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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성전-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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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peace-maker] 쪽지 캡슐

2008-11-09 ㅣ No.8809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2008년 11월 9일

연중 제32주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에

 

 

연중 제32주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에 묵상하는 예수님 말씀은 언제나 놀랍고 서늘합니다.

그리고 두렵기조차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 교회 앞에서 분노하시고 “이거 다 때려치워라” 하고 호통하시는 듯해서입니다.


땀과 수고 없이, 노동과 헌신 없이 쉽게 얻은 부와 더 가지려는 탐욕으로 달려온 지난 세월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가를 지금 미국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 뒤를 잇는 중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아직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았으며,

추락의 바닥과 고통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다고 우려합니다.


저 세월 동안 흥청망청 누려온 소비주의와 물량주의에서 우리 교회도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위선과 허영과 탐욕에 맞서 예언자적 통찰과 도전을 다 하는 역할보다,

은근히 그에 편승하고 그를 탐닉한 면조차 있습니다.


교회 건축비로 수십억은 기본이고,

대도시에서는 백억이네 이백 억이네 하는 소리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크기와 보여주기에 치중한 성당건축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필요해서 했겠지만, 주객이 바뀌었습니다.

성전은 결코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화려한 제대도 아닙니다.

건물과 제대는 방편이고 수단인 것입니다. 목적이 아닙니다.


교회는 물욕에 절은 사회에 치열한 성찰과 다른 본보기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회가 자신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와 영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안주하는 동안,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는 성당이 환영과 환대의 집이 아니라 또 다른 소외와 장벽의 현장이 되어 갔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라 말합니다.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자신이 거룩한 성전이라 함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초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우리의 신앙이 우리 자신과 성당 건물을 뛰어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현장 그 자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사치들로 가득한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어버리고

당신 자신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새 성전이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가 “둘만 모여도 함께 있겠다.” 하신 분이며,

“세상 끝날 때까지” “세상 어디를 가도” 함께 있겠노라 하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시며 우리 자신도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머무시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 머물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한 성전일 수 있습니다.


첫 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생명수가 성전에서 흘러나와 온 세상을 적시고 살린다고 말합니다.

생명수는 교회 밖으로 흘러나갈 때 생명수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만 고이는 생명수는 필히 썩습니다.


오체투지 기도순례길에서 저는 여러분을 새롭게 다시 만났습니다.

지시하고 눈치주며 어렵고 무서운 주임신부에서,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의지하는 미약한 길거리 노인네로 말입니다.


오체투지 기도순례길에서 저는 또 스스로 거듭나는 수많은 ‘성전’을 만났습니다.

선하고 정의롭고 묵묵하게 촛불이 되고 기둥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들,

또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습니다.

저희를 찾아 오랜 냉담을 푼 신자들도 있었고,

새로이 신앙의 길에 들어서겠노라 다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교회는 건물을 넘어서야 하고 건물 이상의 의미여야 합니다.

우리 평화동 성당 신자들은 소위 경제적 형편이 고만고만합니다.

냉담자들이 많은 이유가 대부분은 생활을 돌보느라

성당에 나올 여유와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못 나오는 사람들, 주저하는 사람들에겐 우리가 가야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네가 오라 하는 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두는 태도입니다.

성당은 기도하는 집인데, 우리가 한데 모여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매일 1시간 30분 여 동안 드리고 있는 오체투지 기도는 바로

우리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데 지향을 두고 있습니다.

신앙인인데 냉담하고 있는 분들,

지치고 고단하여 마음을 닫아가고 있는 서민들,

또한 섬김과 나눔에 냉담하고 메마른 가슴들을 위해서도 기도드립니다.

서로 마음을 열어주고, 돌보고 위로하고, 연민을 갖고 연대하길 간절히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인 여러분들 또한 더불어 이 기도의 길에 서 있으리라 믿습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God loves you.~♡God loves you.~♡

문규현 신부님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http://blog.daum.net/paulmun21/7318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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