죽어버리는 것입니다나는 아무 것도 안했어요그냥 죽었어요그런데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그게 바로 하느님 나라의 존재 양식이란 말입니다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나는 아무 것도 안했어요나는 다 비워졌어요그런데 하느님이 내 안에서 다 이루셨어요이것이 하느님 나를 왜 버리십니까와 다 이루었다의 화해인 것입니다하느님에 의해 다 버려진 것 같았는데 나는 다 비워지고 털린 것 같았는데 하느님이 내 안에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그게 이 세상에서 말씀이 하는 일입니다나는 말씀을 담는 그릇일 뿐이란 말입니다예수가 그렇게 사셨단 말입니다하느님의 능력과 뜻과 계획을 담는 그릇이것을 자기 부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성도가 바로 그 지점으로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우리는 이 땅에서 내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얼마나 깨끗하게 잘 사는지를 보이는 게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그 사람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목적이 아니란 말입니다예수님의 그 삶을 쫓아가는 것입니다그냥 나는 세상이 어떻게 평가를 해 주든 거기에 연연치 않는 것입니다나는 계속해서 무시되어지고 비워지는데 하느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안에 당신의 뜻인.... 말씀을 부으셔서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이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언 8:22-30) 22 야훼께서 만물을 지으시려던 한 처음에 모든 것에 앞서 나를 지으셨다. 23 땅이 생기기 전그 옛날에 나는 이미 모습을 갖추었다. 24 깊은 바다가 생기기 전에샘에서 물이 솟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5 멧부리가 아직 박히지 않고 언덕이 생겨나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6 평평한 땅과 땅의 흙을 만드시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27 그가 하늘을 펼치시고 깊은 바다 둘레에 테를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다. 28 구름을 높이 달아매시고 땅 속에서 샘을 세차게 솟구치시며 29 물이 바닷가를 넘지 못하게 경계를 그으시고 땅의 터전을 잡으실 때, 30 나는 붙어 다니며 조수 노릇을 했다언제나 그의 앞에서 뛰놀며 날마다 그를 기쁘시게 해 드렸다.

하느님이 하셨다나는 그 옆에 있었다그리고 나서 내가 창조했다내가 창조자다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참으로 헷갈리는 말씀인데바로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존재 양식입니다나는 비워지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일을 하십니다그래서 하느님이 하신 것입니다그런데 하느님은 그것을 아들아 니가 했어라고 쳐준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만물이 아들에게서 비롯되고 아들로부터 말미암고 아들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이 기뻐하실 만한 어떤 기특한 일을 내어놓는 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것입니다그것을 하느님이 우리의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 뿐입니다이걸 절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이게 신앙생활입니다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나는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면 선한 것을 요만큼도 내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자기 자신한테 아주 처절하게 폭로당해야 합니다그러니까 그런 것이 폭로될 때 아주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창조사역을 완료시키기 위함인 것입니다그런데 제자들을 그러한 방식으로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그러면 이제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여 하느님의 일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일을 하여예수님이 하신 것은 바로 그 비우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예수님은 자신을 다 비워서 하느님이 하시게 한 것입니다예수님은 바로 이것처럼 너희들 보낸다는 것입니다그러니 평화있으라하는 것입니다그러니 이 말씀의 뜻은 너희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내가 들어가서 할 거야그렇게 가라그러니까 평강한 것입니다그래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고 이야기 하면서 그 평화의 근거로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속에서 하느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사실 우리가 애써서 이룰 것이 없습니다그런데 성령이 내 안에서 소원을 두시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바를 자꾸 내안에서 보여주시고 드러내시기 때문에 내가 열심을 부려 보지만 그래서 때로는 성공하기도 하지만 그게 사실은 내가 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이란 말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말씀하신 후에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는 장면이 나옵니다이 장면은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장면과 똑같은 장면입니다.

 

(창세기 2:7)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장면을 제자들 앞에서 재현하고 계신 것입니다이렇게 이해 하시기 바랍니다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보내심을 받아 아버지가 하라는 말만하고 아버지가 하라는 일만 하셨습니다.이게 바로 하느님 나라의 존재 양식입니다자신을 비우고 상대방인 하느님의 뜻을 자신 속에 담아서 그 대상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존재 방식입니다그랬더니 다 이루었다즉 평화가 성취가 되었습니다그 성취의 모습을 제자들을 향해서 숨을 내쉬는 모습으로 모형을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숨(생기)을 불어넣기 전에 그것은 죽은흙이었습니다그것은 너희는 지금도 죽은 흙이라는 것입니다내가 죽음에서 부활한 것을 보았음에도 죽은 흙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내가 숨을 불어넣지 않으면 너희는 절대 산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내가 하겠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그게 평화라고 하는 것입니다주님 측에서 완료하시는 것이 평화라고하는 것입니다그래서 평화가 있기를하는 것입니다.

제자들 즉 하느님의 백성들의 새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저 완료가 된다는 구속의 현실을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는 장면에서 간단한 그림으로 보여주시고 그들을 똑같은 새창조의 동역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서 새 창조의 동역자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는 일차적으로 어떤 생창조에 투입이 되는 것입니까일차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 안으로 투입이 되는 것입니다우리 자신 안으로 보내심을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보내는데 세상으로 보내십니다그 내 안으로 하느님에 의해 보냄을 받는 것입니다예수님에 의해 보내지는 것입니다그런데 나를 보내시는 예수님이 내 안에서 그 새창조를 완성하십니다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그 때에 내 마음에 드는 게 평화입니다그렇게 나에게 보내진다는 말씀입니다내안으로 예수님을 가득차고 나는 완전히 비워진 내가 보내짐을 받는 것입니다그리고 세상에 나가서는 하느님의 은혜가 내가 뭔가 잘난게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가 나를 이렇게 구원해 냈습니다는 은혜의 현실을 몸으로 입으로 삶으로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그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는 구원 받는 자이고 안받아들이는 자는 심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이 너희들이 누구에 죄든지 사하면 사해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합니다그런데 심판은 이미 완료가 되어있습니다저희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데 무엇을 우리가 심판하고 용서하는 것입니까내 안에서 예수님께서 창세전에 택함 받은 어떤 존재들을 나의 입과 몸과 삶을 통하여 구별해 내신다는 말씀입니다이것을 믿고 따라 오는 자들은 창조이전에 선택을 받은 자들입니다그들은 구원은 받은 것입니다그런데 모양새는 우리가 마치 그들의 죄사함에 기여하는 자처럼 보입니다내가 전도하고내 삶을 그에게 보였으니까요그런데 사실은 내 안에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그래서 평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리합니다왜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시면서 성령을 받아라 이야기 했는지 또 숨을 내쉬었는지그리고 너희들이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지고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하셨는지… 그리고 왜 몰래 벽을 뚫고 들어오셨는지 문열고 들어오면 안됩니까무슨 신비를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그것은 구평화새하늘과 새땅새로운 피조물의 완성은 하느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림,언어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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