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12년 7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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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2-09-18 ㅣ No.172

Allocutio July, 2012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고통과 새로운 복음화
 
고통이란 모든 사람의 일생에 있어 한 부분이며 그리스도인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고 레지오 단원도 마찬가지인 것은 분명합니다. 시기가 빠르거나 늦을 수는 있지만 거의 모든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박해와 차별, 방해로 고통을 겪어야만 했는지를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통을 겪게끔 부름을 받은 것이라고 때때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겪도록 부름 받은 순교는 종류가 매우 많이 다양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계획 안에 우리 각자에 대한 고통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 상식적이거나 실제 현실입니다. 다행히도,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고통의 의미와 위치에 대해 교본에서 대단하고 심오한 통찰력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의 삶에 있어 고통이 대단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때로는 곤경과 함께 고통을 받아들이셨고 그 고통을 세상의 구원을 위한 놀라운 사랑으로 주셨습니다. 단지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거나 묵주기도의 고통의 신비를 바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예수님의 끔찍한 고통에 대해 약간은 생각해 불 수 있습니다. 고통은 또한 천주성모이신 마리아의 삶에서도 주요 부분을 차지합니다. 교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십자가 아래에는 너무도 상심하여 더 이상 삶을 지탱하기도 힘들 것처럼 보이는 한 여인이 서 계신다. 이 여인이 바로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동시에 구원받는 이들의 어머니이시다.”(92쪽) 그러므로 그리스도인과 따라서 우리 레지오 단원들에게 고통의 핵심적인 의미는 고통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마리아의 동정심을 통해 마리아도 함께 세상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교본에서 고통의 사도직(355쪽 참조)이라 언급한 것이 가장 효과적인 복음화의 방법이 됩니다
 
저는 최근 몇 년간 다양한 레지오 단원 모임과 교회의 다른 운동 단체들에게 새로운 복음화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해 매우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현대 세계의 새로운 상황과 새로 생겨나는 문화에 맞는 새로운 복음화의 방법을 개발하고 실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의 구원 계획을 계시하심에 간여한다면 극히 경솔하고 해로울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은 똑같아야만 합니다. 또 다른 복음을 지어내거나 새로운 세대들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뽑아 선택하도록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복음 선포의 본질적 부분인 전통적인 복음화 방법을 도외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그 전통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듯이 말입니다.
 
베네딕토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되고 레지오의 위대한 친구이자 후원자인 풀톤 쉰 대주교(Archbishop Fulton Sheen)의 유명한 말씀을 저는 기억합니다. 그는 “오늘날의 세상에는 허비되는 고통이 매우 많이 있으며 허비되는 고통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레지오에는 허비되는 고통이 반드시 없어야 합니다. 교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서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리 1,29)(92쪽) 다시 말해 레지오는 고통을 특권이라 부름으로써 성경의 말씀을 옹호합니다.
 
수세기를 내려오며 매우 많은 성인들과 영성적인 작가들이 일치하였듯이, 교본도 또한 고통을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언제나 하나의 은총이다. 고통은 (신체적으로) 병을 고쳐주거나, (정신적으로) 힘을 북돋아준다. 고통은 결코 죄에 대한 벌이 아니다. ‘고통은 병을 고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고.’ 아우구스티노 성인(St. Augustine)은 말했다. 한편, 우리 주님이 겪으신 고통은 죄 없는 사람과 성스러운 사람들의 몸 안으로 흘러 넘쳐 들어가 그들이 더욱 완전히 그리스도를 닮도록 측량할 수 없는 특전을 베풀어 준다. 이처럼 고통을 함께 섞고 나누는 일은 모든 고행과 보속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94쪽)
 
레지오 단원은 필연적으로 그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되는 고통에 대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통찰력을 습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사도직 활동 중에 만나게 되는, 매우 많은 여러 방법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모두와 그 통찰력을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은 심각한 사고나 불치병, 또는 단순히 노령으로 인한 육체의 자연적인 쇠약 때문에 삶의 질이 매우 저하된 것으로 보이는 많은 환자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들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필요 없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에는 이것이 사람의 삶에 있어 가장 결실을 얻기가 좋은 때입니다. 이는 영혼을 심도 있게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복음화의 가장 좋은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고통을 허락해 주신데 대해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고 이는 우리를 예수님과 그분의 구원 사명에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혼들의 영원한 선을 위해 하느님께서 그들을 초대해서 주시려는 엄청난 가능성에 대해 자상하고 순수한 우호의 정신 및 사랑으로 알려 줌으로써, 심각하게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품위를 회복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 레지오 단원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전혀 아무도 없습니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새로운 복음화는 사람의 고통이 모여 있는 곳의 거대한 잠재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드리려는 말씀이 다음과 같이 교본에 훌륭하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환자들이 이처럼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게 되면, 지금까지 자기는 한낱 쓸모 없고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으로 참담한 처지에 빠져 있다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쓸모 있는 존재로 여기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최고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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