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邪慾偏情(사욕편정) 혹은 私慾偏情(사욕편정)??? 792_ capital [번역오류_邪慾偏情] [칠죄종] [번역오류_사욕편정] [_칠극] [한불자전, 1310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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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7 ㅣ No.1310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이 글에서는, 참으로 슬픈 마음과 함께, 영어로 "concupiscence"로 번역이 되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신학적 용어인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의 올바른 한자 번역 용어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가톨릭계에서 지금까지 "慾偏情(사욕편정)" 혹은 "慾(사욕)" 을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에 대응하는 한자 번역 용어로 사용해 왔는데, 이것이 대단히 심각한 용어 번역 오류임을 오늘 날짜로 알게 되었기에, 이 글로 보고를 드립니다(report).

오늘(2012년 12월 17일) 오후에, 이 사실을 알고나서 필자가 대단히 참담한 심정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리고 전혀 예상밖의 용어 번역 오류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2월 28일]

게시자 주: 다음은 이 글을 작성하기 시작할 때에 필자가 느꼈던 심정입니다. 많이 부족한 죄인의 필력부족 때문에 이 답답한 심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만, 그리고 그리스도의 아픔에 비교하면 당연히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그러나 하여튼, 이 글을 작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너무도 참담한 심정 때문에, [지금도 그렇지만] 안에서 솟아 오르는 아픔 때문에, 알 수 없는 눈물이 겉으로 그리고 속으로 자꾸 흘러 내렸습니다:

필자가 미국으로 유학(留學)을 나가기 직전 거의 3년에 걸쳐, 그동안의 조부님의 가르침들을 더욱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당시에 예상하고 있었던 앞으로의 고달픈 유학(留學) 과정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도 있는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의 상실을 우려하여, 그동안에 받았던 국내에서의 정규 교육 과정에서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4서5경(四書五經)으로 불리는 경전들을 주요 문헌들로서 가지고 있는 "유학(儒學)"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하여,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려있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님의 "주역 사전(周易四箋)"을 서울 성균관 대학교 뒷 동네 소재의 "한문 서당"(클릭하십시오)에서, 1981년 봄-1984년 봄 기간 동안의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하루에 약 세시간 반 정도씩 사사(師事)를 하였기에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어떤 부질없는 미련(?) 때문일까요?

하여튼,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전혀 예상 밖의 심각한 한자 용어 번역 오류에 직면하자, 참으로 답답하고 그리고 참담한 심정 때문에, 말하자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우리들 사이에 대단히 가까이 와 계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언어 장벽 그리고 문화 장벽 때문에,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우리들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언어 장벽 그리고 문화 장벽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에 대한 아타까움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필자의 시야를 가린다고나 할까요? 

[이상, 내용 추가 끝].

2. 기초 자료 조사

2-1.

2-1-1.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의 번역문들에서 사용 중인, "concupiscence" 에 대응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는, 오늘 현재(2012년 12월 17일)까지, "慾偏情(사욕편정)" 혹은 "慾(사욕)" 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1959년판 "천주교요리문답" 제39항에서 "과성은혜"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서 언급되고 있는 문장 중의 "사욕편정"에서의 한자어가  "慾偏情(사욕편정)" 임을 2012년 12월 22일에 필자가 또한 확인하였다.

2-1-2.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사욕편정(concupiscence)"이라는 번역 용어의 한자 단어는 "慾偏情(사욕편정)" 이며, 그리고 이 번역 용어에 대한 설명은, 그 내용에 있어, 이 용어가, 죄(sin)인, 윤리적 악(moral evil)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러나 바로 그러한 설명은, 윤리적으로 선한 의미 혹은 악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신학적 용어인 "concupiscence" 의 정의(definition)와 직접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게시자 주 2-1-2: 그런데 무척 특이한 점은, 바로 이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사욕편정(慾偏情)"이라는 표현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의 다른 용어들에 대한 가톨릭대사전의 설명과는 달리, 1880년에 초판 발행되었다는 ≪한불자전(韓佛字典, Dictionnaire Coreen Francais)≫(클릭하십시오) 이외의 출처/근거 문헌들의 제시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필자의 최근의 글들과 이 글은, 가톨릭 보편 교회 문헌들과의 비교/검토 과정을 거쳐, "한불자전"에서 한자 번역 용어로서 제시되고 있다는 "慾偏情"라는 한자 표현이 가톨릭 보편 교회의 신학적 용어인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정의(definition)를 올바르게 제대로 전달하는 번역 용어가 아님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글이기도 할 것이다.
(이상, 게시자 주 끝).

2-2.
2-2-1. 대단히 놀랍게도, 중국어권 천주교측의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에서 사용 중인, "concupiscence" 에 대응하는 중국어 번역 용어는, 결코 "慾偏情" 이 아니고, "慾偏情" 이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본문 중에서 "慾偏情" 이 사용되고 있는 항들은 다음과 같다: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5, 418, 1264(3번), 1426(2번), 2514항.

2-2-2.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본문에는 "慾偏情" 이라는 표현이 없음을 또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6월 5일]

또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본문에는 "" 이라는 표현이 없음을 또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2-2-3. 그리고 다음은, 중국과 대만의 가톨릭계에서 사용하는, "天主敎英漢袖珍辭典" 에 주어진 "concupiscence"에 대한 설명이다. 이 사전에서 "사욕편정(欲偏情)" 으로 번역되는 이 번역 용어 그 자체의 의미는, 윤리적으로 긍정적이지도 혹은 부정적이지도 않음을 또한 알 수 있다. 즉 윤리적 선(moral good)을 뜻하거나 혹은 윤리적 악(moral evil)을 뜻하지 않는,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출처: http://www.peterpoon.idv.hk/Resource/Dictionary/C.htm

(발췌 시작)
concupiscence 欲偏情;七情六欲;貪欲;情欲:意指追求理想過程中,違反理性的(縱欲)傾向,其本身非罪,但易受誤導:善用有功,妄用有過。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2-3:

(1) 특히 다음의 설명이 구체적으로 주어져 있다. 우리말 번역은 필자가 한 것이다:

意指追求理想過程中,違反理性的(縱欲)傾向,其本身非罪,但易受誤導:善用有功,妄用有過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과정 중에, 이성의 (욕심을 쫓는) 경향을 위반함을 뜻하는데(意指), [이 위반은] 그 자체는 죄[즉, 윤리적 악(moral evil)]가 아니나, 그렇지만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 [이 위반은] 선하게 사용하면 공로(功)를 낳으나, 제멋대로 사용하면 허물(過)을 낳는다.
(이상,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2월 28일]

