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흑산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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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자 [stellara] 쪽지 캡슐

2002-11-26 ㅣ No.3163

흑산도 아가씨 (첫번째 이야기)

 

우리 신랑은 어딜가나 우리 마누라는 흑산도 아가씨라고 마구 마구

알리고 다닙니다. 하도 광고를 하고 다녀서저를 보는 형제 자매들은

제가 흑산도 아가씨라는걸 다들압니다. 노래방에라도 가는날에는

애창곡중 하나는 누군가가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를 입력해

놓습니다. 모두들 즐기는것 같아 보는 저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원조 흑산도(?)아가씨는 따로 이지요.

누구냐하면 저희 친정어머니이지요. 위아래 집에 사시던 친정 아버지

어머니는 어릴때부터 사모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키워가셔서 결혼까지

하셨답니다. 해방전 일본까지 진출하여 신식물을 먹은 분들이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부모님의 고향이지요.

 

귀국하여 작은도시에서 사시던 부모님은 알콩달콩 아들딸 잘 나아가며

행복하에 사시다가 그 어느날 사업에 실패하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보따리 싸들고 어머니의 친정이 있던 흑산도 예리라는 곳으로 들어갔어요. 아버지의 산소는 지금도 그곳 흑산도에 있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저도 코찔찔이 손수건을 가슴에 단채로 그곳으로

전학가게 되었지요.

 

홀로된 원조 흑산도 아가씨는 마흔도 안된 나이에 6남매의 수호신으로

삶을 꾸려 나가게 되었어요. 가장 나이든 장녀인 언니 나이가 방년

17세이고 막내인 남동생은 돌도 안된 갓난애였구요.

2년여의 그곳 생활은 제2편에서 들려 드리고 오늘은 80세된 원조 아가씨의 근황만 알리고 마쳐야 겠네요.

 

용감한 울엄마는 해녀 생활도 하고 품앗이도 하고 정말 의지의 한국여인

그 자체로 어린 새끼들을 부양했어요. 신새벽 동도 트지 않았는데

일어나 일나가시고 밤 12시나 되어야 돌아오셨어요. 오로지 자신이

지켜내야할 자식들을 위해..

올해 80세를 지내셨는데 흑산도 생활 2년만에 담보짐을 싸서 서울로

서울로 올라 오셨지요.  건강하게 잘 계시지요.

그리하여 저는 흑산도 아가씨가 되어 모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거지요.

흑산도 아가씨가 자랑스러운(?) 우리 남편 백베드로는 여기 저기 소문

내며 아마 머지않아 흑산도 홍어를 올려와 한잔할 즐거운 계획을 세우고

있지요. 소문 들으신 여러분도 그날 놀러 오세요.

다음날 이이야기의 2편을 쓸까해요.

즐거운 이야기가 되었나요?

 

5지구 정스텔라가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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