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5주일(나해) 마르 1,29-39; ’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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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1-21 ㅣ No.5654

연중 제5주일(나해) 마르 1,29-39; ’24/02/04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한곳에 진중히 머물면서 거기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만드셔도 되었을 텐데, 왜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며,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을까?’

가르치고 또 가르치면, 알아듣고 변화되어 하느님 나를 만드는 일이 좀 더 수월했을 수도 있을텐데!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며, 괜히 믿지도 않는 이들에게, 가르치고 설명하시느라 진만 빠지고, 고생만 더 하신 것이 아닐까?’

 

오늘 복음을 보면,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마르 1,29)라고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나서, 군중들과 떨어져,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신 이야기와 군중들의 반응에 대해, 제자들과 함께 쉬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늘 쉬실 시간이 없고, 예수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 하소연을 하는 사람, 안타까운 사정을 이야기하는 사람, 인간의 능력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아뢰려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오늘도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30) 예수님을 맞이한 사람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사정을 풀어놓습니다.

 

시몬의 장모의 사정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피곤한 내색이나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바로 그 여인에게 다가가십니다. 식사나 차 한 잔이라도 하고 나서, 다음으로 미룰 수도 있으셨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아픔을 마주하는 부모의 애정 가득한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십니다.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31) 여인은 그동안 자기를 억죄고 있는 신체의 열과 두통이 사라지면서, 얼마나 날아갈 것만 같은 해방된 기분이었을까 싶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이의 행복, 주님과 함께할 때 얻어 누릴 수 있는 잔잔한 기쁨속에 머물며, 안분지족하고 안빈낙도할 수 있는 순간이었으리라 충분히 여겨집니다. 아울러 그 여인을 바라보는 식구들과 이웃들도 놀람과 감격스런 마음으로 가득 찼겠고, 또 예수님을 향한 존경과 우러러보는 마음이 불러일으켜졌으리라 상상이 갑니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31) 마르코 복음사가는 시몬의 장모가 완전히 완쾌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시몬의 장모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은총을 받은 이들이 해야 할 일, 곧 주님의 사도가 되는 일입니다. 주님의 사도가 된 이들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전하고 드러내며,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이가 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을 깨우친다면, 우리는 즉시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동시에 우리 주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같은 은혜가 내려지도록 기도하고, 그가 그 은혜를 누려 해방되고 새로워질 수 있도록 함께하며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를 받은 이들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와 사회에 봉사를 하는 이유이겠지요.

 

날이 저물자 온 동네 사람들이 병자와 마귀들린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32) 아마도 그중에는 낮에는 감히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나타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 당대 사회에서는 나환자 등 불치의 병을 가진 이들은 하느님의 벌을 받은 이로 낙인이 찍혀, 동네에서 사람들과 같이 살지 못하고 동네나 성 밖에서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어도, 죄인처럼 숨어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는, 낮에는 예수님께 올 엄두를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래도 먹고살기 바빠서, 차마 낮에 예수님께 와서 병을 고쳐달라고 청할 수 없는 직장인들도 있었겠고요.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셨다는 소문이 퍼지고 난 다음에야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서 찾아 나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할 무렵이기도 했겠고요. 그리고 그 내막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알고 싶은 이들도 모여들었겠습니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33)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하나하나 다 들어주시고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세의 질병이나 어려움에서 사람들을 건져내시는 것도, 인간 구원의 한 표징이라고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실 때,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 마르 2,5; 루카 5,20; 7,48)라고 하셨으며, 마태오 복음사가는,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 청하는 이들이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두고 구원을 받았다.”(마태 6,56; 9,22; 14,36)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34)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 인간의 의학적 접근만으로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시는 이유는 그들이 마귀에게 노예처럼 사로잡혀서 신음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에,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이 마귀들을 쫓아낼 힘이 있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유롭고 건강하며 행복해야 할 인간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기셔서 고쳐주시는 것이기에, 마귀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34)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밝힘으로써 백성들이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만일 예수님의 신원이 그렇게 밝혀지고, 또 백성들이 그렇게 믿게 된다면, 예수님은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현세의 물질적인 풍요와 신체적인 건강을 가져다주는 능력자로 비춰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이 지은 죄를 용서하고 인간을 죄악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님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아버지 하느님께 용서를 받도록 하는 소명이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덧붙여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존엄하고 거룩한 인간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세를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아버지 하느님과 이웃에게 탐욕스럽게 요구하며, 죄악의 크기를 더욱더 키워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사람들은 구원을 향한 자신들의 회개나 자기 완성을 향한 각고의 노력을 뒤로한 채,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선물을 가져다줄 황금거위에게만 매달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곳에 계속 머무시면서, 그들의 수호신이나 욕구를 채워 주는 황금거위 역할을 거부하십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35)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36) 하고 말씀드렸는데도 주님께서는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38) 하고 말씀하시고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39).

예수님께서는 한곳에 머물러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다 고쳐주시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으시고 다른 곳으로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겠지만(마태 28,19 참조), 시몬의 장모처럼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의 치유를 받은 우리가, 나머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돕도록 맡기시기 위해서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커다란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에게 어려운 이웃에게 가서 봉사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와 형제자매들에게 구원의 기쁜소식을 전하러 갑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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