(2) 그리고 다음에 있는 중국의 기독교(개신교 및 가톨릭 포함)계에서 사용하는 基督宗敎外語漢語神學詞典에서도 또한 concupiscence를 으로 번역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출처:  http://www.chinacath.com/book/html/162/9599.html

(발췌 시작)

concupiscence 欲偏情, 欲望,?欲, 情欲 此?源自拉丁文「com, cum 和、同、以及」及「cupere 思慕、嗜好、??、??」,指不??的嗜好??望,亦指人性衰弱的一面,?不合乎天主/上帝?命的?向(?七7;弗二3)。天主?神?家??古斯丁↗Augustinus到多?斯↗Thomas Aquinas及特利?大公??(Council of Trent↗附?三)皆?私欲偏情?原罪的后果,但其本身?非??的罪的行?。新?神?却??私欲偏情本身就是罪,?的存在是?背天主/上帝?命的事?。
(이상, 발췌 끝)
[이상, 2015년 2월 28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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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그러나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사욕편정" 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인데, 번역 용어인 그 한자 단어 "慾偏情" 및 이 한자 단어에 대한 설명 자체가,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윤리적으로 선(morally good)하거나 혹은 윤리적으로 악(morally evil)하다는 의미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 "concupiscence" 의 의미와 대단히 많이 다릅니다:

출처: http://stdweb2.korean.go.kr/search/List_dic.jsp

(발췌 시작)
사욕편정(慾偏情)

『가톨릭』
바른 도리에 어긋나는 온갖 정욕. 음욕, 방종 따위를 이른다.
(이상 발췌 끝).

질문: 왜 이러한 예상밖의 도저히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였을까요?

2-3.
2-3-1.
 여기를 클릭하면, "慾偏情" 이라는 단어가 중국어권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음을 구글 검색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2-3-2. 여기를 클릭하면, "慾偏情" 이라는 단어가, http://ctext.org 제공의, 대단히 방대한 양의 한문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음을 구글 검색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2-4.
이들 두 한자들 "" 와 "" 의 발음(pronunciation)은, 우리나라에서는 동일하게 "사"로 발음되고 있으나, 그러나 중국어 발음들과 일본어 발음들은 완전히 다르다.

2-4-1. 여기를 클릭하면, 한자 "" 의 중국어 발음[ xié(시에) ]을 직접 들을 수 있다.

2-4-2. 여기를 클릭하면, 한자 "" 의 중국어 발음[ si(쓰) ]을 직접 들을 수 있다.

2-4-3. 여기를 클릭하면, 한자 "" 의 일본어 발음이 [ じ(자) ] 인 것을 의 邪惡 의 발음 [ じゃよく(자요쿠) ] 로부터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주의 사항 한 개: 다만, 이 한자가 일본인들에 의하여 제2-2-4항에서 있는 한자와 대단히 비슷한 소리로 읽히는 경우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다.

2-4-4. 여기를 클릭하면, 한자 "" 의 일본어 발음이 [ し(시) ] 인 것을 私慾 의 발음 [ しよく(시요쿠) ] 로부터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게시자 주 2-4:

3.
지금까지 고찰한 바로부터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경우들을 귀납적으로 추론할(inductively reason) 수 있을 것입니다

3-1. (첫 번째 귀납적 추론) 가톨릭 교회의 신학적 용어인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 가 애초에 중국어권에서 "慾偏情(욕편정)" 이라고 가톨릭 교리적으로 올바른 내용을 나타내는 번역 용어로 번역되었으나 [주: 중국어권에서 "慾偏情" 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음], 이후의 어느 시점에, 중국어 혹은 일본어를 사용하는 지역이 아닌, [주: 이들 두 한자 단어들의 중국어 발음들 및 일본어 발음들이 너무도 다름] 즉 이들 두 한자들을 동일하게 발음하는 한국어 사용 지역에서, 애초의 올바른 번역 용어인 "慾偏情(욕편정)"을 우리말로 소리내어 읽고서, 어떤 자가 어떤 특정한 이유 때문에 [주: 예를 들어, 일찌기 16세기 초반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concupiscentia"와 "원죄(the original sin)"를 동일시하였으나, 그러나 바로 이 동일시는 16세기 중반에 개최되었던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에서 가톨릭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이단(heresy)으로 단죄되었다], 첫 글자 를 의도적으로 로 바꾸어, 가톨리 교회의 신학 용어인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 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가 "慾偏情(욕편정)" 이라고 변조하여 국내의 가톨릭계에 퍼뜨렸을 수도 있다.

3-2.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사욕편정(concupiscence)" 이라는 번역 용어의 한자 단어는 "慾偏情(사욕편정)" 이며, 그리고 이 번역 용어에 대한 설명 중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습니다:

(발췌 시작)
천주교 용어로서 이 '사욕편정'이라는 옛 말은 오늘날말로 바꿔보자면 '욕정'(欲情)에 해당한다. ≪한불자전(韓佛字典, Dictionnaire Coreen Francais)≫에 따르면 '邪慾偏情'(사욕편정)이란 ① 음욕(concupiscence), ② 방종(immortification)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다시 풀이하면, 같은 조건에 처해 있는 사람 사이에서 자제력을 잃고 행하는 불의, 편파적인 짓, 또는 그러한 생각이나 습관 따위를 지칭한다. 정리(正理)에 어긋난 온갖 정욕, 즉 욕정이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이성(理性)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원죄(原罪)의 결과로서 인간성이 죄에 기울어져 있음을 말한다.
(이상, 발췌 끝).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다움(Daum) 일본어 사전에 주어진 "慾偏情(사욕편정)"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발췌 시작)
<キリスト?> 正理せいりに反はんするすべての情欲じょうよく.

<기독교> 정리(正理)에 어긋나는 온갖 정욕(情欲).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끝).

게시자 주 3-2:
(1) 바로 위의 일본어 문장의 우리말 번역은, 다움(Daum) 일본어 사전 제공의 설명이 또한 제공하고 있는 우리말 번역을 따른 것입니다.

