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영성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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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숙 [hsryu] 쪽지 캡슐

2001-02-21 ㅣ No.2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축일 10월 4일)

 

아씨시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1182 ~ 1226)는 청년시절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마음을 돌이켜 자기 유산까지 포기하면서까지 가난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복음대로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 사랑을 알렸다. 제자들을 훌륭한 생활양식으로 교육시켜 제1회인 작은 형제회를 사도좌로부터 인준을 받게하고 제2회인 글라라 관상 수녀회와 제3회인 제속회를 세우고 이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1232년에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프란치스코는 오상을 받았으며 많은 기적을 일으켰고 예언의 정신으로 많은 일들을 예언하였다. 그는 복음설교에 뛰어났고, 창조주 때문에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했다. 성인의 겸손, 순명, 기쁨, 단순성은 참으로 아름다운 영성의 꽃을 피웠다. 여기서는 성인이 피운 꽃중에 가장 큰 꽃인 가난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무엇이 사람을 참으로 행복하게 하는가? 소유인가? 무소유인가? 성인안에서 여러분은 스스로 답을 찾을것이다.

 

눈물의 골짜기에 있는 동안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아들들의 흔한 부(富)를 하찮게 여겼고 더 높은 사물들을 열망한 나머지 마음을 다하여 가난을 갈구하였다. 그는 가난을 하느님의 아들과 특별히 가까운 것으로 깨닫고 나서, 비록 온 세상이 가난을 걷어찼지만 그는 영원한 사랑으로 가난과 정혼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녀(가난)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연인이 된 다음부터는 자기 부인(가난)과 더 힘차게 붙어 있기 위해서, 그리고 둘이 한몸이 되기 위해서 아씨시의 포목상으로 부자였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났을 뿐 아니라 모든 일들을 내팽개쳤다.

 

그러므로 그는 그녀(가난)를 끌어당겨 순결한 포옹을 하였고, 그녀(가난)의 남편이 못되면 한 시간도 이를 참지 못했다. 그가 늘 자기의 아들들에게 말했듯이, 가난이 완덕에 이르는 길이었고 가난이 영원한 부(富)의 약속이며 보증이었다. 아무도 그가 가난에 탐욕스러웠던만큼 금붙이에 탐욕한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그가 복음의 진주를 간수하는 데에 안달한 만큼 자기의 보물을 간수하는 데에 안달한 사람이 없었다. 그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가난에 역행하는 일들을 형제들에게서 발견하면, 이것으로 마음을 상하였다. 진정 그는 수도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 벌의 투니카와 한 가닥의 허리끈과 팬츠들만을 가진 부자였고 다른 것은 일체 없었다. 우리 생활을 받아들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고 또한 안팎으로 기운 수도복 한 벌과 띠와 속옷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 더 가지기를 원치 않았으며, 그의 초라한 수도복은 그가 어디에 자기 재산들을 두었는지를 드러내 준다. 그는 이렇게 기쁘고 안전하고 가볍게 자기 길을 달렸으며, 썩고 말 보물을 백배나 값진 물건으로 바꾸고 기뻐하였다.

 

가나한 자들의 아버지이신 프란치스꼬는 스스로 모든 가난한 사람들과 같아지려 하였고 당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몹시 슬퍼하였다. 그것은 헛된 영광을 탐해서가 아니라 다만 동정심에서였다. 그는 크나큰 애정에 이끌려 어떻게 해서라도 가난한 자들을 도우려 하였고, 가난한 사람이 수치를 당한다든가, 피조물이 누구에게서 저주를 듣는 것을 보면 그는 몹시 괴로워하였다. 한번은 일이 벌어졌다. 어떤 형제가 동냥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욕설을 했던것이다. “여보시오, 부자이면서 가난한 척하지 마시오!” 이에 그는 그 말을 한 형제를 호되게 꾸짖고 그 가난한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 발에 입을 맞추어 용서를 청하라고 명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하였다. “가난한 사람에게 저주를 하는 자는 그리스도께 상처를 입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부요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높은 상징을 그들이 달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그는 가난한 사람이 나뭇짐이나 다른 짐꾸러미를 지고 가는 것을 보면 자기 어깨도 약골(弱骨)이면서 자기가 도와 주겠다고 어깨를 자주 내밀었다.

 

세상사를 잊고 성인이 그리스도께 회두한 그날부터 그는 요를 깔고 눕지 않았을 뿐 아니라 깃털 베개도 베지 않았다. 병에 걸린다거나 아니면 밖에서 자도 이것만은 한결같았다. 그가 그렉치오 은둔소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눈이 아파서 평소와는 달리 혹심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의 뜻과는 관계없이 베개를 억지로 베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밤을 그렇게 지내고 새벽이 되어 성인이 동료를 불러 말하였다. “형제여, 간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몸을 가누어 기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골이 흔들리고, 무릎엔 맥이 빠지는 것이 온몸이 마치 독(毒)보리로 만든 빵을 먹은 것처럼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내가 벤 베개에 마귀가 붙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더 이상 마귀가 내 머리맡에 있는 것을 원치 않으니 그 베개를 치우도록 하시오.” 그형제는 사부님의 하소연에 덩달아 괴로워져서 성인이 치우라고 던져 준 베개를 들고 나오다가 그는 갑작스레 말을 못하고 공포에 눌려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대체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후 이 사실을 안 성인께 불리어 가서 그제야 그는 풀리어 원상으로 돌아온 다음 자기가 당한 것을 이야기 하였다.성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저녁에 끝기도를 바칠 때 마귀가 방에 들어 온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계속하였다. “우리의 원수는 매우 영리하고 교활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속으로 해칠 수 없을 경우에는 최소한 육신에 무언가 불평할 꼬투리를 줍니다.”

 

어디로 넘어져도 부드러운 데로 넘어질 수 있도록 방석들을 빈틈없이 방에 깔아 놓은 사람들은 들으시라 악마는 의도적으로 풍족한 데를 따라다닌다. 악마는 좋은 잠자리 곁에 있기를 좋아한다. 필요치 않은 곳에 이런 잠자리가 있거나 혹은 수도생활이 이를 금하는 곳에 그런 것이 있으면 악마는 그런 잠자리 곁에 있기를 더 좋아한다. 늙은 악마는 가난한 자와 관계하는 것을 질색하며, 극도의 가난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알몸이 된 사람을 피한다.만일 어떤 형제가 악마는 깃털에 숨어 있다는 것을 유념한다면 그 형제의 머리는 짚으로 만족할 것이다.

 

                                   -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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