(2) 여기를 클릭하면, 다움(Daum) 제공의 일본어 사전에서 "천주교""기독교[基督敎(キリスト?)]"를 구분하고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듯이, 위의 일본어 사전에 주어진 설명에서, "천주교(天主敎)"라는 표현 대신에, 과거에 일본과 우리나라의 개신교측에서, "개신교(Protestant)"라는 표현 대신에, 많이 사용해 왔던 "기독교(キリスト?)" 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설명한 점에 특히 주목합니다.

(3) 다른 한편으로,

여기 1를 클릭하면<----- 꼭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여기 2를 클릭하면, <----- 꼭 확인하십시오

일본의 가톨릭측에서도 또한 일본의 개신교측과 마찬가지로, "concupiscentia" 를 중국의 가톨릭측과 동일하게 "慾偏情" 으로 번역하였던 것이 아니라, 더 짧은 표현으로, "" 으로 번역하여 사용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본측의 바로 이 번역 용어는, 위에서 이미 지적하였듯이, 이 번역 용어 자체가 윤리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concupiscentia" 라는 신학적 용어의 의미에 대한 가톨릭 그리스도교 교리와 충돌하고 있습니다.

(4) 위의 게시자 주 2-1-2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慾偏情(사욕편정)" 에 대한 설명에서, <<한불자전>> 이외의 신뢰할 수 있는 출처/근거 문헌들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는데, 혹시라도 일본어로 저술된 자료일 경우에는, 다른 이유 때문에, 제시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위의 일본어 사전의 설명에서, "기독교(キリスト?)" 라는 표현에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이 일본어 사전에 주어진 설명이, 가톨릭측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 설명이 아니라개신교측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 설명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귀납적 추론)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신학적 용어인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 가 애초에 일본어권에서 "정리(正理)에 어긋나는 온갖 정욕(情欲)" 이라는 의미로 번역이 되었으며, 이것이 우리나라 천주교측의 용어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의미가 개신교측에는 교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나, 그러나 가톨릭측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 의 신학적 정의(definition)와 충돌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는, 예를 들어, 일찌기 16세기 초반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는 "concupiscentia" 와 "원죄(the original sin)" 를 동일시하였으나, 그러나 바로 이 동일시는 16세기 중반에 개최되었던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에서 가톨릭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이단(heresy)으로 단죄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제시한 바와 같은 "잘못된 번역 용어"를 바로잡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는 문헌이 바로, 여기를 클릭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일 것이다.

3-3. (세 번째 귀납적 추론) 1959년판 "천주교요리문답" 제39항에서 "과성은혜"에 대한 질문의 답 중에서 언급되고 있는 문장의 "사욕편정"에서의 한자 번역 용어가 "慾偏情" 임을 확인하였는데, 이것으로부터, "concupiscence" 에 해당하는 라틴어 용어가 (아직까지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한문 문화권으로 최초로 한자단어로 번역이 될 때에 "慾偏情(사욕편정)" 으로 번역이 되어,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 등에서 사용되어왔으나,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concupiscence" 에 해당하는 라틴어 단어의 번역 용어인 "慾偏情(사욕편정)" 의 첫 번째 한자인 가, 가톨릭 그리스도교 교리적으로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대단히 부적절하다는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판단과 함께, 교황청 유관 부서에서 "慾偏情(욕편정)" 으로 수정하였을 수도 있다고 귀납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은, 위의 제2-4항에서 자세히 살펴 보았듯이, 의 발음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에서만 동일함을 고려하였을 때에,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다.

게시자 주 3-3:
(1) 지금까지의 귀납적 추론들과 관련하여, 결국에,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천주교요리문답" 이전에 중국에서, 1675년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순전히 한문으로 발간된 "天主聖?百問答"에, 그리고 중국 홍콩에서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要理問答" 에서 "사욕편정"을 한자로 "慾偏情" 으로 표기하고 있는지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2) 그런데,

여기를 클릭하면,

중국 천주교 홍콩 교구 홈페이지 제공의 "要理問答(香港公??理學會出版)" 전문을 읽을 수 있으며, 특히 아래에 발췌한 이 문답의 제41문답에서, "慾偏情" 대신에, "慾偏情"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발췌 시작)
 

41 問 原罪有什?後果?

 不僅原祖被天主?出地堂,失了一切超性的恩典,而且我們一生到世上,就都沒有天主的寵愛,?遭受私慾偏情,死亡痛苦,及別的一切禍患。 (創:三,十九,二三 ─ 二四;羅:伍,十二;創:捌,二一)

(이상, 발췌 끝).

참고 자료: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구글 검색 결과)

(3) 따라서, 바로 위의 제4-1항과 위의 제2-3항제2-4항에 의하여, 우리는 위의 제3-2항두 번째 귀납적 추론 및 제3-3항의 세 번째 귀납적 추론참(true)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4.
위의 게시자 주 3-3: (3) 에서의 결론이 타당함은 다음의 발췌한 글들이 또한 뒷받침한다.

(i) 즉,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정약종의 아들이자 다산 정약용의 조카인,  성 정하상 바오로[丁夏祥, 1795-1839년(순교)]上宰相書(상재상서)의 본문 중에서, "慾偏情" 대신에, "慾偏情" 이라는 한자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므로, 적어도 상재상서가 저술되었던 시기에 이르기까지는 중국측의 천주교 교리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慾偏情" 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또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ii) 그러나 上宰相書(상재상서)성 정하상 바오로(丁夏祥)에 의하여 저술된 이후의 어느 시점부터, "慾偏情" 대신에, "慾偏情" 라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교리적으로 대단히 잘못된 한자 용어가 우리나라의 천주교측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생각이다.

(iii) 특히 위의 제2-3항제2-4항에서 고찰한 바를 또한 고려할 때에, 1839년경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上宰相書(상재상서)의 한글본에다, "concupiscentia" 라는 라틴어 신학적 용어에 대한 가톨릭 그리스도교 교리를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자가, 그러나 위의 제3-2항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중국의 가톨릭 혹은 개신교측이 아니라, 일본의 가톨릭 및 개신교측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교리와 충돌하는 대단히 잘못된 번역 용어인 "慾偏情" 라는 한자 용어를, 예를 들어, 우리말 번역 용어인 "사욕편정" 바로 다음에 괄호를 사용하면서 다시 추가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며, 그리하여 그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중대한 한자 용어 번역 오류가 발생하였을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4-1.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12.htm

다음은 부산교회사연구소 사보29 에 실린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발췌 시작)

사보29  - (올린날: 2002년 2월 6일 수요일 , 조회수: 80 )

주 제 중국과 한국 최초의 호교론에 나타난 그리스도교 인식
부 제 徐光啓의 〈辯學章疏〉와 丁夏祥의 〈上宰相書>
저 자 장정란(덕성여대 강사, 동양사)

(2) 호교론

상재상서의 호교론은 주로 십계명에 의하여 이론이 개진되었다. 즉 실천윤리로서의 천주교의 가르침은 "은밀한 일을 찾아서 기괴한 일을 하는 따위도 아니고, 다만 잘못을 고침으로 스스로 새로워져서 천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일 따름"이다. 계명이란 천주가 계시로 가르치신 열 가지 계율로서, 어떤 것인지를 모두 제시한 다음,

열 가지 계율을 종합하면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즉 천주를 만유 위에 사랑하고, 남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앞의 세 가지 계율은 천주를 밝혀 섬기는 절차이며, 다음의 일곱 가지 계율은 자기를 닦아 성찰하는 공부입니다.

라고 설명하며 "이 속에는 충(忠) 서(恕) 효(孝) 제(悌)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모두 포괄되어 터럭 하나만큼이라도 모자라는 것이 없다"고 하여, 유교의 근본사상을 십계명 안에 포함되어 있는 덕성(德性)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또한 "이 도리를 한 집안에서 행하면 그 집안이 가지런해질 것이고, 한 나라에 행하면 그 나라가 잘 다스려질 수 있으며, 천하에 행하면 천하가 평화로워질 것입니다"라고 하여 유교 실천윤리론의 기본을 이루는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근본이 십계명에도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교회의 합유(合儒)를 설명하고 있다 .

이러한 천주교의 실천윤리는 한층 엄격하고 고차원적인, 그래서 몸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 범하는 것까지 금한다고 하였다. 즉 세상을 다스리는 법률은 그 행동을 다스릴 수 있으나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데, 천주의 계명은 그 행동을 다스릴 뿐 아니라 또한 마음도 다스리게 한다. 또한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미약하여 욕(慾)과 편정(偏情)이 백방으로 유인하니, 오만, 분노, 탐욕, 사음, 질투, 인색, 게으름을 언제나 경계하고 배척하고 그때 그때에 공격하여 물리치지 않으면 함정에 빠짐을 면하지 못한다고 하여 칠죄종의 교리도 십계명과 함께 천주교의 윤리로 제시하였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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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다음은 성 정하상(丁夏祥) 바오로(1839년에 순교)의 저술인 上宰相書(상재상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이 문헌이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욕편정(慾偏情)칠죄종으로 불리는 죄들을 그 당시에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확인해 주는 중요한 문헌임을 알 수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13.htm

(발췌 시작)

 

十誡之中,不可犯一,而非徒身犯,尤禁心犯.大凡人之過失,作於其心.害於其事,治世之法,可治其事,不治其心,天主之誡,非徒治其事,亦治其心,然而人心惟危,道心惟微頃刻犯罪,慾偏情百方引誘,誘以驕傲,誘以憤怒,誘以貪?,誘以邪淫,誘以嫉妬,誘以?吝,誘以懈怠.?人於必死之地.苟不時時警斥刻刻攻退則不免於羅穿.終身相戰戰無移時戰勝則成功,不勝則抵罪,功罪之判卽身死之日也.天主至公無善不報天主至義無惡不罰.若身死之後,魂亦隨滅,則賞也罰也,施於何所乎.又當知,靈魂之不滅也.
 
열 가지 계율 가운데에서 한 가지라도 범할 수 없으며, 다만 몸으로 범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더욱 마음으로도 범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무릇 사람의 과실은 그 마음 속에서 일어나서 그 행동을 그르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법률은 그 행동을 다스릴 수 있으나, 그 마음을 다스리지는 못합니다. 천주의 계명은 다만 그 행동을 다스릴 뿐 아니라 도한 그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기만 하고, 도리를 따르는 마음은 미약하기만 하여, 자칫하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욕과 치우친 감정이 백방에서 유인하니, 곧 오만으로 꾀이고, 분노로 꾀이고, 탐욕으로 꾀이고, 사음으로 꾀이고, 질투로 빠뜨립니다. 참으로 언제나 경계하여 배척하고 또 그때 그때에 공격하여 물리치지 아니하면 함정에 빠짐을 면하지 못합니다. 죽는 날까지 서로 싸우고, 싸우되 긴장을 푸는 예가 없어야 하며, 싸워서 이기면 공을 이루게 되고 이기지 못하면 죄에 저촉됩니다. 공로와 죄과의 판단은 곧 육신이 죽는 날에 있습니다.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번되시니, 선은 갚지 않으심이 없고, 또 천주께서는 지극히 의로우시니, 악은 벌하지 아니하심이 없습니다. 만약 육신이 죽은 뒤에 영혼까지 따라서 없어진다면 상이나 벌을 어디에 베푸시겠습니까? 또한 영혼이 멸하지 아니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 발췌 끝)

4-3.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여, <----- 꼭 클릭하여 살펴 보십시오.

구글 검색 결과를 들여다보면 대단히 다행스럽게도, 국내의 일부 가톨릭 교우님(여기에는 성직자 및 수도자들이 포함됨)들께서는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심각한 한자 용어 번역 오류를 이미 알아차려, "사욕편정" 이라는 번역 용어의 한자 표현을, "慾偏情" 대신에, "慾偏情" 으로 사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5. 이 글의 요약 및 결론
5-1. 지금까이 이 글에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최근의 약 170년 동안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발생하였다는 생각입니다:

(i) 중국에서 "concupiscentia"가 "慾偏情" 으로 번역이 최초로 되었으며, 그리고, 1839년경 이전에, 바로 이 한자 번역 용어가 우리나라 가톨릭계로 먼저 수입되었다.

(ii) 그러나 일본에서, 죄(sin)가 아닌 "concupiscentia"가, 윤리적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 으로 번역이 되었으며, 그리고, 1839년경 이후의 어느 시점(A)에, 이 한자 번역 용어가 우리나라 가톨릭계로 나중에 또한 수입되었다.

(iii) 그 이후 어느 시점(B)에, 즉 1880-1910년(천주가사 제2기, 1850년대인 천주가사 제1기의 구전 가사들을 우리말로 기록한 시기) 혹은 1910∼1930년(천주가사 제3기, 일제 강점기의 초기)에, 오로지 국내의 가톨릭계에서만, 이들 두 개의 한자 번역 용어들을 섞어 "慾偏情" 이라는 정체 불명의 한자 번역 용어를 새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concupiscentia = "사욕편정(慾偏情)" = "사욕(慾)"

이 지금까지 국내 가톨릭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일본에서 수입된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는, "사욕(慾)" 이라는 한자 번역 용어는, 예를 들어,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978항, 1264항(2번), 1426항, 2514항, 2515항 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그리고 "사욕편정(慾偏情)" 이라는 정체 불명의 한자 번역 용어는, 예를 들어, 굿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대사전의 용어 설명들에서 사용되고 있다.

(iv) 그러나 다음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사욕편정(邪慾偏情)"이라는 단어의 설명은, 가톨릭 보편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concupiscentia" 의 의미가 결코 아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List_dic.jsp

(발췌 시작)
사욕편정(邪慾偏情)

『가톨릭』

바른 도리에 어긋나는 온갖 정욕. 음욕, 방종 따위를 이른다.
(이상, 발췌 끝).

예를 들어,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하는 음욕(lust)은 가톨릭 보편 교회에서 가르치는 칠죄종(seven capital sins)들 중의 하나인 죄(sin)이나, 그러나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으로 정의되는 "concupiscentia(사욕편정)" 그 자체는 결코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66항에 나열된, [영적 죄종(spiritual capital sins)들 다섯 개들과 육에 기인하는 죄종(carnal capital sins)들 두 개들로 구성된] 칠죄종(seven capital sins)들이라고 불리는 죄들인데, 이들 중에, 죄가 아닌 "concupiscence(사욕편정)"는 당연히 없으며, 따라서 이들 각각에 대응하는 한자 번역 용어가 "concupiscence"의 한자 번역 용어와 동일한 표현으로 혹은 동의어가 되도록 용어 번역하는 것은 반드시 회피하여야 한다:

pride; 교만

avarice;(*) 탐(貪) [자신의 소유가 아닌 사물들을 과도(過度)하게, 죄 있게, 혹은 질투와 함께(inordinately, culpabally, or with envy) 취하고자 함. 십계명의 제10번째 계명(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14항).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근거 구절들은 여기에 있음(필독 권유)]

envy;
질투

wrath or anger; 분노 [진(瞋)]

gluttony;
도[?, 탐식, 육에 기인하는 죄종(carnal capital sin)]

lust; 음욕 [ = carnal concupiscence. 십계명의 제9번째 계명. 영문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29항, 육에 기인하는 죄종(carnal capital sin)]

sloth or acedia;
나태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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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에 의하여 저술된 "Moralis in Job"에서 칠죄종들 중의 하나로서 언급되고 있는 영어 단어 "avarice"[avaritia, inordinate desire]의 의미는,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라틴어 정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77항, 제1866항(avarice), 그리고 제2514항에서의 이들 용어들의 용례 (usage example) 분석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듯이,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concupisciece"[concupiscentia]결코 동일하거나 혹은 논리적으로 등가이지 않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http://www.vatican.va/archive/catechism_lt/p1s2c1p6_lt.htm#Paragraphus 6 HOMO [라틴어 정본 제377항]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P1B.HTM#1F9 [영어본 제377항]

http://www.vatican.va/archive/catechism_lt/p3s1c1a8_lt.htm#IV. Gravitas peccati: peccatum mortale et veniale [라틴어 정본 제1866항]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P6D.HTM#2X [영어본 제1866항]

http://www.vatican.va/archive/catechism_lt/p3s2c2a9_lt.htm#ARTICULUS 9 NONUM PRAECEPTUM [라틴어 정본 제2514항]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8P.HTM [영어본 제2514항]


따라서, "concupisciece"[concupiscentia]은 그 어의(literal sense)에 의하여, 칠죄종들에 포함되지 않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2) 칠죄종들에 대하여 처음으로/최초로 기술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의 생존 시기보다 더 이전에 생존하였던, 따라서 칠죄종들에 대하여 기술한 바가 없는 성 아우구스티노는, 칠죄종들보다 더 속적인 개념(generic concept)인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cupiditas, cupidity]을, 원죄의 결과로서 심장(heart) 안에서 발생하게 되는 "하느님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의 결여", 즉, 심장(heart) 안에 있는 "애덕(caritas)의 결여"로 정의하였다(defined). 여기서, "애덕"(caritas)이, 하느님에 의하여 심장(heart) 안에 주입되는(infused) 세 개의 주부덕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심장(heart) 안에 존재하며 그리고 아담(Adam)과 하와(Eve)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에는 그들의 심장(heart) 안을 완미하게(perfectly) 채우고 있었음을 반드시 상기하도록 하라. 

 

따라서,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cupiditas, cupidity]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바로 이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원죄의 결과로서 심장(heart) 안에서 발생하게 되는죄(sin)이다,

 

(3) 다른 한편으로,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에 의하여 정의된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avarice"[avaritia, inordinate desire]가, 곧, 심장(heart) 안에서 발생하게 되는 "세상이 사랑받게 되는 사랑"[cupiditas, cupidity]에 포함되는 한 개의 죄를 말함은, 성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님에 의하여 저술된, 칠죄종들이 처음으로 기술된, "Moralis in Job"에의 유관 분문들을 읽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4) (번역 오류) 또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인 라틴어 정본 "신학 대전"이 영어로 번역이 될 때에, 영어본 "신학 대전", IIa, IIae, q118에서, 라틴어 정본 본문에서 사용된 라틴어 용어 "avaritia"가, "avarice"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되는 대신에번역자에 의하여 임의적으로"covetousness"로 번역되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https://isidore.co/aquinas/summa/SS/SS118.html#SSQ118OUTP1 

http://www.logicmuseum.com/wiki/Authors/Thomas_Aquinas/Summa_Theologiae/Part_IIb/Q1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프랑스어본 "신학 대전", IIa, IIae, q118에서, 바로 위에 안내된 영어본 "신학 대전", IIa, IIae, q118 와는 달리, 라틴어 용어 "avaritia"가, "avarice"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docteurangelique.free.fr/bibliotheque/sommes/3sommetheologique2a2ae.htm#_Toc79332508 

 

(5) (또다른 번역 오류)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4)항에서 지적한,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 발생한 번역 오류의 문제는, 라틴어 "cupiditas"가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cupidity"로 직역 번역이 되는 대신에, "covetousness"로 번역되고 있는, 영어본 "신학 대전", Ia, IIae, q84 에도 또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5.htm <----- 필독 권고

https://isidore.co/aquinas/summa/FS/FS084.html#FSQ84OUTP1 

http://www.logicmuseum.com/wiki/Authors/Thomas_Aquinas/Summa_Theologiae/Part_IIa/Q84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또한 참조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6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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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1년 2월 15일자 내용 추가 끝]

게시자 주 iv-1: 다음은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신부 판토하[D. Pantoja, 龐迪我(방적아), 1571∼1618] 에 의하여 1614년에 중국에서 초판 발행되었던 저서인 "칠극(七克)" 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이다. 칠죄종으로 불리는 일곱 개의 죄들을 극복하기 위한 일곱 개의 덕(virtues)들이 나열되고 있는데, 여기에 분명히 "탐(貪)"이 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3573

(발췌 시작)
이 책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천주실의≫(天主實義)와 함께 일찍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연구되었고, 남인학자(南人學者)들천주교에 귀의케 하는 데 기여한 책 중의 하나이다.이익(李瀷, 1681∼1763)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이 책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는 곧 유학의 극기설(克己說)과 한가지라고 전제한 다음, 죄악의 뿌리가 되는 탐욕, 오만, 음탕, 나태, 질투, 분노, 색(*)과 더불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덕행으로 은혜, 겸손, 절제, 정절, 근면, 관용, 인내의 일곱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어 ≪칠극≫ 중에는 절목(節目)이 많고 처리의 순서가 정연하며 비유가 적절하여 간혹 유학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도 있는 만큼, 이는 극기복례(克己復禮)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천주교와 유교 사이에 윤리면에서 어느 정도 일치할 뿐 아니라, 때로는 천주교가 우월함을 은연중에 시인하였다. ...

한편 ≪칠극≫ 1777년부터 1779년간의 소위 천진암 · 주어사(天眞菴 · 走魚寺) 강학에서 남인학자들에 의해 연구 검토되었음이 확실하며, 일찍부터 한글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혀져, 감화시켰음을 짐작 할 수 있다. 한글필사본이 절두산순교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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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여기에 주어진 칠죄종에 속하는 죄(즉, 윤리적 악)들의 나열은 해당 한자 단어들이 또한 병기되어 있지 않기에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다음의 게시자 주 iv-2에 주어진 칠지(七枝) 가 바로 "칠극(七克)" 에서 나열되고 있는 칠죄종에 속하는 죄(즉, 윤리적 악)들의 정확한 나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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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iv-2:
(1) 다음은 이익(李瀷, 1681∼1763)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1권의 우리말 번역본에서 "칠극(七克)" 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2) 실제로 필자가 직접 자료를 찾아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익 선생은 한문 저서 七克 七克自序 (즉, 저자가 직접 쓴 서문) 을 직접 읽고 나서, 바로 이 "칠극자서"의 본문 중에서, 유학의 가르침과 충돌하는 일부 표현들을 생략하면서도, 그러나 유학에서 받아들이는 데에 문제가 없는 부분들은 발췌하여 옮기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요약하여 자신의 성호사설, 제11권, 칠극 에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3) 단, 아래의 발췌문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직접 한문 원문과 대조하여, 아래의 출처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한국고전번역원 제공의 우리말 번역문을, (i) 한문 원문에 더 충실하도록, 그리고 또한 (ii) 바로 이 우리말 번역문이 "칠극(七克)" 한문 원문에 적용되고 있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교정을 하였다.
(4) 그리고 또한, 예를 들어, 향후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그리고 더 나아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학습할 독자들을 위하여, 괄호 안에 대응하는 해당 영어 단어들을 추가하였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발췌 시작)
《칠극》은 서양(西洋) 사람 방적아(龐迪我)의 저술로 곧 우리 유교(儒敎)의 극기(克己)의 논설과 같다. 그 말에 “인생(人生)의 백 가지 일은 [윤리적] 악(惡)[moral evil, 즉, 죄(sin)](1)을 사르고 [윤리적] 선(善)을 쌓는 두 가지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므로, 성현의 훈계는 모두 [윤리적] 악을 사르고 [윤리적] 선을 쌓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무릇 [윤리적] 악이 욕심[즉, 욕구, the appetite]에서 생겨나기는 하나 욕심[즉, 욕구, the appetite]이 곧 [윤리적] 악[즉, 죄(sin)]은 아니다. 이 몸을 보호하고 영신(靈神)(2)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욕[the appetite, 즉. 욕구]인데, 사람이 오직 사욕[concupiscence](3)에만 빠지므로 비로소 허물이 생겨나고 여러 가지 [윤리적] 악[즉, 죄(sin)]이 뿌리박는 것이다. 이 [윤리적] 악의 뿌리가 마음속에 도사려, 부(富)하고자 하고, 귀하고자 하며, 일락(逸樂)하고자 하는 이 세 가지의 큰 줄기가 밖에 나타나고 줄기에서 또 가지가 생겨, 부하고자 하면 탐(貪, avarice)이 생기고, 귀하고자 하면 오(傲, pride, 교만, 오만)가 생기며, 일락(逸樂)하고자 하면 도(?, gluttony, 탐식)음(淫, lust)태(怠, sloth, 나태)가 생기고, 혹 부귀와 일락이 나보다 나은 자가 있으면 곧 투(妬, envy, 질투)가 생기고, 내것을 탈취당하면 곧 분(忿, anger, 분노)이 생기는 것이 바로 칠지(七枝)인 것이다. 탐(貪, avarice)이 돌과 같이 굳거든 은혜로써 풀고, 오만(pride)이 사자(獅子)와 같이 사납거든 겸손(humility)으로써 억제하며, (?, gluttony, 탐식)가 구렁[壑]과 같이 크거든 절제(節制, temperance)로써 막고, 음(淫, lust)이 물과 같이 넘치거든 정(貞, chastity)으로써 막으며, 나태(sloth)가 지친 말과 같거든 부지런함으로써 채찍질하고, 질투(envy)가 파도와 같이 일어나거든 너그러움으로써 평정시키고, 분노(anger)가 불과 같이 일어나거든 참는 것으로써 지식(止熄)시킬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칠지 가운데에는 다시 절목(節目)이 많고 조관(條款)이 순서가 있으며 비유하는 것이 절실하여 간혹 우리 유교에서 밝히지 못하였던 것도 있으니, 그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공정(功程)에 도움이 크다고 하겠으나, 다만 천주(天主)와 마귀의 논설이 섞여 있는 것만이 해괴할 따름이니, 만약 그 잡설을 제거하고 명론(名論)만을 채택한다면, 바로 유가자류(儒家者流)라고 하겠다.

[주C-001]칠극(七克) : 명(明) 나라 방적아(龐迪我)가 찬(撰)한 일곱 권의 책인데, 천주교(天主敎)의 복[伏傲(pride)]ㆍ평[(平妬(envy)][貪(avarice)]ㆍ식[(熄忿(anger)]ㆍ색[(塞?(gluttnoy)]ㆍ방[(坊淫(lust)]ㆍ책[(策怠(sloth)] 등 7기(忌)의 설을 논하였다. 《四庫提要 子 雜家類存目》 《類選》 卷10上 經史篇九 異端門.
(이상, 발췌 끝).

-----
(1) 발췌자 주: 여기서 말하는 악(惡)은 전후 문맥 안에서, 또한 죄(sin)이기도 한, "윤리적 악(moral evil)"을 말한다.
(2) 발췌자 주: "영신(靈神)"은 "영혼(soul)"을 말한다.
(3) 발췌자 주: 여기서 "사욕"으로 번역된 한자가, ""가 결코 아니고"私" 임은,

(i) 필자가 직접 자료를 찾아서 확인한 (또한,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이 글의 작성 이후에 필자가 상당한 어려움 끝에 확보한 "천학초함"에서 발췌한 이 pdf 파일로의 링크 추가 일자: 2013년 3월 3일]), 한문 저서 七克 七克自序 (즉, 저자가 직접 쓴 서문), 그리고 

(ii) 여기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는 (<-----필히 확인하십시오), 위에 발췌하여 제시한 이익의 성호사설, 제11권七克 에 대한 소개의 글 자체의 우리말 번역문의 한문 원문, 둘 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의 우리말 표현 "사욕"이란 "사욕(慾, 자기 한 개인의 이익만을 꾀하는 욕심)"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사욕(慾)" 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

(5)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칠극(七極)"에 대한 설명인데, 문제는, "칠극(七克)" 에서, 바로 이 일곱 개의 죄들 각각을 극복하기 위하여 각각 제시되고 있는 일곱 개의 덕(virtues)들의 나열과는 상당히 다른, 대단히 잘못된 내용이므로, 반드시 바로잡아져야 한다. "칠극(七克)" 에서 제시하고 있는 일곱 개의 덕(virtues)들의 나열인 "칠극(七極)" 은 "향주삼덕" + "사추덕" 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런 오류 자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버젓이 실려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발췌 시작)
칠극(七極)

「명사」『가톨릭』

칠죄종(七罪宗)에 상대되는 일곱 가지 덕행. 믿음, 소망, 사랑의 향주덕(向主德)과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의 사추덕(四樞德)을 이른다.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끝)

(v) 마찬가지로, 다음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사욕(慾)"이라는 단어의 설명은, 가톨릭 보편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concupiscentia" 의 의미가 결코 아니다:

(발췌 시작)
사욕(邪慾)

「명사」
「1」바르지 못한 잘못된 욕망.
「2」=육욕(肉慾).
(이상 발췌 끝).

(vi) 다음은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concupiscence" 혹은 "concupiscentia" 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는 항들입니다:

   16 concupiscence
    1 concupiscentia

여기서 확보된 정보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은 표(table)를 만들어 봅니다. 나열된 순서는,

(1)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항 번호,
(2)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라틴어 정본 CCC(가톨릭 교회 교리서) 확정 용어,
(3)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프랑스어본 CCC(가톨릭 교회 교리서 번역 용어, 
(4)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CCC(가톨릭 교회 교리서) 번역 용어,
(5) 우리말본 CCC(가톨릭 교회 교리서) 번역 용어

입니다. 특히 바로 이러한 방식의 비교/검토를 통하여, 우리말본 CCC 에서의, 빨간색으로 굵게 표시된, 한자 용어 번역 오류/미숙들을 파악하는 데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1)     (2)          (3)      (4)      (5)
-----+-----------+------------+------+---------------------
 377: concupiscentiaconcupiscence; 貪慾;     욕망 [1요한 2,16]     
 405: concupiscentia; concupiscence; 私慾偏情; 탐욕
 418: concuposcentia; concupiscence; 私慾偏情; 탐욕 
 978: concupiscentiae; concupiscence; 私慾偏情; 사욕(邪慾) 
1264: concupiscentia; concupiscence; 私慾偏情사욕(邪慾)
1426: concupiscentiam; concupiscence; 私慾偏情사욕
1869: concupiscentiam; concupiscence; 私慾;     탐욕
1963: concupiscentiae; concupiscence; 肉性;     욕망 [로마 7 참조]
2514: concupiscentiae; concupiscence; 貪慾(私慾偏情); 탐욕 [1요한 2,16 참조]
2515: concupiscentia; concupiscence; 貪慾; 탐욕[갈라 5,16.17.24; 에페 2,3; 창세 3,11참조]
2520: concupiscentiam; concupiscence; 貪慾;     탐욕
2529: concupiscentiam; concupiscence; 貪慾;     탐욕
2534: concupiscentia; concupiscence; 貪慾; 욕망 [1요한 2,16; 미카 2,2; 지혜 14,12 참조] 

게시자 주: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77항에서 "covetousness"로 번역되고 있는 라틴어 단어 "cupidini"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77항에서 "貪?(탐람)"이라는 한자 단어로 번역이 되었으나, 그러나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14항에서 "covetousness"로 번역되고 있는 라틴어 단어 "cupiditatis" 는 중국어본 가톨릭 교리 교리서 제2514항에서, "貪戀(탐련)" 이라는 한자 단어로 번역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영어로 "avarice" 로 번역되는 단어는 단순히, 자신의 소유가 아닌 사물들을 과도(過度)하게, 죄 있게, 혹은 질투와 함께(inordinately, culpabally, or with envy) 취하고자함, 즉 "탐(貪)" 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십계명의 제10번째 계명(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14항). 이에 대한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근거 구절들은 여기에 있음(필독 권유).
(이상, 게시자 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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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살펴본 바로부터 우리는,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경우에,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

"사욕편정(慾偏情)"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

혹은

"탐욕" [전후 문맥 안에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

으로 번역 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concupiscentia" 를 "탐욕" 으로 번역한 것은, 직역 번역(leteral translation)이라기보다는, 굳이 시도할 필요가 없는,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이다.

(vii) (한자 용어 번역 오류에 대한 첫 번째 제안) 따라서, 바로 위의 (iv)에서 정밀하게 비교/검토한 바에 의하여,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서, 죄(sin)가 아닌 "concupiscentia"를,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의 설명에서처럼 독자들이 죄로서 받아들일 한자 단어인, "사욕(邪慾)", 그리고 "욕망" 을,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처럼, 모두 "사욕편정(慾偏情)" 혹은 "탐욕"으로 수정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국내에서 그동안, 칠죄종 중의 한 개의 죄(sin), "avarice"를 또한 "탐욕"으로 번역해 왔으므로, 독자들의 사고의 혼란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하여, 죄가 아닌 "concupiscence"를 우리말로 용어 번역할 때에, 동일한 한자 단어인, 그리고 특히죄(sin)인, "탐욕(avarice)"으로 용어 번역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삼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때에, 여기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는, 중국 가톨릭계를 거쳐 우리나라 가톨릭계에 상당히 오래 전에 정착한 것으로 보이는, 칠죄종(七罪宗)을 나타내는 전통적 한자 용어들로 바로잡아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즉, 예를 들어, 2007년 3월 26일 초판 발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의 부록에서,

(1) "탐욕"을, "gluttony"에 대응하는 한자 번역 용어인, "도(?, 탐식)" 로 수정하고, 그리고

(2) "인색"을, 자신의 소유가 아닌 사물들을 과도(過度)하게, 죄 있게, 혹은 질투와 함께(inordinately, culpabally, or with envy) 취하고자 함을 뜻하는 "avarice" 에 대응하는 한자 번역 용어인 "탐(貪)" 으로 수정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십계명의 제10번째 계명(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14항).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근거 구절들은 여기에 있음(필독 권유)].

게시자 주:
(1) 혹시하여 추가로 말씀드립니다만, 예를 들어, 역경(주역)에서 그 자구적 의미가 [처음] 설명되고 있는 "인색"은,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바로 잡는 데에 더딘 것을 뜻하므로"인색"이 "칠죄종" 중의 하나로서, "탐(貪)" 대신에, 나열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吝"이라는 한자의 자구적 의미에 대한 더 자세한 글은 여기를 클릭하면(필독 권유) 읽을 수 있습니다.

(2) 여기를 클릭하면, "칠극(七極)" 중의 해탐(解貪)에 대한 우리말 번역문을 읽을 수 있는데 잘 읽어 보면, 주된 내용이 "탐(貪)" 과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 대한 것이며, 이 죄의 극복을 위한 설명이 제시되면서 "탐(貪)하는 자들"의 특징으로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바로 잡는 데에 더딤을 뜻하는 "인색"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우리말 번역문에 등장하는 "인색한"이라는 표현 대신에,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바로 잡는 데에 더딘"을 대입해 보십시오. 그 내용을 훨씬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히 한 개의 문장 안에서 욕심 (혹은 탐욕)과 인색 둘 다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심리적으로 "탐(貪)"과 "인(吝)"을 서로 대비(對比)시킴으로써, 극복의 대상인 "탐(貪)"을 해소하는 예(examples)들을 제시하고 있는 문장들에서 발췌한, 다음의 문장들에 특히 주목하십시오:

"욕심이 많고 인색한 이들" = "욕심이 많고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바로 잡는 대에 더딘 이들" 입니다. 그리고

"탐욕과 인색함으로" = "탐욕과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바로 잡는 대에 더딤으로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viii) (한자 용어 번역 오류와 관련하여 더 바람직한 두 번째 제안)

그런데,

(1) 위의 (vi)에 제시한 표(table)에서 이미 확인하였듯이, 라틴어 정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프랑스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그리고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과는 너무도 달리, "concupiscential"의 한자 번역 용어를 선택할 때에, 때로는 "사욕편정" 으로 직역 번역(leteral translation)하고 그리고 때로는 "탐욕"으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하여야만 하는 이유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며,

(2) 그리고 더 나아가, 결국에, 교황청 발 핵심 문헌들의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자국어로의 용어 번역시에, 즉 자국어 번역 용어들을 (a) 기존의 세속의 단어들 중에서 선정하는 과정에서 혹은 (b)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의 의미/정의(definition)와 혼란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concupiscentia"
 
(i) "사욕편정(慾偏情)", 혹은
 
(ii) "사욕(慾)" 으로 [예를 들어, concupiscible passions사욕(慾)에 의하여 동기가 부여되는 정(情)들],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하는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또 제안합니다.

이는, 이렇게 우리말로 번역을 하여야만, 보유론(補儒論)적 입장에서 칠죄종(七罪宗)을 어떠한 덕(virtues)들로써 극복할 것인가에 대하여 교리적으로 다루고 있는 "칠극(七極)"의 내용도 국내의 가톨릭 교우들이 아무런 교리적 혼란 없이 읽고 또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끝으로,

실제로 여기를 클릭한 후에 <----- 클릭하여 필히 확인하십시오

"??解?" 단추를 클릭하면, 이 "한전(漢典)" 으로부터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 글자의 의미에 포함되어 있는 "윤리적 악(evil)" 은 "" 글자의 여러 의미들 중의 한 개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필자가 1981년부터 소장 중인, 1966년 10월 10일 민중서림 초판 발행의 "한한대자전"을 들여다 보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포함되는 "한문 문화권"에서 자연법(natural law)적으로 "慾(사악한 욕심)" 은 "慾(이기적인 욕심, concupiscence)" 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한문 문화권" 안에서 자연법적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그리스도교 교리적으로도 또한 결코 "慾(concupiscence, 이기적인 욕심)" 을 함부로 "慾(사악한 욕심)" 으로 한자 단어를 바꾸거나 혹은 이들 두 단어를 동일시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근거/출처들을 찾아 전달해드리고자 상당히 많은 시간을 집중적으로 할애하면서 마련된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이미 글이 상당히 길어졌기에, 일단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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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120시간 (자료 조사 및 자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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